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 김정익(53) 사장은 어릴 때부터 발명가가 꿈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늘 기막히고 엉뚱한 아이디어로 가득했다. 10년 전 구수한 누룽지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고 지난해부터는‘숭늉’을 가공식품으로 개발해 세계 시장에 내놓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죠. 토종 음료인 숭늉을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김 사장은 숭늉의 맛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거부감이 없다고 말한다. 짜거나 달지 않아 거부감이 없는 게 숭늉의 가장 큰 장점이란 것.
김 사장은 3살 때 꼬마전구에 불을 밝혀 신동소리를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분해하고 다시 조립했습니다. 에디슨과 같은 발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농협에 입사한 그는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만에 그만뒀다. 그후 그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았다. 당시로는 생소한 ‘비닐봉투’를 만든 것이다. “물건을 담은 종이봉투가 자주 찢어지는 것을 보고 비닐봉투를 개발했습니다.”
김 사장은 물에 젖어도 괜찮고 질긴 비닐봉투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돈을 빌려 손잡이가 달린 비닐봉투를 의장등록까지 해 본격적인 사업에 나선 것. 종이로 만든 봉투가 20원인 데 비해 18원에 판매되는 비닐봉투는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비닐봉투 하나로 약관의 나이에 사장이 됐다.
첫 사업이 성공하자 돈도 벌고 결혼도 했다. 그런 김 사장에게 ‘오일쇼크’란 시련이 닥쳤다. 납품하던 회사들이 연이어 도산하고 경쟁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회사 경영이 점점 어려워졌다.
“서울에만도 비닐봉투 공장이 수 십 군데 생긴 데다 수금마저 안 되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결국 첫 사업은 3년 만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죠.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는 소질이 있었지만 영업을 몰라 실패한 것입니다.”
김 사장은 회사 문을 닫고 영업을 배우기 위해 출판사 어학교재 판매원으로 나섰다. 그가 판매한 상품은 당시 직장인들의 몇 달치 월급인 70만원 상당의 어학용 테이프였다. “고가이다 보니 판매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 몇 주간은 하나도 못 팔고 헛걸음하기 일쑤였죠.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김 사장은 졸업앨범을 통해 고객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영업전선에 나섰다. 적을 알면 백전 백승이라 했던가. 그는 이후 눈에 띄게 실적이 좋아졌다. 출판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지면서 생활의 안정도 되찾았다.
그러나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비닐봉투에 이어 또 다른 사업에 도전했다. 그가 도전한 아이템은 일명 ‘소오드 볼’이란 아이디어 장난감.
“일본에서 유행했던 소오드 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국 6개월 만에 손을 뗐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에 만족하지 못한 김 사장은 가족에게는 늘 현실감각이 부족한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아이디어로 돈을 벌기 위해 뛰는 동안 아내와 아이들은 점점 힘들어 졌다.
별난 남편을 둔 덕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내 이명수(49) 씨는 마침내 직접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씨는 거리에서 좌판을 벌였다. “아내가 거리에서 운동화를 파는데 차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몇 번을 말려도 말을 듣지 않더군요. 지금 생각하니 아내의 내조가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재기를 꿈꾸며 새로운 아이템을 찾던 김 사장은 누룽지에서 해답을 찾았다. 90년 초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동업 형식으로 마침내 충북 진천에 누룽지 공장을 세운 것이다. 판권을 받고 누룽지 제조기술을 제공했다.
잊혀져가던 누룽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업이 번창했다. 심지어 대기업까지 나서 경쟁적으로 기술제휴를 의뢰했다. 하지만 호황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동업자의 변심과 누룽지 붐을 타고 난립한 누룽지 공장 때문에 누룽지는 경쟁력을 잃었고 결국 김 사장은 누룽지 사업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그땐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김 사장은 다시 재기에 나서 숭늉을 상품화시켰다. “국제 음식박람회에 참가해 끓인 누룽지 (soup), 튀겨서 만든 누룽지(snack), 숭늉(tea) 등 누룽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숭늉을 마시던 외국인들은 그 구수한 맛에 감동했습니다.”
김 사장은 수출의 활로를 찾으려 했으나 누룽지는 가공시기가 관건인 식품으로 조금만 오래 돼도 상하거나 부패되어 먹을 수가 없는 자체적 결함이 있었다. 그래서 김 사장이 생각해 낸 것이 숭늉이다. 숭늉을 캔에 담으면 일반 탄산음료처럼 장기간 보관해도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김 사장은 이 하나의 생각으로 전통적인 숭늉 맛을 살리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그 결과 ‘맑은 숭늉’‘숭늉100’‘전통숭늉’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특히 FDA, HACCP 등의 인증까지 받았다. 2001년 9월 중소기업청의 해외규격 인증 획득 자금 지원 사업에 참가해 FDA 인증을 따내고 독일 투브사가 인증하는 식품위생관리제도인 HACCP의 인증도 받은 것이다.
식품박람회를 통해 이미 해외에서 인정을 받았고 미국과 일본에 수출 길을 열어 놓은 상태다. 올해 30억 원의 매출이 예상되는 (주)누리는 내년에는 100억 원의 매출을 예상한다. 김 사장은 돈은 벌려고 노력하면 더욱 더 멀어진다고 말한다. “돈이라는 것이 묘해서 좇으면 달아나죠. 열심히 일하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 1971년 서울 중동고등학교 졸업 78년 국립 대만대학교 졸업 79년 라이프 포장공사 대표이사 81년 (주)HEIM 입사 90년 (주)한누리 물산 대표이사 2001년 (주)누리 대표이사 2003년 국제 로타리 3650지구 서울 화동 로타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