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선지식으로 국민들의 존경과 수좌들의 신망을 받는 고우스님은 사람들이 존재의 원리를 깨달아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서 즐거움을 누릴 수있도록 스님들이 힘써 가르쳐야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고우스님이 50여명의 신도들과 함께 중국 선종의 원류를 찾아 나선 이야기가 계해년 봄의 첫 머리를 열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은 지난 5일부터 6박7일간 ‘선(禪)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순례단을 구성, 중국 내 선종 사찰 13곳을 참배했었다. 선종 초조 달마가 면벽수도한 허난성 쑹산 소림사부터 승찬이 도신을 만난 삼조사를 거쳐 육조 혜능이 〈육조단경〉을 강의하며 선풍을 드날렸던 광둥성 조계의 남화선사에 이르기까지 6000리에 이르는 긴 여정은 70대 노선사(老禪師) 고우스님이 이끌었다. 긴 여로에서 던진 스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는 언론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돼 무한경쟁에 내몰린 속세의 사람들까지 ‘선의 세계’로 안내했다. 여운이 가실 무렵 지난 23일 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나섰다.
태백산과 소백산 양백산 사이에 자리한 경북 봉화 문수산이 스님이 새로 터를 잡은 수행처다. 고관대작과 노승성불(老僧成佛)이 난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산 한편에는 축서사 무여스님이, 그 반대편에 고우스님이 자리잡았으니 전설이 현실이 된 셈이다.
봉화읍에서 각화사로 가는 중간 무렵 문수산 방향으로 한참을 들어가면 ‘금봉사과’ 로 유명한 금봉리가 나타난다. 마을 뒤편이 문수산 금봉사다. 각화사 서암에서 지난해 가을 이곳으로 수행처를 옮겨 전각 두 채를 지었다. 주변 산도 모두 사들여 종단에 등록했다. 미소를 가득 머금은 스님이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곳을 둘러보느라 강행군을 한 때문인지 스님은 귀국 후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 “어제부터 좀 나아졌다”는 스님은 간간히 기침을 뱉었다. 스님은 자상하다. 공부에 관해 문의하는 신도들에게 친절하게 답한다. 스님은 누구나 인정하는 우리 사회의 선지식이다. 사람들은 ‘큰 스님’ 앞에서 어려워 하지만 정작 스님에게서 권위의식이나 차별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스님은 선센터 이야기부터 꺼냈다. “지금까지 선(禪)을 알리는 일은 많이 했다. 〈육조단경〉 강의도 하고 선원장들이 나가 법문도 했다. 석종사에서 간화선 지도자 양성 교육도 했다. 그리하여 사회가 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이제 실참 교육을 해야할 때다. 이를위해 간화선을 전문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선센터가 만들어져야 한다.” 선센터는 선원수좌회가 지난 총무원장 스님 때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불사다. 현재 주춤한 상태다. 스님은 선은 무한 경쟁하는 이 사회가 제대로 되고 인간이 가치 있게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공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이를 알고 깨닫도록 하는 것이 스님의 사명이며 책임이라는 것이다.
많은 신도들을 만나 공부 이야기를 하고 선센터 건립을 열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님은 그래서 “‘무한경쟁’하는 사회를 ‘무한향상’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발견한 그 세계를 우리도 함께 공유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공부하면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 일이 가치와 의미가 있으면 열심히 일하고 즐거움이 넘치게 된다. 가치와 의미가 있고 즐거운데 그 사람은 당연히 전문가가 되지 않겠는가. 전문가가 되면 부와 명예도 따라온다. 하지만 명예와 부를 위해 무한경쟁하면 인성을 버리게 되고 결국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계속해서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하는데 그 뜻은 의미와 가치를 갖고 일하며 전문가로 선 그런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똥푸는 일을 수행이라고 여기면 수행이다. 남을 위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으면 가치와 의미가 생긴다. 그런 마음이 곧 전체를 위하는 마음이다. 전체를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공멸이다.”
스님은 “선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전체를 위하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할 수 있음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자면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야하고 그 의식을 바꾸는 기관이 바로 선센터”라고 말했다. 스님은 승단을 향해서도 “예전에는 어른스님들이 공심(公心)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공심이라는 말은 보살심을 말하는데 ‘저 수좌는 사상이 좋아’라고 할 때 사상이 바로 공심이다. 성철스님도 ‘사상 정립을 안하고 무슨 공부를 하노’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때 사상이란 선에 대한 바른 견해를 말한다. 1972년 성철스님이 선화자 법회를 개최한 것도 사상을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였다. 20년 뒤 내가 제2회 선화자 법회를 열었는데 비구스님들의 참여열이 그전보다 못했다. 남을 위하고 전체를 위한 정신으로 만든 것이 2600여년 전 부처님이 만든 ‘승가공동체’인데 우리가 사회를 향해 너희들도 우리처럼 살라며 모범을 보여주지를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중국불교 이야기가 나왔다. 공부를 많이 한 학식 깊은 한 젊은 방장스님이 한국손님들을 요란하게 맞이하자 이를 호통친 이야기가 전 언론에 실려 화제가 됐었다. 선의 원류인 중국스님들의 공부 깊이가 한국 고승들에 비해 한 참 뒤떨어진다는 일화도 꽤 거론됐다. 스님은 “선에 대한 이해를 더 다지고 신심을 굳혀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간 것인데 여행사끼리 오해가 생겨 요란한 환송식을 만들고 했던 것 같다”며 “우리 목적이 관광이 아니기 때문에 환영식을 못하게 하고 피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문화혁명으로 선종 맥이 끊겼는데 최근 선원이 많이 생겼다”며 “선은 원래 존재 원리에 관한 것이므로 국경이 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 중국선 한국선을 구분 짓는데 대해 지적을 한 것이다.
스님은 “부처님이 깨달은 것과 선종의 깨달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 인도방법과 중국방법이 있을 뿐이지 의식은 같다. 그것은 바로 적적성성(寂寂惺惺)한 존재원리가 같기 때문이다. 존재원리의 내용을 담아낸 것이 선이다. 개인 사회 국가 민족 인종 종교 갈등은 존재원리를 보지 못하고 차별로 보기 때문이다. 본질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르면서도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 미혹과 지혜를 초월한 지혜를 갖게 되는데 그것이 곧 ‘평상심’(平常心)이다. 평상심으로 이 세상을 보게 되면 세상은 평등하게 보이고 자기가 하는 일이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좋고 나쁘다는 차별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존재 원리를 모르면 차별심이 생겨나고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것을 나는 ‘부시형’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에도 ‘부시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님은 “미혹이란 원래 없다”며 “미혹과 지혜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스님은 “부처가 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부처이며, 불교가 불교가 아니기 때문에 불교”라고 말했다. 본질을 보라는 뜻이다.
스님은 “갠지스강 모래만큼 많은 보물을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공덕을 백천만겁동안 쌓는 효과보다 이 진리를 아는 효과가 더 큰데 이를 사람들이 모르니 부처님이 얼마나 통탄하셨겠나. 그래서 부처님이 왕궁을 나와 이를 알리는데 평생을 바치셨다. 그 소식을 알리는 일이 우리 승가공동체가 해야 할 일이고 선센터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봉화=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chisan@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cooljoo@ibulgyo.com
지난해 가을 각화사에서 인근 문수산 금봉암으로 수행처를 옮긴 고우스님은 항상 밝은 미소로 스님과 신도들을 맞는다.
고우스님은
봉암사 선원 재건
‘간화선’발간 주도
올해 71세인 스님은 경북 성주에서 났다. 20살 때 청암사 수도암 법희스님을 은사로 출가. 관응스님으로부터 〈기신론〉을, 고봉스님으로부터 〈금강경〉을, 혼해스님으로부터 〈원각경〉을 배운 후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1968~9년 문경 봉암사 선원을 재건해 종립특별선원의 기틀을 다지는 등 봉암사 축서사 금영사 용주사 각화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한 수좌들 사회에서 신망이 높다. 간화선 선양에 힘써 종단 최초로 간화선 수행법을 정리한 〈간화선〉 발간을 주도하는 등 신도들과 이 사회가 참선 공부에 눈뜰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열성이다.
전국선원수좌회 공동 대표, 각화사 태백선원장 등을 역임했다. 10여년간 머물던 서암을 떠나 지난해 가을부터 문수산 금봉암에 주석중이다.
[불교신문 2314호/ 3월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