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대(明代)의 여행가, 지리학자인 서하객(徐霞客)이 1616년, 1618년 두 번의 황산 등정 후
五岳歸來不看山
黃山歸來不看岳
「오악[주1]을 보고 돌아오니 보통의 산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황산을 보고 돌아오니 그 오악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라고 하였다.
登頂黃山 天下無山 (황산에 오르고 나니 천하에 산이 없더라)
2005년 8월 9일 (화)
나고 처음 외국여행이라 초등학생 때 소풍 기다리듯 전날 밤 준비물 챙기느라
넣었던 짐 꺼내보고 꺼낸 짐 다시 넣기를 반복하다 든 잠에 비하면 아침엔 일찍 눈이 뜨였다.
안그래도 태풍"맛사"로 인해 어제까지도 거세었던 비바람이 오늘은 다소 잠잠해지더니
목적지인 상해를 빠져나간다고 했는데.........
광혜병원 앞으로 가서 정안님이 아들을 기사로 대기시켜 놓은 차에 종상님과 함께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애써 태연한 척은 하였으나 과연 제대로 출발하게 될지, 혹 빠진 것은 없는지
가는 도중에도 마음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출국수속을 하고 중국 동방 항공편에 탑승하니 12시 50분쯤 서서히 땅을 박차고 뜨기 시작하는데
이륙할 때의 느낌으론 두 번 다시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약 40분 후 기내식이 나오는데 그냥 넘어 갈 영감이 아니다.
만약을 대비해 손가방에 넣어둔 2홉들이 소주 한 병을 주위의 눈치 볼 것도 없이 반주 한잔 하니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옆의 준구님, 장도님, 수진님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돌려가며 한 두잔 하니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기내에서의 소주 맛 또한 별미였으나 그 부족함이 내심 섭섭하였다.
쾌청한 날이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육지와 해안선들이 채색한 5만분의 1 지도, 바로 그대로다.
그리고 바다만 잠시 보이더니 아래는 온통 솜뭉치. 버섯 같은 형상의 구름 뿐이라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을 잠시 느꼈다.
약 1시간 40분 후에 상해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30 분밖에 되지 않아 이상하다 했더니 상해와는 시차가 1시간 정도 난다고 한다.
응당 대기하고 있어야 할 가이드가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헤매며 흩어져 찾다보니 다른 출구에서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가이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상해 현지 가이드 문준식군
북경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가이드 생활에 31평형 아파트를 구해 놓고
8월말에 결혼을 앞두고 있단다.
◇상해 현지 가이드 문준식군
버스 안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보니 택시는 운전석 주위를 유리막으로 막았는데 전부 독일산 volks wagen이다.
국산차는 소나타가 심심찮게 보이고 때때로 아반테, 옵티마, 티코 등이 간혹 눈에 띈다.
넘버 없는 아반테 한 대가 지나 가길레 문군에게 물어보니
중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8이고 가장 싫어하는 숫자가 4라
넘버에 4자가 서너개 있으면 아예 번호판을 떼어 다닌단다.
그러다가 경찰이 적발하면 떼어놓은 번호판을 보여주면 그냥 보내 준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웃었다.
문군의 이런저런 소개와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상해 포동공원(浦東公園)내에 위치하고 있는 동방명주탑(東方明珠塔)으로 올랐다.
◇동방명주
1991년 9월 1일에 착공되어 1994년 12월말에 완공된 동방명주탑은 상해의 상징적인 구조물로서
총 높이 468m로 캐나다의 토론토탑과 러시아의 모스크바TV탑 다음으로 높으며 아시아에서는 가장 높다.
전체적으로 3개의 기둥과 3개의 다리, 11개의 구형으로 조합되어 있고 9층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면적은 1만㎡로 그 중 6개는 TV방송 전파발사기계실이며 나머지 3개 층은 회전식 카페와 전망대로 된 관광층이다.
아래 구형은 직경이 50m이고 윗 편 전망대 구형까지의 높이는 263m, 직경이 45m로 아래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40초가 걸린다.
용두산 공원 타워에서도 네발로 벌벌 기었던 기억이 있던 터라 내심 속 졸이면서 올랐는데
규모에 압도 되어선지 별로 큰 두려움은 없었다.
◇동방명주 탑에서 바라 본 상해
전망대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니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빌딩 지붕 끝 부분의 형태가
같은 모양 하나 없이 첨탑형, 돔형, 방형 등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어
거의 획일적이다 싶은 우리나라의 장방형 고층 건물군들과 다소 대조되는 느낌이 들었다.
◇동방명주 탑에서 바라 본 상해
그중 상해에서 가장 높다는 진마오빌딩(金茂大廈)이 눈에 들어온다.
상해무역센터 주식회사가 투자, 건조, 관리하고 미국의 시카고 SOM 건축사무소가 설계하여 1998년에 완공한 진마오빌딩(金茂大廈)은 지상 88층, 지하 3층의 총 높이 420.5m의 위용을 자랑한다.
◇진마오 빌딩
◇진마오 빌딩을 배경으로
가이드 문군의 설명에 의하면 김정일이 이 곳을 방문하여
"천지가 개벽했구나" 라고 감탄했다한다.
주변은 야경이 아름답다하나 빌딩의 숲 외에는 별로 볼 것이 없고
흐리고 뿌연 시야와 황토빛 강물이 눈에 많이 거슬렸다.
동방명주 앞 광장에 내려오니 저마다 추억 남기기에 바쁘다.
기호님, 장도님과 정안님, 종상님의 각각 개성 있는 포즈를 영감의 디카에 몇 장 담았다.
상해 날씨가 그냥 느끼기에도 40도가 훨씬 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는 40도 이상이 되면 모든 게 휴무 상태가 되기 때문에
최고 온도가 39.9도 이상은 올라가지 않으며 또 그런 적도 없단다.
무덥고 습한 날씨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겉옷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아마도 냉면을 말아 먹어도 10 그릇 분량의 육수는 족히 흘렸으리라
임시정부 기념관으로 가는 길의 좁은 도로에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들의 무질서함에 혀를 내두르는데
간혹 경찰 비슷한 노란 제복에 모자를 쓰고 호루라기를 입에 문 쓴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문군의 설명에 의하면 도로교통을 위반 한 사람인데 그 차림으로 다른 사람을 적발 할 때까지 있어야 한다길레
깜짝 놀란 우리 일행 모두는 그 무질서 속에 좌우를 잘 살펴 잽싸게 건너는데
그 민첩함이란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고도 양치질까지 할 정도였다.
◇상해 임시정부
◇상해 임시정부 앞에서
초라한 임정 청사......
내부는 비좁은 공간에 집무실, 회의실, 침실, 부엌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임정 요인들의 사진, 유물 앞에서 즐겁고 들 뜬 분위기는 잠시 멀리 가고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었다.
먼 남의 나라에서 그것도 쫓기면까지 그들은 내일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 건국의 축이, 핵이, 힘이 여기에서 싹트고 있었다.
우리에게 조국은 그리고 역사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숙연한 생각에 고개를 숙였다.
임시정부 기념관 내부의 각 실에는 촬영을 못하게 했는데 뒤에서 찰칵 소리가 나는 바
누군가하고 슬쩍 돌아보니 직원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틈을 타 영철님의 부부가 셔터를 누른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카메라를 뺏기야 하겠냐는 배짱으로 영감도 집무실 내부를 한 컷 담았다.
◇상해 임시정부 집무실
◇상해 임시정부 외관
중식은 홍동(虹東)식당이라는 한식당에서 했는데 상해시 홍구구와 부산시 동래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후
한중합자로 개업(2002.9.28)한 식당이라 느낌이 각별하였으나
깨끗한 시설에 비해 음식의 맛과 내용은 좀 별로였다.
그래도 반주 한잔 없을 수가 없어 갖고 온 소주를 돌리니 금방 동이나 버려
마침 진열대에 국산 소주가 있어 한 병 따고 물어보니 한화로 9000원 !
주당들 모두가 눈이 크게 뜨여지면서 행여 한방울 이라도 흘릴까봐 아끼는 모습들이
금준미주(金樽美酒)가 따로 없더라
홍구공원으로 이동
중국에서는 루쉰(魯迅)공원[주2]이라 한다.
공원 전체의 인상은 제법 큰 호수가 하나 있는 것 외엔 부산의 용두산공원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다.
◇윤봉길 의사 업적비
◇홍구공원 연못 (중국에서는 루쉰(魯迅)공원이라 한다.)
운동, 산책, 그리고 곳곳에 카드하는 사람들로 붐비었는데
벤치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웃도리 훌렁 벗고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팬티 바람에 카드에 열중인 모습이 다소 보기 쑥스러웠다.
수목으로 둘러싸인 중심부에 매정(梅亭)이란 이층 한옥이 있는데 윤봉길(尹奉吉)의사[주3]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호 매헌을 따서 매정이라고 지었다.
죽을 자리를 찾아 상해 임정의 김 구 선생에게 왔던 그......
장부가 집을 떠나니 살아서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 했으나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했던 그....
◇윤의사 흉상 앞에서
◇매정 전경
윤의사님 흉상 앞에 잠시 묵념하고 나오는데 뒤에서 누가 "천원, 천원" 하길레 돌아보니
모양과 크기가 아주 멋들어진 합죽선이 다섯 개 천원이란다.
뭐 이렇게 형편없이 싼 물건이 다 있는가 싶어 얼른 돈을 꺼내려하니 문군이 말린다.
한번 부치면 종이가 찢어지고 두 번 부치면 살대가 부러진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실소하며 공원을 나왔다.
시간이 약간 남아 문군의 안내로 모두들 농산물 판매장으로 갔다,
몇 몇이 구경하는 동안 정립님, 장도님이 바로 그 옆 분홍 빛 불빛이 반짝이는 건물 주위를 유심히 바라보며
왔다갔다 하길레 문득 쳐다보니
간판에 "小草美容中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시내에서도 "商工中心", "○○中心"이라는 간판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던 기억이 나는 바
"中心"이란 말이 전문점을 뜻한다면 "美容中心"이란 아마도 우리나라의 미용실쯤 되리라 생각하니
정립님과 장도님의 미용에 대한 깊은 관심사에 새삼 다시 쳐다보았다.
많이 어두워져 9시 30분쯤 다시 상해 포동 공항으로 가서 황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까마득히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점점의 불 빛
상해에서 황산까지 비(飛)거리는 대략 380km 정도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야경이 아름답다고 잠시 느끼는 순간 대략 40분 후에 황산에 도착하였다.
황산에 닿으니 키가 자그마하고 머리를 짧게 깎은 적당히 시골스럽게 생긴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이름이 김송춘인데 역시 연변사람으로 어투와 발음이 어눌해 그가 하는 말 중 3분지 1은 알아듣기 힘들어
잘 모르는 내용은 앞 뒤를 맞추어 대충 눈치로 때려잡아야 했다.
중국에서의 첫밤을 묵을곳인 휘상고리 대주점(徽商故里 大酒店)[주4]에 들어서 여장을 풀고나니
얼마나 걸어다녔는지 발바닥이 화끈거리며 불이 나는 것 같다.
각 방을 지정받고 피로와 땀을 다 씻어낸 후
오늘 관광에 대한 뒷풀이 얘기로 꽃을 피우며 일배(一杯)하니 눈이 언제 감겼는지도 모르겠더라
쉴새없이 분주히 뛰어다니셨던 총무 수진님, 혹 식사나 숙소가 맘에 들지는 않는지, 불편함은 없는지
모두들에게 일일이 신경을 쓰시는 대장 정안님의 노심초사(勞心焦思)하심이 미안스럽다.
[주1] 오악(五岳)
태산(泰山), 형산(衡山), 화산(華山), 항산(恒山), 숭산(嵩山)으로 중국의 동서남북과 중앙을 대표하는 산
[주2] 魯迅 (중국의 소설가)
1881. 9. 25 중국 저장 성[浙江省] 사오싱[紹興]~1936. 10. 19 상하이.
20세기 중국문학의 거장.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예재(豫才).
첫 작품은 〈광인일기 狂人日記〉- 1918년 잡지 〈신청년 新靑年〉5월호
대표작 〈아Q정전 阿Q正傳〉
[주3] 윤봉길[尹奉吉] 1908 충남 예산~1932. 아호는 매헌(梅軒)
상해[上海] 훙구 공원[虹口公園]에서 천장절(天長節) 전승축하기념식에
김홍일이 준비한 물통과 도시락에 장착한 폭탄을 식장에 던져
상해 파견군 시리카와[白川義則] 대장,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 등을 즉사시켰으며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주중공사 시게마쓰[重光葵], 총영사 무라이[村井]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1946년 6월 30일 해방 후 첫 국민장이 엄수되었고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주4] 주점(酒店) 또는 대주점(大酒店)은 술집이 아니고 호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