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면역질환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본 특집난의 앞에 설명된 글들을 먼저 읽고 어느 정도 면역계통에 대한 이해를 가진 후에 이 글을 대하는 것이 순서일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면역계통 중에서도 선천성면역기능보다는 후천성면역기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자가면역질환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아울러 후천성면역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항원의 개념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항원이란 체내에 유입되어 면역반응을 촉발할 수 있는 모든 물질을 망라해서 일컫는 말이다. ‘체내에 유입된 물질’이라 하였지만 실제는 우리 몸 속에 있는 각종 물질들도 엄밀히 말하면 항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후천성 면역기능의 특징 중에는 자기(自己)와 비자기(非自己)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즉 후천성면역기능을 획득하는 과정 중에 학습을 통해서 자기 몸 속에 존재하는 항원에 반응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림프구들은 제거된다. 그 결과로 인해 태어나는 순간부터 체내에 살아 있는 림프구들은 더 이상 내부의 자가항원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상태를 ‘면역관용’이라 일컫는다. 정상적인 면역관용의 결과 후천성면역체계는 오로지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 온 물질들에 대해서만 면역반응을 나타내어 그 물질을 제거하는, 소위 말해서 정상적인 면역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면역관용’에 대해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였기 때문에 자칫 간단한 과정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후천성면역반응의 두 주역인 T림프구와 B림프구 모두가 나름대로의 면역관용 과정을 거친다. 면역관용은 림프구가 발달되는 과정에 골수나 가슴 샘과 같은 조혈기관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발달이 다 끝난 후 말초혈액으로 나와서 그 과정을 밟기도 한다. 따라서 골수나 가슴 샘에서 정상적으로 면역관용이 잘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말초혈액내에 자가조직에 반응하는 림프구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림프구들이 존재함에도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말초혈액내에서도 면역관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간에 중앙(골수 혹은 가슴 샘)이든 말초에서든 면역관용에 실패하면 자가면역질환은 발생한다. 아직 왜 이러한 면역관용의 실패가 생기는지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 있지 못하다. 다만 어느 단계에서 면역관용의 실패가 일어났는가가 치료에 중요한 단서를 줄 때가 있다. 예컨대 중앙면역관용의 실패 시엔 골수이식이 커다란 도움이 되지만 말초면역관용의 실패 시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서 다른 치료책이 고려되어야 한다.
면역관용의 실패가 근본적인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이 되지만 반드시 면역관용의 성공 또는 실패의 여부만 가지고 자가면역질환에 대해서 논할 수 없게 되었다. 즉 항원 중에 후천성면역기능의 특성 중의 하나인 ‘특이성(specificity)’을 고려할 수 없는 광범위한 항원성을 나타내는 물질이 있다는 보고가 1970년대에 보고되면서부터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대개 이 물질은 여러 가지 미생물에 의한 감염 시 유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흔히 말하는 항원은 그 항원에 대해서 특이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림프구들이 각각 하나씩 정해져 있는데 소위 ‘초항원(superantigen)’이라고 알려져 있는 감염관련 물질은 훨씬 많은 림프구에 반응하여 보다 강하고 빠른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요약하면 어떤 병원균에 감염되었을 때 그 감염과 관련하여 그 균으로부터 어떤 물질이 유도가 되는데 그 물질이 소위 ‘초항원’으로 작용하여 정상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자가항원에 대한 면역반응을 체내에서 일으킴으로 면역관련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이 자가면역질환의 또 다른 이유의 하나라고 보면 될 것이다. 각각의 감염과 관련된 ‘초항원’의 종류가 많이 알려져 있고 그 초항원에 의해서 자가면역질환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아직 그 구체적인 기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매우 적다. 많은 면역학자들은 대개 면역관용의 실패와 초항원 등의 물질이 상호 상승작용 혹은 협력작용에 의해서 자가면역질환이 생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류마티즘(rheumatism)이라는 질병도 결국은 연쇄상구균(streptococcus)의 감염후에 나타나는 여러 종류의 ‘초항원’의 작용에 의해 체내에서 원치 않는 자가면역반응이 나타남으로 생기는 질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연쇄상구균에 의한 가벼운 인두염을 앓고 나서 다리 등의 관절에 나타나는 관절염(류마치스성 관절염)이나 심장내막염증, 피하결절 등이 그 중요한 예가 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초항원이 중요한 작용을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자가항체의 발견 등 면역관용 실패의 증거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한 가지의 기전으로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그밖에도 자가면역질환은 인체를 구성하는 전계통에 걸쳐서 나타나지 않는 계통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후천성 재생불량성 빈혈과 같은 조혈계통의 질환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간염, 일차성 간경변,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씨병과 같은 소화기계통의 질환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천식이나 실리코시스, 석면폐 등은 잘 알려진 호흡기계통의 자가면역질환이고 면역글로부린 신장질환, 연쇄상구균감염후 사구체신염 등의 신장질환도 잘 알려진 자가면역질환이다. 아토피성피부염, 전신성 홍반성 낭창 (엄밀하게는 전신성 질환) 등과 같이 피부질환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면역학적으로 특혜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신경계에도 자가면역질환은 많은 종류가 알려져 있다. 다발성경화증은 신경계에 나타나는 자가면역질환의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각종 갑상선 질환이나 심지어는 당뇨병조차도 그 원인이 자가면역질환으로 알려지고 있을 정도로 내분비계통의 많은 질환도 면역계통의 이상으로 발병하고 있다.
이렇듯 인체의 전계통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가면역질환의 치료에 대해서는 많은 면역학자들이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에도 아직 이렇다할 치료법이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면역억제제를 사용함으로 자가면역반응을 포함하는 모든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고식적 방법에 의존하고 있거나 보조적 치료에 그치고 있는 것이 자가면역치료의 현실이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먼저 자가면역질환의 병태생리학적 측면이 명확하게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근본적 치료책이 제시되어 있지 못하지만 많은 의학자들이 새로운 연구를 통해서 근본적 치료를 위한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따라서 머지 않은 장래에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근본적 치료가 제공되어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유준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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