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Nicholaus Copernicus)는 그리스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가 이미 기원전 3세기에 언급했던 지동설을 증명을 통해 주장했습니다. 그의 1543년 저서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자연관에 기초하여 150년경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K. Ptolemaios)가 제안한 이후 거의 1400년간 지속해온 지구 중심의 우주관을 전복하는 엄청난 사건의 계기가 되었지요. 당시의 기세등등한 가톨릭 교회와 왕권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가져올 파장을 염려했습니다.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가 교회의 권리와 왕권을 위협한 사건 이후 1세기 정도가 더 지난 1632년,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대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더욱 완벽하게 고증하고 모든 물체는 종류와 크기에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자유낙하의 법칙’의 발견을 담고 있습니다. 기존의 우주관에 위협을 가한 갈릴레오를 교황청에서 가만 내버려둘 리가 없었죠. 교황청은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회부하고 유죄 판결을 내립니다.
밤하늘을 관찰하기 위해 망원경을 만들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낸 갈릴레오, 자신이 발견한 바가 진실임을 알게 된 그는 기존의 권위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을 이룬 그에게 가해진 가혹한 처벌은 그를 자신의 집에 감금시켜 놓는 것이었습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자의 외로움과 그로 인한 부당한 처벌을 감내한 자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해, 피터 시스는 가늘면서도 짧고 날카로운 선으로 고증적인 표현에 충실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점묘파 화가인 쇠라(Geores Seurat)와 비슷한 양식으로 세부를 공간 없이 섬세하고 꽉 차게 그리되 전체의 공간은 이와 대조적으로 시원하게 열려있도록 그렸습니다. 또한 고고학적 분위기와 초현실적 분위기를 접목하여 여러 층의 시간과 형상을 차곡차곡 기록해 놓은 듯한 느낌이 전달되도록 하였습니다. 회화 작품을 마무리하고 장식하는 데 사용되는 액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테두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에서는 그림의 시공간을 설정하는 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책을 자세히 보면, 주로 왼쪽 위편에 필기체로 그림에 대한 배경과 시대적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고, 아래쪽 인쇄체로는 주인공 갈릴레오와 그의 지동설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교황청이 갈릴레오를 사면한 것은 1992년 10월 31일이라고 하니, 피터 시스가 갈릴레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회색 톤의 우울하면서도 어딘지 대성당의 벽화나 천정화의 느낌이 스며든 그림으로 그림책을 엮은 것은 어쩐지 여전히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절대적 세력에 대한 갈릴레오 식의 도전이라고 보이는군요.
다재다능한 피터 시스
<샌 디에고 트리뷴>지는 피터 시스의 그림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경이와 찬사를 보낸 바 있습니다.
「Peter Sis의 그림책은 다층적이며 놀랍다. 그의 작품을 한 번만 읽고 이해하는 것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한나절에 다 보는 것과 같다.」
자신의 작품이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 영구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이며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피터 시스는 194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르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름다운 동구의 도시 프라하에 있는 Academy of Applied Arts와 영국 런던의 영국 왕립 예술 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미술과 영화를 공부한 그의 경력은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1980년에는 베를린 영화제의 단편 애니메이션 부분에서 황금곰상을 탔고, 토론토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습니다. 외국 유명 영화제 수상으로 그의 영화 제작 실력을 인정한 체코 정부는 1984년 동계올림픽 영화 제작을 위하여 1982년에 그를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체코를 포함한 동유럽 국가가 올림픽에 불참하기로 결정하자 영화제작도 취소되었고 고국으로 돌아오라는 정부의 명령에도 피터 시스는 미국에 남기로 결정하고 망명합니다. 유명한 어린이 그림책 작가인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과의 서신 교환을 계기로 아동도서 편집자를 소개받고 1984년 새로운 경력을 위해 뉴욕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죠.
1986년 그가 삽화를 그린 시드 플라이슈만(Sid Fleishman)의 『왕자와 매 맞는 아이』가 뉴베리상을 타면서 아동 도서 분야에서 삽화가로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그림책에 글과 그림을 그리면서 지금까지 글로브 혼북상, 칼데콧상, 볼로냐 라가치상 등 20여 개의 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다재다능한 그의 재능은 그림책뿐만 아니라 잡지 일러스트레이션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Time〉, 〈Newsweek〉, 〈Esquire〉, 〈The Atlantic Monthly〉 등의 잡지에 삽화를 그리고 있으며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에 무려 1000장 이상의 그림을 그리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가끔 전업(?)을 살려 영화의 포스터 작업도 하는데, 그중에는 1984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밀로스 포먼(Milos Forman) 감독의 <아마데우스>도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볼티모어 공항 벽화, 뉴욕시 지하철 포스터, Joffery Ballet 무대작업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피터 시스는 다큐멘터리 영화 편집인인 부인 Terry Lajtha와 딸 Madeleine, 아들 Matej와 함께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음은 찰스 다윈의 인생과 진화론을 다룬 논픽션 그림책인 『생명의 나무』로 2004년 볼로냐 라가치 어워드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피터 시스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산그림’(http://www.picturebook-illust.com/)에서 발췌하여 제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영화감독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고, 아직도 영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림책 작업과 다른 점은 무엇이고, 그림책만이 갖고 있는 매력은 무엇입니까?
영화감독과 그림책 작가로서 일 자체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지만, 영화감독은 제작자, 감독, 촬영, 편집, 마케팅 등의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것이므로 요구사항을 조정해야 합니다. 처음에 그림책을 시작했을 때는,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은 생각이 있긴 했지만, 언젠가부터 내 책이 곧 나에게는 필름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 작업을 할 때 나는 감독이자 카메라맨이요, 작가이기도 한 셈이죠. 내 스스로 주인공을 정하기 때문에 캐스팅 담당도 겸하는 셈입니다. 또한 가장 좋은 점은 어떤 특정한 장면을 길게 가고 싶으면 내 마음대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지요. 하지만 음악을 넣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는 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해오셨는데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가요?
여전히 내 책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오래전 애니메이션 필름을 제작한 경험이 있는데, 내가 그림책 작업을 시작한 이후에도 내 책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하는 제작자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들과 나의 가치관과 견해 차이가 너무 커서 번번이 무산되었지요. 기회가 된다면 영화와 책을 혼합한 형태의 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기는 하지만 사실 내 책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상, 내 영화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디어는 보통 어떻게 얻으시나요?
일상과 주변의 모든 사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또한 문화와 가치관이 전혀 다른 나라인 제 조국 체코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는 제 개인사 역시 영감을 주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물론 내 아이들에게서도 영감을 얻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성장해버려 이젠 더는 어린이들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내 영감의 원천이기 때문이지요.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보람되고 행복했던 때는 언제이십니까?
일러스트레이터나 영화감독 혹은 예술가로 일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구나’라고 깨달을 때가 아닌가 합니다. 즉 내 생각과 의도를 종이나 필름에 옮기고자 한 대로 성공적으로 표현했다고 느꼈을 때 희열을 느끼지요. 첫 번째 인쇄본이나 혹은 필름을 보았을 때의 기분 역시 예술가에게는 짜릿한 순간이고요. 내 작품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는 것도 또 다른 느낌의 행복감을 줍니다.
선생님의 그림은 섬세한 펜 터치 덕분에 실감나는 질감이 인상적인데요, 선생님의 그림에 영향을 준 화가는 누구인가요?
작업을 할 때 나는 종종 테크닉적인 측면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곤 하지요. ‘내가 아이였을 때 디테일한 묘사를 좋아했던가? 단지 내 그림의 팬이나 출판사 편집자를 감동시키기 위해 정밀묘사의 테크닉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단지 내 성향인가?’ 등등. 사실 어떤 면으로 생각해봐도 별로 효율적인 방법은 아닌 듯하기는 하지요. 내가 좋아하고 또한 내 작품에 영향을 준 화가로는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과 알브레히트 뒤러(Alberecht Durer),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찰스 다윈의 일생과 진화론
「찰스 다윈은 그림 그리는 법을 왜 배우지 않았는지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림으로 기록할 수 없었기에 자신이 본 것을 모두 상세히 적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일기, 편지, 일지에 적혀 있는 자세하고 생생한 글들이 나에게 영감을 주었고, 나는 그것을 토대로 그의 생애를 다룬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찰스 다윈의 일기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펼쳐 놓은 이 그림책은 찰스 다윈이 비글(Beagle)호를 타고 여행하면서 적은 글들을 가지고 자유롭게 조합하였습니다.」
윗글은 『생명의 나무』에 실려 있는 저자의 말입니다. 저자 스스로가 이 그림책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내면적 동기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피터 시스는 앞서 소개된 그림책 『갈릴레오 갈릴레이』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권위로 굳게 자리 잡고 있는 통념이나 상식에 대해 도전했던 역사상 인물을 또다시 주인공으로 다루었습니다.
피터 시스가 파리에 있던 2000년 여름, 다윈이 브라질 열대 우림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나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런던에 있는 다윈의 집, 다운 하우스를 찾아가는 것이 도움을 될 것이라는 이끌림에 따라 그곳에서 다윈이 앉았던 의자에도 앉아보고, 그가 입었던 옷도 만져보고, 그의 일기장을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후 ‘종의 기원’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 진화론과 다윈을 연구하면서 무려 5년이란 시간을 투자합니다. 지쳐있는 피터 시스를 보고 다윈을 잊어버리라는 가족의 염려 어린 충고에도 그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역사상 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많은 의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작가이자 예술가로서 그 자신이 이 혁신적인 사상가들을 기념하는 일을 해보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책을 펼치면 그의 박학다식함이 그대로 묻어있어서,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에 따르는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그림책에 담긴 내용이 어지간할 거라는 식으로 아이에게 보여주려고 『생명의 나무』를 펼친 부모는 당혹감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섬으로 가서 진화의 과정을 연구한 내용을 꼼꼼하게 공부하고 정리한 후에 만들어진 책으로서, 다윈과 그의 진화론을 슬쩍 안내하는 입문서 격의 그림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인간 다윈의 일대기와 함께 그의 진화론을 지도, 도표, 일지 등으로 놀라울 만큼 세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찰스 다윈 평전을 그림책으로 풀어놓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딱 적합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일반적으로 입말이 갖는 호흡에 따라 읽는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 오히려 백과사전에서 정보를 찾거나 의서를 공부하듯이 시선을 고정하고 생각을 하면서 두고두고 생각해보며 제대로 읽는 것이 어울립니다.
그 소녀의 이름은 마들렌카
마들렌카는 피터 시스의 딸 이름입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아이들이 크거나 어리거나 상관없이 아이들은 그에게 여전히 그림책을 그리게 해주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피터 시스는 뉴욕에서 태어나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서 줄곧 살아온 자신의 딸 마들렌카를 앞세워 뉴욕에서 사는 것, 즉 코스모폴리탄적 일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면, 정말 가는 선으로 그려진 우주 공간 가운데 파란 지구가 점점 눈에 가깝게 들어옵니다. 한 장 더 넘겨보면, 뉴욕 맨해튼이 조감도로 펼쳐지는데 흑백으로 반듯반듯하게 구획된 거대 도시 속의 빌딩이 그 어느 것 하나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점점 더 지상으로 낮게 비행해 내려가 보면, 각기 다른 모습에 각기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빌딩이 역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각도로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마을, 검은 펜 선으로 그려진 빌딩 숲 속에 한 아이만이 유독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피터 시스의 사랑스러운 딸 마들렌카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잘 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던 카메라가 갑자기 지상에서 상공을 향해 렌즈를 들이댄 듯, 투명바닥에 들어선 빌딩을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려다보는 특이한 각도로 잡혀 있지요.
마들렌카는 앞니가 흔들리는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마음이 분주합니다. “이야호! 여러분, 내 이가 흔들려요! 흔~들~려~요”라고 외치는 마들렌카의 들뜬 마음은 사각으로 둘러싸인 빌딩 숲을 흔들고 바닥에 놓여있던 카메라마저 흔들어버린 듯합니다. 그런 시각적 느낌이 너무나도 세련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흔들려요’란 단어가 지닌 공감각적 느낌이 시각을 통해 제 몸으로도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피터 시스는 뉴욕에 살고 있는 이점에 대해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한동네에 산다는 것을 우선 꼽고 있습니다. 앞니가 흔들리는 것에 호들갑을 떠는 마들렌카는 프랑스인 빵가게 주인아저씨 가스통을 찾아갑니다. “봉주르!” 그리고 신문가게 주인아저씨 차오 아저씨에게로 냅다 뛰어갑니다. “사스리아갈!” 다시 뛰어 이번에는 이탈리아인 아저씨가 운영하는 피자가게로 가서 “본 조르노!” 다시 또 뛰어 마들렌카에게 많은 동화를 들려주는 독일인 할머니에게로 가서 “구텐 타그!” 아직 마들렌카가 더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알려야 할 곳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겨우 마들렌카의 뜀박질로 알릴 수 있는 동네 한 바퀴의 범위 속에는 유럽에서 온 친구, 아시아에서 온 친구가 있어 지구촌을 여행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문화적, 인종적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요커로 성장한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든 이 그림책을 보다 보니, 저도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 한 편을 꼭 써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