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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라유리 여자대학에서 아동문학 공부를 하고 있는 박종진 선생이 번역해 준 원고입니다.
토론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이 작품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창비에서 나온 일본근대동화선집 가운데 <<도토리와 산고양이>>에도 실렸습니다.)
빨간 양초와 인어 「赤いろうそくと人形」(개정판)
작가: 오가와 미메이 小川未明
출전:「정본 오가와미메이 동화집1 定本小川未明童話全集1」고단샤 講談社、1976
【* 초출: 도쿄 아사히 신문(東京朝日新聞)연재, 1921(大正10)2.16~20 】
번역: 박종진 (2007.1. 13)
1.
인어는 남쪽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북쪽 바다에도 살고 있었습니다.
북쪽 바다는 푸르렀습니다. 어느 날 바위 위에 여자 인어가 올라와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쉬고 있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온 달빛이 쓸쓸히 파도 위를 비추고 있습니다. 그 어디를 보아도 끝이 없고, 무시무시한 파도가 넘실넘실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쓸쓸한 풍경일까, 인어는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인간과 모습은 별로 다를 게 없지. 물고기나 바다 속 깊은 곳에 사는 거칠기 짝이 없는 온갖 짐승들과 견주어 보면 몸도 마음도 얼마나 인간과 비슷한가. 그런데도 우리는 물고기나 짐승들과 함께 차갑고 어둡고 우울한 바다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 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 말할 상대도 없이 날마다 밝은 바다 위를 그리며 지내어 온 것을 생각하면 인어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달이 밝은 밤이면 바다 위로 떠올라 바위 위에 쉬면서 갖가지 공상에 잠기곤 했습니다.
‘인간이 사는 마을은 아름답다고 하던데. 인간은 물고기보다 그 어떤 짐승보다도 인정이 많고 따뜻하다고 들었다. 우리는 물고기나 짐승들 틈에 살고 있지만 인간에 더 가까우니까 인간 속에 들어가 못 살 것도 없을 거야.’하고 인어는 생각했습니다.
인어는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배고 있습니다. ……우리는 벌써 오랜 세월, 이 쓸쓸하고 말을 주고 받는 이도 없는 북쪽의 푸른 바다 속에서 살아왔으니, 어차피 밝고 활기찬 나라는 바라지도 않지만 이제 태어날 아이에게는 적어도 이런 슬픔과 불안함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와 떨어져 혼자 쓸쓸히 바다 속에서 사는 건 더없이 슬프겠지만, 아이가 어디에 있든 행복하게만 산다면 나는 더 기쁠 수 없을거야.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다고 들었다. 그리고 불쌍한 자, 외로운 자를 결코 괴롭히거나 따돌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절대 그것을 버리지 않는다고도 들었다. 다행히 우리는 얼굴이 인간과 비슷할 뿐 아니라 허리 위는 인간과 똑같으니까——물고기나 짐승 세계에서도 살 수 있는 걸 보면——인간 세계에서 살 수 없을 리가 없다. 일단 인간이 데려다가 길러주면 절대로 무자비하게 버리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
인어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다못해 자기 아이만이라도 활기차고 밝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여자 인어는 아이를 육지에서 낳아 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두 번 다시 아이 얼굴을 볼 수 없겠지만 아이는 인간들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멀리 바닷가의 나지막한 산에 있는 진자(神社)의 불빛이 깜빡깜빡 파도 사이로 보였습니다. 어느 날 밤 여자 인어는 아이를 낳기 위해 차갑고 어두운 파도 사이를 헤엄쳐서 육지를 향해서 다가갔습니다.
2.
바닷가에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에는 온갖 가게가 있지만, 진자가 있는 산 아래에는 초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습니다.
그 집에는 나이 많은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초를 만들고 할머니는 그것을 가게에서 팔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나 근처의 어부들이 진자에 참배를 하러 갈 때는 이 가게에 들러 양초를 사서 산에 올랐습니다.
산 위에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진자가 있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소나무 가지에 부딪혀 밤에 낮에도 윙윙 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진자에 밝힌 양초 불빛이 깜빡깜빡 흔들리는 것이 먼 바다 위에서 보였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신령님 덕분이지요. 이 산에 진자가 없었다면 양초도 팔리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감사 드리는 걸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생각난 김에 산에 올라가 감사드리고 오리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래, 할멈 말이 옳아요. 나도 날마다 속으로는 신령님께 감사 드리지 않는 날이 없지만,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산에 인사도 자주 가질 못했어. 좋은 생각을 했네. 내 몫까지 감사 드리고 오구려.” 하고 할아버지는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터덜터덜 집을 나섰습니다. 달빛이 밝은 밤이라 바깥은 대낮처럼 훤했습니다. 진자에 참배를 하고 할머니가 산을 내려오는데, 돌계단 아래에서 갓난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가여운지고, 누가 이런데다 아기를 버렸을까. 그건 그렇고 신기하게도 참배하고 오는 내 눈에 띄었다는 건 무슨 인연이겠지. 이대로 버려 두고 갔다가는 신령님의 천벌을 받을거야. 틀림없이 신령님이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없는 것을 알고 내려 주신 것이니 집에 가서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고 길러야겠다.’ 할머니는 생각하고 갓난아이를 안아 올리며,
“아이고, 이런 딱하기도 하지.”하며 안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아이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아이니까 소중하게 기르지 않으면 벌을 받겠지.” 할아버지도 말했습니다.
둘은 그 아기를 기르기로 했습니다. 아기는 여자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허리 아래로는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말로만 듣던 인어가 틀림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인간의 아이가 아닌데……”하며 할아버지는 아기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인간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정말 착하고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 아닌가요?”하고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그래, 아무려면 어떤가. 신령님이 점지해주신 아이니 소중하게 기릅시다. 아이가 크면 틀림없이 영리하고 착한 아이가 될거야.”하고 할아버지도 말했습니다.
그 날부터 둘은 여자아이를 소중히 길렀습니다. 아이는 커 가면서 크고 검은 눈에 아름다운 머리결, 피부는 옅은 분홍빛을 띤 얌전하고 영리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3.
아이는 훌쩍 컸지만 남들과 모습이 다른 것이 부끄러워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아가씨를 한 번 본 사람은 모두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운 얼굴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아가씨를 보려고 양초를 사러 온 이도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 딸은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아서 사람들 앞에는 나서질 않는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안방에서 할아버지는 부지런히 양초를 만들었습니다. 아가씨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면 다들 좋아하며 양초를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할아버지에게 말했더니, 그렇다면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시험 삼아 그려보는 게 어떠냐고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아가씨는 빨간 물감으로 하얀 양초에 물고기라든가 조개, 해초 같은 것들을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니면서 능숙하게 그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누구나 그 그림을 보면 양초를 갖고 싶어질 만큼 그림에는 신비한 힘과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잘 그릴 수밖에, 인간이 아니라 인어가 그렸으니.” 하고 할아버지는 감탄하며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양초 주세요.” 하며 아침부터 밤까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가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양초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린 양초를 산 위 진자에 밝히고 타다 남은 초를 몸에 지니고 바다에 나가면 아무리 심한 폭풍우 속에서도 절대로 배가 뒤집히거나 바다에 빠져 죽는 재난이 없다는 소문이 언제부터라고 할 것도 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바다의 신을 모신 진자잖아, 아름다운 양초를 바치는데 신령님도 좋아하실 수밖에 없지. ”마을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양초 가게에서는 양초가 잘 팔리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양초를 만들면 그 옆에서 딸아이가 팔이 아픈 것도 참고 빨간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사람 축에도 못 끼는 나를 곱게 길러주시고 이뻐해 주시는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지’하고 아가씨는 노부부의 착한 마음을 느끼고 크고 검은 눈을 적시는 일도 있습니다.
이 소문은 멀리 있는 마을까지 퍼졌습니다. 먼 곳의 선원이나 어부들은 신령님께 바쳤던, 그림이 그려진 양초 조각을 손에 넣기 위해서 일부러 먼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양초를 사서 산에 올라 진자에 절을 하고 양초에 불을 붙여 바치고는 초가 타서 짧아지는 것을 기다렸다 그 동강을 지니고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밤이고 낮이고 산 위의 진자에 촛불이 꺼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특히 밤에는 그 불빛이 바다 위에서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정말 고마우신 신령님이야.” 평판이 세상에 퍼졌습니다. 덕분에 이 산은 갑자기 유명해졌습니다.
신령님의 명성은 이처럼 높아졌지만, 양초에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아가씨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 아가씨를 가엽다고 생각한 이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가씨는 지쳐서 때때로 달이 밝은 밤이면 창으로 얼굴을 내밀고 머나먼 북쪽 푸르고 푸른 바다가 그리워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일도 있었습니다
4.
어느 날 남쪽 나라에서 야바위꾼이 들어왔습니다. 북쪽나라에서 뭔가 신기한 물건을 찾아내서 그것을 남쪽으로 가지고 가서 돈을 벌어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야바위꾼은 어디서 들었는지 아니면 어느새 아가씨의 모습을 보고 진짜 인간이 아닌참으로 보기 힘든 인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어느 날 몰래 노인 부부를 찾아와서 아가씨 모르게 큰 돈을 줄 테니 그 인어를 자기에게 팔라고 했습니다. 노부부는 처음에는 이 딸아이는 신령님이 내려주셨기 때문에 어찌 팔 수 있으리, 그런 짓을 했다가는 천벌을 받는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야바위꾼은 한두 번 거절당해도 지치지도 않고 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노부부에게,
“예로부터 인어는 불길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빨리 떼어놓지 않으면 분명 나쁜 일이 생긴다.”고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노부부는 마침내 야바위꾼의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큰돈이 들어온다니 자기도 모르게 돈에 마음을 빼앗겨 아가씨를 야바위꾼에게 팔기로 약속을 해버렸던 것입니다.
야바위꾼은 무척 기뻐하며 돌아갔습니다. 조만간 아가씨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아가씨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요. 얌전하고 착한 아가씨는 이 집을 떠나 수 백리 떨어진 낯설고 뜨거운 남쪽나라로 가는 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울며 노부부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제가 얼마든지 일을 할 터이니 제발 낯선 남쪽나라로 팔려 가지 않도록 해주세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귀신처럼 무섭게 변해버린 노부부는 무슨 말을 해도 아가씨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아가씨는 방안에 틀어박혀 열심히 양초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노부부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측은하다거나 가엾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밝은 달이 뜬 밤의 일이었습니다. 아가씨는 혼자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기 처지를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파도 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쩐지 먼 곳에서 자기를 부르는 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저 푸르고 푸른 바다 위에 달빛만 하염없이 비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가씨는 다시 앉아서 초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깥이 시끌시끌했습니다. 전에 왔던 야바위꾼이 그 날 마침내 아가씨를 데리러 온 것입니다. 쇠창살이 있는 커다란 네모 상자를 마차에 싣고 왔습니다. 그 상자 속에는 예전에 호랑이니 사자니 표범 따위를 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착한 인어도 역시 바다 속의 짐승이므로 호랑이나 사자와 마찬가지로 다루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상자를 아가씨가 본다면 얼마나 깜짝 놀랄까요?
아가씨는 아무 것도 모르고 고개를 숙인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들어와서 “자, 이제 가거라.”하면서 끌어내려 했습니다.
아가씨는 급하게 채근 받는 통에 들고 있던 초에 미처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그것을 모조리 새빨갛게 칠해버렸습니다. 아가씨는 빨간 양초를 자신의 슬픈 추억을 기념하듯이 두, 세 자루 남겨놓고 가버린 것입니다.
5.
그야말로 조용한 밤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문을 닫고 잠들었습니다.
한밤중이었습니다. 누군가 똑똑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노인인지라 귀가 밝아서 이내 그 소리를 알아듣고 누구일까 생각했습니다.
“누구세요?”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없고 문만 계속해서 똑똑하고 두드렸습니다.
할머니가 일어나서 문을 빼꼼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얼굴이 하얀 여자가 문에 서있었습니다.
여자는 초를 사러 온 것입니다. 할머니는 조금이라도 돈을 버는 일이라면 절대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양초 상자를 꺼내서 여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자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물에 흠뻑 젖어 달빛에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상자 속에서 새빨간 양초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가 돈을 치르고 빨간 양초를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할머니가 불빛에서 돈을 잘 살펴보자, 그것은 돈이 아니라 조개껍질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왔지만 이미 그 여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이상해지더니 근래 보기 드문 큰 폭풍우가 불었습니다. 그때는 마침 야바위꾼이 아가씨를 우리 속에 가두어 배에 싣고 남쪽나라로 가고 있던 중으로, 배가 바다 한가운데 있을 때였습니다.
“이런 날씨에서 그 배는 도저히 살아 남지 못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덜덜 떨면서 속삭였습니다.
날이 밝자 바다는 시커멓고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날 밤 난파당한 배는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뒤로 빨간 양초가 산 위 진자에 켜지는 밤에는 그때까지 아무리 날씨가 좋았어도 단박에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그때부터 붉은 양초는 불길한 것이 되었습니다. 양초가게 노부부는 신령님의 벌이 내렸다고 하면서 그 뒤 가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누가 진자에 바치는 것인지 이따금 빨간 양초가 불을 밝혔습니다. 예전에는 이 진자에 바쳐진 그림이 그려진 양초의 타고 남은 조각만 지니고 있어도 절대 바다 위에서 재난을 당하지 않았던 것이, 이번에는 빨간 양초를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은 어김없이 재난을 당해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었습니다.
단번에 그 소문이 세상에 퍼지자 이제는 아무도 이 산 위의 진자에 참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때는 영험있던 신령님이 이제는 마을에서 가장 꺼림직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진자는 마을에 없는 것이 좋았을텐데 하고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선원들은 바다에서 진자가 있는 산을 보며 두려워했습니다. 밤이 되면 바다는 어딘지 모르게 무시무시했습니다. 그 어느 쪽을 보아도 높디 높은 파도가 끝없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위에 부딪혀서는 하얀 물거품이 치솟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달빛이 새어 나와 파도 위를 비칠 때면 정말이지 으스스했습니다.
칠흑같이 어둡고 별조차 보이지 않는, 비 오는 밤에 파도 위에서 빨간 양초 불빛이 떠올라 점점 높이 떠올라 어느 틈에 산 위 진자를 향해서 깜빡깜빡 움직이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산 아래 마을은 망해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끝>
첫댓글 여러분들이 읽은 감상도 여기 답글로라도 얘기나눠 보지요.
다시 읽어보니 상당히 일본의 작품다운 분위기를 풍기네요. 전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내용 자체는 상당히 비극적이지만 이야기 자체는 비극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사필귀정을 따르는 옛이야기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듯 하네요. 일종의 괴담같은 성격도 가지고 있구요. 어머니의 한이 서린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가를 다룬 글이기도 하구요.인어아가씨가 좀더 주체적인 인물로 서지 못한 것이 저에게는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주인공인데 주인공의 역할을 못해내는 듯 해서요. 어쩌면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한 거 같긴 한데...... 운명에 휩쓸려 가는 아이의 모습만 그려지고
있어서 이 글을 읽었을 때 그 어떤 내면적 폭풍우의 경험이 없는 거 같습니다. 슬픈 이야기인데 슬프지가 않다고나 할까요. 이야기를 읽고 나면 으스스한 분위기와 함께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생겨나는 듯 합니다. 그냥 감상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지적인 것 같아요. 내면의 폭풍우와 같은 경험은 무의식에서 현실이 무언가 환상적으로 변혁되는 지점이 있을 때가 아닌가 싶거든요. 그게 뭘까요. 그걸 탐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현실을 환상적으로 극복하고 변혁하고 하려면 치열한 현실 문제에 대한 탐구가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무의식은 또 현실에 반응하고 하는 그런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하여튼 잘은 모르겠는데 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어아가씨한테는 분명히 트라우마가 생겼을 테고 그것이 어떤 것으로든 드러났을 터이고 어머니는 그걸 보면서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빨간 양초를 켜서 복수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만화에서는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이 모든 일의 원인의 제공은 어머니가 한 거지요. 막연한 동경에서 아이를 인간세상으로 보내버렸으니 말입니다. 인간이 너무나 빨리 변해버린 걸까요? 그래서 이야기의 결말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제가 그래놓고...... 하는 마음이 드는 거지요. 복수가 공허해보이는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복수는 노부부
야뱌위꾼에게 한정되지 않고 마을 사람 전체를 향해 이루어지지요. 그건 무슨 의미일까요? 마을 전체를 공동체로, 하나로 보고 있는 걸까요? 어쩌면 인어아가씨에게 향해지는 무자비한 행위를 침묵으로 동조한 마을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런 복수가 이해되기는 합니다. 이제 시대는 각 개인에게 행동의 책임을 묻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