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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원시집 해설>
시와 영혼
--권태원의 시와 서정성
나는 언젠가 시를 말하는 자리에서 시는 종교 이전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은 시인 권태원을 만나고부터 더욱 그렇다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
종교란 삶에 지치고 주어진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 귀착할 수 있는 안락의자이든가, 폭풍우 몰아치는 세파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튼튼한 집이라고 할 때 시는 지친 몸일지라도 세파를 헤치면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며, 폭풍우와 맞서서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캐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느낀다.
권태원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세갈래로 그 의미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시의 삶>과 <현실도피의 삶>, 그리고 <생활인으로의 삶>이 그것이다. <시의 삶>에서는 그는 건전한 서정시인으로 사물에 접근하는 성실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객관적인 서정을 획득하고 있으며, 그러한 모습은 시집 제 4부에서 보여주고 있다. <생활인으로서의 삶>은 가족의 가장으로서 역활을 충실히 수행하며 직장인으로서 건실한 모습을 보여 줄 때 느낄 수 있는 생각과 그런 생활 속에서 건져 올리는 의식의 작품들로 그의 시집 제 1부와 제 2 부의 일부 작품들로 자아가 이입되어 있는 서정시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현실도피적인 삶>의 모습은 그가 삭발의 형태를 하고 중앙동이나 광복동을 드나들 때의 자유분방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작태를 벌리는 태도와 상통하는 시편들로 시집의 제 3 부와 제 2 부의 일부작품들이 그것인데 구원이나 기도로 일관하고 있다.
삶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종교보다는 삶의 모습으로 시인에게 엄숙하게 존재하는 것이 시이기에 종교 이전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불순한 생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의견을 수정할 생각도 없고 또한 강하게 주장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시인은 모두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 중의 하나다. 자유가 있기에 예술은 존재하는 것이며 그 자유가 제한되고 구속될 때 시인은 강한 항거를 하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앞장서고 피흘리며 구금되기도 했던 것이다.
시인 권태원이 항거하는 것은 시가 아닌 삶의 모습으로이다. 그의 삭발, 이상한 차림등과 같은 항거는 바로 시인에게 가해지는 속박에 대한 항거이다. 그는 가끔 남포동이나 광복동, 그리고 중앙동에 이상한 차림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그렇기에 그를 기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어떤 때는 스님의 복장으로 어떤 때는 무도인의 복장으로 장발을 하거나 아니면 박박 깍은 까까머리로 불쑥 나타나기가 일수이다. 그러한 모습에 길들여 지지 않은 사람들은 돌아서서 손가락질하거나 도라이로 쉽게 취급해 버린다.
그렇더라도 그는 매우 자유스럽다. 그런 모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넥타이를 매고 더위에도 꼼짝없이 양복을 입어야하는 속박속의 생활인으로서는 기이한 모습으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는 그것들을 조롱한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지극히 소박한 자기 주장이다.
놀러간 사무실의 빈 의자에 앉아서 기(氣)를 하며서 온몸에 힘을 넣어 이상스런 몸짓을 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혼자서 무엇인가 영어로 지껄이며 큰소리를 내거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과잉 친절을 베풀거나 헤드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또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고함을 지르는 모습은 지극히 자유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꼭이나 미친놈 취급을 받기에 딱 알맞다.
나는 하루 반나절을 그를 따라 다니면서 그를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정말로 제정신으로 그러는 것인가를---.
나는 그가 천상병을 닮았든가 아니면 미치광이 스님 중광을 닮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어느 한쪽을 닮았다기 보다는 둘을 다 닮았다는 생각이다. 그의 괴이한 행동은 어떤 경우에 의도적인 데가 있기도한 점에서는 중광을 닮기도 한 것 같고 어떤 경우는 그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풍겨져 나올 때가 있다는 사실로 천상병시인을 닮았다는 생각도 가졌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술의 힘을 빌려서 하는 짓을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러한 행동에 옮긴다. 뻔뻔한 행동을 쉽게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체면이나 격식을 생각할 터인데 그는 전혀 그렇지를 않다.
그는 한여인의 남편이며 한 아이의 아빠로서 멋진 아빠와 나쁜 아빠 사이를 왕래한다. 멋진 아빠일 때 그는 매우 건실하고 일상적인 직장인의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도 열심이고 천재적인 두뇌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좋은 회사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그는 아이에게 나쁜 아빠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가 극히 자유스러운 행동으로 할 때이다.
그의 부인 최영숙씨는 그가 시를 쓰기만 하면 사람이 흐트러진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권시인이 중앙동이나 광복동에만 나가면 아이에게 나쁜 아빠가 된다고 푸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정말 중앙동이나 광복동을 다녀 가기만 하면 그렇게 이상한 아빠가 되 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지를 따져 보았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착하게 보통의 사람들처럼 성실한 가장으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회사일에서 상사와 틀어지게 되는 경우에 그의 여리디 여린 영혼이 다치게 되고 그럴 때 그가 돌아 오는 곳은 중앙동이며 광복동이라는 생각이다. 중앙동이나 광복동에 오면 그는 시인이 되고 사진작가가 되고 화가가 되는 그의 꿈이 성취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그가 하는 예술 즉, 시, 사진, 음악, 그림등이 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렇기에 그는 성실한 가장 노릇을 할려고 직장을 잡고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다가 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와 부딪히기도 하고 불의와 타협을 해야하는 곤혹을 치러야 하면서 그의 순수한 영혼은 다칠 수 밖에 없고 그는 다시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가 하고자하는 예술이 살아 흐르는 중앙동거리나 광복동 거리에 나타 나는 것이다. 거기에서 흠뻑 취하고 그의 천성이 유감없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를 피해서 꽁무니를 뺀다.
그의 행복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그의 꿈이 있는 곳은 바로 중앙동이었고 광복동이었다. 거기에서만이 그가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해방공간을 만나는 것이다.
나는 권태원 시인의 집을 두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것은 나의 의도라기 보다는 그의 초청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 번은 서대신동의 2층 셋방이었고, 또 한번은 초장동 성당의 부속건물에 입주해 있을 때였다. 처음의 방문은 그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뒤 취해서 그를 데리고 갔을 때였다. 그 때도 그는 중앙동을 찾았을 때였다.
두번째는 그의 세번째 시집이 출간되고 난 다음이었다. 그때도 그는 중앙동에 나타난 때였다. 두 번 모두 그의 머리는 박박 밀어버린 까까머리일 때였다. 그는 외로움에 젖어 있었고, 또한 따뜻함이 그리운 시기였다. 그는 그러한 것을 찾아 중앙동에 나타 났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아는체 했지만 진정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안겨 주었는지는 알 지 못하지만 피해를 당했거나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불안 때문에 그들은 슬금슬금 피해 가는 것이었다. 그가 피해를 주었다 하더라도 아마 그는 소박한 피해밖에 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본래 심성이 착하고 여린 감수성 때문에 쉽게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의 집에 갔을 때 그는 내게 많은 선물을 챙겨 주려고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내장이라도 뽑아 줄듯 하였다. 그것이 그가 가진 예술정신이라고 보면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성실한 가장이 되었을 때는 중앙동에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예술가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이 그립다든가 현실이 자신을 받아 주지 않을 때 그는 중앙동에 나타 난다. 그에게는 중앙동이 현실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처럼 권태원의 삶은 소외된 인간의 모습과 현실속에 지극히 평범하게 안주하는 생활인의 모습이 서로 엇갈려 나타 난다.
그는 생활인의 모습으로 살아야하는 압력 속에서 끊임없이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러한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때 그의 편력은 시작된다.
그의 시는 현실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의 생활은 몹시 피곤하고 그를 구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에서 그러한 삶의 모습을 발견해 내려는 독자들에게는 실망을, 그리고 첨예한 실천문학가들에게는 허튼소리일 뿐인 공허한 울림을 줄 뿐이다. 그의 시는 그렇다고 숲 속에서나 떨어진 들판에서 풀잎만을 읊조리지는 않는다. 그의 시는 처절한 삶의 끝에 존재한다. 그에게 주어진 삶은 갈등의 연속이기에 피곤할 뿐이며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삶의 모습을 애써 기피한다. 시 속에까지 삶을 끌어다 놓고 전투를 벌이는 피곤한 일은 하지 않는다. 그의 시에는 전투끝에 얻어지는 느낌을 슬픔이나 그리움, 고독 같은 것으로 드러내며 허무를 달랜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서 발로 걷고, 손으로 짓고, 몸으로 부대끼는 작업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작품과 삶의 모습을 영리하게 분리 시킨다. 그의 작업은 오로지 정신적인 활동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고통받는 정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소외로 접근하기 보다는 자유로운 예술혼의 방랑이라고 본다.
권태원은 별, 꿈, 풀, 그리움, 사랑, 슬픔, 고독이라는 의미를 무척 사랑한다.어찌보면 낡은, 그리고 한시대가 흘러 가버린 유행가와 같은 시이지만 그러한 작품들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진실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유행가 가사처럼 표피적인 이별, 그리움, 고독이 아니라 절대적인 슬픔, 절대적인 그리움, 원초적인 고독을 노래하고 있다. 삶의 끝에서 부르는 절망의 노래이면서 아름다운 서정성으로 읽혀지는 것은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정화작용을 거쳐 드러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서정시가 생각하는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며, 인과적 분해와 결합에 의한 과학적 사고 방식이기 보다는 전체로서의 느낌을 전달해 주는 것이며 변조와 다양성에 의한 운율을 차용해야 한다고 할 때 권태원 시인이 가지고 있는 서정성은 빼어 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부딪혀야 할 문제는 현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걸림돌로 남아 있다.
그에게 현실이란 찢겨지고 얼룩진 나락의 모습이지만 그는 결코 이러한 현실을 경정(更正)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 그렇다고 부딪혀 보았자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실이란 그렇게 있는 것이며 순응해 나가야 할 대상으로 받아 들일 뿐이다. 그에게는 체념도 긍정도 없는 그러한 현실이 놓여 있을 뿐이다. 그래서 늘 피동적이거나 수동적인 모습으로 현실과 만나며 존재의 의미보다는 생활 그 자체의 의미를 더 깊이 담고 있다.
그의 시에서 현실 대응력을 기대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가 시를 이해하는 기준은 현실대응력이 아니라 현실을 걸러낸 심상에 시가 놓여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다.
그렇다고 시를 구원이나 해방을 주는 매개체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삶을 팽개치고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슬픔이나 그리움 같은 섬세한 감수성으로 표출해 내고자 할 뿐이다. 이러한 모습이 그가 시를 대하는 태도라고 볼 때 나약한 그의 시는 독자들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할 것이다.
그의 시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서정시가 아니라 현실 삶으로부터 격리되어 나타난 서정이기에 현실 대응력이 약하고 비애, 자조, 자학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권태원 시의 특징을 1) 비애의 서정 2)존재의 조건으로 고독 3)삶의 불완전성 4)자학적인 모습 5)동심의 세계로 들고 시적 장치로 역설과 아이러니가 있다고 지적한 분도 있다.(김준오교수)
그의 시는 비교적 시적장치나 기교가 없는 편이다. 상징이 없으며 반복법을 사용하여 연상작용을 통해 정조를 한껏 높여 가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율이 있어 낭송하기 쉽고 느낌으로 전달되기에 쉽게 읽혀 진다.
그가 반복법을 즐겨 쓰는 것은 대개 의미를 강조하거나 운율을 맞추기 위하여 사용한다. 권태원의 시들은 대개 수미상관식의 반복법을 차용하여 독자들의 감흥을 더 깊은 곳으로 몰아 가서 시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끌려 들어 가는 체면효과가 있다.
그의 시에는 아름다운 운율이 내장되어 있다. 그는 기타를 메고 「무아」 음악실이나 전통찻집 「하늘 개인 날」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른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에 곡을 붙여 희랍의 음유시인처럼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그의 운율은 아름답고 시의 의미전달에 적절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할 것이다.
그의 시는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절실한 갈망의 노래이며 그의 시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동원되고 있는데 그것은 <하강 이미지--떨어짐, 쓰러짐, 무너짐>과 <어둠의 이미지--그림자, 밤, 별, 촛불>과 <삭제 이미지--지워지기, 죽음, 밀려가기>등이다.
다음은 권태원시인이 스스로 작성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자진하여 배포하는 자술연보이다.
「시인 권태원은 1950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하여 부산에서 성장, 부산상고,서라벌예대 사진학과,영남신학교 신학과, 경성대 영문학과를 거쳐 1984년 월간 시전문지 <심상>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데뷰하였다.
75년 한국사진작가협회 전국공모전 대상(문화공보부 장관상)
MBC-TV 전국사진촬영대회 경남도지사상
76년 제 2 회 부산미술대전 (사진) 동상
부산은행 문학상
78년 세계 태권도연맹 국기원 공인 5단
83년까지 태권도 도장 운영 (관장)
제 4 회 부산미술대전 (사진) 특선
전국해양문예작품 공모전 시,소설 입상
80년 대한쿵후협회 이도윤 회장 쿵후 사사
야간업소 가수, 음악다방 DJ(86년까지)
81년 청초 이윤제 선생에게서 한국화 사사
82년 국회의원 경호원, 비서관
83년 부산 MBC-TV 「산천기행」 「이대로 좋습니까」등 담당
84년 월간 「음악예술」 기자
월간 「부산문화」 기자
연락처 602-040 부산시 서구 초장동 60-3번지
천주교 초장성당 내 권태원
242-3105 (집)
그리고 그의 낮은 책상 앞에 붙여 놓은 오늘의 할일에는,
「매일, 오늘 꼭 할 일」
詩, 그림,서예,전각,사진,기타(GUITAR)+노래,KOREA HERALD 읽기,쿵후,태권도,보디빌딩,편지,타이핑/ 「무서운 독서량」/ 「철두철미한 PRO 정신] / 「하루에 최대한 3시간만 숙면을 취하자」/ 92.5.18 日酒堂居士 또는 神漁山人
그는 자신을 날마다 술취한 사람으로 자처하고 다닌다. 그래서 자호로 일주당이라고 쓰고 있다. 그는 간혹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책을 강매하기도 하는데 그는 먹거릴르 해결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 그의 지갑 속에는 지폐가 많이 들어 있어도 그런 행동을 한다. 돈을 모아서 어ㄸ너 다른 일을 꾸밀런지는 모르지만 어쨋ㄷ근 그런 일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이 다른 사람들ㅇ을 괴롭힌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은 천재이고 보통사람인 당신은 천재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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