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무용이 만난다? 생각만 해도 뭔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다. 지난해 1월 LA에서 초연한 이래 절대적인 환호를 받고 있는 파슨스 댄스 컴퍼니와 안 트리오의 합동공연. 획기적인 프로젝트로 전 세계를 투어하고 있는 이들이 한국을 찾는다. 안 트리오만의 청소년음악회도 함께 열릴 예정이라는데….
언제부터인가 클래식 연주회장 무대에서는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의 의상을 입는 것이 평범한(?)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연주자들은 연주회장 분위기나 연주회 성격·악기 특성·편성 등을 고려해 의상을 선택했으며, 이런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도 차츰 수그러질 모양이다.
신선한 음악과 넘치는 에너지로 특히 청소년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안 트리오(Ahn Trio)의 ‘튀는 의상’은 클래식 무대에 작은 변화를 안겨주고 있다. 안젤라(바이올린)·마리아(첼로)·루시아(피아노)로 구성된 이들은 실제 지난 2000년 내한공연에서도 전형적인 젊은이의 복장으로 무대에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의상’에 대한 이들의 견해가 더욱 개성적이다.
“사람들이 저희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합니다. 정작 저희들은 저희 의상이 독특하지 않고 매우 평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서로에게 옷을 어떻게 입으라는 잔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되도록이면 워크샵이나 콘서트 등에서 더욱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죠.”
만일 이들이 콘서트에서 입을 멋진 드레스를 고르고 관리하는데 시간을 투자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종종 주위 사람들에게 그런 충고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하지만 이들은 값비싼 드레스보다는 가지고 다니기 편안한, 즉 다림질이 필요 없는 옷을 선호한다.
“저희는 특별히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예술가로서 청중들에게 예의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지저분한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개성은 무대에서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해 피플지의 ‘Most Beautiful’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최근 GAP 의류 모델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언론매체에 화제의 인물로 등장하곤 했다.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저희가 하는 일에 더욱 자부심이 생겼죠. 저희의 끊임없는 시도와 생각이 대중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자신감도 생겼고요. 클래식 음악의 배타적인 면을 없애고 싶어요. 모든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기꺼이 콘서트를 보러 오기를 원하죠. 높은 장벽을 깨고 대중들과 좀더 가까워지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과 무용의 만남, 재미와 감동
지난 1월부터 뉴욕·시카고·시애틀·인디애나 등의 공연을 마친 이들은 곧 이어지는 캘리포니아·버지니아·미시간·샌프란시스코에서의 콘서트를 마치고 바로 한국을 찾는다. 오는 3월 24일 통영국제음악제 연주를 시작으로 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파슨스 댄스 컴퍼니와의 합동공연, 30일 울산 현대예술관 공연, 마지막으로 31일 호암아트홀에서 청소년음악회를 개최한다.
무용과 음악의 결합으로 기획 때부터 화제를 모은 파슨스 댄스 컴퍼니와의 합동공연은 2003년 1월 LA에서 초연한 이래 북미 전 지역을 순회하며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절대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패셔너블한 외모와 정열적인 무대매너로 가는 곳마다 화제를 일으키는 안 트리오와 세계적인 현대무용 안무가인 데이빗 파슨스가 만든 무용단체 파슨스 댄스 컴퍼니의 만남은 단순히 음악과 무용의 화합을 뛰어넘어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데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저희는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공연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루이지애나의 공연을 마치고 그쪽 기획사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하게 됐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이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과 서로에 대한 경외,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됐죠.”
파슨스 댄스 컴퍼니는 1987년 데이빗 파슨스에 의해 창단된 단체다. 10명의 전문 무용수로 구성된 이들은 60개가 넘는 다양한 레퍼토리와 1000회가 넘는 공연으로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을 위해 마스터클래스·워크샵 등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데이빗 파슨스는 정말 훌륭한 안무가이자 댄서예요. 기발한 아이디어와 끊임없는 노력이 돋보이는 사람이죠. 파슨스 댄스 컴퍼니 단원들 역시 대부분이 젊고 에너지와 열정이 넘칩니다. 늘 신선하고 모던함을 유지하는 이들을 보면 존경심이 생기기도 해요.”
이번 내한공연에서 직접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안 트리오만 연주할 때와 이들 단체와 함께 연주할 때의 차이점이 분명 있을 것 같아 질문했다.
“물론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두 가지 경우 모두 좋습니다. 저희만 연주할 때는 세 명의 호흡에 몰두할 수가 있습니다. 반면 파슨스 댄스 컴퍼니와 함께 할 때는 아무래도 프레이즈나 템포 등에 신경을 써야 해서 자유롭지 않을 때도 있지만, 평소 저희가 청중들과의 교감을 통해 얻었던 에너지를 댄서들에게까지 얻는 효과란….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들의 에너지와 저희들의 라이브 음악이 뿜어내는 생동감이 결합하면 또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갖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희들끼리 연주할 때는 에너지를 덜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다만 느낌이 다르다는 거죠.”
이들이 호암아트홀에서 갖는 청소년음악회 레퍼토리를 보면 마이클 니만의 ‘황금 해변’, 켄지 번치의 ‘스윙조:밤을 위한 음악’, 데이빗 바라크리쉬난의 ‘스카이 라이프’ ‘전율’, 앵거&데이빗 바라크리쉬난의 ‘당신도 알아차렸군요’, 카르티라 뤼드의 ‘트위티씨의 의자’, 피아졸라-켄지 번치 편곡의 ‘망각’ ‘프리마베라 포르테나’ 등으로 굉장히 초현대적이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늘 새로운 것을 찾으며 색다른 문화를 경험하길 원하는 이들의 모습이 한편으론 부럽고 다른 한편으론 자랑스럽기만 하다.
“저희에게 작품을 주는 작곡가들은 유명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작곡가와 그 작품을 대할 때 명성으로 구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작품이든지 음악이 저희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켄지 번치의 음악은 ‘음악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고스란히 표현해주는 곡입니다. 또한 터틀 아일랜드 스트링 콰르텟의 멤버가 작곡한 작품도 연주할 예정입니다. ‘Rise and Fall’이란 모음곡인데요, 스타일과 장르를 초월한 음악이라 저희한테 잘 어울리는 곡이죠.”
항상 새롭고 도전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현대음악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이들이 과연 현대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견해는 어떠한지 궁금했다.
“현대 연주가들이 현대음악을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 시대 작곡가들을 덜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지금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고 흔히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을 청중들과 함께 교감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시대의 연주자들이 당시 모차르트 작품을 연주했을 때도 지금 이들과 같은 새 음악가의 새로운 작품을 연주한다는 생각에 기쁨을 느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지금 시대의 음악을 연주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연주자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글 · 최혜정 기자 | 사진 & 자료 · 크레디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