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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 과테마라 공화국(Republica de Gueatemala) 위치 : 중앙아메리카 면적 : 10만 8889㎢ 인구 : 1138만 5000명(2000) 인구밀도 : 104.6명/㎢(2000) 수도 : 과테말라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에스파냐어 통화 : Quetzal(Q) 나라꽃 : 몽하 블랑카(monja blanca) |
과테말라는 마야문명의 본산이다. 중앙 아메리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간호수와 수많은 화산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경관의 나라이다. 북쪽과 서쪽은 멕시코, 동쪽은 벨리즈, 남동쪽은 온두라스, 남서쪽은 엘살바도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1821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한 이래 경제적으로는 미국의 지배하에 있으며, 커피 재배로 국가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독재정치와 쿠데타가 반복되어 왔고, 좌·우 게릴라의 대결이 격렬하여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이다. 높은 인구증가율은 국가의 경제발전에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으며, 주민은 원주민인 인디오, 혼혈인인 메스티죠 그리고 백인으로 구성되어있다.
과테말라의 기후는 고온다습한 열대기후로 태평양안의 저지대는 강수량이 풍부하고,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사바나기후를 이룬다.
과테마라시티
멕시코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중남미의 고대문명의 띠인 아즈텍(Aztec)문명, 마야(Maya)문명, 잉카(Inca)문명의 불가사의의 유산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에는 마야문명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름의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었던 연구와 강의에 지친 심신을 달래가면서, 세계문화탐방팀은 마야문명의 본산인 중남미의 과테마라(Guatemala)로 향해 떠났다.
여행지로서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지역이어서 모두들 새로움을 추구하는 기대를 안고 머나먼 여정을 시작했다.
오후 1시 반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일본의 도쿄와 미국의 달라스를 경유하여 과테말라의 수도인 과테마라시티에 도착한 시간은 하루가 지났어도 날자변경선을 넘어와서 같은 날 오후 7시 40분이었다. 태평양 상공에서 날자 변경선을 넘어 우리 시간으로 계산하면 밤 시간인데도 대낮이 계속되는 장장 24시간의 비행 끝에 지구의 반대쪽인 이 곳에 도착한 것이다.
어둠이 찾아드는 라틴아메리카의 중심도시 과테마라시티, 전통과 현대가 혼재해 있는 중남미의 관문도시 과테마라시티는 찾아드는 밤의 기운을 머금으면서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날이 밝아오자 모두들 시차에 의한 피로도 거뜬히 이겨내면서 마야문명의 본산인 과테마라의 문화탐방 일정을 시작했다. 첫날은 고고학의 유적지인 라 데모크라시아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도중에 활동중인 화산들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신비스러운 장관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 산봉우리에서 갑자기 시커먼 연기 덩어리가 솟아오를 때에는 바라보던 우리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으며, 억누를 수 없는 흥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 시골의 시장거리에 들려서 원주민들의 소박한 인심을 체험해 보기도 했다. 순진한 미소 속에서 울어 나오는 따뜻함은 우리들에게 인간의 본연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목적지인 데모크라시아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 조용한 시골 마을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돌에 인간의 얼굴을 새긴 돌조각들이 진열되어 있는 고고학의 유적지가 있었다. 인류의 기원과 관련된 듯한 인간 얼굴의 돌 조각의 하나 하나가 모두 인류의 역사를 머금은 채 무언의 계시를 전해주고 있는 듯 했다.
인디오의 마을 '치치카스테낭고'
아침 일찍 우리는 과테말라의 대표적인 전통 도시인 '치치카스테낭고'로 갔다. 험준한 산악을 관통하는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를 타고 2000m 이상의 고지를 오르내리면서 아름다운 주변의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숨가쁘게 달려갔다.
이 도시의 이름인 '치치카스테낭고'는 이지역에 많이 자라는 needdle plant(바늘나무)의 원주민(인디오) 언어라고 했다. 이 전통도시에서는 과테말라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가 있었다.
길가의 건물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시장에 진열되어있는 물건들, 이 모두에서 원주민들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다. 형형색색의 원색 색깔을 한 물품들로 가득한 다양한 전통시장과, 원주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Santo Thomas Church 등에서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며 그들의 전통문화를 보존해 온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전통시장에서의 이색적인 토산품들을 구경하며 쇼핑하는 재미도 과테말라 방문의 효과를 배가시켰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행상인들을 뿌리치고 차에 올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산 호수인 '아티트란'호반에 자리 잡고 있는 '파나하첼'이라는 도시로 향했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면서 30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한동안 오르내리니, 눈앞에 거대한 화산 분화구가 주변에 몇 개의 작은 분화구를 거느리고 있는 아름다운 칼데라(Caldera)호수가 나타났다. 그들의 말대로 과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자부할만한 장관이 펼쳐졌다.
호수의 한 쪽 옆에 그림같이 내려다보이는 호반의 도시 파나하첼은 마치 이상향의 도시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파나하첼'로 내려가서 호수옆에 위치한 방갈로식의 아늑한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숙소의 포근한 분위기는 지금도 과테마라 마야문명 탐방의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으로 마음 속에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다.
포근한 숙소에서 밤을 지내고 나뭇잎들이 햇볕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의 여정은 아침의 맑은 공기 속에서 아름다운 '아티트란' 호수의 파도를 가르는 항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발 1800m의 장엄한 호수의 푸른 물결을 가르면서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산티아고'라는 원주민 마을로 향했다. 원주민들의 생활을 체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를 항해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칼데라호수, 아티트란호의 항해는 과테마라 여행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장관의 체험이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간 원주민의 마을 '산티아고', 그러나 선착장을 내리면서 그들의 생활환경을 보는 순간 아쉬운 마음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현대식 건축양식을 닮아가고 있는 건축물들, 길가를 메워버린 관광용 상품가게들이 분위기를 제압하면서 전통마을의 흔적들을 지워져가고 있었다.
순박한 그들의 생활권에 현대문명이 무법자처럼 파고들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왠지 가슴이 저려오는 느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허탈한 마음을 달래면서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마을의 뒷 쪽으로 밀려나버린 원주민들의 주거지역을 찾아서 발걸음을 옮겼다.
원주민들의 주거지역을 돌아보면서 가슴에 저며드는 허전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향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마을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그들의 전통적인 베짜는 모습도 보면서 티없이 맑은 소녀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주소까지 받아왔는데, 주소가 정확치 못한 초등학교 여선생님에게는 사진을 보내주지 못해서 지금도 빚을 진 느낌이 든다. 산티아고 마을을 떠나오면서도 현대문명에 밀려서 전통문화를 잃어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안티구와 과테말라(Antigua Guatemala)
파나하첼로 돌아온 후 우리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다음의 탐방지인 안티구와 과테말라(Antigua Guatemala)로 향했다. 이 도시는 무한한 문화적 가치를 소유하고 있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문화유산의 유적지이다.
시가지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건축물이 옛날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길 바닥을 돌로 깔아서 길 가운를 낮게 비탈지게 하여 물매를 만들어 놓은 옛날의 도로가 그대로 보존되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었다. 시가지의 전체는 옛날에 구획된 시가지의 모습을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로의 모습 하나로도 당시 사람들의 세심한 생활 지혜를 엿볼 수가 있었다.
고색이 창연한 이곳 안티구와의 거리를 걸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날아온 느낌이 들었다. 규모 있게 짜여진 시가지의 곳곳에는 공원을 겸한 광장들이 마련되어 있었고, 또 도시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 깊은 성당들은 지나간 날들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이 고고하게 서있었다.
저녁에는 서양 영화에서나 본 듯한 과테마라 전통식당으로 갔다. 우리들은 그곳의 전통음식을 음미하면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이국의 밤 분위기에 젖어보았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전통가옥의 커다란 목조 대문이 호텔의 정문이 되어 있는 고전적 스타일의 호텔이었다. 이러한 호텔에서 숙박을 하니 우리가 정말 전통의 도시에 머물고 있음을 실감케 해주었다.
먼동이 터옴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이 하루의 시작을 재촉했다. 아침의 해맑은 햇살을 받으면서 서둘러 안티구와의 시가지 탐방에 나섰다.
많은 전통 건축물들 중에서도 특히 외벽만 남아있는 식민시대의 교회 잔해는 식민시대의 인디오들의 애환의 여운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안티구와의 교외에 위치한 카스코잠(Casa Kojom)이라는 박물관에는 과테마라의 전통음악과 민속을 엿볼 수 있는 값진 자료들이 보존되어 있어서, 이곳의 전통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틈을 내서 이곳의 보석공장과 커피농장을 방문했다. 안티구와에서의 보석공장과 커피농장의 방문은 이 나라의 산업의 정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해가 서산에 걸릴 무렵 내일의 일정인 마야문명의 진수 티칼(Tikal)의 방문을 위해서 우리는 서둘러 과테마라시티로 향했다.
'티칼(Tikal)'의 마야문명 유산
이른 아침 아침식사로 도시락을 챙겨들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티칼(Tikal)행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비행기에서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하면서 한 시간여의 비행 후에 과테마라 북부의 밀림지역에 위치한 '프로레스'의 '산타 에레나'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 직후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몸을 싣고 티칼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목초지가 도로의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한적한 시골 도로를 따라 한 시간정도 달리니 목적지에 도달했다. 이곳이 바로 마야문명의 진수를 보존하고 있는 그 유명한 티칼 국립공원이었다.
이곳에는 3000여이상의 마야문명의 유산들이 밀림 속에서 숨박꼭질을 하듯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이미 발굴해 놓은 유적들로는 하늘을 향해 치솟는 거대한 석조 사원 건축물들, 피라믿형의 거대한 석조 제단들, 그리고 중앙광장과 아크로포리스 등이 광활한 밀림 속을 수놓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마야문명의 숨결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매었다. 아 ! 이것이 마야문명이구나 ! 문명의 신비스러움에 도취되어 신이 들린 듯이 종종 걸음으로 하늘로 치솟은 사원과 제단들을 오르내리는 동안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왔다.
거대함, 정교함, 신비감이 어우러져 있는 마야 문명, 하늘을 향해서, 태양을 향해서 기원했을 마야인들의 함성이 귓전에 와 닿는 듯했다.
이 엄청난 문명! 한 부분을 일별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우리의 일정을 아쉬워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끌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숙소가 있는 '프로레스'로 돌아왔다.
프로레스의 숙소, 시골에 위치한 수수한 숙소이어서 시설은 보잘 것 없었지만 정원을 가득 메운 이름 모를 꽃들에 의한 아늑한 분위기는 유적탐방에 지친 하루의 피로를 달래주었다.
마야문명의 마력에 끌려서, 탐방의 마지막 날 일정은 마야문명의 발굴 현장을 찾아가는 것으로 모두의 의견이 모아졌다. 마야문명에 대한 열정은 우리를 마야문명의 생생한 발굴현장인 '야시하'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날씨가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열대성 '스콜'이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야시하'로 향하는 도중 간간히 차창에 비가 뿌려지기는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뭐! 이런 비쯤은 하면서 준비한 우산들을 끄집어내었다. 가랑비 속에서 유적발굴 현장탐사가 시작되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발굴작업에 의해서 내부에 간직하고 있던 실체들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산봉우리는 꼭대기만 발굴되어 산위에 석조사원의 꼭대기가 나타나 있고, 또 어느 곳은 산의 옆구리만 발굴되어 산의 옆구리가 석조사원의 옆면을 형성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유적의 전체를 통째로 덮어버려 산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이 흙은 아마도 먼 옛날 천지가 개벽 될 만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할 때에 날려온 화산재에 의해서 형성된 흙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야시하'의 문화유산 발굴현장의 탐사는 이번 우리들의 마야문명 탐방에 커다란 의미와 문화탐방의 충족을 안겨주었다.
마야문명의 유적발굴현장까지탐사를 하고난 우리는 스스로 자축을 했다. 길지 않은 여정으로 이 엄청나고 심오한 마야문명의 이해에 도전한 우리들의 용기에 스스로 서로가 찬사를 나누었다.
프로레스의 밤, 시골의 까페에 들러 과테말라의 마지막 밤을 장식했다. 월드컵에서 우리가 4강을 차지했던 때라 그 까페에서도 '대---한민국 짝짝짝' 의 구호가 통했다.
그동안에 과테말라를 돌면서 얻은 마야문명에 대한 이해, 이 값진 노력의 대가를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귀로에 접어들었다.
문화탐방의 교섭에서 현지진행까지 빈틈없이 도와준 Nelis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내가 있는 대학으로 오라고 하니 미소로 대답을 했다.
공항에서 아디오스(Adios)! 하면서 눈시울에 이슬이 맺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테마라 Photo Gallery
버스를 타고 파나하첼로 산티아고에서 인디오 원주민들과 함께 티칼에서 유적을 돌아보며
원주민들과 함께 원주민들의 직조현장 3000m의 고도 칼데라호수 아티트란 호 항해
파나하첼로 가는 길에 원주민 전통 가옥 앞에서 유적 발굴 현장에서
과테말라 시골 숙소에서1 과테말라 시골 숙소에서 2 치치카스테낭고 꽃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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