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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의인,최부선생님과 표해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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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평야정보화마을 정보쎈타에서 淸山.윤영근 선생님의 특강 모습
전남 해남 출신 현 나주중앙초등학교 교사
최부의 선비정신을 찾아서 윤영근(尹永根) / 나주중앙초등학교 교사
영산강이 도도하게 흐르는 땅, 나주에는 이미 오백여년 전 조선사대부의 대쪽같은 청정선비 최부가 살았다. 그가 쓴 『표해록(漂海錄)』은 세계3대 표류기로 손꼽히는 명저이기도 하다. 오백여년 전 최부가 쓴 표해록은 단순한 난파선의 기록이 아니라 시공을 뛰어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과정이었던 것이다. 최부의 지조 있는 자주정신과 충효사상은 지식정보화 능력중심사회의 오늘날, 삶의 좌표로 받아들여야 할 가장 시급한 화두라 하겠다. 그가 쓴 표해록의 자취를 따라 가보고 오늘날 인터넷 세대가 읽기 편한 소설책으로 다시 써낸다면 매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남도의 중심 나주는 영산강과 함께 은둔의 땅으로 때 묻지 않는 순수함이 살아있는 곳이다. 지금 우리는 지역의 향토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역사적 과제와 함께 최부의 꼿꼿한 선비정신을 이어가야할 것이다. 최부가 여행했던 중국대륙의 종단 길을 다시 한번 밟아보고 표해록을 쓰도록 하자. 고도로 발전되어가는 작금의 산업사회는 다양화를 요구하며 주변에서 중심으로, 모방에서 창조를 그리고 획일화에서 진보된 변화를 추구해야한다. 옛말에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말은 백번 말로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인데 이제는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 이라는 자세로 실제현장에 찾아가 글로 담아냄으로써 최부의 자신감에 넘치는 선비정신을 가슴에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남도의 천년 목사골 나주는 최부의 고향 땅이며 지역의 문화유산과 자연을 조선의 선비정신과 함께 어울린다면 좋은 여행의 지침서이자 소설이 될 것으로 믿는다. 최부는 갔지만 그의 고고한 선비정신은 남아있다. 올곧은 선비정신을 찾아 우리가 지켜야할 모든 유형의 문화와 자연을 나주인(羅州人) 최부라는 인간중심으로 그의 흔적을 따라 가보자. 미래의 문화는 현재의 모습을 기반으로 해서 발전해 간다. 옛것을 불쏘시개로 새롭게 돌아올 미래의 광명을 미리 점쳐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본향인 영산강과 함께 나주는 산과 평야가 어우러져 가픈 숨소리를 몰아쉬는 풋풋한 곳이다. 과거를 알아야 험난한 앞날을 씩씩하게 열어 갈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최부를 따라 거친 바다를 건너가 보자. 광활한 중국대륙을 두발로 걸어가자. 양자강물줄기 따라 기름진 평야를 바라보자. 예쁜 산새와 작은 풀벌레들의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보자. 대운하의 약진하는 고동소리도 들어보자. 오늘날의 21세기는 지식과 정보가 어우러진 능력이 중심 되는 세상이다. 경제, 군사적인 힘보다 자기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있어야 소중한 자신을 지켜준다. 분별없는 기계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타락시키고 혼돈으로 어지럽게 한다. 최부의 선비정신을 이어 받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자문자답하며 스스로 알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찾고 바른 정체성을 지키는 일은 자신의 몫이다. 고도로 단련된 마음집중으로 새로운 삶을 일구어야 한다. 책을 쓰는 일은 유명교수나 박사들, 저명인사나 외국유학을 마친 자들만이 하는 전유물은 아니다. 누구라도 작은 시간을 쪼개 쓰면서 생각의 텃밭을 갈고 일군다면 안 될 일이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최부의 자취를 따라
기행문학의 백미(白眉)이자 중국사연구의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표해록(漂海錄)』은 세월의 흐름과 무관심으로 정작 우리들에게는 아직 낯설기만 하다. 오히려 중국,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 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표해록의 발자취를 따라 최부의 고고한 삶과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뿐이다. 조선시대 나주에서 태어난 최부(崔溥:1451~1504년)는 제주도 추쇄경차관으로 근무 중 부친상을 당해 나주로 귀향하다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된다. 이루 말로 할 수없을 만큼 엄청난 시련과 모진 고난 끝에 중국의 절강성 영파 태주연안에 기적적으로 상륙해서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해적을 만나 털리고 왜구로 몰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이를 무사히 넘겼던 것이다. 최부의 강인한 의지와 조선사대부의 대쪽같은 자존심으로 위기의 순간을 넘기게 된 것이다. 그의 탁월한 위기관리능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끝내는 조선의 관리임을 인정받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일행 43명은 항주에서 베이징까지 대운하를 타고 136일 만에 무사히 귀환하게 된다. 당시 성종대왕의 명에 의해 표류과정을 일기체로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 8일간의 피땀으로 집필한 전인미답의 중국기행문 『표해록』으로 태어난 것이다. 숨겨진 은둔의 땅 남도에서 영산강이 굽이지며 휘돌아 흐르는 소소한 멋이 묻어있는 강변에는 최부의 고향땅 나주가 자리했으며 지금도 최부의 새벽 서리 같은 선비정신이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다. 호남인들 중에서도 유독 자긍심이 강한 나주는 천년의 전통을 이어오는 목사골로 호남인재의 요람이기도 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영산강변 금천일대에 광주전남의 혁신도시를 새롭게 건설하기로 확정했으니 이는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영산강이 뱀 꼬리처럼 휘어지며 흐르는 곡강(曲江)에서 태어난 최부는 남도의 젖줄 영산강이 그리워 끝내는 죽어서도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생의 무덤이 자리했다. 그의 묘 옆으로 흐르는 강물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긴 선생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전하는 외침이라 하겠다. 아울러 조선사대부의 지조 있고 행동하는 청정한 양심인 것이다. 최부는 조선사대부의 깨끗한 선비정신을 지켜낸 표본이었다. 그의 효심은 지극했으며 자금성안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아버지의 땅 금성(錦城)과 어머니의 고향해남(海南)을 생각하며 자신의 호도 금남(錦南)으로 정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조선의 선비답게 불의와 타협할 줄 몰랐고 죽음 앞에서도 흩어짐 없는 당당한 강골이었다.
마음으로 보는 산천
우리 땅 어느 곳이고 귀하고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영산강변의 나주는 우리를 있게 해준 보금자리로 넓은 평야와 강이 있어서 먹을거리 식량을 생산해주는 텃자리이기 때문이다. 땅과 함께 살아 숨쉬는 자연은 참으로 역동적이며 최부의 기개를 간직하고 있다. 최부의 발길이 닿았던 어디를 가든지 독특한 지형 특성에 어울린 흔적으로 그의 잔 때가 묻어있어서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일수록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다. 감동적인 지구촌 자연 속에 저마다 수많은 생명들이 스스로 분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부의 고귀한 땀과 함께 자연 속의 삶들은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제 스스로의 힘으로 피어남을 알게 된다. 자연 속에서 오늘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당연히 그의 선비정신을 지켜가야 할 것이다. 최부가 남겨준 표해록을 바르게 알고 읽으며 지키는 일은 기행과 답사의 행위이기 때문에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어떠한 미사여구의 찬사라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그의 표해록과 함께 그의 숭고한 뜻을 이 땅의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몇 해 전 필자는 우리나라의 모든 국립공원(20개)과 도립 공원(22개), 군립공원(31개)을 찾아다니며 쓴 답사록을 일간신문에 3년 간 연재한 적이 있다. 산과 강은 언제나 그 곳에 있으며 사계절 내내 항상 아름다운 모습으로 문화유산을 보듬은 채 사람들을 기다려 준다.
“선비정신은 좋은 것이여!”
우리는 학교에서 우리 땅의 역사와 지리, 훌륭한 선비문화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나고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어도 그것을 말이나 글로 읽을 때는 직접 만져보는 행위보다 그 감동이 크지 않다. 최부가 여행했던 길 따라 직접 자신이 그것을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그래서 가슴으로 느낄 때 거기에 담긴 진정한 의미와 감동의 숨결을 전달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비문화 체험여행이 필요하며 이를 기록으로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찾아갈 곳에 대하여 미리 공부해야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전설이나 설화를 알고 가면 여행이 풍성해지고 한층 더 흥미롭다. 세상도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서서히 최부의 체험여행속의 깊은 터널로 따라 가보자.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도 아름다워진다. 꾸밈없는 자연은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이다. 자연과 선비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살아 숨쉬는 부드러운 내면의 美를 갖추어야한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자연과 그 속에서 잉태된 선비문화를 깊이 관조함으로써 정신세계를 뚜렷하게 키울 수 있다. 우리의 하늘과 땅, 바람, 산과 들, 그리고 발바닥에 밟히는 이름 모를 잡초까지도 사랑하고 애정 어린 가슴으로 살펴서 자연과 함께 최부의 선비정신이 아름다운 본질임을 알고 확실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발랄한 신록의 여름이나 화사한 봄, 곱게 물든 단풍의 가을 산, 눈이 시리도록 하얀 눈에 뒤덮인 산천의 하늘 선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유명한 교육자이며 사상가였던 루소는 말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돌아 가야할 곳은 자연뿐이다. 그 속에 숨겨진 최부의 숭고한 철학을 찾아가는 체험여행은 도피가 아니다. 잠시 떠난 후 만남의 기회를 자연 속에서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갖기 위한 것이다. 최부의 여행길을 따라 떠나가는 것은 결국은 돌아오기 위해 떠난 것이다. 먼 길을 떠나는 장거리 여행자에게는 배낭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더 담아올 수 있겠는가? 작지만 아담한 책으로 만들어 냈으니 하늘 속 자연이 준 선물이라 하겠다. “선비정신은 좋은 것이여!”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생활 속의 손때가 꺼멓게 묻어있는 옛것들은 보석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장 한국적인 최부의 선비정신은 세계 최고의 명품이라는 뜻이다. 세계제일의 인터넷 사용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능력중심 지식정보화의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한 길은 오직 우리만의 고유한 선비문화를 발굴해야 한다. 독특한 캐릭터로 독보적 선비문화를 지켜내는 일은 부(富)를 창출해 주는 길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지탱해주는 대들보이기도 하다. 고유한 최부의 선비문화는 그만의 상당한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전되어 가는 최첨단 산업사회에서는 다양화를 요구하여 전체에서 개성으로, 모방에서 창조로, 획일화에서 진보된 여러 가지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우리들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고향인 최부의 선비문화와 함께 산(山)과 강(江)을 바르게 이해해야 험난한 앞날을 씩씩하게 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모두 함께 바다를 건너 최부를 따라가 보자. 숲 속의 작은 황토 길을 찾아가자. 가까운 도심 속의 고궁으로 가보자. 거친 바다를 건너 중국의 양자강, 황하 강을 넘어보자. 예쁜 산새와 작은 풀벌레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며 최부의 맥박이 요동칠 것이다.
선비정신의 이정표
선비정신이야말로 생산적이며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의 발전적인 측면을 추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몰가치, 퇴폐, 정신타락, 비인간성에 만연한 현실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했다. 그저 고리타분하고 지나간 옛것으로서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치부하곤 했다. 이러한 선비정신의 상황은 우리 모두를 고민하게 하고 "나는 누구인가?"하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몰고 왔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부터 자연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해야 될 시점에 섰다. 중앙 집권적 역사에서 벗어나 일반대중 모두를 아우르는 역사를 대상으로 선비정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발길에 차이는 돌 뿌리 하나에서도 향토지역을 아끼고 지방유적보존이나 문화순례로 역사성이 깊은 주체성을 길러야 한다. 산야에 가득 핀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에서도 국토의 소중함과 용기 충만한 기운을 얻어야 한다. 미래의 문화는 지역을 토대로 발전 진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앞서가는 문화정책의 기본원리이자 선비정신을 살찌게 하는 방향이라 하겠다. 최부의 선비문화 체험은 환경을 살피고 지구를 구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가 함께 써야할 물을 오염시키고 더럽히는 종은 인간뿐이다. 2500㎞나 되는 대운하를 따라가는 최부일행은 한 방울의 물이라도 소중하게 여겼다. 물을 함부로 쓰는 잘못된 습관은 절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우리 인간이 실로 대단한 동물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생물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며 탐욕스럽고 자기 멋대로 가는 길을 서두르는 동물이라 하겠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 중 가장 포악하고 잔인하며 욕심꾸러기 동물은 누구일까? 물론 어떤 기준으로 잔인함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으나 인간이 욕심 많고 이기적이며 포악하기로는 첫째일 것이다. 온갖 모습의 살인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며 전쟁으로 인한 합법을 가장한 엄청난 대량학살도 그칠 날이 없다. 우리 인간처럼 같은 동료인 인간끼리 서로 경쟁하며 죽이고 우습게 여기는 동물은 어디에도 없다. 약한 사슴이나 영양을 잡아 얼굴에 시뻘건 피를 묻히며 살을 뜯어먹는 호랑이나 늑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은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워하며 치를 떤다. 그러나 이러한 육식동물인 맹수들의 행동은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런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인간들은 누군가 시퍼런 칼로 잡은 쇠고기를 요리상에 올린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핏기 서린 살 고기로 스테이크를 즐기기도 한다. 늑대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은 늘 으르렁거리며 싸우지만 부상뿐으로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인다. 생명을 살리고 환경을 지켜내는 일은 지구를 지배하며 사는 인간의 몫이다. 자연을 살려야 선비정신도 고고한 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발붙이며 함께 살아야할 지구는 인류가 지키고 가꿔야 한다. 좋은 환경 속에 생명이 존재하고 문화유산이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최부의 선비문화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야할 것이다. ‘지금 여기’에 마음을 집중하고 우물처럼 깊은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조금씩 높여가는 내공의 힘을 키워 밝은 정신세계를 가져야 한다.
사느냐 죽느냐!
최부의 표해는 장대한 인간드라마였다. 그의 거친 태풍과의 한판 승부는 동서와 시공을 초월하는 인간의 격이 눈에 잡힐 듯 생생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모습은 최부일행이 오로지 살기위해 거친 풍랑과 목숨을 건 사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인간군상의 애(愛)와 증(憎), 지(知)와 무지(無知), 공(公)과 사(私)의 문제가 버물려있는 것이 표해록이기 때문이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최부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설로 쓴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일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당연히 해야 할 몫이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지라 하겠다. 최부는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중국남부대륙을 종단한 용기 있는 선비였다. 양자강에서 황하강까지 경항 대운하 2500㎞의 먼 길을 지나가면서 조선의 농민들이 가뭄에 시달리며 애태우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애민정신에 뜨거운 그의 가슴은 먼발치에서 보았던 풍차를 귀국즉시 만들어 농사에 이용하게 했던 것이다. 진정 뜨거운 피의 소유자였으며 아는 것은 기어이 행동으로 실천했던 사대부였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험한 상황에서도 올바른 정도를 지킨 그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청정한 선비였다.
숨쉬는 영산강과 함께 나주의 전설 속에 살아있는 인물 최부!
그는 진정 동양의 마르코 폴로였다. 대쪽같은 선생의 기개는 오늘의 우리들이 이어가야할 것이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난파선속에서 기록해둔 쪽지는 표해록의 줄거리였으며 성종임금에게 한점 거짓도 없이 사실대로 찬진 되어 지금껏 우리 곁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최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책을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뼈를 깎는 인내 속에서 태어나리라고 믿는다. 참고 견디며 최부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날의 인터넷 세대들이 읽기 쉽도록 다시 쓴 『소설 표해록』을 끓는 피의 양심 최부의 무덤 앞에 바친다. 나주의 자랑이자 조선사대부의 맥을 잇게 해준 최부는 현대인들에게 지조와 정의감으로 바른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리라 믿는다. 조용하게 퍼지는 영산강물소리 속에 최부의 올곧은 외침이 함께 들려오는 넓은 들판은 마음을 집중[Mindfulness]하며 살아가야할 터전이다. 대쪽같은 그의 철학은 지금 이 순간 가장 시급한 울림이다. 능력중심사회의 현대에서 자신의 힘을 최대한으로 모아 마음껏 발휘하면 태산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가 배에 올랐던 땅 끝에서부터 제주의 별도포도 찾아가보아야 했고 최부의 고향에 있는 금성산도 영산강물길 따라 휘돌며 올라가 보아야 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멀리는 중국 땅을 밟아보게 했고 고난의 행동이 능력중심사회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잘못된 학벌문화관행은 이제 사라져야한다. 최부의 꼿꼿한 선비정신만이 능력중심사회구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외치는 최부의 선비정신은 커다란 함성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닫힌 가슴을 열자.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불꽃처럼 타오르는 지조 높은 최부의 열정을 찾아 떠나자. 자신을 스스로 믿고 능력껏 일하는 사회가 열린사회이다. 세상일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도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결코 없다. 학벌을 극복하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인정받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남이 알아주는 것은 운이 좋아서도 아니요 머리가 좋아서도 아니다.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 대한 투자를 계속할 때만이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이다. 난파선속에서 아흐레나 굶은 최부는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마시며 갈증을 달랬다. 빗물이 없을 때는 자신의 오줌을 받아 마셔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어도 먹구름위에는 항상 밝은 태양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게 열정을 바치자. 대운하를 쌓았던 작은 돌덩이 하나에서도 발밑에 밟히는 이름모를 잡초에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말했던 최부의 생명존중사상은 이어가야 한다. 낯선 이국땅 중국의 새벽닭우는 소리를 듣고 이른 잠에서 깬 최부는 오직 효(孝)와 충(忠)만을 궁리했다. 양자강변 숲 속에서 들려오는 산새들의 노래에서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길을 생각했던 것이다. 남북통일이 코밑에 다가온 오늘날 거대한 중국을 새롭게 보고 21세기 지식정보화 능력중심사회에서는 중국대륙의 역사와 함께 중국을 바르게 이해하고 옳게 알아야 한다. 세계최대의 13억 중국인의 마음속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우리의 미래를 예단해야 한다. 지나간 과거를 알아야 오늘을 이야기할 수 있고 오늘을 배워야 돌아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불가사의라는 대운하는 최부를 놀라게 한 것이 아니라 유유히 흐르는 강물위에 그림자로 떠오르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도도한 문명의 흐름을 읽게 했던 것이다. 인류문명의 꽃을 피웠던 황하강과 거대한 식량창고였던 양자강을 합해 생명의 젖줄이 합해져 지금도 그침 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운하는 식량과 함께 거대한 문화를 중국대륙전체로 골고루 전해주는 실핏줄과 같았던 것이다. 최부가 보았던 신문물은 괘도여행에서 벗어난 전무후무한 체험공간의 확장을 이뤘다. 어떤 외국인도 꿈꾸지 못한 중국의 안방을 종단하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별천지의 체험은 최부의 서술세계를 크고 넓게 확대시켰다. 일찍이 ‘동국통감’을 저술했던 그는 이미 중국문명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조선의 선비 최부를 통해 중국의 실상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했으니 세계적인 사료를 제공한 샘이다. 표해록 속에서 펼쳐지는 죽음과의 사투, 처절한 위기의 극복, 사건의 극적인 전개는 다큐멘터리의 풍부한 재미가 물씬거린다. 최부가 죽은 지 이미 오백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사람됨을 살피고 배우는 것은 자아를 잃어버린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많다. 최부는 죽기직전의 사지에서도 철저한 공인정신으로 행동했다. 비록 조난자의 신분으로 전쟁포로와 같은 신세였지만 조선선비의 반듯함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능력사회중심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여! 청정선비 최부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여태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 지금 이 순간 뛰는 가슴으로 그의 선비정신을 따르자. (끝)
나주평야정보화마을 정보쎈타에서 淸山.윤영근 선생
전남 해남 출신 현 나주중앙초등학교 교사
전화 011-9667-8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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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윤 영근 선생님......멋 ..............쟁이
읽고나니 아쉬운점이 있다.
후학의 사진도 좋지만 조상님의 살아생전의 영정이나 생활하던 부근의 사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