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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유와 선물의 사건으로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다중적 마을공동체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서울 강북의 북한산 아랫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생활, 놀이, 영성수련, 선교를 통전적으로 이루어가는 마을 단위의 <생활공동체>입니다. 생명과 평화가 사라진 생활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통적 마을공동체성 회복을 통해 공유와 선물의 다중적 코뮨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현재는 수유리 지역 외에도 철원의 비무장지대 인근에 생명평화 마을공동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기숙형 대안초등학교와 식의주 문제를 해결해가는 생산공동체,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생명평화 운동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공동체가 생각하는 가족 개념은 이중적입니다.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이지만 동시에 ‘가족이기주의’는 마을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요소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마을공동체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 공동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성원들은 최소한 하나 이상의 가족공동체로 생활합니다. 크고 유일한 하나의 공동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코뮨들이 상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기존의 ‘가족’구조를 넘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식으로 말하자면 작은 단위의 기초공동체가 여러 가지 형태로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가족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남성공동체방, 여성공동체방입니다. 기본적으로 공동체방은 미혼 남성 혹은 여성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이런 공동체 방은 대표적인 코뮨적 공간이면서도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형성되는 공간입니다. 가정에서 경험하는 일이 이 곳에서 비슷하게 일어납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함께 살지 않으면 결코 경험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족의식이 형성됩니다. 무엇보다도 공동체 방이 주는 유익은 자신이 얼마나 공동체적인 인간이 아닌지 깨닫게 해주는데 있습니다. 결혼을 해서 살기 전에는 대부분 자신의 기질이나 감정 등을 자신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뜰, 새술, 풍경, 살림터, 광야, 새터, 배움터 이렇게 7개의 공동체방이 있습니다. 각각은 고유한 하나의 가족공동체입니다. 여성 공동체방이라는 큰 가족공동체 안에 해뜰, 새술, 풍경이라는 작은 가족공동체가 있는 것입니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해뜰, 새술, 풍경에 사는 구성원들간의 관계의 배치를 바꾸어 줍니다. 이런 과정이 또 하나의 작은 가족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관계경험을 통해 확장된 가족 이해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남성, 여성 공동체방은 구성원의 경험에 있어서 물리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미혼과 기혼 구성원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일명 부뚜막이라는 모임입니다. 이 부뚜막은 결혼한 여성과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한 달에 한 번 만나 1박을 하며 결혼, 직장, 육아 등 삶과 인생의 길을 논하는 자리입니다. 이 모임에 자극을 받아 결혼한 남성을 중심으로 한 기혼 남성들도 모여 함께 고단한 육아와 가정생활의 어려움, 생활의 지혜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이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미혼과 기혼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생활하는 <공동생활 수련> 과정은 일정한 시간을 통해 가족이기주의가 구조화되지 않도록 하고, 코뮨적인 가족 형성의 가능성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 외에 기초공동체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예배와 신앙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어린이 기초공동체, 아기 기초공동체를 포함해서 11개의 기초공동체가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은 기초공동체원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초공동체는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신앙을 통해 해결해 가는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이 기초공동체는 장기적으로 삶의 의식주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는 기초생활공동체로 가기 위한 훈련과 신앙의 가장 기본 단위가 개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줍니다.
자본주의와 근대라는 시기를 통과하면서 형성된 개인적 실체주의와 그의 변형으로서의 가족, 혹은 공동체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식의주 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반생명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을 생명, 평화, 공동체적 가치를 가진 삶의 양식으로 바꾸기 위한 몸과 마음의 공부를 합니다.
그 중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서 ‘재정’에 대한 공부가 있습니다. 돈을 교환관계의 자본이 아닌 선물관계의 매개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공유 훈련을 합니다. 이런 과정은 몸과 존재의 근본 체질을 바꾸는 실질적인 훈련입니다. 말은 멋있게 잘하고, 담론은 잘 생산하는 사람도 자신의 소유처럼 여기는 돈 문제 앞에서는 여지없이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모든 구성원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초로써 회비(나눔의 드림)를 냅니다. 이 회비는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최소한의 계기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을 통한 개별화전략이 핵심인데, 이 전략에 맞서 함께 재정을 모아 공동체를 유지합니다. 공동체에는 다양한 층위의 공유 기금이 있습니다. 공동체방 기금, 생명평화마을 기금, 교육 기금, 기초생활공동체 기금, 희년장학 기금 등 주제와 목적에 맞게 다양화한 재정 공유가 이루어집니다.
몇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공동체 내의 공교육 교사와 마을학교 교사가 함께 교육을 고민합니다. 공교육 교사는 방학이 최소 한 달인데 비해, 마을학교 교사는 일주일 이상 잡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교육 주체들 간의 논의를 통해 방학 품앗이를 합니다. 공교육 교사의 한달 방학 중 일주일을 마을학교 아이들과 보내고, 그 시간에 마을학교 교사들은 쉼과 재충전을 합니다. 공동체에 있는 직장인들이 모여 함께 의논했습니다. 명절에 나오는 보너스를 모아 보너스는 커녕 기본 급여도 충분치 않는 공동체 활동가들과 공유한 일도 있습니다. 금강산기행 참가비를 개인 부담 방식이 아닌 공동으로 함께 모아 갔던 경험, 한 달 용돈을 작은 단위의 기초공동체에서 함께 모아 개인의 필요에 맞게 써보는 경험, 둘째 솔이의 출산으로 돌보기 힘들게 된 첫째 아이 별이를 마을의 가정들이 함께 봐주었던 경험, 아이들끼리 엠티하면서 방에서 함께 자보는 경험 등 다양한 공유의 사건을 통해 코뮨적 욕망이 생성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현재 공적인 공간이 몇 개 있습니다. 생명평화연대 사무실과 수련실, 춤추는방과후배움터, 아름다운마을학교는 공동체의 공유기금을 통해 확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런 기금들이 현재 공동체를 유지하는데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삶의 길을 찾고, 거기에 맞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생성된 것이 기초생활공동체입니다.
기초생활공동체는 마을공동체에 함께 하는 구성원들 중 재산을 모두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의 코뮨입니다. 초대교회 하나님나라 공동체의 원초적 관계성을 우리시대, 우리의 삶에서 구현하고 증언하고자 하는 공동체입니다. 은사와 물질의 공유를 토대로, 개인의 다양한 기질과 취향을 존중합니다. 수입은 함께 모아 월 기초생계비를 균등히 배분합니다. 남는 재정은 공동재정으로 운영합니다. 임신출산, 의료, 교통, 자녀교육 등 사회적 공공비용은 공동재정에서 필요에 따라 사용합니다. 수입을 평균적으로 공유한 후 조성되는 재정은 다양한 선교 활동, 총체적 해방과 구원을 위한 연대 운동, 청년지도력 양성을 위한 장학 사업 등에 사용합니다.
모두가 기초생활공동체 구성원이 될 필요는 없지만 기초생활공동체를 통해 형성되는 새로운 삶의 양식과 문화에는 동의하고 지향합니다. 하나의 기초생활공동체가 계속 커지는 방식이 아니라 또 다른 성격의 기초생활공동체가 출현할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습니다. 한국의 도시형 생활공동체가 가족주의를 극복하는데 근본적인 한계는 비싼 땅값과 주거공간에 있습니다. 한 가정, 혹은 한 공동체만의 역량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문명의 질서에 관한 문제입니다. 특히 주거공간의 구조와 패턴으로 인해 형성되는 삶의 동선은 자본주의 생활양식으로 일반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그 공간, 그 집에 가면 꼭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그런 성격의 것. 도시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 실험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르게 됩니다.
아무리 다양한 형태의 공간 구상을 해도 지금과 같은 땅값이면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대안생활문명은 농촌에서 나오지 않을까 꿈꾸게 됩니다. 공동체가 철원으로 갈 때는 가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가지고 들어갈 예정입니다. 가정 단위의 생활권 이외에도 공동 주거공간과 코뮨적 마당을 통한 새로운 가족 공동체 형성, 스승과 제자가 함께 생활을 하며 교육이 이루어지는 소림사형 주거공간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재정을 공유하는데 있어서도 다중적이고, 가족공동체를 형성하는데도 다중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마을공동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갈 지 솔직히 우리도 잘 모르겠습니다.
#2. 임신, 출산, 육아, 몸수련을 확장된 가족과 함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함께 가라!
임신, 출산, 육아!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거의 자기 판단 없는 무의식적 답습을 통해 거쳐가는 삶의 대목들이다. 관계의 사유화는 연애관계에 들어가면서 시작해 결혼을 거치고 임신출산 앞에 놓이면 그 절정에 이른다.
아름다운 마을공동체에서는 임산부들이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어떤 성격의 활동에서도 거의 열외되지 않는다. 임신 후 출산 당일까지 태연하게 일 하고 모여 즐긴다. 태교가 임신한 부모가 평상심으로 살아가고 성숙한 사회적 부모로 스스로 수련해가는 과정 자체 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장 안전하고 멋진 태교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던 일 계속 하고, 하던 공부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임신기간을 보내면 출산도 일상처럼 맞게 된다. 건강하게 보냈기 때문에 대부분 조산원에서 건강하게 자연출산 한다. 이제 출산은 인간이 자기 몸을 완전히 열어 다른 존재를 맞아 들이고 타자와 합일하여 “나”가 확장되는 사건으로 공동체적 인간형을 만들어가는데 고귀한 영감을 주며 전파, 공유되고 있다.
저항감 없이 주어진 상황들을 맞이하다 보면 의료전문가와 의료기기를 통해 임신을 확인하고 병원 산전관리를 받다가 병원의 분만 시스템에 자신의 생리적 조건들을 억압하며 출산하고 소아 표준 예방접종표에 맞춰 백신 투여를 해가며 아이를 기른다. 열이 나도 설사기만 보여도 병원으로 뛰어가고 아동 표준발달표에서 자기 아이를 대입시켜보며 전전긍긍하고 최선을 다한다 해도 현대영양학적 관점을 벗어나기 힘든 밥상을 차리고 투정을 달래며 함께 유약하기 짝이 없는 신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개별 가정의 일정한 자본력이 요구된다.
임신상황에 놓인 모체와 태아가 어떤 류의 보살핌을 받고 어떤 생활을 했느냐에 따라 태어나는 아이와 그 아이에 대한 육아태도 그리고 속한 삶의 단위의 생활방식, 관계의 성숙이 결정되는 것을 많이 본다. 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을 의료적 사태가 아니라 자연생리적 상황이자 실존과 괴리없는 전인적 공부를 수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일단 공기처럼 존재하는 통념들에 대한 의심과 질문, 공부의 과정 그리고 생활 문화와 우리의 몸에 지긋한 변화가 요구된다.
이런 면에서 마을공동체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삶의 경험들 중 특히 임신, 출산, 육아, 교육, 죽음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배움을 지극히 일상적이고 비형식적인 교육을 통해 이뤄낸다는 매력을 갖는다.
때론 임산부요가와 임산부교육..등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 식구를 포함하여 지역민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이 쌓이고 필요한 정보와 인식의 수준이 어느 정도 평준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가 재미있다. 이제는 따로 예비 부모학교나 임산부학교를 만들지 않아도 밥상머리에서 반성이 일어나고 마을목욕탕에서 만나 배우고 밤 산책길에서 토론한다. 곳곳에 강사가 만들어져 있고 어느 순간에 누구나 강사이다.
아이 둔 기혼여성들과 뒤엉켜 세미나 하고 함께 밥상을 차리고 여자친구도 없는 총각이 아이 셋 둔 베테랑 엄마 수준으로 세살 아이와 대화하고 그 아이에게 먹이면 곤란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아이들 간의 갈등의 역동성을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서 노니는 광경을 보게 된다.
바로 며칠 전에도 공동체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집 첫아이는 동생이 태어나는 과정에 참여하고 엄마아빠가 조산원에 머무는 동안 동네 언니오빠집, 친구집에서 뚝 떨어진 격리감 없이 사흘을 보냈고, 남편이 함께할 수 없는 산후조리의 몫을 동네 언니가 채워주었다. 양가 할머니들이 동원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확장된 가족 안에서 임신출산이 이뤄지는 모습이다.
임신출산 주체가 일이나 함께하던 활동, 놀이, 공부, 시공간에서 소외될 일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오히려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과하며 서로의 생명을 고양시키는 능력이 왕성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 임신출산육아의 주제를 통과하면서 보면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변화가 관찰되는데 그것은 자본과 결탁되어 있는 시장에서 자유로운 임신출산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주제는 몸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의식, 무의식과 상관없이 몸을 통과하는 많은 사건들이 있다. 식의주 생활과 의료적 상황을 맞이하는 태도에서 계속 변화해왔다.
일단은 몸을 수련하는 것이 일상화되어있다. 일과를 새벽 시간 요가, 택견, 등산, 풍욕.. 으로 시작한다.
자연이 날생명을 많이 내는 봄엔 생채식을 하며 몸의 잉여를 게워낸다. 많이 먹고, 탐욕으로 먹고, 살핌 없이 입이 즐거운 음식을 먹는 동안 온우주가 함께 병들어 가고 전세계의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시장의 논리에 무기력해지고 있음을 성찰하게 되었다. “먹는 것이 고스란히 그 사람”이라는 말은 진실이어서 잘 먹는 과정을 훈련하는 과정이 우리의 생활양식 전반을 돌아보게 하고 관계의 장을 변화시키고 어떤 일에도 쉽게 요동하지 않는 담담함을 수련하게 해주었다.
단식과 생채식을 통한 밥상의 변화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관념적 삶과 관계의 청산이라 할 수 있겠다. 먹던 것을 먹지 않는 경험, 먹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먹고 은밀하게 먹던 것을 드러내고 먹는 집단적 경험을 통해 추상적 사귐과 자신의 무엇도 건들지 못하는 막막한 만남에서 벗어나고 소규모 생활단위를 넘어 조금더 큰 단위의 밥상을 함께 차리게 해주었다.
그리고 병을 만들고 병 앞에 무력하게 하는 현대인의 모든 삶의 조건 안에서 보험과 종합건강검진에 의존하지 않고 생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죽음, 죽음 안의 생을 들여다 보는 수행을 하게 해준다.
일상적으로는 자기 몸과 이웃의 몸에 깨어있어 서로 돌보고 아플 땐 아이든 어른이든 아픈 이유를 생활 안에서 찾고 생활의 변화와 자연치유력을 통해 회복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낫는다. 마을 안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 만큼 그 사람의 아픈 이유를 정확하고 애정 깊게 진단해줄 사람은 없다. 서로에게 주치의, 마을의사가 되어 병을 중심으로 나태하고 무기력한 삶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도움을 주고 받는다.
대안적 임신출산육아의 과정과 몸을 매개로 한 모든 성찰과 수련의 여정에서 공동체의 일상적 흐름은 결국 “새로운 욕망”을 생성하고 있음을 본다. 욕망을 꺾어 면벽수행을 선택하지 않고 세속에서 전혀 다른 생을 열망하며 새로운 삶의 공간과 틈을 열어가는 것은 시장만능주의로 희망을 찾기 힘든 개별화된 삶에 분명한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3. 아름다운 마을의 육아와 교육이야기
공동체의 육아와 교육의 장으로 아름다운마을학교가 세워지기까지
2001~2002년은 공동체가 새로운 꿈을 나누기 시작하던 때입니다. ‘마을’에서 일상을 공유하며 삶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마을공동체를 꿈꾸기 시작하던 시기지요. 이즈음 공동체에 작은 교육소모임이 꾸려졌습니다. 교육에 관심있던 3명의 친구가 대안교육관련 도서를 읽는 모임을 시작한 것이 마을학교의 씨앗이 되었지요. 그리고 공동체의 4살, 5살 친구 2명과 역사적인 첫 나들이를 다녀온 것이 우리의 첫 교육실천이었습니다.
2003년, 그런 꿈이 공명되었는지 그 즈음 함께 교육의 꿈을 키워갈 친구들이 공동체에 접속되었지요. 그 덕분에 교육모임을 중심으로 격주 토요일 오후 수유리에서 생태활동을 중심으로한 주말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아이들과 수유리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요. 또 공동체와 친분이 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철학교실”을 열어 진행했습니다.
동시에 마을에 먼저 자리를 잡았던 선배가정은 ‘품앗이육아’를 시작했습니다. 3살~6살아이들 4명을 요일을 정해 돌아가며 집에서 돌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출산 후 처음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감격스러워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지요.
주말학교와 품앗이육아가 자리잡아갈 때즈음 교육모임 친구들을 비롯한 공동체친구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하고 대거 수유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육아와 교육’의 공동체적 해결에 대한 논의가 활기를 띨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게 되었지요. 그런 기운에 힘입어 산이 가까운 마을입구에 공동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 공간이 마을학교의 공식적인 첫 공간이 되었습니다.
2004년 마을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확보되고 공동의 공간이 생기니 교육모임이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교육모임의 친구가 학교를 정리하고 공동체의 4살~7살 아이들 네 명과 공동육아를 시작했습니다. 월~금요일 9시 30분에서 4시30분까지 아이들과 함께 놀고 먹고 자며 보냈지요. 그리고 ‘아름다운마을학교’라는 이름도 짓고 공동육아, 주말학교(격주 토요일 생태활동을 중심으로), 계절학교(방학기간에 매일학교 들살이로 진행), 교육사랑방(좋은 강사를 초청해 부모, 교사, 지역민과 교육을 이야기하는 자리) 이라는 형태의 활동으로 내용을 체계화했습니다. ‘아름다운마을학교’가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된 시기입니다.
그해 공동육아가 어느 정도 자리잡아갈 가을무렵 공동체선배가 세들어 사는 집주인 할머님께서 자신도 마을에 작은 학교를 하는게 소시적 꿈이었다며 산이 가깝고 마당있는 집을 시세보다 싸게 저희에게 넘겨주셨지요. 그렇게 공간이 주택가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나니 주말학교를 통해, 또 마을에서 오고가며 알게되어 공동육아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자녀들의 육아와 교육을 위해 시작된 일이 마을의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해진 것이지요. 그때 손녀를 마을학교에 보내신 할머니는 요리선생님으로 자원활동도 하셨고 지금은 아이들의 아름다운점심밥상을 차리시는 밥상선생님이 되셨지요.
공동체에 태어나는 아기들은 부모가 맞벌이인 경우 출산휴가가 끝나면 공동육아-아기천사방(공동육아 형님들이 아기방에 지어중 이름)에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 이제 3개월이 된 아기부터 7살형님들까지 열대여섯명의 아이들이 함께 먹고 놀고 자며 자랍니다.
공동육아를 졸업하는 아이들이 생기며 자연스레 방과후배움터를 열게 되었고 공동체 외부아이들과 함께 방과후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마을학교와 방과후가 끝나는 5시부터 저녁8시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살림마당”을 꾸렸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보육도우미에 참여하는 공동체 이모, 삼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명실공히 ‘공동체가 한 가정이 되어 아이를 돌보는 체계“가 잡히게 된 것이지요.
아름다운 마을학교를 가능하게 한 것들
공동체 교육의 또 한가지 축은 ‘기독청년아카데미’를 통한 청년지도력양성이라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팎의 청년을 교육하는 활동을 통해 공동체에 활력을 주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의 다양한 영역의 강좌를 통해 일상적으로 함께 공부하는 것과 일상을 공유하며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익혀온 과정들이 ‘교사교육’의 역할을 하고 자격증과 무관하게 아이들과 배움을 나눌 수 있는 힘을 가진 공동체원으로 자라게 했지요. 교사를 뽑고 교육하는 일을 별도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임신 후 영아반 도우미로 오며 출산을 준비하던 친구는 출산후 아이를 데리고 영아반 선생님으로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마을학교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마을학교의 상근교사외에도 운동선생님으로, 요리선생님으로, 손작업선생님으로, 연극놀이 선생님으로 자신이 나눌 수 있는 것을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나누어준 마을의 공동체 이모, 삼촌들이 있었습니다. 공동체에는 마을학교 도움교사로 함께한 사람들이 결국은 자기 길을 제대로 찾아 공동체를 든든하게 세워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지요. 덕분에 아이들은 풍성한 관계와 내용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미혼의 이모, 삼촌들은 아이들을 만나는 방법을 온 몸으로 배울 수 있었지요. 최근 살림마당에 보육도우미로 요리사로 함께한 공동체의 이모삼촌들은 3살아이가 팬티에 눈 똥도 치우고 밥도 먹이고 옛날 이야기도 들려주고 놀기도 하며 “공동체의 육아와 교육”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함께 책임져가고 있지요. 살림의 능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지요.
교육공간과 운영비를 마련하는 것도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왔습니다. 일부러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결혼자금을 미리 털기도 했지요. 그래서 짧은 시간 안정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공동육아와 배움터공간은 저녁이 되면 영화도 보고 모임도 하는 마을의 사랑방으로, 또 공동체방으로, 손님의 숙소로, 우물터(정수기^^)로 다용도로 사용됩니다.
이렇게 육아와 교육을 가족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가니 아이들은 다른 지평의 ‘가족관’을 가진 공동체적 존재로 자라가는 것 같습니다. 혈연을 넘어서 일상을 함께하는 많은 이모삼촌과 동생, 형, 누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든든한 삶의 후원자이지요. 또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있으니 심지어 같은 색과 냄새의 똥을 누는 “공동체적 몸의 경지”에 이른 셈입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지금의 우리와 차원이 다른 공동체적 삶, 공동체적 가족을 구성해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런 기대를 해봅니다.
#4. 놀이와 축제 - 일상의 축제를 통해 놀면서 느끼고, 몸으로 기억되는 우리
1. 용어정리
첫째, 마을에서 ‘논다’고 할때는 대체로 머리와 몸을 맞대고 직접 부딪히며 노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둘째,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하는 스타크래프트나 위닝 등을 할때는 ‘게임’을 한다고 합니다. 셋째, 매주 토요일에 하는 축구나 가끔 하는 농구를 할때는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넷째, 새벽공기를 맞으며 자신의 몸을 깨우는 요가, 택견, 수영을 할때는 수련을 한다고 합니다.
2. 용어 구분의 이유
위와 같이 여러 가지로 구분하지만 네가지 모두가 몸과 마음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한다는 의미에서는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무의식적, 의식적으로 섞어서 부를 때도 많이 있습니다. 단지 여기서 구분한 이유는 머리와 몸을 맞대고 직접 부딪히며 노는 의미에서의 ‘논다’를 자세히 이야기하기 위해서 구분해보았습니다.
3. ‘논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한달에 한번은 조를 나누어서 놉니다. 놀이의 종류는 머리에 쥐가 나는 보드게임부터 다리에 쥐가 나는 돼지씨름까지 다양합니다. 놀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몸과 마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최근에 화끈한 동영상으로 화제가 된 무뽑기는 벽에 붙어있는 사람과 뽑아내려는 사람과의 긴장관계를 단순하지만 처절하게 그려냄으로써 놀이의 절정을 보여주었습니다.
4. ‘홀로 서다’, ‘편을 가르다’
일반적으로 놀이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철저히 홀로 서게 하는 게임과 새로운 편이 되어 싸우는 게임입니다.
우노, 고스톱같은 일대일 보드게임은 그동안의 친인척, 부부관계를 갈라 철저히 홀로 서게 만듭니다. 가족은 어느새 나의 적이 되어 나에게 비수를 꼽습니다. 가까운 이웃은 나의 힘이 되어줍니다.
돼지씨름같은 집단게임은 매번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오늘의 팀이 내일은 적이 됩니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한모듬이라는 개념 앞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합니다.
5. ‘축제’ 모두를 하나로 하는 놀이
축제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위에서 말한 두가지 종류의 놀이들을 즐기는것과 모두가 하나가 되는 전혀 새로운 놀이입니다.
그저 사람만나고 즐겁게 놀려는 마음으로 정성껏 만드는 김장놀이는 그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공연’ 나하나 불살라 모두를 즐겁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하나되는 ‘축제’의 형태도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이야기한 김장이고 또 하나는 각자 또는 모듬이 준비한 공연이 나누어지는 공연잔치, 요샛말로 하면 버라이어티 쇼입니다.
공연잔치는 공동체의 지체를 새롭게 맞이할때, 생일을 축하할 때 시행되며 결혼식 뒷풀이에서 그 절정을 맞이합니다.
7. ‘뒷풀이’ 결혼식보다 중요한 놀이
결혼식은 양가의 가족들과 그 손님들이 만나는 귀한 자리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뒷풀이’입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모두가 돌아간 저녁시간 신랑,신부와 함께 모여서 각자, 모듬별로 준비한 축하공연이 베풀어집니다. 신랑,신부의 답공연도 베풀어집니다. 화려한 공연에 이어 서로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 서로의 가슴이 만나는 악수와 포옹이 이어집니다.
8. ‘몸’ 새로운 가족을 기억하는 장소
놀이는 머리와 몸이 동시에 작용하지만 표현되는 것은 몸입니다. 부딪히고 갈등하면서 머리도 생각하지만 즐거움과 따뜻한 체온을 기억하는 곳은 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놀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족을 만납니다. 머리는 계산하지만 몸은 느낍니다.
‘생각하는 자에게 인생은 비극이지만 느끼는 자에게 인생은 희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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