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고선
제10회 산행일지 : 충북 제천시 월악산(덕주공주와의 만남)
일시 : 2003년 6월 26(목)
날씨 : 흐림 그리고 간혹 갬

이번 주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유달리 봄비가 많이 내렸으나 그래도 장마는 어김없이 한반도를 찾아왔다. 지난 월요일에는 종일토록 비가 내렸었고 화요일은 날씨가 비교적 화창하게 개였었다. 목요일 날씨가 괜챦을 것이라는 장기예보를 믿고 목요일을 정기산행일로 정하고 김생곤은 휴가를 내기로 하였다. 비가 오더라도 우리의 정기산행은 쭈욱 계속되어야한다는 메모를 홈에 올렸더니만 금도현은 회장의 의지가 무섭게 느껴진다는 답글을 올렸다. 수요일 김생곤은 휴가를 내고는 학교로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비가와도 산행 가지예? 휴가까지 내고 나서는 산행이라 회장의 의지를 떠보는 걸까 아니면 비가 와도 가야된다는 일종의 압력일까? 아뭏튼 그러저러한 날씨에 대한 갈등을 느끼지 않도록 비록 흐렸지만 하늘은 비를 잠시 끌어안고 놓아주질 않고 있었다. 아침 8:15분, 역시 우리의 검은 애마 산타페는 파이롯트 김생곤에 의해 미끄러지기 시작하여 오랜만에 경부선을 탄다. 왜관, 구미 길이 별다른 정체를 보이지 않고 시원하다. 상주, 문경을 지나고 통행료 1,300원을 내고 이화령 터널을 지나 수안보 조금 못 미쳐 우측의 월악산 국립공원으로 접어들었다. 또다시 길을 막고 징수하는 국립공원 입장료를 지불하고 10시30분경 덕주골에 도착하였다. 송계계곡의 맑고 풍부한 물줄기가 잘생긴 소나무 골짜기와 국도를 따라 시원스레 흐르고 있다. 자판기 커피 한잔하고 10시 45분에 월악산을 향한 첫발을 옮긴다. 월악산 영봉 5.8km.
숲 속으로 접어들자 매미, 풀벌레, 새소리 등 여름의 소리가 한창이고 습기 가득한 길가의 바위와 돌들 그리고 나무둥치엔 키 낮은 이끼들이 한 살림씩 차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촉촉한 습기는 옷에 감추이지 않은 살갗을 간질이고 들숨에 숨어서 기도를 편안히 조금씩 적시고 있는 듯 하다. 비교적 편안한 길로 20여분 후 덕주사 앞에 이르렀다. 이 사찰의 원래 이름은 월악사였으나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공주 덕주가 이곳에 머물며 있었기에 그 후 덕주사로 개명된 유서 깊은 절이다. 좌측 계단 위에 위치한 덕주사를 돌아보려고 수십 계단을 올랐으나 널찍한 자리엔 큰 나무 하나도 없이 대웅전만 덩그러니 부자연스런 크기로 서있다. 중건을 계획중이라지만 그리 권할만한 볼거리는 아닌 듯 싶다. 덕주사를 지나 등산로는 왼쪽 방향으로 접어든다. 산세가 여기쯤서 물을 넣어야할 것으로 보여 좌측 작은 계곡에서 식수를 준비하였으나 미리 말하지만 식수는 마애불에서 준비하여도 충분하다. 다시 20여분을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르니 목탁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마애불이다. 
덕주사에 머물던 덕주공주가 계시를 받고 세웠다는 마애불은 보물 제406호로 덕주공주의 형상으로 조각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 사이에서 힘들어 하던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은 935년 그의 재위 9년에 결국 나라를 들어 왕건에게 바치게 되고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는 서라벌을 출발하여 문경새재를 거쳐 태자는 이곳에서 40여리 떨어진 미륵사를 창건하고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가 베옷을 입고 마지막 삶을 살았고 공주는 이곳 덕주사에서 남은 생을 정리하게 된다. 결국 두 남매는 이 부근에서 생이별을 맞게 하였으니 마애불 앞에서 잠시 옷깃을 여미고 천년 전 이들의 고달팠던 막바지 삶들을 반추해 본다. 마애불은 다소 후덕스런 모습으로 볼수록 편안하게 다가온다. 마애불 앞 천막 아래 가운데 스님을 두고 좌측에는 젊은 여인과 그리고 우측에는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자가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추어 정성스레 공을 들이고 있다. 무슨 사연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금도현은 자식이 없어서 공을 드리는 중이라 했다- 그 간절함은 천년 전 덕주공주의 마음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주변에선 마애불을 청소 중이던 대여섯 명의 인부들이 일하던 자리를 잠시 이들 부부에게 물려주고 담배를 피우며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마애불 아래 샘터에는 다소 활기가 넘친다. 오늘 등반의 거의 전 시간을 함께 동행하다시피한 젊은이들을 만난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노란 티셔츠를 단체복으로 입은 남녀 20여명의 그들은 인하대학교 '영화기행'이라는 동아리에서 기행을 왔다고 했다. 아뭏튼 산행 내내 손도 잡아주며, 또 더러는 커플인지 다정스레 사진도 찍고, 서로 격려하는 젊은 모습들이 보기에 좋았다.

마애불을 우측으로 난 등산로는 지도에는 표시가 되어 있지만 폐쇄되어 있었다. 마애불을 지나자마자 등산로는 그 모습을 돌변시킨다. 거의 직벽이다. 돌계단과 철계단의 연속이다. 내몸에서 난 땀이 뚝뚝 동백꽃 지듯 굵은 방울로 계단들을 적시고 있다. 대학생들의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몇몇 여학생들은 난간에 기대어 쉬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한다. 등고선 멤버들도 지치긴 마찬가지다. 30분 쯤 오르니 서서히 주변 전망이 눈에 들어온다. 물도 마시고 오이도 깨물면서 두어 번 쉬어야 했다. 연이은 바위능선에 오르니 바위와 소나무들이 매우 운치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초록의 솔방울을 주렁주렁 매단 청송은 정말 일품이다. 연이은 바위 봉우리들도 마치 설악의 영봉들처럼 날렵하고 상큼하게 쏟아 있다. 이제 960봉이다. 마애불에서 여기까지 거리는 불과 1.2km이지만 시간은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되어 덕주사 입구에서 여기까지 거의 두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영봉까지 남은 길은 2.4km. 이곳에서부터는 편안하고 조용한 길이다. 대학생들은 점심식사를 하는 지 뒤로 많이 쳐졌다. 1km 정도를 지나면 좌측으로 송계리 동창교로 하산하는 삼거리를 만난다. 곧바로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시간은 이미 한시를 넘어서고 있어 시장하지만 도무지 식사할만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는다. 영봉을 1.15km 앞둔 지점에서 등산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들어서자 영봉아래 우리가 식사하기에 안성마춤인 자리가 마치 예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다행스레 나타났다. 우린 양반이라 아무 곳에서나 식사를 하지 않고 꼭 자리를 가려서 하니까...역시 예의 변함없는 메뉴와 변함없는 맛이다. 오늘이 평일이어서 사업이 바쁜지 금도현에게는 연신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냉동고에 넣어두었던 김생곤 조카의 돌떡도 먹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때 아닌 밀감도 먹고 주변을 정리하였다.

이제 남은 거리는 1km 정도이며 높이로는 100미터 좀더 남은 셈이다. 배도 불러 가벼운 마음으로 정상을 향하는데 초반 다소의 내리막길이 불안하게 만들더니 이윽고 끝도 없는 계단을 만났다. 영봉은 높이 150여 미터, 둘레 약 4km의 거대한 암봉이다. 월악산 이름값을 한다며 투덜대기도 하고 애당초 가까운 거리라고 가벼이 생각한 나의 경솔함을 후회하여 본들 오르는 길이 쉬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천국에 오르는 계단에 지옥의 맛을 보고난 후에야 앞이 열리며 영봉에 닿는다. 1km 거리가 40분 이상이나 걸렸다. 이제 영봉이다. 원래는 국사봉이라고 불리었으나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영봉으로 불린다는 월악산의 정상. 수많은 바위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신령스러운 모습의 영봉은 지도상에는 1,094m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정상 표지석에는 1,097m라고 적고 있다. 중봉에 겹쳐있는 충주호와 주변 월악산 국립공원들의 모습이 훌륭한 볼거리이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사이 대학생들은 먼저 영봉에 닿아 왁자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구경하며 사진을 담고 있다. 청솔모 두 마리가 우릴 반기듯 가까이 다가와 내 카메라에 인사를 하고 금도현이 놓은 떡 조각을 맛있게 먹고 있다. 20여분을 쉬고 세시가 넘어 하산을 시작한다. 김생곤은 난간 밖의 버려진 페트병을 주우려다 미끄러져 다치진 않았으나 엉덩이에 흙탕 도장을 찍고 말았다. 영봉을 휘어감은 계단을 내려와 이번엔 우측의 동창교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송계리로 하산하는 길이다. 계단이 끝없이 지루하게 이어지지만 이 등산로는 여느 등산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주변도 큰 나무에 가려서 보이질 않고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진다. 역시 덕주사 방향으로 월악산을 오를 것을 추천하고 싶다. 한 시간 이상이 걸려 동창교에 닿았다. 중간에 물을 먹기도 했으나 쉬지 않고 내려왔다. 대구서 가이드 산행을 온 것으로 보이는 일행들은 아래 식당에 길게 앉아 한잔 즐기는 듯 보였다. 오디 맛을 보고는 탁족. 동창교에서 영봉까지는 4.5km라는 이정표가 있다. 매표소 직원에게 산에서 수거한 두 봉지의 쓰레기를 건네고 버스를 기다리다 덕주사 방향으로 가는 차를 얻어 타고는 2km 정도를 내려와 우리의 차로 왔다. 먼저 내려온 한 쌍의 그 대학생들이 송계계곡에서 물장난 하는 것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깨문다.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날씨는 오히려 더욱 맑아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금도현은 뒷자리에 꼭 맞게 누워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있었다. 경주서 김생곤의 승진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함께 축하해주었다. 다음 산행 때는 김생곤이 승진턱 을 내기로 하였다. 상주로 오는 길에서 우리 산악회의 로고에 대한 견해도 나누었다. 아뭏튼 모두 신나는 일들이다. 이제 상주시내. 시청에 주차를 하고 맞은편의 참별난버섯집에 들었다. 숫총각버섯탕은 이름도, 생김새도 독특할 뿐만 아니라 맛 또한 얼큰한 게 일품이었으며 값 역시 밥을 포함하여 5,000원으로 저렴하여 우리를 기쁘게 하였다. 다음 산행은 7월5일 토요일, 주흘산으로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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