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의 한국 전래와 의식
한국의 불교의 전례는 AD48년 해상 전래설과 삼국시대 불교 공인을 통한 육로 전래설 두 가지로 기록을 살필 수 있다.
해상전래설은 기록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설화에1)
“16살의 아유타국(阿踰陀國:아요디야) 공주 허황옥은 하늘이 내린 가락국 왕을 찾아가 배필이 되라는 부모의 분부를 받들고 석탑을 배에 싣고 동쪽으로 바다를 지나 건무2년(AD 48)에 20여 명의 수행원과 함께 붉은 돛을 단 큰 배를 타고 장장 2만5천리의 긴 항행 끝에 남애(南涯)의 별포 나룻목에 이른다.”
허황옥의 가야국 도착설, 허황옥 오빠 장유화상의 불교전래설2)
“수로왕은 건국한 다음해에 궁성 터를 찾아다니다가 신답평(新畓坪)이란 곳에 이르러 이곳은 비록 땅은 좁지만 16나한과 7성이 살 만한 곳이어서 궁성 터에 적격이라고 말한다. 16나한이란 석가의 16제자이고, 7성은 최고의 지위에 있는 부처의 제자이다. ”
이는 삼국유사 [가락국기] 가락국기 근거를 바탕으로 일찍이 해상을 통해 불교가 전해 진 것을 알 수 있는 자료 이다.
육로를 통한 기록은
삼국 가운데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전진왕 부견이 승려 순도(順道)를 통해 불경과 불상이 전해지고 374년에 진나라 승려 아도(阿道)화상은 순도와 성문사(省門寺),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창건 과 백제, 신라의 불교 공인과 함께 불교의식이 전해 졌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 불교의식 기록
불교의식에 대한 기록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법흥왕(法興王) 15年(528)에 불법이 거행된 기록, 진평왕 15년(613) 황룡사(皇龍寺)에 백고좌(百高座)가 거행된 기록, 범패 악보에 대한 기록으로는 원효 스님이 671년 저술한 「판비량론(判比量論)」3) 의 필사본에 740년 이전 범패의 악보인 각필악보 발견으로 신라시대 범패 가창형태 악보기록이다.
의식 진행과 범패에 대한 754년 「화엄경사경조성기」에
화엄경사경조성기(754. 8. 1-755. 2. 14), 호암박물관소장 국보 169호.
화엄경사경조성기에 천보 13년(천보는 당현종의 년호 13년 갑오 8월) 경덕왕 13년 서기 754년 8월) 경을 베껴 쓰는 절차에 ‘청의 동자가 관정게를 받들고 청의 동자에 붙어 제 기악인 들이 기악하며 한사람은 향수를, 한사람이 꽃을 들고 뿌리며, 한 법사가 향로를 받들고 이끌며, 한 법사가 범패를 불러 이끌며, 여러 필사들이 향. 화를 받으며. 우념행도하여 만드는 곳에 이르면 삼귀의씩 세 번 후 정례하고 부처와 보살과 화엄경들을 공양한 이후 자리에 올라 경을 베껴 쓴다.’
특히 ‘한 법사가 범패를 불러 이끌었다’는 기록, 이 당시 의식 진행시 범패가 불리워졌음을 알 수 있고, 그 후 6년 뒤 기록으로【삼국유사 권 오 월명사(月明師) 도솔가조(兜率歌條)】경덕왕 19년 (서기 760) 경자년 기록에서 월명법사(月明法師)가 왕에게 ‘향가(鄕歌)만 알 뿐 범성(梵聲)에는 익숙하지 못하오’라는 글에서 범패가 불려졌음를 시사하고 있다.
또 경상남도 하동 쌍계사의 「진감선사대공탑비문」에 중국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범패를 직접 배운 진감선사(眞鑑禪師, 774-850)가 830년(신라 흥덕왕 2년)에 신라로 돌아와 옥천사(현재 쌍계사)를 개사(開寺)하고 어산(魚山)을 가르쳤다는 기록, 일본승(日本僧) 원인(圓仁) 자각대사(慈覺大師)「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838년 입당하여 847년 일본에 귀국하여 쓴 내용에는 신라 적산원의 간경기록에 범패는 당풍, 고풍, 신라풍 등 각각의 범패가 있었다는 사실등을 설하고 있다.
■ 불교음악 범패 악보
불교음악은 의식진행시 승려 및 재가 불자들에 의해 불리는 음악을 칭하며 이를 전체적 의미에서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염불은 불교의식 진행시 쓰임과 연주 형태에 따라 각각 다른 명칭을 가지고 있다. 염불은 가창의 형태에 따라 평염불과 범패로 나눈다. 평염불은 의식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스님들이 진행할 경우이며, 범패는 의식을 전문적인 익힌 범패승에 의해 안채비, 바깥채비의 짓소리, 홋소리, 화청으로 가창 할 때를 말 한다. 현행 불교의식에 전승되는 범패 악보의 형태는 각필보, 탁점보, 동음보, 실선보, 오선보 형태로 전해진다.
앞서 한국 범패는 진감국사가 당에서 배워온 당풍 이전 이미 신라풍의 범패가 있었고 이 외 원효의 「판비량론(判比量論)」에 나타난 각필악보에서 악보를 들 수 있다.
현재 일본 대곡대학교에 소장 판비양론판비양론(判比量論)은 신라 원효 스님이 671년 편찬한 것으로 한국의 심상스님이 필사하여 740년 황후에게 바친 경전의 각필악보로 2002년 4월 小林芳規(고바야시 요시노리)에 의해 일본에서 발견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각필 악보이다.
이는 신라의 범패 각필악보를 통해 일본 전래등 삼국의 불교 의식이 전파되어 왔음을 기록에서 알 수 있다.
각필 악보는 가운데 예리한 도구로 경전위에 음에 굴곡을 표기한 형태의 각필 악보로 2000년 10월 한국 성암고서박물관에서 필자에 의해 1010년 이전추정 고려 초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권 1, 권 8 에 세계최초로 불교음악 악보를 발견 하였다. 이 외 이외 조선시대의 지장경 각필악보등 한국에서 발견된 각필문헌은 53점.4)으로 불교의식이 잘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 탁점보형식은 게송 좌우측 상하에 사성점및 성정을 탁점보로 표기한 악보는 조선시대 학조스님이 발문한 「오대진언집」(1485년) 학조스님 번역본인 「진언권공」(1496년), 사성점보는 19세기 백파흥선스님이 제반 의식 집을 모은 「작법귀감」이다.
동음집의 동음보는 동일한 소리를 게송 옆에 표기한 악보로 19세기 범패승들이 범패의 짓소리를 알기 쉽게 표시한 김운공, 장벽응, 박송암, 박운월스님의 「동음집」이다.5)
실선보6)는 20세기 범패승들이 음의고저와 실가를 실선으로 표기한 암보로 실 선형 그림으로 옮긴 실선보형식을 말하며, 이외 서양의 음계형식으로 옮긴 오선보7)등이 현재 전해져 의식 승에 의해 지침서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