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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본문 : 예수님의 흔적
설교 본문 : 갈라디아서 6: 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헬라어로 ‘흔적’ 이라는 말은 ‘스티그마타’라고 하는데 그 뜻은 본래 종이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낙인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이와 같은 예수님의 종이 된 낙인, 즉 흔적이 많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복음을 전하며 받은 고난은 고후 11:23-33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
이것은 바울이 예수님의 종으로써 예수님께 속해 있고 온전히 주인 되신 예수님께 충성과 섬김을 증거하는 낙인을 말하며 바울만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흔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지신 예수님의 흔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누구를 섬기며 누구의 종으로 사셨으며 예수님이 몸에 찍힌 종으로써의 낙인은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11절에 보면 예수님의 흔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첫째로, 예수님의 흔적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고 종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하늘 보좌를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화려한 왕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추위를 피해줄 따뜻한 방 하나도 구하지 못하고 마구간에서 태어 나셨으며 그 후에도 예수님의 삶은 당신 자신의 삶을 부인하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종으로써 섬기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요13:14)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들을 쫒으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마4:23)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마16:24)
예수님처럼 당신 자신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철저하게 창조주이신 당신 자신을 부인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고(눅9:58) 성전세 낼 돈이 없어 베드로보고 낚시하여 물고기를 잡으면 그 입에 동전이 있으니 그 돈을 가지고 내라하셨고(마17:27) 탈 나귀도 없으셔서 빌려서 탔습니다. 그러나 주가 쓰시겠다하여 주님의 주인되심을 나타내셨고 그 나귀 주인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눅19:30-31)
이와 같이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면서도 철저하게 이 땅의 것을 부인하셨는데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한데도 이 땅의 것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만 내려놓는 삶을 살아야 하고 내 자아가 원하는 것을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천국을 사모한다면 이 땅의 모든 소유를 팔아 천국을 사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마13:44)
이 땅의 소유나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천국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시간은 영원한 천국의 삶에 비하면 아주 잠시에 불과 합니다
성경은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약4:14)
그 짧은 인생에 우리는 목숨을 걸고 있는데, 천국 가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지 지옥 가는 일에 목숨을 걸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이유는 평안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삶은 잠시 잠간입니다.
영원한 삶을 위해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올 때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갑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잠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내 생명도, 내 모든 소유도 물질도, 재산도 다 하나님의 소유고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 하면서 주인 행세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주장이고 헛된 믿음인지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셨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몸소 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을 본받아 종의 삶, 즉 비우는 삶을 사시고 하나님과 남을 섬기는 삶을 사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흔적은 받으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이 곧 예수님 당신 자신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고 증거 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5:39)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 시편 22장과 이사야 53장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시편 22편 1절에 보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그것은 마가복음 15장 34절 말씀을 통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시편 22편 68절에 보면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가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가 기
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7장 39-44절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회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그 밖에 많이 나오나 16절을 하나 더 살펴보면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23-24절에 잘 묘사되어 있는데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제비 뽑자 하였고 34절에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라고 기록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 53장 2-9절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을 가장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어린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해 너무나 자세히 예언되어졌고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섬기고 따른 다는 것은 이 땅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가야 하는 고난과 죽음의 길입니다.
편한 것은 천국에서 누리고 이 땅에서는 예수님처럼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결국 인류의 타락과 죄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죄와 싸우되 죽기 까지 싸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12: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죄를 미워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이 다 한결 같이 고난을 받고 이 길을 걸어 갔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 땅에서 편하게 살면서도 천국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잘못된 ‘번영 복음’이 교회까지 들어와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이 세상에서 축복을 누리고 천국 간다는 복음이 ‘번영복음’의 내용인데 성경을 읽으면 이 내용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10)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박해를 받아야 복이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마5:11-12)
셋째로, 예수님의 흔적은 부활하신 몸입니다.
예수님은 약속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몸에 예수님이 친히 받으신 고난의 흔적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의 손과 발, 옆구리에는 그 흔적들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 흔적들이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커다랗게 남아 있는 못 자국과 옆구리에 남아 있는 창자국이 그 증거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찾아 오셔서 그 고난의 흔적들을 보여주시며 이 흔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몸으로써 보여 주셨습니다.(요 20:19-29)
제자들은 이 사실을 반신반의 했고 잘 믿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7절에는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비교하게 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얼마나 믿음의 행동을 하나님 앞에 보였습니까?
주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눅18:8)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약2:26)
부활하신 예수님의 흔적은 말이 아닌 행동이며 희생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른 다는 것은 말로 따르는 것이 아닌 죽음으로써 따라야 된다는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리라.(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는 예수님의 종으로써 믿음과 자신의 목숨을 바침으로 충성으로 보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실 때 부인하고 도망하고 부끄러운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지만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하고 난 뒤 변화되어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게 됩니다.
부활은 마귀가 지배하고 있었던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멸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셨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2:14)
부활하신 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주시면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눅 24:49-53)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 동안의 불신앙을 전심으로 회개하고 금식하며 회개하고 기도에만 메달렸습니다.(일주일)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 하지 않느냐고 질문했을 때 신랑을 빼앗기게 되면 금식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심으로 그들이 그 말씀을 깨닫고 열심히 금식하며 기도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막 2:18-20)
그리고 오순절 날 그 약속하신 성령 강림이 이루어졌습니다.(행 2장)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그 때부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신앙과 죽음으로 예수님의 흔적을 대신 보여 주었습니다.
결 론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씀으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몸에 친히 받으신 고난의 흔적으로 그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말과 행동과 죽음으로 그 사랑의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흔적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