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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능력 / 찰스피니 지음>중에서 순수한 오락 부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스도 인으로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누리고 취해야 할 오락들에 대해
찰스피니의 글은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찰스피니는 1821년에 회심하였는데, 진정한 교회의 모습과 진정한 그리스도인에 대해
전하신 말씀 모두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살피고 견고히 하는데 귀한 깨달음을 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고자 소망하며 힘써야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부딪히는 상황과 사건들은 구별된 삶을 살고자 소망하는 우리에게
때로 좌절을 불러일으킵니다.
분별함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길 원하지만, 선택에 확신이 서지 않고 더 모호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그것을 허락하신 주님께
오직, 기뻐하고 감사할 수만 있다면, 그런 마음으로 예배할 수만 있다면,
먹든지 마시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올바른 마음의 동기만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아래에 찰스피니의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능력 중 <순수한 오락>부분을 옮깁니다
마리아 올림
순수한 오락
근자에 순수한 오락을 즐기는 것에 관한 글이나 그에 관한 토론을 많이 대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다수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는 젊은 사역자가 그들을 위해
순수한 오락을 구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이제껏 성도들이 흔히 즐겨오던것 이상의 오락을 논하는
몇 몇 설교나 다수의 기사를 접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관한 제 생각을 말하고자 합니다.
즉 어떤 것이 순수한 오락이 아닌지, 또 어떤 것이 순수한 오락인지를 말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문제 입니다.
모든 도덕적인 행위는 옳거나 그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도덕적 주체에게 있어서 복음의 법칙과 하나님의 법칙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것도 순수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도덕적 주체가 하는 행동의 동기나 행동을 하게 된 그의 긍극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그의 도덕관념을 파악 할 수 있습니다.
너무도 자명한 일이며 널리 이용되기도 하는 방법입니다
자 이 경우에 있어서는 판단의 기준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오락이 옳은지, 그른지, 순수한지, 죄악된 것인지를 어떻게 판단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세가지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기준은 "너는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이와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22:37~39>입니다
만일 도덕적 주체의 의식적인 행위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즉 그 속에 사랑이 없다면 그를 두고 순수한 자거나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그 오락이 복음의 입장에서 보아도 순수한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골3:17>와 일맥 상통하는 기준입니다.
세번째로 위 두 구절의 지지를 받을 만한 올바른 이유가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위의 세가지 기준로 본다면 단순히 오락을 즐기기 위한 오락은
순수한 것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고픈 욕망을 충족 시키기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은
결코 순수한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식욕을 만족 시키고자 먹고 마시는 행위는 단순한 동물들에게나 순수한 행위이지
도덕적 주체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좀 더 고상한 동기가 요구 됩니다.
즉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건강과 강건함을 유지 시키려고
먹고 마시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먹고 마시는데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즐거움 자체가 먹고 마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락은 본질적으로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락의 성격을 핑계로 오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락을 즐겨서는 안됩니다.
짐승들이야 보다 고상한 동기를 가질 능력이 없음으로
단순한 욕망 충족을 위한 오락도 그들에겐 순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도덕적인 존재들인 경우는 좀 더 차원높은 원칙과 단순한 욕망 충족 이상의 고상한 동기가 요구 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즐기기 위한 오락은 순수한 오락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이 순수한 행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좀 덧붙이겠습니다.
단순히 오락이 필요해서 즐기는 오락이라면 그것은 순수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음식이 필요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음식물을 단순히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먹고 마시는 것은 잘못되고 그릇된 일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필요를 따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부터 모든 일을 행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이기적인 목적으로 먹고 마십니다.
그는 육신을 강건케 해서 그의 이기적인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잘 먹고 잘 마시는데 신경을 씁니다 .
비록 음식과 음료가 필요해서 먹고 마셨을지라도 그 행위는 그에게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무엇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것들은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이며 ,
동시에 최상의 목적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모두 순수하지 못하다고 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오락이 순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 분께 예배를 드릴 때 품어야 하는 마음 입니다.
온전한 예배는 이 땅에 살 동안 우리가 그 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거룩한 사랑이 없는 오락은 순수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락으로 즐기는 낚시와 사냥은 순수한 것이 아닙니다.
낚시와 사냥이 허락 되는 이유는
우리에게 먹고 마시는 행위가 허락되는 이유와 동일 합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데 좋은 여건을 형성하고 육신의 강건함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해로운 짐승 따위는 얼마든지 사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이 왕국에 관심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저 이런 활동을 통해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데 쓰여야 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오락은 결코 순수한 것일 수 없습니다.
생은 짧습니다. 시간은 귀중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꼭 한 번 밖에 살 수 없습니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 갔습니다. 세상은 암흑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죄인들은 빛을 얻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 해가 있는 동안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과 사역을 행하는데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한시도 헛되이 흘려 보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올바르다면 사역은 즐거울 것입니다.
올바르게 행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지극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 일 자체가 우리에게 더할 나위없는 고상한 오락이 될 것입니다.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게 만드는 오락을 두고 순수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행해야 하는 사역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고
그 사역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옆으로 벗어나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는
오락에 탐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의 돈을 헛되이 낭비하는 오락 또한 순수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돈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과 사람을 위해 시간과 돈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순수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돈과 시간을 사용한다면,
결코 순수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즐거움과 오락을 위해 큰 돈을 들여 여행을 다닌다면,
그리고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순전한 눈이 없다면
그 여행은 순수한 오락이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죄악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리고 좀 더 고차원적인 심판의 관점에서 본다면 구원 받지 못한 죄인에게는
그 어떤 오락도 정당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람 속에는 순수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회개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행위나 오락도 순수한 것일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이 부분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은 줄로 압니다.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사람들, 심지어 사역자들까지도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고 의아해 합니다.
얼마 전에 저는 강단에서 죄인들에게는 순수한 오락이나 정당한 행위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예배에 참석해 있던 나이 지긋한 목사 한 명이 예배가 끝난 후에 찾아와서는
거듭나지 않은 죄인에게 정당하거나 순수한 오락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지적하며,
어리석은 발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통인 줄 알았는데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성령에 의해 거듭나야 된다는 주장을 따르지 않으시는군요?
"그렇소 "라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이 무슨 일을 한들 하나님께서 그 일을 받아 들이시겠습니까?
그의 마음이 변화 받은 적도 없고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만한 동기를 가지고 행하는 행위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얼 받아 주신단 말입니까?
그의 마음이 그릇되어 있다면 그의 행위들도 모두 그릇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그제서야 제 말의 의미를 이해 하고선 무안해 하며 조용히 자리를 피했습니다.
도덕적으로 합당하거나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옳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정당한 것을 행했다면 이는 반드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 한다면 그는 회개하지 않은 죄인 일리가 없습니다.
그는 분명 그리스도인 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의 궁극적인 동기는 틀려 있기 마련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순수한 것은 없습니다 .
모든 것이 죄악입니다.
그러면 순수한 오락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겠습니까?
오락이 순수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순전한 눈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가장 궁극적이며 우선 되는 마음이 되지 않는다면
그 오락은 순수하기는 커녕 오히려 죄악으로 가득찬 오락이 될 것입니다.
자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습니다.
오락에 관해서 토론할 때 그저 뭐 해로울게 있겠습니까? 라는 말을 하면서
이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해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단편적으로만 바라본다면 대부분의 오락은 도덕적으로 어긋난 부분을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쉽게 오락이 순수하다고 단정 짓습니다.
그들은 어떤 일의 가장 우선 되며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가를 조사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 동기를 가지고 어떤 행위가 순수한지 그렇지 않은 지를 판단할 수 있는 법인데 말입니다.
만일 근본적인 동기를 따져보지 않는다면 그져 기계가 움직이는 동작이나 동물들의 행위는 판단 가능할지 몰라도
사람들의 행위가 순수한 것인지, 죄악으로 가득찬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행동이든지 동기가 무엇인지를 판단하지 않고서는
그것이 순수한지 죄악으로 가득찬 것인지 판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죄인이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이 즐기는 오락을 두고
순수하다고 가르치거나 혹은 그런 암시라도 담긴 말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조악하고 부패한 이단 사상을 전파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는 자녀들을 데리고 있는 부모들은 이를 명심해야 합니다.
주일 학교 학생들을 위해 오락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교사들과 감독자들도 이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청소년을 데리고 소풍이나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여러가지 오락과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설교자들도
마음속에 몇 가지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마음 상태가 거룩하지 않다면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두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행위를 하거나 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은 전혀 순수한 행위가 아니며 오히려 죄악된 행위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따르는 무리를 죄악의 길로 인도할 것이 뻔합니다.
항상 기억 하십시요.
어떤 일이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면,
그 분의 영광만을 바라는 순전한 눈이 없다면, 그것들은 전혀 순수하지 못한 것들 입니다.
죄악된 오락이란 말입니다.
더욱 단호하게 말하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회심하지 않은 죄인들이나 타락한 그리스도인들은 순수한 오락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그 나이 지긋한 사역자를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은
회심치 않은 죄인들과 타락한 그리스도인들도 순수한 오락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회심치 않은 죄인들이나 죄악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이
정말로 정당하거나 순수한 오락을 즐기게 된다면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변화를 받을 것이고
타락한 그리스도 인들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섬길때와 같은 마음이 그 속에 없고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또한 없다면 그 어떤 오락도 정당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오락은 사랑으로 섬기는 섬김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섬김이 되어야 합니다.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보다 더 그 분을 기쁘시게 해드릴 만한 일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한 일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오락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의 가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떠오를때는" 이 오락에는 어떤 해로운 측면이 있는가?"하는
질문이 아니라 이 오락이 무슨 유익을 줄 것인가?
이 오락이 지금 내가 이 시간을 보내는 최선의 방법인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이 오락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고 그 분의 나라에 유익을 끼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만일 후자의 질문에 긍적적인 답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순수한 오락일 수 없으며 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그런 "죄악된 오락을 추구했던 적이 없었던가?" 하는 질문을 종종 던져 봅니다
저는 그 때마다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삶 이상의 고귀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며 또한 우리의 의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욕망을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는 삶 앞에 누구려 뜨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 안에 거하며 그 분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나머지
세상적인 흥분이나 스포츠, 유희, 혹은 즐거움을 위한 여흥에 참여 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인들이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는 유익을 십분 활용 한다면,
그의 새로운 성품은 세상적인 유희를 쫓고자 하는 유혹을 멀리 쫓아 내버릴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 세상적인 유희같은 것들은 저질스럽고 불만족스러우며 심지어는 혐오스럽기까지 한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가 천상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진실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지만 )
그는 세상적인 오락을 찾아 즐길 여유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으로 돌이키게 되면 그는 세상적인 스포츠나 여흥거리를 찾아야겠다는 욕구를 느끼기에 앞서
먼저 첫 사랑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영적인 마음은 세상적인 모임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합니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세상적인 모임은 오히려 혐오감만을 불러 일으킵니다.
세상적인 모임이란 거짓되고 공허하며 헛된 것에 불과 합니다.
세상적인 모임에서 흘러나오는 잡담에서 무슨 흥취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에 있어 세상적인 영과, 세상적인 길들,그리고 그들의 대화와 어리석음은 혐오감만 불러 일으킵니다.
세상 사람들의 길이란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의 한도와 그들의 마음의 퇴폐적인 풍조를 드러내기 때문에
영적인 사람들에게는 괴롭기까지 한 것들입니다.
저는 이것에 관해 찬성이나 반대의 의견이 반영되어 있는 질문을
받아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으리 라고 봅니다.
아마 회심하기 전의 저보다 더 세상적인 즐거움에 탐닉히며 살아 본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회심한 이후에는 세상의 스포츠나 오락을 향한 욕구와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저는 회심한 즉시 완전히 다른 삶의 경지로 들어섰고 완전히 다른 즐거움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생활 방식이나 여가, 스포츠, 오락 그리고 세속적인 길들,
즉 회심 전에는 제게 무한한 기쁨이 되었던 그것들이 회심 이후로는
저에게 그 어떤 흥미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것들로 전락했습니다.
오히려 제 속에 일어났던 것은 혐오였습니다.
저는 세상의 것들이 제게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혹은 진정한 즐거움과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지금 제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그리스도와 그 분을 따르는 영광스러운 신앙을 위해서
입을 열고 있는 것 뿐입니다.
저는 단지 제가 지금껏 영위해 온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이 참으로 행복했노 라고 고백하는 것 뿐입니다.
저는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지극한 즐거움을 제 생애에서 누렸으며
세상으로 돌아가서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즐거움을 찾느라고 세상을 기웃거린 적도 없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신앙생활에서 충분한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세상적인 오락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 둘을 적절히 조화만 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오락을 추구하는 것이나, 그것들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것이나 결국은 똑같은거 아닙니까?"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러한 세상적인 것들을 동경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런 욕구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은혜를 힘입어서 이집트의 고기 솥을 열망하는 마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동경하는 마음을 순수 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욕망을 충족시켜도 되느냐 안돼느냐 하는 질문이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의 영광을 열망하는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는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사람들은 그의 고백과 일관된 삶을 유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의 명예를 위해서 세상적인 욕구를 부인하고 그것들을 충족시키려 좇아다니다가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도 자기네들이 즐기는 것을 즐기려 든다고 하는
비아냥과 조소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이 마음이 타락을 해서 세상적인 오락과 여흥을 갈구하게 된다면
그들은 의무적으로라도 그런 욕구들을 드러내는 행위를 삼가야 하며
그리스도 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 시켜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도 어떤 부분에서는 세상적인 것에 순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도 세상과 신앙을 함께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순수한 오락이라고 부르는 것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 등을 돌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을 멀리 쫓아 버리는 듯한 형국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세상과 성별되어 하늘에 속한 마음을 가지고 살며 그 마음으로 영적이며 하늘에 속한 기쁨을 누리고 살면서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과 유희에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우리의 신앙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으로부터 기쁨과 행복을 찾는 모습은
구원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족케 하는 돌이 됩니다.
그런 모습은 기독교 신앙을 잘못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당황케 하며 어리둥절하게 만들게 됩니다.
한 번이라도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하나님께로 부터 태어났다는 사람이
대화 중에 세상적인 길들을 쫓고 세상의 즐거움을 탐닉 한다는 기미를 조금이라도 발견 한다면
그는 그 그리스도인을 몹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려깊은 죄인들은 세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관대하고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광신적이고 편협한 그리스도인들과 반대되는 신앙이라고 규정하고
바로 그런 신앙을 보고 싶었노라고 은근히 추켜 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요.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서부에서 온 감리교 목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저에게 아주 인상깊은 이야기 하나를 해 주었습니다.
그의 이웃에는 노예를 소유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신사적인 사람인데다 돈도 많았으며 늘 쾌활하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다양한 스포츠와 오락을 누리면서 보냈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 교구의 목사와 친하게 지냈는데 종종 목사를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먹고
스포츠를 즐기기도 하고 여흥을 위해 들로 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목사는 그 신사 양반이 청을 하면 늘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응했으며
그래서 목사와 신사의 친목은 나날이 돈독해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쾌활한 부자 양반이 덜컥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 세속적인 사람의 부인은 그의 남편에게 당신은 곧 죽게 될 것이란 말을 해 주고서
이제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으니 같이 대화하고 기도해 줄
목사를 부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부인 그 목사는 지금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오.
그는 세속적인 스포츠와 여흥을 찾을 때나 내 절친한 동료였을 뿐이었소.
그는 저녁 만찬과 즐거운 시간을 좋아했었지.
나는 그의 사교성을 즐겼던 거요 .그래서 늘 좋은 친구로 지냈지.
하지만 난 지금 이 순간 그의 신앙심을 신뢰할 수가 없소.
그의 기도가 얼마만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오.
나는 이제 죽어가는 사람이니 하나님께 받아 들여지는 기도를 할 만한 사람과 기도하고 그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소.
그 목사와 나는 벌써 오랜 시간을 같이 지냈지만
그 목사는 한 번도 내게 나의 구원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내비친 적이 없으니
지금 이 순간도 도움이 안되기는 마찬가지 일거요"
아내는 다시 지극한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럼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마부를 불러 오시오. 톰 말이요. 그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지 .그의 기도가 얼마나 신실한 것인지 난 잘 알고 있소 .
난 가끔씩 그가 헛간이나 마굿간에서 기도 하는 소리를 듣곤 했었소.
아 , 그 얼마나 진지하고 간절한지. 난 그 때마다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오.
난 그 사람에게서 실없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소.
그는 그리스도 인으로서 언제나 정직하고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소. 그를 부르시오"
톰은 주인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그에게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모자를 벗고서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죽어가는 주인을 바라 보았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리오게, 톰. 내 손을 잡아 주게 톰! 죽어가는 자네 주인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겠나?"
그러자 톰은 즉시 지극히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감리교 목사의 이름을 잊었습니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어서 그러나 그 이야기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과 몇몇 목회자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그들의 실수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그들의 오락을 같이 추구한다면 그들이 우리의 믿음에 호감을 가지리 라고 생각하는 사고 방식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의 즐거움이나 필요를 따라 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인은 신앙을 지극히 높고 고결한 행복의 원천으로 세상에 제시 해야 합니다.
평화로운 모습 ,즐거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 ,영적인 온화함,
그리고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가는 활기찬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신앙을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그들의 거룩한 즐거움으로 만족하고
세상의 오락들을 멀리하는 고결한 삶을 사는 모습들을 보여 준다면
구원 받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리스도 인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자신들도 그렇게 살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적인 욕망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진정한 그리스도 인으로서의 영향력은 전혀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제시한 기준이 너무 무거운 짐이나 멍에로 느껴지십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그 내면에 폭풍 같은 혼란스러움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 회원들 중 즐거운 일에 참석하고 즐거움을 찾아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가 제시한 기준을 비현실적이며 지나치게 엄격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처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요.
이 기준이 정확히 어떤 사람에게 지나치고 엄격한 멍에게 될 것 같습니까?
어떤 이에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들리겠냐는 말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할테니까 말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그런 일을 하도록 부르셨다는 확신이 없다면
절대 그런 오락을 좇아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 주는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또 역시 천성적으로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그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때 가장 지극한 기쁨을 느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려고 한다면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이 지극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 지극한 즐거움과 진정한 행복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의 유익을 추구하는 데서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헌신이 더더욱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즐거움들이란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본성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경험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이 증거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오락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오락이란 그져 냉랭하고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얻는 즐거움과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러한 오락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즐거움과 더불어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실이 이러한데, 왜 이 법칙이 너무 딱딱하고 기준이 너무 엄격하여 마치 멍에나 족쇄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최근 몇 년간 이 문제에 관해 입을 연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고 여기에 관해 논한 글을 읽어 본 결과
저는 그네들이 하나님께 헌신 하는데서 오는 기쁨 보다도 이러한 오락에서 취할 수 있는
즐거움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그들은 예전에 제가 학교에 다닐 때 대하던 문구 하나를 상기 시키곤 합니다.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무슨 업무나 과업 같은 하나의 일거리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죄인들을 인도하기 위해 숙고하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 (짜증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이어서
즐겁게 휴식 하는 것이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지탱해 나가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오락을 자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한 번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나와 잠시 쉬어라"<막6:31 >그러나 별로 놀랄 일은 아닙니다.
늘 군중들이 몰려 왔던 탓에 그들은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이 휴식이 즉 단순히 사랑의 사역에서 잠시 쉬는 것이 그들이 찾았던 오락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일하면서 무한한 기쁨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스스로에게 물어는곤 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풍족한 오락에 탐닉하여 즐거워하고 있는데 이는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그들은 교회를 매우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 가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그런 방향으로 이끌려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르침이란 교회 앞에 공공연하게 던져지는 세상으로 이끌어 내는 유혹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에 관해 충분한 언급을 하고 있는데
성경은 항상 세상적인 오락과 정 반대의 위치에 섭니다.
재미나 유희, 익살, 놀이, 게임들 그리고 그와같은 류의 것들을 변호하려 드는 선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온전하게 하늘을 향한 마음을 품고서
쉬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밀착하여 끊임없이 동행하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삶의 진정한 기쁨이란 바로 그런 삶에서 찾을 수 있으며
마음 속의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전심전력으로
그 분의 영광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늘 깨어 있으라고 권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이라 할지라도
심판의 날에는 그 말에 관해 그 분 앞에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유희나 파적거리 따위가 진정한 기쁭의 근원이 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런 세상적인 즐거움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가까이 동행해 주시며 성령 안에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게 하겠다고 약속해주신 구절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들의 실제 경험과도 일치 합니다 .
우리에게 왜 세상적인 오락을 옹호하는 설교자가 필요하단 말입니까?
설교자가 그렇게 자극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란 원래 그 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교회가 하나님과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너무 열심히 일한 탓에
그리스도인들이 죄인들을 불못의 위험에서 구해내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한 탓에
그런 종교적 열심으로 말미암아 미쳐버릴 위험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오락의 장으로 인도하고 즐기도록 하는 설교자가 필요하다 이 말입니까?
그러면 그 결과는 무었입니까?
오히려 우리의 위험은 모두 그 쪽에 있는 것 아닙니까?
인간의 본성이란 원래 그 쪽으로 강하게 유혹 받는 탓에 우리에게는 인도자가 필요하고
그는 우리의 영혼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오락쪽으로 기울지 말고
교회에 관심을 두라는 권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순전한 눈으로 선한 일을 즐거워 하고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라는 명령이
어떤 사람에게 멍에나 구속으로 느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이 일이 힘들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마:11:30>고 말씀 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라는 명령은 다름아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우신 멍에 였습니다. 그 분의 뜻이 그러합니다.
누가 이것을 두고 무거운 짐이나 고까운 멍에로 여깁니까?
만일 그 마음 속에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 분을 향한 사랑이 가득 하다면
결코 어렵고 무거운 짐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구주께 헌신한 사람이라면 이는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 헌신 한다는 것이 모든 일에 사랑으로 그 분께 복종 하겠다는 마음을 지닌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하고픈 그 일을 하는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즉 모든 일에 있어서 복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것 말입니다.
구령 하는 일에서 돌이켜 오락을 찾아 나서다니요!
마치 영혼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는 것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기라도 하는 양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절대로 없습니다.
죄인들을 불타는 지옥의 위험에서 구출 시켜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보다
더 큰 즐거움이란 이 세상에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교회가 점점 더 세속적인 오락을 뒤좇도록 설득 시키는 말이나 글을 읽을 때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에서 동행하고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과 연합하는 것에서
누릴 수 있는 만족보다 더 고귀하고 풍성한 만족이란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얻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오락을 추구하도록 장려하는 말들은 모두 영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세속적인 마음 상태에서 우러 나온 말들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고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매일 신음함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런 영적인 일들에서 벗어나 오락을 추구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회중에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고 그리스도 인이면서도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다고 해서
그런 회중을 위해 교회를 세속적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하겠습니까?
교회에는 세상으로 떼지어 나가려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누가 그런 움직임에 말려 들겠습니까?
소풍이나 세속적인 파티, 혹은 다른 유희 활동을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누가 제일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가겠느냐 말입니다.
늘 기도회에 참석하고 영적인 상태를 매일 점검하여 새롭게 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평화가 매일매일 그들의 혼에 가득 차서 얼굴이 빛나는 사람들이
그런 모임으로 달려 나가겠습니까?
그들 목자의 손을 붙들고 꾸준히 승리 하는 기도를 하는 아론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늘 영적인 무리들과 함께 하며 마음의 고향이 하늘에 있고
이 땅의 일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 그런 사람이겠습니까?
영적이고 기도에 열심이며 하늘에 속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적인 즐거움이나 오락을 쫓으려는 교회 내의 육신적인 사람들과
그들의 행위를 보고서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늘 영적인 사람들을 채근해서 비밀스러운 장소로 끌고 가려 합니다.
목자에게 찾아가 교회와 세상적인것 중 어느 것이 더 그리스도인을 실족케 하는
돌이 되겠는가를 물어보기 전에 재빠르게 말입니다.
................
오버린(Oberlin )대학의 학장인 피니는 이 글이 <윌라드, Willard 소책자 시리즈>에
포함되어 출간되게 되자 본문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는데 그 수정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앞 장에서 <인디펜던트지>에 발표했던 세 개의 짧은 글들을 요약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글들을< 어드밴스,Advance>지의 편집장과
<인디펜던트,Indenpendent>지의 편집 위원회에서 혹독한 비난으로 돌려 받았습니다
그들은 매우 부주의하고, 세상적인 오락을 좋게 말하고, 추천하는 듯한 내용의 글들을
발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아마 제 글이 그들에게 해결하기 까다로운 문제를 일으켰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제 글에 관해 약간의 오해를 했는데 그들은 제가 무슨 금욕주의를 가르치면서
모든 휴식과, 모든 오락 활동을 금기시 하려 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지금 출간하는 이 소책자가 성경적으로 옳으며 엄연한 진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여러가지 잡음이 드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 여기 몇 마디를 덧붙이겠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모든 휴식과 기분 전환 그리고 모든 류의 오락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 주십시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어떤 쉼이나 ,기분 전환, 그리고 오락 따위들이 만일 하나님의 일을
더욱 열심히 하기 위한 방편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전 10:31>하라는 것입니다
쉼도 기분 전환도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도 모두 그리스도를 위해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능력/찰스피니 지음>중에서
첫댓글 저희는 이제서야 진정한 의미의 순수한 오락을 찾았습니다.^^ 이 홈페이지 역시도 그런 의미에서 순수한 오락이라고 믿습니다. 저희가 누리고 있는 세상의 오락이라고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순수한 오락을 통해 얻게 되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역자분들 모두가 다, 이 순수한 오락을 찾으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 글을 지금 다시 읽으니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제가 여기와서 골프를 치지않겠다고 선언하니 많은 분들이 지금은 그렇게말해도 조금있으면 사는게 너무 무료해서 마음이 달라질거예요. 여기까지 와서 골프 안배우면 손해예요라고 하시는 분들께 참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할지 난감했거든요. 저도 이제 명쾌히 답을 찾았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골프는 "순수한 오락"이 아니어서 못하겠다고요...운동이라고 미화하여 우리의 허영심을 채우는데 주님이 주시는 시간과 재물을 쓰는것은 절대로 순수한 오락이 아니고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는것입니다. 글을 읽다보니 속이 시원해지네요^^
자매님의 글을 읽다보면 제 마음도 후련해지는 것 같습니다. 워낙 덧붙이는 것이 없으시다 보니~~~ ^^ 그것이 자매님의 은사인 것 같습니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짧은 글 속에서, 자매님 안에 있는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아멘!
네..자매님!
마음 안에 주시는 양심의 법들이 늘 말씀으로 확증되며
새로워지시길 소망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멘!!!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중심을 살피시는 주님 앞에서 더욱 구별되며 말씀에 합당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