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역사 인물 ‘팩트체크’
『허임-조선의 침구사』
『허임-조선의 침구사』는 천하제일의 침뜸명의 허임을 역사 속에서 발굴해 엮은 ‘다큐멘터리 명불허전’이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팩트 체트’를 기본으로 하면서 허임의 생애와 침의(鍼醫)들의 이야기를 엮어간다.
역사 속 실재인물 허임은 아비와 어미가 모두 노(奴)와 비(婢) 출신이다. 분명히 천민 출신인 그가 어떻게 세상에 이름이 나서 지금까지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인물로 전해지고 있는가?
『허임-조선의 침구사』는 조선시대로 들어가 역사를 탐구하는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역사적 상상력이 발동하면 역사 자체가 바로 문학이 되고, 드라마가 되고, 영화가 된다.
한편 조선의 침의(鍼醫) 허임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명불허전’이라는 제목으로 tvN에서 8월12일부터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드라마는 자타공인 조선 최고의 침구술 실력을 지녔으나 천출이라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초심을 잃은 개차반 의원 허임(김남길 분)이 400년 후의 미래인 2017년 서울로 떨어져 현대의학의 신봉자이자 까칠한 독종 여의사 최연경(김아중 분)이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라고 소개되어 있다.
허임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방영이 되면 역사적 실재 인물 허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 저자 소개 : 손중양
지은이 손중양은 1958년 생으로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다니던 중 81년 전두환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옥고를 겪었다. 『월간 말』 편집차장을 지낸 바 있고, 1992년 경실련에서 시민단체 공동신문 ≪시민의신문≫을 창간,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1999년 침구사 김남수 선생을 인터뷰 하여 ≪시민의신문≫에 보도하면서 침뜸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뜸사랑 사무국장과 정통침뜸연구소 상임이사를 맡아서 '침뜸 살리기 활동'을 전개해 왔다. 2005년부터는 조선의 침의 허임의 생애에 관해 조사ㆍ연구하여 논문으로 발표하는 한편,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현재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생명건강문화의 창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목 차
추천의 글
전세일: 신비로운 침구술의 성의(聖醫) 허임(許任)
안희정: 마음으로 베푼 인술(仁術)을 기억하는 사업
책을 펴내며
허임의 생애와 침의들의 역사를 찾아서
개정판을 내며
‘신의 의술’ 조선 침구(鍼灸), 널리 인류를 이롭게!
제1장 명의의 탄생
태백산맥 넘어 장악원으로 간 양양 관노
아름다운 대금연주 “자네 오직 독보적이라네”
예조판서의 여종과 사랑을 나누다
음악소리 들으며 명의가 탄생하다
아비는 관노(官奴) 어미는 사비(私婢)
노비는 또 노비를 낳던 시절
이중의 천민 허임, 노비신분 벗어나기
혈맥을 고동치게 하는 음과 율려
제2장 전란의 현장에서
의원 집에서 일하면서 의술에 눈을 뜨다
폄석에서 시작한 조선의술의 맥을 잇다
임진왜란 현장에서 광해군을 치료하며
고난의 생명 피고름을 닦다
충청도 공주와의 진한 인연
정변을 주도하는 침의와 왜적 방비는 침의
의학교수 순회근무, 전쟁의 참상을 보다
“침 맞는 일은 허 교수에게 물어보라”
의녀(醫女)도 마의(馬醫)도 침놓는 사람
제3장 침의(鍼醫)가 있었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침의(鍼醫)
박춘무와 허임의 무단출타
“병 속히 고치는 데는 침뜸이 으뜸”
유성룡 “우매한 아낙네라도 침뜸하도록 할 터”
일세에 이름을 날리는 침의들
일본 사신행차에 침의(鍼醫) 동행하다
『소설 동의보감엔 침의가 딱 한번
고위 관료에겐 약물(藥物)이 넘쳐
역사 속의 허준은 약으로 승부했다.
“소신 허준은 침놓는 법을 모릅니다”
“침혈 정하는 일에 어의는 간섭 말라”
허준에게는 일침이구(一鍼二灸)가 없었다
고금방서 집대성한 『동의보감간행을 보다
제4장 왕과 침
“허임은 궁핍하여 생활할 수 없는 처지다”
임금이 불러도 나주에서 오지 않고
전국의 명침(名鍼)을 불러 모으다
허임에게 임진왜란 위성공신 등에 녹훈
“허임의 지각을 국문하라”
“관노ㆍ사비 자식에게 양주목사라니”
“공사장에도 추국장에도 침의를 배치하라”
“허임의 이름이 헛되지 않구나”
세 왕에게 침놓던 명의의 '귀농(歸農)'
‘귀신 잡는다는 침술’ 이형익 논란
제장5 백성들 속으로
“허임의 의술이 더 뛰어나다”
평범한 농촌마을, 뜸밭골에 정착하다
마을의 선비에게 침을 가르치다
평생의 임상경험 나라에서 출판하다
백성들 가운데서 나온 ‘신의 의술’
침과 뜸을 집집마다 생활의술로
조선 침구전문서의 효시, 침구술을 선도하다
사의경험방의 네 명의(名醫)
허임 의술 계승한 명침(名鍼)들
치종 대가 마의 백광현 내침의 되다
침은(鍼隱) 조광일, 오직 침술로 궁한 백성 치료
청나라 『침구집성에 『침구경험방이 그대로
“조선 침술이 최고라 중국에까지 소문 자자”
통신사 따라서 일본으로 침구(鍼灸) 한류
침도(鍼道) 되살릴 '한국 허군'의 『침구명감
국가대표 침구명의의 흔적 없는 유허지
맺음말
주(註)
[부록]
기록으로 본 허임의 생애 연표
침구경험방의 증상별 치료 항목
▣ 허임 소개
허임의 아버지는 양양의 관노였다. 그는 장악원에 악공으로 선상(選上)되어 당대 최고의 대금연주자로 성장했다. 악공에서 악사(樂師)가 되고, 장악원 최고의 진행자인 전악(典樂)에까지 이른 그는 조선음악의 한 시대를 이끌었다. 허임의 어머니는 김귀영이라는 재상집의 종이었다. 사비(私婢)가 관노(官奴) 출신의 악사(樂師)를 만나 허임을 낳고, 명의(名醫)로 길러냈던 것이다. 이들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험난한 시대를 살았다. 당시 한반도는 격동의 현장이었다. 허임 일가의 삶의 역정은 극적 전환으로 점철됐다.
허임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원 집에서 일해 주며 처음 의술에 눈을 떴다. 임진왜란 중에는 침의(鍼醫)로써 광해군을 따라 전란의 상흔을 치료했다. 침뜸으로 일세에 이름이 난 허임은 내의원 침의로 천거됐다.
허임은 어의 허준의 추천으로 선조의 편두통을 침술로 치료하여 일약 당상관에 올랐다. 선조가 침을 맞을 때 허준은 스스로 자신은 침놓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털어 놓았다. 허준은 실제로 침을 놓지 않았다. 허준이 침놓는 흔적을 찾아 많은 자료를 뒤졌으나 확인이 되지 않았다.
17세기 들어 침의(鍼醫)들은 제도권 의료에서도 그 비중이 확고히 높아졌다. 허임은 침의들 중에서 으뜸으로 꼽혔다. 그는 광해군 시절에는 부평부사, 남양부사 등 지방수령을 지내기도 했고, 인조 초기까지 내의원 침의로 활동했다.
늘 백성들 가운데 살며 인술을 펼치고자 했던 허임은 중년이 지나서 공주에 정착했다. 공주는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수행하던 중에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허임은 갖가지 병을 고치는 한편, 자신의 경험을 후진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신(神)의 의술'로 일컬어졌고, 침의들의 으뜸으로 추앙됐다. 허임은 늙어서 평생의 의술을 정리하여 침구경험방을 집필했다. 침구경험방은 조선의 의료계에 광범하게 활용됐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