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8월 1일,살인적인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날 시어머님 부음을 받았습니다.
79세 어머님은 자그마한 체구에도 비교적 건강하셨는데,두어달 편찮으시다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화학섬유로 된 상주옷은 피부의 호흡작용까지 막아서,장례를 다 치르고 난 뒤 온몸은 땀띠로 한군데
성한 곳이 없었고, 며칠간 샤워도 하지 못해 인내심의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어머님댁은 전형적인 시골집이라 옷벗고 씻을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기제사도 하루전 날인 7월 31일입니다.
일년 중 가장 더운 때라 제수 장만하기도 보관하기도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하루 종일,불 앞에서 전을 부치고, 나물을 볶고,탕을 끓이는 과정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제수준비할 때마다, 저는 덥지도 춥지도 않을 때 하늘의 부르심을 받게 해달라고 기원합니다.
시장 보는 것부터 제수준비,젯상에 진설하기까지 모든일이 저 혼자만의 책임이었다가,이제 새아가와
함께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해나가니,한결 수훨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한다는 感을 완전히 잡은 새아가가 척척 알아서 해주니 시간도 단축되고 좋습니다.
저 혼자 할때보다 대폭 더 간소화하긴 했지만,그래도 제사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유교식으로 모시는 제사의 격식이나 형식이 현대와 맞지 않은 점이 많고,돌아가신 부모님을
추도한다는 의미가 중요하지,오셔서 잡수시지도 못하는 음식을 차린다는 형식도 마땅치 않습니다.
하루종일 물에 담근 손가락의 상처가 덧나 욱신거리고,좌골신경통은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통증을
주고 있습니다.그래도 불 앞에서 전을 부치는 새아가 앞에서 이런 내색을 할 수가 없습니다.
큰 아들은 공학박사답게 집안의 불편한 제품들을 모두 손봐주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소음이 너무 크다며 분해해서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털어내고,너무 오래 써서 잘 돌아가지 않는
선풍기도 분해해서 씽씽 잘 돌아가게 해놓으면서,
"이 선풍기는 수명이 다해서 응급조치만 했어요.어제 선풍기 주문했으니 택배오면 받으세요"
아들 며느리가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요.
엊그제, 전화로 수퍼에서 바로 굽기만 하면 되는 녹두전재료가 있다며 사가지고 가겠다던 새아가 덕분에
일이 한결 줄어들었고,상냥하게도
'더운데 어머님 미리 일 하시지 마세요. 제가 가서 다 할게요'
'선풍기 사드리려고 어제 코스트코에 갔는데,올해 판매는 끝났대요,더운데 선풍기없이 어떻게 지내세요?'
'이 거요 어머님'하며 금 일봉이 든 봉투를 내미는 새아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둘이서 빨리 끝내고는 모처럼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놓고 여유롭게 텔레비젼을 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결혼 초,처음엔 다소 서먹하던 새아가가 이젠 완전히 우리 가족이 되었구나란 생각이 들게 합니다.
만약 손주가 태어난다면 더더욱 가깝고 살가워지겠지요.지금도 충분히 그렇지만요.
조금 일찍 제사를 모시고 둘러앉아 음복하는 자리에서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가 세상 떠나고나면 제사는 지내지 마라.너희 형제 가족끼리 모여 저녁식사 함께하면서 부모님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옆에 있던 남편도 별 말이 없는 것으로 봐서 수긍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맞게 행사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중요한 취지만 훼손되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
첫댓글 맏며느리도 아닌 옥덕님이 어김없이 무더운 중복때가 되면
찾아오는 제사날이 원망스럽겠지만 마땅히 해야되는 일이라
제사 모시는 것이 다소 힘들어도 옥덕님 못지않은 교수며느리가
본대로 들은대로 할것이니 정말 산 교육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당사자인 어머님이 불교신자 이시고
미국에서 바쁘다고 소홀했던 추모일을 인제는 제사는 아니라도
가족들 모두모여 좋아하는 제사밥과 건사한 음식으로 추모예배를
드리고 부모님의 얘기를 나누면서 기억하겠읍니다
새아가가 이젠 강의 나가지 않습니다.
눈썰미있게 배우며 알아서 하니 대견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잘 먹지도 않는 제사 음식은 만들기에 손이 많이가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버리지도 못하고 냉동실에 넣어두고 혼자서 먹으니 체중만 늘어나더군요.
새아가와 함께 할 때부터 가짓수와 양을 대폭 줄였습니다.
가족이 모여서 부모님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유교신자도 아닌데 유교식 제사는 현대인에게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옥덕님 글 보니 실감이 남니다.
나도 처음에는 이것저것해서 다 먹지도 못하고 옛날처럼 싸가려는 사람도
없어서 두고두고 먹으려니 고역이였어요.몇년전부터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만큼만 한담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만큼만' 정답입니다.
유교식 제사음식 구색에 맞출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유교신자가 아니니까요.
우리집도 종가라 제사가 많은데 더울땐 더더욱 힘들지요.그래도 제사 핑계로 바쁜 일상에서도 모일 수있다고 하는 며느리들의 말에 고마움을 느낍니다.형식에 치우치는 상차림 문제가 많아도 아직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내가 간뒤에 제사 그만두라고 해도 말 듣지 않을 것 같구요.
며느님들의 심성이 무척 착하네요.
복 받을 사람들입니다.
선배님의 말씀 너무 공감이 많이 갑니다^^* 옛 유교적인 방식으로 요즘 세대에는로 먹지 않는 '탕'같은 음식을 올려 제사상 구색을 맞추는 것도 그렇고 해서, 저는 요즘 가능한 현대식으로 꼭 필요한 제사음식만 준비하고 양도 줄여서 우리 식구들이 여유있게 먹을만큼만 장만합니다^^*
현대식으로 고쳐야 합니다.
먹지도 않은 음식을 차리는 건 낭비요 헛수고라 생각합니다.
잘 생각했습니다.
옥덕아우님 사랑스런 새아기 . 자잘한 살림에 손쓰주는 공박 아드님 .모두가 화기애애한 글입니다. 알맞는 음식 장만하여 간편한 재사상 개발해 보세요.,밥,고기탕국. 나물 조금씩,생선 한마리 ,육전 생선전만 조금씩 야채는 호박전이면 돼요.녹두전 ,닭찜 북어찜만 빼도 평소 밥상 같지 아닐까요.형제들 둘러앉아 저녁 식사 한끼 한다는 마음으로 기억해 주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딸밖에 없다해서 시동생에게 재산 다 물려주고 재사도 물려주었습니다만 하던일이라 섭섭했답니다.
어머머 요즘도 제사때문에 시동생에게 재산 물려주는 일이 있습니까 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살아 생전에 잘할 일이지 죽은 후에 제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자녀들이 그 날을 잊지 않고 부모님을 추모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처럼 바쁘게 생활하는 젊은사람들에게 제사는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귀찮아 하면서 지내는 제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사를 안 지내도 명절이 되면 제사음식 비슷하게 음식을 하게 되지요. 그러니 결국은 조상 핑개되고 산 사람이 먹는것이니 앞으로는 음식류가 많이 바뀔것입니다. 조상님을 기리고 온가족이 모여 맛있게 먹으면 조상도 흐뭇할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