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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도종환·박현수의 시
강 경 호(시인, 문학평론가)
추사 김정희(1786~1856)는 고조할아버지 김흥경(1677~1750)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증조할아버지 김한신(1720~1758)은 영조의 부마, 아버지 김노경은 6조 중 5조의 판서와 한성판윤에 이르는 명문대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호는 추사(秋史), 완당(阮堂) 등 백 수십 개가 있지만 완당을 즐겨 썼다. 실학자 박제가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여 벼슬이 형조참판에 이르렀지만 김우명의 모함에 희생이 되어 9년여에 이르는 제주도 대정에서의 위리안치 귀양살이와 말년에 북청에서 귀양살이를 한 쓸쓸하고 외로웠던 선비이다.
그는 금석문을 통해 서예를 연구하여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가 되었다. 그의 독창적인 추사체는 그의 삶과 예술혼이 투사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추사는 훌륭한 화가가 아니다. 그가 난을 나름대로 그렸지만 내가 보기에는 화가라는 말이 잘 안 어울릴 정도로 난 이외에 그림은 잘 그리지 못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그의 전공은 금석문과 더불어 글씨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그림 하나로 문인화의 대가로 명성이 빛나고 있으니 어쩌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좋은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들도 명성이 미미한 경우가 많은데 「세한도」라는 걸출한 그림이 불우했던 말년을 후대에 보상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 더욱 많은 시인들이 그의 「세한도」에 매료되어 시를 썼으니 떠나간 지 150여 년이 흘렀지만 추사 김정희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당대에도 「세한도」는 이른바 ‘세한도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절친한 친구 권돈인은 영의정에 이른 사람인데 추사의 「세한도」를 보고 창작의욕을 느껴 「세한도」를 그렸다. 추사의 「세한도」처럼 겨울날의 정취를 통해 문인화의 높은 경지를 담아냈다. 그러나 추사의 「세한도」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추사는 거친 붓터치를 구사했지만 권돈인은 젖은 듯한 윤필을 강조하여 온후한 느낌을 준다. 권돈인의 후덕함이 엿보이는 이 작품에 훗날 추사는 화제를 써 주었다.
진도에 ‘운림산방’을 열어 미산, 남농에 이르는 남도 남종화의 물줄기를 튼 소치 허련은 추사의 가장 아끼는 제자로 그 역시 「세한도」를 그렸다. 소치는 이 그림에서 아예 “추사의 필의를 본 받았다”고 그림에 글씨를 써 넣었다. 이후에도 소치는 이와 비슷한 산수화를 많이 그렸다. 추사의 「세한도」는 그 연원이 문인화풍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제시한 셈이다. 그리하여 「세한도」의 명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추사의 「세한도」가 문인화풍의 전통에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세한도」는 그의 곧은 성격에서 나왔다. 그의 초상에서 느끼는 풍모는 온화하고 매우 점잖았지만 성격은 늘 할 말을 우회적으로 하지 않고 말을 아끼는 쪽이 아니었다. 때로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톡 쏘아 붙이는 다혈질의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9년여에 이르는 제주도 대정에서의 담장 밖으로도 나갈 수 없는 위리안치의 귀양 생활은 분통터지고 참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권력이나 재물 등 세상의 헛된 것을 좇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나무처럼 곧고 매실처럼 시디 신 정신으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가꾸어간 선비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가 귀양살이 할 때 그의 제자 이상적이 수많은 책을 연경(북경)에서 구해다 스승인 추사에게 보냈으니 추사는 이상적의 절의가 고맙고 예뻐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추사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발문을 써서 보냈다.
천만 리 먼 곳에서 책을 사서 권세가에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자신에게 보내 주곤 했으니 “날이 차가워(歲寒)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松柏)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한 공자의 말을 빌어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을 기특하고 고맙다고 발문을 붙였던 것이다.
스승으로부터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그림을 연경에 가서 표구를 하여 중국의 지기들에게 자랑을 하였다. 그러자 좌객들이 모두 격찬을 아끼지 않고 제(題)와 찬(贊), 그리고 시(詩)와 문(文)을 붙였다. 이것이 「세한도」에 붙어 있는 「청유십육가(淸儒十六家)의 제찬」인 것이다.
추사의 「세한도」는 실경산수가 아니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제자 이상적에 대한 마음속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 것이다. 이는 평소 그의 마음속 풍경이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 있는 실경이 아닌 것이다. 조선 사대부의 도를 좇은 추사의 성품과 인품이 투사되어 있으므로 「세한도」에 격조와 문기가 흐른다.
추사의 「세한도」는 워낙 잘 알려졌으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림이다. ‘세한(歲寒)’이란 ‘설 무렵의 추위’를 말한다. 즉 일년 중 가장 추운 날씨이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은 폭설에 갇혀 간절하게 봄을 기다렸다. 나무들도 얼어붙은 몸으로 눈 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견디는 것이다. 나는 이럴 때 겨울이 깊어 영영 봄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나 봄이 오면 사람도 나무도 모두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방물장수는 고개넘어 방구를 울리며 마을을 찾아오고 나무들은 생기 발양하게 신록의 생명력으로 푸르러지는 것이다.
추사의 「세한도」는 봄이 오기 전의 가장 추운 날이 푸르름을 형상화 시킨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의 푸르름이란 그의 그림이 관념을 이미지화 시켰 듯이 정신적 푸르름을 말한다. 화면의 중심에 소박하기 그지없는 창문이 있는 단촐한 집 한 채 있고 좌우에 두 그루씩 네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오른쪽 두 그루 중 하나는 나뭇가지가 오른쪽으로 뻗어있는 소나무이며 그 옆에 잣나무가 서 있다. 굳이 이것을 의미화 시키자면 소나무는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은 노쇠한 스승 추사를 나타내고 곧게 하늘로 뻗어 있는 잣나무는 제자인 이상적을 나타낸다고 생각해 보았다. 오른쪽으로 드리운 소나무 가지가 마치 팔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남은 팔 하나는 어디에 있는가. 고문에 팔이 꺾여버린 추사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넘어질 듯 서있는 스승을 부축하고 있는 제자의 모습 같다면 너무 비약시킨 것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집 왼쪽에 서 있는 잣나무는 스승을 흠모하는 추사의 제자들로 느껴진다. 험한 뱃길을 세 번이나 적소를 찾아 몇 달씩 함께 해준 운림산방의 주인인 소치 허련쯤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물론 이 그림은 미학적 관점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이 그림은 실경산수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린 죄인을 외면하는 현실에서 그러한 눈치 보기를 초월해 의리를 지킨 제자 이상적의 용기와 절개를 그렸음을 발문을 통해 알 수 있기에 필자가 애써서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사적 서사를 통해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미학적으로 이 그림을 바라보아도 추사의 「세한도」는 추사예술의 최고의 정점이며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감정이 매우 절제되어있다. 흐르는 정도가 아닌 조금 마른 먹물을 묻혀 붓질을 한 까닭에 붓 터치가 거칠어 보인다. 갈필의 효과를 적절하게 거두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특히 이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처진 반듯한 화제가 그림의 오른쪽 여백을 지탱하고 있어 그림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발문이 시작되는 그림의 중앙 부분에 붉은 인장이 찍힌 것이 방점을 찍은 듯 아름답다. 흔히 추사의 「세한도」를 그림 부분만 떼어내 감상하는데, 그러나 이 그림은 발문과 함께 어울려야 제 맛이 난다. 예서의 기미가 남아 있는 반듯한 이 해서체는 울림이 강하면서도 엄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내용과 어울려 심금을 울리는 강도가 더욱 깊다하겠다.
우리가 흔히 추사체라고 하는 추사의 독특한 필법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조선 최고의 금석문 학자답게 옛 금석문을 연구하여 창안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강직한 그의 성품에서 나온 것이기에 추사체에는 김정희 삶의 서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추사의 「세한도」는 그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왼쪽의 발문과 함께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시인들이 추사의 「세한도」를 제대로 읽어내고 창작하였는지 의구심이 든다. 단순히 추사의 험난한 삶의 서사를 처연하게 생각하고 시를 쓴 경우가 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 「세한도」를 시로 쓰니 너도 나도 「세한도」를 경쟁적으로 쓴 시절이 있었다. 참으로 많은 절창의 「세한도」가 쏟아져 나왔다. 이근배 시인이 60여 편의 「세한도」를 한 권의 책으로 묶기도 했다.
우선 빼어난 「세한도」 중에서 도종환·박현수의 「세한도」를 읽는다.
소한이 가까워지자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져
그대 말대로 소나무 잣나무의 푸르름은 더욱 빛난다
나도 그대처럼 꺾인 나무보다 꼿꼿한
어린 나무에 더 유정한 마음을 품어
가지를 매만지며 눈을 털어낸다
이미 많은 새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난 지 오래인데
잔가지로 성글게 엮은 집에서 내려오는 텃새들은
눈 속에서 어떻게 찬 밤을 지샜을까
떠나지 못한 새들의 울음소리에 깨어
어깨를 털고 서 있는 버즘나무 백양나무
열매를 많이 달고 서 있던 까닭에
허리에 무수리 돌을 맞은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소나무 잣나무에 가려 똑같이 푸른 빛을 잃지 않았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측백나무
폭설에 덮인 한겨울을 견디는 모든 것들은
견디며 깨어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겹게 아름답다
발 아래 밟히며 부서지는 눈과 얼음처럼
그동안 우리가 쌓은 것들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
대륙을 건너와 눈을 몰아다 뿌리는
냉혹한 비음의 바람소리
언제쯤 그칠 것인지 아직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기나긴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가던 길
그대 오만한 손으로 떼어냈던
편액의 글씨를 끄덕이며 다시 걸었듯
나도 이 버림받은 세월이 끝나게 되면
내 손으로 떼어냈던 것들을 다시 걸리라
한계단 내려서서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그대 이름을 불러보리라
이 싸늘한 세월 천지를 덮은 눈 속에서
녹다가 얼어붙어 빙판이 되어버린 숲길에서
-도종환 「세한도」 전문
승승장구 병조참의까지 오른 추사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암행어사로 충청도 비인에 내려가 현감 김우명의 비리를 발견하여 그를 봉고파직한데서 시작되었다. 김우명은 안동김씨로 이후 안동김씨가 권력을 휘두를 때 추사의 아버지 김노경과 추사를 모함하여 귀양 가게 된다. 「세한도」는 귀양시절, 제주도 대정 적소에서 그린 것이다.
도종환(1954~)의 「세한도」는 추사가 가장 외롭고 쓸쓸할 때인 귀양살이 시절의 심경을 자신의 지난한 삶에 대입하여 빚어낸 작품이다. 특히 따뜻한 것만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속성을 질타하며 한때 오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기도 한다.
화자는 일년 중 가장 추울 때 “소나무 잣나무의 푸르름은 더욱 빛난다”고 말한다. 추운 날 대부분의 나무들이 생장을 멈출 때 눈 속에서도 꼿꼿하고 푸르기 때문이다. “나도 그때처럼 꺾인 나무보다 꼿꼿한/어린나무의 더 유정한 마음을 품”은 추사의 마음에서 생명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추사의 이러한 마음은 “잔가지로 성글게 엮은 집에서 내려오는 텃새들은/눈 속에서 어떻게 찬 밤을 지샜을까”에서 보다 뜨겁게 다가온다. 폭설에 눈을 뒤집어 쓴 버즘나무, 백양나무, 소나무, 잣나무, 측백나무 등 겨울을 견디고 있는 것들의 그 모습만으로도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까닭은 그 신산한 시간 뒤에 생명이 발양하는 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눈여겨 보아 주지 않는 측백나무”에 눈길이 더욱 가는 것은 “푸른빛을 잃지 않았어도” “소나무 잣나무에 가려”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도종환의 「세한도」에서 화자가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는 나무들에 대해 연민과 따스함으로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나무들에 대한 생각만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어렵지만 비굴하지 않게 잘 견디는 존재들의 꿋꿋함을 격려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견디며 깨어있는 것만으로도 눈물겹게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우리가 쌓은 것들”은 욕망의 결과여서 한갓 헛된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폭설에 “발아래 밟히며 부서지는 눈과 얼음”을 보며 인간이 쌓은 것은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아직 끝나지 않은 폭설 같은 자신의 시련이 “언제쯤 그칠 것인지 아직은 예측 할 수 없다”고 한다. 추사의 귀양시절과 오늘 자신의 삶을 화자는 같은 처지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때 생각나는 것이 추사의 삶이다. 즉 추사가 “기나긴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가던 길/그때 오만한 손으로 떼어냈던/편액의 글씨를 끄덕이며 다시 걸었듯/나도 이 버림받은 세월이 끝나게 되면/내 손으로 떼어냈던 것들을 다시 걸리라”며 오만하고 불손했던 지난날들을 통찰하며 반성하는 것이다.
추사가 귀양길에 나섰다가 해남 대둔사에서 동갑내기 친구 초의선사를 만났다. 추사가 글씨가 마음에 안 들어 대웅전에 걸려있는 이광사의 글씨인 대웅보전 현판을 떼어 내게 했다. 그러다가 해배가 되어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이광사의 현판을 걸게 하였다. 이광사는 조선 최고의 서예가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추사의 눈밖에 났던 것이다. 그런데 귀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이광사의 글씨를 보니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화자도 추사처럼 살았던 오만함을 반성하며 “내 손으로 떼어냈던 것들을 다시 걸리라” 다짐하는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추사의 삶의 서사와 「세한도」의 이미지를 시 속에 자신의 삶과 대비시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추사의 「세한도」에 깃든 이상적과 추사의 아름다운 절의를 “소나무, 잣나무”로 형상화 시키고, 오만했지만 다시 반성하는 모습에서 도종환 시인은 “한 단계 내려서서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그대 이름을 불러 보리라”한다.
좋은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 감동은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삶의 자세를 다시금 고치게 한다. 「세한도」를 쓴 대부분의 시인들의 시는 이를 잘 말해준다. 박현수(1966~)의 시 「세한도」도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1
어제는
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
따라다니다 꿈을 깼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나는 눈물로 따라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 들에 서고 말았다
어혈(瘀血)의 생각이 저리도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
헝크러진 삶을 쓸어올리며
첫닭처럼 잠을 깼다
누군 핏속에서
푸르른 혈죽(血竹)을 피웠다는데
나는
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까
2
바람이 분다
가난할수록 더 흔들리는 집들
어디로 흐르는 강이길래
뼛속을 타며
삼백 예순의 마디마디를 이렇듯 저미는가
내게 어디
학적(鶴笛)으로 쓸 반듯한
뼈 하나라도 있던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더미 같은 나는
스무해 얕은 물가에서
빛 좋은 웃음 한 줌 건져내지 못하고
그 어디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
어느새
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시누대처럼
야위어가는 것
-박현수 「세한도」 전문
박현수의 「세한도」는 추운 날 푸르게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기상과 변하지 않는 절개가 시의 구도이며 색채 미학이다. 화자는 이 ‘세한도’라는 은유 속에 내재된 정신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되비춘다.
서두부터 “어제는/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따라 다니다 꿈을 깼다”고 말하는 것은 화자가 의연한 정신으로 고단한 현실을 이겨 내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추사의 정신을 닮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자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눈물로 따라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 들에 서고 말았다”며 추사의 정신을 온전하게 따라 갈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화자가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헝클어진 삶을 쓸어 올리며” “첫닭처럼 잠을”깨는 것은 화자의 정신이 추사의 정신을 지향하는 까닭이다.
이때 화자가 떠올리는 또 하나의 정신은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자 목숨을 버린 민영환의 정신이다. 민영환의 피가 묻은 방에서 나라를 위한 곧은 마음을 보여주는 대나무가 솟아났다는 ‘혈죽의 고사’처럼 화자의 피가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화자는 “바람 불고” “가난”할수록 “흔들리”며 “어디”론가로 흐르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삼백 예순의 마디마디”가 저미는 아픔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힘들어 한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보폭이 넓은 영혼”처럼 살지 못했던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한 삶을 “학적으로 쓸 반듯한/뼈 하나라도” 없었으며 “끝도 없이 무너져/스므 해 얕은 물가에서/빛 좋은 웃음 한줌 건져내지 못하고”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빈 들”과 “빈 하늘”은 「세한도」의 구도가 아니다. 즉 화자가 닮고자 하는 추사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화자는 “어느새/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고 노래한다. 「세한도」의 정신을 따르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화자는 “이제/내게 남은 일이란/시누대처럼/야위어 가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시누대”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견디며 특히 겨울에도 변함없이 제 주장을 가지고 푸르고 반듯한 것의 기표이다.
도종환 시인의 작품은 추사와 그의 제자 이상적의 서사가 그 배경이 되었다. 이에 반해 박현수 시인의 시는 추사의 삶만을 시적 배경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들 시인 모두의 작품은 통찰과 성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아니 「세한도」를 쓴 시인들의 작품 대부분이 추사의 「세한도」에서 자신들의 삶을 뒤돌아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그림 한 점이 많은 사람들을 여전히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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