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바로 추석인지라 저녁메뉴는 한식으로 정한 모양이다. 장소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춘천처갓집' 간판이 달린 한식집에서 월병시식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도중 '서원의원'이라는 중의원(한의원의 중국식 명칭)에 들렀다. 병원에 도착하자 나이가 지긋하신 조선족 할머니가 우리일행에게 이곳 병원의 역사와 중의학의 우수성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곳 병원의 원장이 조선족이라고 한다. 물론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이지만.......
무료로 진맥을 해준다는 할머니의 말에 따라 우리 일행중 몇몇은 2층으로 올라가고 나는 버스에 돌아와 잠시 피로를 씻고자 눈을 붙였다. 진맥을 마치고 돌아온 일행과 함께 시내 관광에 나서기로 했다. 내가 북경에 오기전 서점에 갈수 있는 시간을 안배해 달라 하였더니 알산님이 소프트웨어 쇼핑겸 서점쇼핑을 위해 컴퓨터 전문거리에 가자고 한 모양이다.
북경에 와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교통질서가 원만치 못하는 점이었는데 차들이 천천히 달려서 인지 신기하게도아직까지 교통사고를 목격치 못했었다. 그런데 웬걸....
이화원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길목에 3건의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나는 버스에서 이동하는 순간에도 북경시내를 조금이라도 더 눈요기 하기 위해 잠도 자지않고 유심히 창밖을 보며 가는데, (우리 기사 아저씨도 마찬가지이지만) 차량이 붐비는 도로에서 차선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조건 차량 앞 대가리를 들이민다. 서로 먼저 진입하기 위해 차량 두 대중 누구도 양보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차량끼리 부딪힐려는 찰나 내가 뒤졌다고 생각되는 차량이 비로서 멈춘다. 이날따라 도로 곳곳에 정체가 심하다. 추석이라 그런가? 중국인들은 중추절이 공휴일이 아니라 하던데....
두건의 교통사고는 일반도로에서 목격하게 되고 한건은 고가도로 위에서 목격했는데 자그만치 5중충돌이엇다. 다행히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은것 같기는 하고....
차량들이 앞뒤로 심하게 찌그러져 있다. 내가 가이드한테 궁금한게 있어 물어보았다.
이처럼 복잡한 길에서 끼어들기 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잘잘못을 어떻게 판단하냐고.....
대답 왈, 누구 잘 잘못을 떠나서 ‘일단 지위가 높은사람’, ‘배경이 든든한 사람’순으로 잘 잘못이 가려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이 사고를 당한 경우 한푼도 보상받지 못하고 쫓겨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이랬으리라 생각하며 일면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북경시내 어느 이름모를 컴퓨터 전문 거리에 도착하였으나 알산님이 보기에 별로 물건이 신통치 않음 모양이다. 그리고 가이드가 안내한 서점 하나도 무슨 문방구점 같은 곳으로 내가 원하는 책이 있을 법 같지가 않다. 재키만 몇개 씨디하고 테이프를 산다음 우리 일행은 다시 또 차에 올라서 저녁을 먹기 위해 '춘천 처갓집'으로 향한다.
처갓집으로 가는 길이 보통 밀리는게 아니다. 기사아저씨도 지체가 심하다 싶은지 내가 보기에도 수없이 많은 교통수칙을 위반하면서 손발을 바삐 움직인다. 어떤곳에선 일방통행으로 출구금지 지역인 곳에서 빠져나가기도 하고....한가한 지름길로 가느라고 비포장 시골길을 지나칠때에는 퇴근길의 수많은 자전거 행렬과 더불어 도로 옆 (빨래줄이 아닌) 나무 가지가지 위에 올려놓은 빨래감들이 눈에 띈다. 내가 가이드에게 빨래를 저 나무위에 올려놓으면 먼지가 묻어서 다시 빨아야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냥 피식 웃고 만다.
어렵게 어렵게 처갓집에 도착하였다. 차량이 도착하자 스커프를 손에든 상인들이 스커프를 흔들면서 '10원' '10원' '싸요' '싸요'를 외친다. 그들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한국인들로 붐비고, 오늘이 추석이라 그런지 주인인 듯 또는 총 책임자인 듯한 젊은 여인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우리를 반가이 맞이한다. 가이드가 예약을 하였을 것이라는 짐작에도 불구하고 늦게 도착한 탓인지 빈방이 없다. 겨우 10명이서 앉을 만한 장소를 물색하여 일부가 그자리에 앉고 옆테이블에서 식사중인 한국인 손님이 일어서기를 기다려 한참만에 모두 한방에 앉게 되었다. 종업원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밖을 내다보니 로비에 있는 식탁에도 손님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게중 몇몇은 중국인도 있을 터이고 노란머리를 한 서양인도 몇몇 눈에 띄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우리테이블위에 김치를 시작으로 빈대떡도 나오고, 무침나물도 나오고 마지막으로 된장찌게와 공기밥이 나온다. 그러나 김치를 비롯한 찌게등이 한국에서 먹었던 맛이 전혀 아니다. 그저 배고품에 잘 먹었다는 기억 외에는...
반주를 곁들인 식사가 끝나자 알산님이 월병 시식이 있다고 한다. 너무 배부른 탓에 저녁에 호텔에서 밤참으로 먹자고 했으나 일부 월병에 배고픈 인간들로 인해 그자리에서 한두개씩 작살이 난다.
배부른 소크라테스를 실은 버스는 말로만 들어왔던 왕푸징 거리에 우리를 내려놓고 돌아간다. 가이드를 비롯한 우리 일행은 멋들어지게 장식한 왕푸징 한복판 신동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 북경은 9시 30분이면 모든 상가가 철시를 한다. 그런데 오늘 이동하면서 교통이 순탄치 못한 관계로 저녁식사가 늦어지고 따라서 왕푸징거리 참관도 다소 늦은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8시 40분경에 도착한 우리일행은 9시 20분 신동안 정문에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헤여졌다. 장인 장모도 없는 '처갓집'에서 과식한 탓인가? 오는 도중에 배탈이 났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을 찾는데 화살표가 지하1층을 향하고 있다. 어렵게 화장실을 찾았는데 7,8개는 됨직한 큰방(大便)이 모두 만원이다. 이들은 노크문화에 길들여지지 않은건가. 문을 두드리면 노크대신 사람소리가 들린다.
'이어우'
어떤곳은 아예 소리도 내지 않는다. 빈방인줄 알고 문을 열면 열리지 않는다. 한곳에서는 노크를 하자 아무소리가 없어 문을 열었더니 사람이 앉아 용변을 보고 있다.
망칙스럽게 문을 잠그지도 않은채....
베낭을 질머맨 나의 이런모습이 신기한듯 벽쪽을 향해 소변을 보고 있던 중국인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화장실은 우리나라 일류호텔 못지 않게 깨끗하다. 남자종업원이 걸레를 들고 서있는 것으로 보아 수시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양이다. 중국사람들은 먹기도 많이먹고 내놓기도 많이 내놓는 모양.....
나는 밖에 서서 그 많은 방중에 한놈이라도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물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근 5분여를 기다린 후 어렵게 용변을 마칠수 있었다. 그만큼 이곳 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용변을 마치고 위층으로 올라오니 아무도 안보인다. 일면 두려우면서도 나홀로 일행에서 떨어지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이 없지 않았던터라 무조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위로 올라갔다.
이곳 신동안시장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과연 중국인 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가운데 둥근 원형을 빈공간으로하여 점포들이 작은 골목골목 사이로 즐비하다. 나중에 알산님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곳 왕푸정은 과거 거대한 재래시장이었다 한다. 이러한 고풍스러운 재래시장을 이곳 신동안시장으로 모두 흡수하여 거대한 상가를 형성하였다는 얘기다. 우리시각으로는 분명히 백화점인데 굳이 시장이라는 표현을 쓰게된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모양이다.
5층쯤에 올라 선물점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우연히 오리커플이 안으로 들어온다. 옥보석, 칠보보석등의 가격을 보니 둘째날 관광했던 전문 쇼핑점에 비해 오히려 가격이 싸다는 느낌이 든다. 집사람에게 줄 옥보석 선물을 몇개 사고서 책을 한권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점의 위치를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지하 1층에 있다고 한다. 오리커플과 헤어진후 다시 또 지하1층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조금전 화장실 갈때는 자세히 못보았지만 지금 보니 음식점 골목도 보이고 어린이 장난감 코너도 보이고 내가 찾던 서점이보인다. 서울에서 죠세핀이 만화책 한권만 사달라는 부탁도 있고 해서 서점에 들렸는데 상당히 큰 서점이라 생각되었다. 구름님이 추천한 사전 한권을 사고 세핀에게 줄 만화책을 살려는데 만화책이 보이지 않는다. 할수 없이 대만에서 원작한 4컷씩 세로로 배열된 단행본 만화 몇권을 손에들고 서점을 나섰다. 시간은 벌써 9시 30분이 가까워지면서 종업원들은 벌써 출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빠른 걸음으로 1층에 도착하니 어느새 우리 일행이 모여있다. 이곳에서 숙소까지는 걸어가기로 하였다. 길거리에는 주말을 맞아 쇼핑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 중국인들의 습관에 따라 월병을 먹기위함인지 아이의 손을잡고 나온 가족 무리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띈다. 휘황찬란한 왕푸징 거리를...사람과 사람사이를 비집어 뚫고 나가면서 가이드 뒤를 바짝 따라온 우리는 무사히 대로변에 나와서 큰길을 건널수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만한 거리를 수많은 차량들이 지나다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중국인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신호등을 무시한채 10차선 대로를 건넜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알산님을 비롯한 10명 내외의 나머지 일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 왕푸징 거리에 들어섰을때부터 불안해 하던 가이드의 걱정이 드디어 현실로 나타난것이다. 어젯밤에는 샤오짜오 때문에 걱정스러워 잠을 자지 못했다는데 오늘은 그 많은 일행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모두 알산님과 같이 있을 터이고 알산님이 어느정도 북경 거리에 익숙하니 그냥 숙소로 들어가자는 우리들의 설득에 20여분을 걸어 숙소에 도착하였다. 호텔에서도 알산님은 보이지 않고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니 알산님 일행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가 온다. 또한 1023호에서 맥주파티가 있으니 건너오란다. 지난번에 이어 2차 맥주파티가 있다고...
알산님 말에 따르면 대로변까지는 무사히 도착하였으나 우리 일행을 놓치고서 반대방향으로 갔다 한다. 가다보니 무슨 천안문 광장이 나오더라나....
티엔님 방에 들어가니 황과장 가족 일행과 몇몇 회원을 제외한 10여명이 모여 있다. 아마 첫날 도착하여 마시고 남은 맥주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모양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첫날에 알산님과 황과장이 각각 한번씩 두번에 걸쳐 맥주를 사왔고 그날 실컷 마시고 남은 맥주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내가 서울에서 가져온 과자 몇봉을 안주삼아 이런저런 이야기에 새벽 1시가 넘도록 마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