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삶 믿음소망사랑] 한국인 첫 AFI 회원 김양순(도미나)씨

[토마스모어]

[삶 믿음소망사랑] 한국인 첫 AFI 회원 김양순(도미나)씨

609호 발행일 : 2001-01-01

가톨릭여성연합회 창립 주역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 믿으면서
후회없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아

어느날 여대생 두 명이 노기남 주교를 찾아왔다.
“저희는 결혼하지 않고 지성인으로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그렇다고 수녀원에 가고 싶지는 않고요. 여기 오지 못한 친구를 비롯한 저희 3명을 위한 지도신부가 있었으면 합니다.”

당돌한(?) 여대생들의 주문에 노 주교는 빙그레 웃으며 리플릿을 건넸다. 그것은 국제가톨릭형제회(AFI)에 관한 내용이었다.

5년여가 지난 1955년 어느날 이들은 다시 노 주교를 만났다. “AFI에 대해 생각해 봤느냐”는 노 주교의 질문에 한국전쟁을 거치며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AFI 센터에 가서 교육받고 싶으면 비행기 값을 부담하겠다는 노 주교의 제의에 한명이 응답했다. 그가 한국인 첫 AFI 회원인 김양순(73·도미나)씨다.

■ JOC 초창기 활동 적극 참여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김씨가 최근 잠시 모국에 왔다 갔다.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은인 두 사람이 있어요. 한 분은 여성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노 주교님이고, 또 한 분은 제 생명을 구해 준 스티브씨예요.”

그는 노 주교로부터 당시 집 한 채 가격인 비행기 표를 받아 AFI 센터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떠나 5년간의 수련과정만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미 한국에 외국인 AFI 회원이 나와 여학생 기숙사를 맡고 있었지만 한국인 AFI 회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씨는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60년대 10여년간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초창기 활동에 참여하고 가톨릭여성연합회 창립을 주도하는 등 활발한 평신도사도직 활동을 펼쳤다.

그는 JOC 초대 지도신부인 박성종 신부(1983년 작고)를 도와 막 시작한 JOC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박 신부와 같이 영등포지역 방직공장 등을 다니며 노동자를 직접 만나고 JOC 팀 회합도 이끈 결과 JOC 회원들이 화장실 청소 등 궂은 일에 솔선함으로써 JOC를 싫어하던 사장이 호의적인 태도로 바뀌기도 했다.

명동 가톨릭여학생관(지금의 전진상 교육관) 책임을 맡게 된 그녀에게 노 주교는 그곳을 여성들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녀는 여성 모임을 준비하기 시작했으며, 유럽의 여성 조직 등을 살펴보기 위해 직접 현장도 방문했다.

특히 여성들이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사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오스트리아 부인회의 활발한 활동이 부러웠다. 오스트리아 부인회는 한국에 가톨릭 여성연합회 조직을 뒷받침하겠다며 좋아했으며, 그녀가 67년 로마 세계 평신도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비행기 값도 대주었다.

드디어 한국에도 가톨릭 여성연합회가 만들어졌다. 예상보다 많은 100명 이상이 참석해 여성들이 무언가에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30~40명쯤 올 줄 알았는데 100명 이상 몰리니 갑자기 겁이 나고 자신이 없어져 숨고만 싶었어요. 같은 AFI 회원이 ‘네가 잘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너를 도구로 쓰려는 것이니 겁먹지 말라’고 하는 말에 정신이 들더군요.”

그는 신앙교육과 성서공부, 꽃꽂이·요리 같은 취미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특히 여성들이 성당 일을 열심히 하느라 가정에 소홀한 점을 지적하고 하느님은 벌주는 무서운 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내용의 강의를 직접 본당에 다니며 하면서 여성 지도자 강습에 여성신자들을 보내달라고 각 본당에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 교육에 무관심했던 본당 신부들은 “뭐, 여자가 난척하느냐”며 냉랭한 반응이었다.

그가 그리스도 공동체 묵상회(MBW) 초창기 지도 팀으로도 활동하고, 사회 여성단체협회에 가톨릭 여성단체 대표로도 참석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도 함께 하던 60년대말, AFI 본부는 회원 각자가 전문 직업을 갖도록 요청했다.

마침 MBW 지도 팀 일원이던 성심여대 주매분 학장 수녀의 도움으로 그녀는 성심여대에서 교양과목 강의를 맡을 수 있었다. 주 수녀는 1970년 마드리드 세계 가톨릭 여성연합회 회의에 아시아 지역 책임자로 참석하게 된 그에게 외국에 나가면 아예 공부를 더해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오라고 주문했다. 그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회의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던 그는 그러나 그 동안 너무 몸을 혹사한 터라 탈이 나버렸다. 하혈이 그치지 않아 공부를 포기하고 귀국하려 해도 몸이 너무 약해진 상태였다. 낯선 곳에서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다. 우연히 아는 사람을 통해 만난 스티브씨가 친구 의사를 소개해 주었다. 그 의사는 이 상태가 되도록 병원을 찾지 않았느냐며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어찌할 바 몰라 절망하고 있는 그에게 스티브씨는 보호자를 자청했다. 하혈하는 여인과 부부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위해 희생하는 스티브와 결혼 서류를 만들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뜻하지 않는 결혼과 수술,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안에 들어 있었다고 그는 믿고 있다.

■ 미국에서 이민가정 상담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그는 다시 활달한 성격으로 돌아갔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한국인 성당에서 1986년 한국인 수녀가 파견될 때까지 10년을 넘게 예비신자 교리와 견진교리를 담당하고 외국인 신부의 강론도 한국어로 번역해 신자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런 그의 활동을 지원하며 정이 많은 한국인을 좋아했던 남편 스티브씨는 1984년 “나는 도미나를 만나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4년 뒤 그는 난소암 수술을 또 받았다.

그 뒤 로욜라 대학 사목연구소에서 미국 본당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며 크리스찬 가정상담에 대해 공부한 그는 현재 이민가정들을 상담하고 있다.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화초에 물을 주고 햇빛을 보면 싱싱하듯 하느님의 창조물인 우리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싱싱하게 살아야 해요.”

하느님이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면서 후회없이 매순간을 열심히,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 그이기에 칠순이 넘은 지금도 푸근한 아주머니처럼 다가온다. 【이연숙 기자】


▨아피(Association Fraternelle Int- ernationale, AFI)란=창설자인 뱅상레브 신부와 이본 뽕슬레의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봉헌된’ 평신도 사도직 공동체. 전(全, 온전한 자아봉헌) 진(眞, 참다운 사랑) 상(常, 끊임없는 기쁨)의 정신으로 ‘반죽 속에 든 누룩’처럼 대중 속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