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글이 잘 풀리지를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마침 집 근처의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던「패치아담스 」라는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본 일이 있다. 사실 그날은 몹시 머리가 아파서 그냥 머리를 식히려고 갔던 것인데 전혀 기대 밖으로 너 무나 큰 감명을 받아 극장 안 어두운 곳에서 수첩에 메모해 놨다가 집에 가자마자 논문의 서론 부분을 줄줄 써내려갈 수 있었 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패치아담스는「죽음은 적(敵)이 아니라 위엄(威嚴)을 가지고 맞이해야 할 인간 삶의 종착지」라고 하였다. 의사가 질병을 치료하다가 더 이상 치료(완치)할 수 없을 때 실패했다고 느끼는데, 병을 치료하면 이길지 질지 모르지만 사람을 치료하면 언 제나 이긴다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을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소통능력을 키우고 인간애(人間愛)를 길러야 한다고 외치면서 「죽음은 인 간이 위엄(威嚴:dignity)을 가지고 맞이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루 일과를 끝낸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오듯이 「죽음은 자연스런 인간 삶의 종착지이기에 그것과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것은 사실 늘 호스피스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호스피스의 철학(哲學)은「죽음이란 인간 삶의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a normal process of life)」라고 본다. 그러므로 생의 마지막 시간 동안 비록 완치는 안되더라도 최선을 다해 증상을 조절하고 삶의 질을 높이 며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죽음을 맞아들일 수 있도록 개인적인 관심과 배려를 최대한 제공한다. 인간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 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에 도움이 되도록 의료인뿐 아니라 성직자도 한 팀을 이루어 활동한다.
그런 이유로 현대적 의학 기술로도 완치하지 못하는 질환의 말기에 있는 사람들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으면서 내면(內面)의 상처가 치 유되고 인간 실존(實存)의 의미를 찾게 되어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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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호스피스 철학(哲學) 중 하나는「生의 마지막 과정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희망하는 방식으로 살다가 원하는 장소에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기 질환이라고 모든 사람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서 환자와 가족의 동의하에 입원시키는 것이다. 또한 生의 마지막 시기에 지나간 생애(生涯)를 돌이켜 보면서 삶을 정리하고「안녕」이라고 말하고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해도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게 된 환우(患友)들 중에서 내세(來世)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마지막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퀴블러 로스가「수용(受容)」이라고 명명하였던 정서(情緖)가 우리가 돌보았던 한국인 호스피스 대상자 중 10% 정도에서도 나타났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하였던 K씨와 L군이 그런 경우였고 Y씨 역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Y씨는 굳었던 온몸 이 풀린 다음날 부인에게 자신의 통장과 도장, 비밀번호 등과 함께 자신의 재산 상태를 알려주었으며 조용히 있고 싶다고 하여 다른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개인 병원으로 병실을 옮겼다. 일주일 후 방문하였을 때는 처음보다 안정되어 보였으며 통증은 잘 조절되고 있 었으나 복수(腹水)가 약간 차 있었다. 정기적으로 성직자와 상담을 하고 있었으며 환자가 편안해 하자 부인도 안정이 된다고 하였다. 1시간 정도로 방문을 마치려 하자『다음에 한 번만 더 와 주세요』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회사의 중역들을 오라고 해서 회사 경 영에 대한 지침과 권한 이양 및 정리를 하였다고 한다. 1주일 후 세번째로 방문하였을 때 Y씨는『이제 그만, 됐어요. 감사합니다』라 고 했다.
사실 Y씨의 진행정도로 보아 아직 시간이 조금 더 있다고 생각했는데 Y씨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그래서『이제 시간이 없다는 뜻인가요?』하고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혹시 알 수 없어서 부인에게『일 주일 뒤에 방문할 예정인데 그동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Y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오라고 해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부인을 잘 부탁한다고 당부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를 청하여서 자신이 떠난 후에도 부인을 위하여 가끔씩 방문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부인에게는 먼저 갈 테니 나중에 만나자고 하고 장례식에 대한 내용도 미리 원하는 방식을 이야기한 후『 빛이 보인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전화를 받고 장례식에 참석한 필자에게 Y씨의 부인은『지옥(地獄)에 안 가는 방법을 알려 주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 고 하였다』면서 고맙다고 하였다.
J부인 역시 우리에게 많은 감명과 가슴 아픔을 주었던 경우였다. J부인은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에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고 두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살아왔다. 유방암(乳房癌) 말기로 암이 폐(肺)에 전이(轉移)된 상태였는데 의학적으로는 조금 더 치료해 보았으 면 하고 담당 의사가 아쉬워하였으나 본인이 더 이상 항암 치료는 하지 않고 호스피스 치료를 받겠다고 하였던 경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