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證道歌 永嘉 玄覺 大師
[如天 無比 큰스님 입력]
君不見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法身覺了無一物 本源自性天眞佛 五陰浮雲空去來 三毒水泡虛出沒 證實相 無人法 刹那滅却阿鼻業 若將妄語誑衆生 自招拔舌塵沙劫 頓覺了 如來禪 六度萬行體中圓 夢裏明明有六趣 覺後空空無大千 無罪福 無損益 寂滅性中莫問覓 比來塵鏡未曾磨 今日分明須剖析 誰無念 誰無生 若實無生無不生 喚取機關木人問 求佛施功早晩成放四大 莫把捉 寂滅性中隨飮啄 諸行無常一切空 卽是如來大圓覺 決定說 表眞僧 有人不肯任情徵 直截根源佛所印 摘葉尋枝我不能
摩尼珠 人不識 如來藏裡親收得 六般神用空不空 一顆圓光色非色 淨五眼 得五力 唯證乃知難可測 鏡裡看形見不難 水中捉月爭拈得 常獨行 常獨步 達者同遊涅槃路 調古神淸風自高 貌悴骨剛人不顧 窮釋子 口稱貧 實是身貧道不貧 貧則身常被縷褐 道則心藏無價珍 無價珍 用無盡 利物應時終不恡 三身四智體中圓 八解六通心地印
上士一決一切了 中下多聞多不信 但自懷中解垢衣 誰能向外誇精進 從他謗 任他非 把火燒天徒自疲 我聞恰似飮甘露 銷融頓入不思議
證道歌 제 8강
반갑습니다.
오늘 3월 7일 음력으로는 2월 8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 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매달 8일은 음력 8일은 이제 약사재일이고요
오늘은 2월 8일로 치면은 부처님 출가일입니다.
그래서 각 사찰에서 아마 출가일 행사를 여법하게들 하셨을 줄 믿습니다.
부처님을 중심으로 해서
불교의 그 4대 기념일이라 이런 말을 쓰는데
첫째 이제 잘 아시는 사월 초파일, 부처님 탄생일이 첫 기념일이고 그다음 이제 탄생하셔서 2월 8일
2월 8일이 이제 출가일인데 바로 그것이 오늘이죠.
이 출가일은 사실은 불교의 출발이 부처님의 출가에서 부터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출가를 하지 않으셨으면 불교가 출발 할 수가 없었고 불교가 탄생할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부처님의 출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라고 하는 입장에서 보면은 상당히 의미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또 머지않아서 이제 2월 15일은 열반일이거든요.
그래서 이제 『출가에서 열반까지』
이렇게 이제 타이틀을 붙여가지고 성대하게
법회를 하는 곳도 있고 또 특별히 기도를 올리는 그런
사찰도 있고 그렇습니다.
상당히 뭔가 불교적인
순수한 불교적인 행사를 하기가 아주 좋은 그런 날이죠.
물론 그 가운데 부처님 생애를 통해서 보면은
그 가운데 12월 8일이라고 하는 것이 또 이제 성도재일이 있습니다만은 그것은 이제 12월 8일이구요.
순서상으로 보면은 탄생 출가 성도 열반 이렇게 이제 순서가 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날짜가 2월 8일과 2월 15일
이렇게 이제 모두 일주일 아주 법회하기 좋고
기도하기 좋고 용맹정진하기 좋은
계절도 아주 초봄이 돼서요 크게 춥지도 않은 그런 날이라서 이것을 잘 활용을 해서 행사를 잘 치루면은
참 좋은 불교 행사가 될 줄 압니다.
물론 뭐 동지라든지 그 다음에 백중이라든지 기타 다른
그런 그 뭐 또 심지어 삼월 삼짓, 입춘, 정초 이런 것들은 사실 알고 보면 순수한 불교적인 기념일은 아니죠.
그러나 이제 이쪽 우리나라에 와서 불교가 우리 나라의 어떤 풍습과 이렇게 서로 영합을 하면서 그런 풍습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잘 교화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그런 그 방편으로
그런 날짜를 또 불교에서 잘 사용하고 있죠.
그런 점에선 뭐 또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출가에서 열반까지의 이 기간을 우리가 좋은 기도일로 정해서 한다든지 아니면 뭐 특별한 경전 살림을 하는 그런 기간으로 정해서 한다든지 하면은 이건 정말 아주 순수한 불교행사가 되고 또 부처님을 한번 다시 정말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그 소재가 아주 충분하리라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출가는 잘 아시다시피 부처님이 처음에 마음먹은 그 일이 있어서 출가를 하려고 했지만은 부왕의 만류도 있었고 여러가지 국가적인 상황이 그러해서 그 뭐 남에게 알리고 그렇게 출가하진 않았습니다.
한 밤에 성을 넘어서 그 마부 차익이란 사람만 데리고 말 한마리를 탄 채 그렇게 이제 출가를 했죠.
그리고 나서 이제 부왕이, 출가한 줄을 알고 다섯 명의 그
시중들 사람들을 보내서 함께 수행하도록 하라, 지켜주기도 하고 보호도 하고 하면서 함께 수행하도록 하라 해서
그 사람들이 뒤에 다시 뒤따라서 출가를 해서 그들이 이제 결국 오비구五比丘가 최초의 오비구가 되고 한 그런 연유입니다.
음 어느 부모, 어느 가족이 자식의 출가를 찬성하거나 그럴 경우는 참으로 드뭅니다. 그래서 대개 출가한 사람들은 보면은 출가할 때 부처님이 그랬듯이 뭐 쉬운 표현으로 도망 나오지요.
몰래 집안 사람 아무도 모르게 이제 도망 나오는 것이 대개 전례로 되어 있습니다. 뭐 부처님이 그랬고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의지는 확고하고 주변 사람들은 이해를 못해주니까 만류를 하고요. 그래 되면은 어쩔 수 없이 뭐 조금 모양새는 그렇지만은 그래도 그렇게 이제 대개 출가를 합니다.
이 출가는 부처님께서 이제 출가를 하셔가지고
불교가 출가 단체로부터
출가한 사람에 의해서 다시 또 출가한 단체가 형성이 되죠.
그게 이제 오비구 다 모두 출가한 사람들이죠.
그러면서 이제 여섯째 비구가 야사죠. 그런데 여섯 째 비구 야사의 부모가 야사를 찾으러 부처님에게 왔다가 찾아가진 못하고 부처님의 그 덕화에 감화가 돼서 그들이 부처님 앞에 서원을 세웁니다.
우리는 재가 불자로서 신명을 다 바쳐 부처님을 보호하고
또 승단을, 출가 승단을 보호하는 그런 그 재가 신자로서 살겠습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따르면서 살겠습니다. 하는 그런 이제 서원을 세우게 되죠.
그러면서 이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생기게 됩니다. 재가 신자가 이제 생기게 되죠.
처음에 부처님, 교주인 부처님이 출가를 했고 또 그 첫 단체인 오비구가 출가를 한 사람들 중심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불교에서 출가라고 하는 거 참 무시 못하죠.
아무리 대중불교, 대승불교라고 하지만 출가에 대해서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을 보면은 출가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아요. 또 법문이 순수출가한 사람들을 위한 그런 법문도 많고 그런 글도 많습니다. 보면 뭐 아주 엄격하죠.
강원에서 치문반이라고 하는 반이 있는데 그건 오로지 치문 책 한 권을 일년 동안 공부 하는데 그 치문은 거의 출가한 초기 사람들을 경책하고 어떤 그 행동거지를 익히고 또 어떤 가치관이라든지 수행자로서의 정신을 함양시키는 그런 내용들이 많이 이제 실려 있죠.
그래서 다른 표현으로 하면은 순전히 잔소리만 잔뜩 담겨있다. 뭐 이렇게 하면 좋은 일이고 저렇게 하면 안되고 뭐 이런 이야기들이 있죠. 그런데 그걸 보면 참 별별 이야기가 많습니다. 옛날 스님들이라서 읽어보면 뭐 숨이 막힐 듯한 그런 그 말씀도 많죠. 요즘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데 유명한 발심수행장이라고 원효스님의 말씀인데 거기에 보면은
이심중애離心中愛를 시명사문是名沙門이요
불연세속不戀世俗을 시명출가是名出家라
아주 참 유명한 말씀이 있죠. 마음 가운데 애착 떠나면 그것이 사문이다. 출가사문이다 이거죠.
수행자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꼭 집을 나와야만 그렇게 사문이고 출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마음 가운데 속된 어떤 애착이 없는 사람 그 사람이 수행하는 사문이다.
그리고 불연세속不戀世俗을 시명출가是名出家라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이름 하여서 출가라고 한 다.
몸은 출가 해 있으면서도 세속을 그리고 세속적인 것을 그리고 그러면 그건 인제 출가가 아니라는 거죠.
출가해서도 세속을 그리고 세속적인 것들 불교 안에도 보면은 그게 세속적인 건지 출가인의 일인지도 모르고 그냥 자기 취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뭐 글씨를 쓴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그것만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어요. 뭐 차를 한다든지 이런 것 뭐 도자기를 한다든지 이런 거 전부 속된 일이고 세속 일이지 그걸 업으로 삼아서는 출가인으로서는 아니죠.
그런 것을 출가인의 당당하고 떳떳한 일로 생각한다면은 그건 뭔가 참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원효스님의 지적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 세속적인 일에 연연해 한다면 그것은 출가인이 아니다.
그랬습니다.
그외 뭐 치문이라고 하는 책에는 그대가 이미 출가 하였으니 뭐 어쩌구 아주 뭐 엄격한 가르침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들의 현실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아주 참 부처님의 삶을 그대로 닮아야 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렇습니다.
부처님과 조사의 삶을 그대로 닮아야 그게 이제
출가라고 한다. 이런 그 말씀도 있어요.
오늘 증도가 들어가기 전에 출가일에 대해서 조금 언급을 드렸습니다.
오늘 증도가는
상사일결上士一決일체요一切了하고
중하다문中下多聞다불신多不信이라
그랬습니다.
우리 불교에서 이제 근기根機라는 말을 잘 쓰는데
근기에는 상근기上根機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
크게 나눠서 그렇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여기에 영가스님 말씀도 상사上士라고 하는 것은 상근기라는 그런 의미죠.
윗 선비, 상근기라고 하는 말보다는 선비 사士자를 써서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 아주 좋은 표현이죠.
상근기上根機는 한번 해결함에 일체一切를 다 마친다. 그말이예요.한 번 결단함에 또는 한 번 해결함에 일체를 다 마치고
삼신사지三身四智 또는 팔해육통八解六通 팔해탈八解脫 육신통六神通 바로 앞에 있었던 그런 내용들 그게 이제 우리 마음 가운데 체중원體中圓이고 심지인心地印이라고 했잖습니까
법보와 삼신三身과 또 네가지 지혜가 우리 신체 가운데 우리 본체 가운데 원만히 다 구족돼 있고 또 팔해탈八解脫 육신통六神通이라는 것도 우리 마음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 그것을 한번에 다 터득하는 것 이건 이제 상근기上根機라는 거죠.
그다음에 중근기中根機나 하근기下根機는 다문다불신多聞不信이라그랬습니다.
많이 듣고 해도 많이 믿지를 않는다. 글자대로는 그렇죠. 많이 들어도 들은 만치 다 믿지를 않는다 그랬습니다.
그 장자, 노자인가요 보면은
상사문도上士聞道에 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상사가 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중사문도中士聞道에 중근기가 이제 도를 들으면은
약존약망若存若亡이라 있는가 없는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불교의 이야기를 듣고도 들은 대로 그대로 열심히 행할 줄 아는 사람은 그거는 상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학식이 많다 뭐 어떻다 그런 건 불교에서는 하등의 관계가 안되는 거죠.
이런 그 이치를 듣고, 그 이치가 그냥 수긍이 가고 마음이 끌려서 열심히 행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은 상근기고
중근기 하근기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이제 머뭇거려지는 사람은 이제 중근기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사문도下士聞道에는 대소지 大笑之라
하근기가 들으면은 크게 비웃는다. 이제 그런 말을 했어요.
노자 도덕경에 있는 말인데
하근기下根機가 불소不笑면 불소不笑면 부족이위도不足以爲道니라. 하근기가 비웃지 아니할 것 같으면 족히 도가 되지 않는다. 하근기에게 까지도 그렇게 도가 이해되기를 바랄 거는 아니라는 거죠. 또 그렇게 이해 될 수도 없는 것이고
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기서도 이제
본래 우리 마음 가운데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지만은 그것을 중하근기들은 잘 믿지를 않는다 이런 뜻입니다.
불교 공부를 해서 또는 불교를 믿어서 뭐 성불을 한다, 견성을 한다, 해탈을 한다, 열반을 증득한다 등등 여러가지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것을 영가스님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 불교 수행, 불교공부란
단자회중但自懷中에 해구의解垢衣라 그랬어요.
다만 스스로 마음 가운데 있는 때 묻은 옷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구의垢衣 때묻은 옷이라고 하는 것은 무명이나 번뇌나 이런 걸 말하는 것이고 또 무명이니 번뇌니 하는 것이 뭔가 그야말로 옷에 때가 묻어 있듯이 그렇게 묻은 것은 사실은 아닙니다. 편의상 표현하자니 그렇지
이건 어떤 미망이고 착각이예요. 미망과 착각을 무명이라고 하고 번뇌라고 합니다.
번뇌가 어떤 덩어리가 이렇게 지어서 있거나 무명이라고 하는 것이 뭐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려서 닦아내야 할 그런 것으로 있는 게 아니예요. 우리가 그런 이치를 잘 모르는 것, 그것이 무명이고 번뇌입니다.
절대 무명이라고 하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게 아니고 번뇌라고 하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게 아니예요.
그러기 때문에 비유컨대는 수억만 년의 어둠이 있는 그 어떤 동굴이 있다고 칩시다. 누구도 한 번 들어가 보지 못한 그 동굴은 수억만년의 세월동안 어두웠죠. 그런데 거기다 전기를 가설해가지고 한순간에 스위치를 올리면은 순간에 그 어둠이 다 사라집니다.
수억만년의 세월 동안 어두웠다고 해서 그 어둠이 천천히 뭐 한 시간이 걸리거나 열흘이 걸리거나 그렇게 시간을 요하지 않습니다. 밝아지는데요.
왜그런가 어둠이라는게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이 무명이니 번뇌니 하는 것도 역시 그렇게 알아야 합니다. 절대 이거 뭐 갈고 닦고 손질하고 이렇게 해서 하나하나 없어지는 그런 것이 무명이 결코 아니예요.
그래서 육조스님하고 신수스님하고의 그런 어떤 견해 차이 때문에 결국은 신수스님이 정통 법맥을 잇지 못하고 북방에서 그렇게 크게 당대 이외에는 크게 빛을 못 본 이유가 거기 있지 않습니까 그 뭐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하여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라
때때로 부지런히 갈고 닦아서 때가 끼지 않게 하여라.
그러니까 무명과 번뇌가 뭐 때처럼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자꾸 끼고 하는 것으로 그렇게 착각한 것이죠.
육조스님은 깨닫고 보니까 그런 것이 아니다 이거지.
하초야진애何處惹塵埃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한물건도 없는 그 자리에 무슨 때가 끼겠느냐 이거예요.
한물건도 없다고 하는 것은 무명 번뇌도 한 물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아야 되요. 이런 문제를 뭐
번뇌다 무명이다 때묻은 옷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얼른 머리에 떠올리기를 그런 것이 실재하는 냥으로 그렇게 떠올리는 거 이게 참 큰 착각이거든요.
바로 이런 그 착각이 말하자면 번뇌라면 번뇌고 무명이라면 무명인 것입니다.그래 그것만 없으면은 그대로 깨달음이지요.
수능향외과정진誰能向外誇精進가
어쨌든 그것을 뭐 때묻은 옷을 벗어버리는 것인데 그것은 자기의 일이야.
누가 능히 밖을 향해서 자기의 공부를 자랑하겠는가
정진을 자랑하겠는가 그 정진 자랑할 일이 아니죠.
예를 들어서 꽃이 피면 봄이 와 있는 거죠. 굳이 뭐 봄봄 할거 뭐 있습니까. 이미 봄은 와 있는데. 내가 봄이다 봄 왔으면 내가 봄이다 하고 뭐 봄이 자랑하는 거 봤습니까
수능향외과정진誰能向外誇精進가
참 아주 좋은 말이죠. 우리가 이 자기가 뭐 잘하는 일 이런 것들 뭐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을 잘 다스리고 잘 관리하고 살림을 잘 살면요, 그 뭐 가족들 있는데 굳이 자랑 안해도 저절로 느끼게 돼 있어요.
그걸 자랑을, 쫌 했다고 자랑자랑 해싸으면 그건 인제 못봐주죠. 그걸 소위 불교에서는 상相낸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정진의 입장 또 깨달음의 입장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송곳을 주머니에 넣어 놓으면 어떻습니까.
저절로 그 뾰족한 끝이 밖을 밀고 나오죠. 그 주머니에 송곳 들어있는 줄다 알아요 나중엔.
그와 같이 우리 공부가 이제 그렇습니다.
웃지 못 할 이야기인데 어떤 토굴에 사는 스님이 평소에 이렇게 늘 게으르다가 저 밑에 이제 산어귀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은 얼른 방에 들어가서 정진하는 모습을 따악 취하고 마당에 가까이 와서도 모른 처억 하고 앉아있다하는 그런 소리 우리 지대방에서 많이 듣는데 참 뭐 사람의 근기가 여러가지다 보니까 그런 재밌는 일도 있습니다.
단자회중但自懷中에 해구의解垢衣언정 다만 스스로 마음 가운데 때묻은 옷을 벗어 버릴지언정 누가 능히 밖을 향해서 자기의 정진을 자랑하겠는가
이런 말씀 속에는 사실 그 영가스님의 어떤 개인사정, 그 아주 세세한 그런 그 문제들이 사실은 많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은 천태종 계통에서 천태지관을 많이 익히고 또 워낙 뛰어나신 분이라서 천태종에서 법을 계승해서 크게 천태종을 일으킬 그런 인물로 손꼽혔는데 결국은 선종의 어떤 그 육조스님의 법을 잇고 선종사람이 이제 됐는데 그러다보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은 공격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걸 뭐 굳이 당신이 깨달음에 대해서 자랑한다고 그 이해될 일도 아니고 또 자랑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자랑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다음 밑에 글이 이제
종타방從他謗 임타비任他非하라
파화소천도자피把火燒天徒自疲로다
그랬어요.
다른 사람들이 비방하는데 맡겨두고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는 데 그르다고 하는 데 맡겨두어라.
그러니까 깨달음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다만 눈에 보이는 천태종 쪽에 있다가 선종으로 갔다라고 하는 그 표면적인 것만 가지고 얼마나 비방이 많았겠습니까. 뭐 시시한 사람같았으면 비방도 따르지 않죠. 워낙 뛰어나신 분이니까 그렇게 비방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방들을 이겨내느라고 참 그 눈물겨운 그런 그 어떤 고비가 있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은 영가스님은 어머님을 모시고 계셨구요 또 누님도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절에 제대로 떳떳하게 살진 못하고 큰 절 옆에서 이렇게 겨우겨우 토굴 비슷한 데서 그렇게 아마 살았던 거 같애요.
그러니까 이 영가스님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었는데 천태종에서 선종으로 왔지, 선종을 좋아했지 그래 결국은 선종으로 와 버렸죠. 그리고 또 어머님을 모시고 있고 누님을 모시고 있어노니까 아 그 참 여러가지 출가한 승단에서는 그런 일들이 아주 좋게 볼수도 있어요 사실은 좋게 볼 수도 있지만은 누군들 뭐 부모 없으냐 왜 출가한 사람들끼리 모여사는데 저 혼자만 효자라고 부모를 모시고 그렇게 절에서 살면은 어떻허느냐 그 비난을 충분히 받을만 해요.
그래서 사찰에서는 보면은 아직 세속적인 그런 인연 물론 불가피한 인연이고 마지못한 그런 인연이고 부모라고 하는 인연은 지중한 인연이지만은 그 인연을 끊지 못하고 이렇게 아직도 사찰에서 그렇게 모시고 있다고 하면 이건 충분히 비난 받을 일이 됩니다.
스승인 육조스님이 어떻습니까. 혼자 나무 팔아서 노모를 모시고 있다가 그 노모를 집에다 그냥 두고 혼자 출가했잖습니까 당신의 스승은 그랬거든요. 사실 육조스님도 노모를 모시고 절에 와서 살아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잖습니까 출가단체라고 하는 것은 출가인들의 엄격한 규칙이 있고, 어떤 그 출가인들만이 사는 그런 풍토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그 풍토에 안맞거든요. 그래서 이제 수많은 비난을 철없는 사람들의 비난이겠죠만은 그런 그 수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그런 문제를 정말 스스로 소화해 내느라고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하고 있는 거 같애요. 안 그러면은 이런 이야기 그렇게 길게 할 까닭이 없습니다.
몇 구절이 이제 그 문제예요.
남이 비방하는 문제에 대해서 자신은 이렇게 이렇게 소화했노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영가스님 뿐만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우가 다르고 정도의 차이가 물론 있죠만은 다 겪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는 것이 불교적인 입장이고 그것이 가장 현명하게 수용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이런 데서 우리가 한 번 눈여겨 둘 필요가 있어요.
여기에 이제
종타방從他謗 임타비任他非
저 사람이 비방하는 데 맡겨두고 저사람이 다른 사람이 그르다고 하는데 비非자는 그르다 하는 뜻이죠 방謗자는 비방할 방謗자는 그르든 옳든간에 무조건 비방하는 것이고 비非자는 그르다는 뜻입니다. 아닐 비非자 틀릴 비非자니까요. 그르다고 하는데 맡겨둬라 그 사람이야 그렇게 하든지 말든지.
파화소천도자피把火燒天徒自疲로다
그래봤자 그사람이 나를 비방하고 욕을 하고 하더라도 그것은 불을 들고 하늘을 태우는 것이다. 한갓 스스로만 피로할 뿐이다
그랬습니다. 횃불을 들고 하늘 태우려고 아무리 해봐야 하늘이 탑니까 어데.
그렇게 표현했어요. 아주 멋진 표현이죠.
파화소천도자피把火燒天徒自疲라 자기 자신에게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은 그동안 깨닫기 이전부터 비방을 들어왔을 테니까 지금 깨닫고 나서 상황을 보니 사실 이렇게 자기 자신은 마음에 걸릴 것이 없다라고 했지만은 얼마나 곤욕을 치뤘기에 이런 말씀을 하실까 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해 봅니다.
부처님도 참 비방을 많이 들은 분이예요. 우리는 뭐 대승불교에서 부처님이 아주 위대한 성자라서 하등의 뭐 남으로부터 욕들을 분이 아니고 비방 들을 분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주 비방 많이 들었습니다.
어떤 외도가 와서 그당시 인도의 어떤 종교적인 성자들이 참 많았거든요. 그런데 뭐 갑자기 어떤 젊은 성자가 턱 나타나서 대개 인도의 성자라면 뭐 60 70 80 이렇게 돼야 이제 큰소리치는 성자인데 아 부처님의 35세에 성도를 하셔가지고 35세 때부터 성자로 그렇게 추앙을 받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니까 새파란 젊은 사람들이 어디서 떡 이렇게 깨달음을 이뤘다 해가지고는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리구요 다른 종교를 믿다가도 글로 오고 그럼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기 제자들을 다 빼앗기고 자기 신도들을 다 빼앗겼으니 그거 가만있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 와가지고 그냥 삿대질을 하고 욕을 퍼붓고 별별 해꼬지를 하는 상황을 많이 겪었습니다.부처님도. 일일이 기록할 가치가 없어서 기록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래 부처님도 그런 말을 했어요.
자기를 향해서 비방하는 것은
바람을 향해서 흙먼지를 뿌리는 거와 같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서 흙먼지를 뿌리면은 뿌리는 사람쪽으로 당연히 다 돌아오죠 흙먼지가.
아주 부처님 다운 현명한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경전에 보면 피를 물고 상대방에게 뿌리는 거와 같다 그랬어요. 아주 섬찟하지요.
피를 물고 상대방을 향해서 뿌린다고 하는 것은
악담을 하고 비방을 하고 남을 욕하고 하는 것을 흙먼지에다가 비유를 했다가 아주 심한 경우는 부처님도 피라고 까지 입에다 피를 무는 일이다 이렇게 아주 섬찟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피를 물고 상대를 향해 뿌렸지마는 그 피가 상대 옷에 튈 수도 있고 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거리가 멀면 전혀 관계가 없죠.
그러나 어떻습니까.
피를 문 사람 그사람의 입에는 이미 피가 한입 가득하다는 사실을요 그걸 부처님께서 일깨워주시는 거예요.
모든 비난하는 사람, 남을 향해서 비난하고 욕하고 악담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 몫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있죠.
어떤 외도가 와가지고 그러니까
자기 제자들을 많이 빼앗긴 사람이죠. 그리고 또 명성이 자꾸 높아지고 하니까 타종교의 지도자가 와가지고는 사정없이 욕을 하고 악담을 하고 그럽니다.
그걸 다 듣고는 이제
말씀다하셨습니까 하고 마지막에 묻지요
그래 말다했다고 하니까
예컨대 어떤 사람이 어떤 집에 방문을 했는데 그 집에서 좋은 음식을 많이 차려내왔다. 손님대접을 위해서, 그런데 그 손님은 마침 식사를 하고 왔기 때문에 그 집에서 차려놓은 음식을 하나도 들 수가 없었다. 그랬을 경우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겠는가 그러니까 이 외도가 뭣도 모르고
아 그거야 음식차려놓은 사람것이지 누구 것은 무슨 누구겠느냐고 이렇게 이제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는 것이죠.
그래 당신은 나에게 훌륭한 음식을 차리듯이 아주 온갖 비방과 악담을 했는데 나는 그것이 하나도 내 마음에 들어오지가 않았어. 그러니까 그 모든 비방과 악담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는 참 역시 이제 아주 점잖으신 표현과 아주 현명한 그런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부처님은
여기는 이제
파화소천把火燒天도자피徒自疲라
그랬어요. 불을 잡아서 하늘을 태우는 것이라 그일은 결국 스스로 피로할 뿐이다.
아문흡사我聞恰似 음감로飮甘露하야
소융돈입銷融頓入부사의不思議로다그랬습니다.
나는 흡사 그 욕설과 비방의 말씀이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다.
소융돈입銷融頓入부사의不思議로다
그 비방과 욕설이 녹고 녹아서 불가사의한 어떤 해탈의 경계에 녹아들어간다.
이건 뭐 살다 보면은 참 그렇죠. 남이 비방을 하고 나에 대해서 음해를 하고 욕설을 하고 괜히 시기질투하고 그런 것 다 압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평소에는 참 섭섭하고 못마땅하고 속도 상하고 그런데 한생각 돌이켜 보면요
저것이야말로 진짜로 나에게 덕이 되는 일이구나
내 수행과 내 어떤 그 마음의 폭을 저런 일을 통해서 얼마든지 내가 마음의 폭을 넓히고 내가 수행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계기가 되는구나 전부 내한테 뭐 잘한다 잘한다 하고 그저 고분고분 하고 전부 칭찬만 하고 이런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수행이 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주 우리가 꼭 필요한 생각인데요.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잘 하는 것 그거 꼭 좋은 건 아니예요.
뭐 충언忠言은 역이逆耳나 이어행利於行이라고
충성스러운 말 아주 충고의 말은 귀에 거슬리죠. 그렇지만 우리가 실천하는 데 살아가는 데는 아주 이로운 것입니다.
良藥은 고어구苦於口라 그랬죠.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은 몸에는 아주 좋죠. 건강을 북돋워주는 그런 이치가 있듯이
충고의 말, 일단 귀엔 거슬리지만 그것이야말로 내 자신을 성장시키고 나를 사람되게 하는데 아주 좋은 것이죠.
유교에는 또 그런 말이 있죠.
도오선자道吾善者는 시오적是吾賊이오
도오악자道吾惡者는 시어사是吾師라.
나를 훌륭하다 좋다 뭐 잘난 사람이라고 자꾸 추켜주는 것은 나의 적이다.
그런데 도오악자道吾惡者는 시오사是吾師라
나를 나쁘다 못난 사람이다 잘못하는 게 많다라고 이렇게
충고를 자꾸 해주는 사람 그 말은 정말 나에게 스승이다 그랬습니다. 틀림없는 말이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불교를 통해서 이것저것 다 그냥 덮어두고요, 자신을 비방하고 모함하고 헐뜯고 하는 그런 것 세상 살면서 그거 안듣는 사람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뭐 누구로부터 또 내가 잘못해서 듣든 잘했는데도 듣든 간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뭐 못한다 비방하는 소리 욕설 뭐 이런 거 안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불교에서 모든 것 다 제쳐두고라도
이 문제 하나만 제대로 우리가 수용을 하고 우리 마음에 잘 그런 그 받아들이고 해결할 줄 아는 그런 그 어떤 그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은 이건 뭐 보통 그 소득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소득이예요. 뭐 불공해가지고 뭐 큰 복짓고 공덕 돌아오고 하는 것 이게 문제가 아니죠.
그래서 이것은 영가스님께서 개인의 어떤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을 한다는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 할 것인가.
자기를 음해하고 비난하고 욕하고 비방하고 잘못했다고 하는 이런 것들 늘 우리가 겪는 일인데 이러한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여기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새겨보면요
上士一決一切了 (상사일결일체요)
상사는 한번 해결함에 일체를 다 마치고
中下多聞多不信(중하다문다불신)
중근기 하근기 중사 하사는 많이 들어도 많이 믿지를 않는다.
但自懷中解垢衣(단자회중해구의)
다만 가슴 가운데에 스스로 가슴 가운데에 때문은 옷을 벗어 버리거니
誰能向外誇精進(수능향외과정진)
누가 능히 밖을 향해서 정진을 자랑할 것인가.
從他謗(종타방)
다른 사람이 비방하는데 맡기고
任他非 (임타비)
다른 사람이 그르다고 하는데 맡겨 두어라
把火燒天徒自疲(파화소천도자피)
마치 불을 잡고 하늘을 태우는 것이라 한갓 스스로 피로할 뿐이도다.
我聞恰似飮甘露(아문흡사음감로)
나는 그 비방하는 말을 들으니
나는 들으니 흡사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아서
銷融頓入不思議(소융돈입부사의)
녹아서 불가사의한 경계에 몰록 들어가는 도다.
다 들어가는 도다 불가사의한 경계가 바로 수용하는 마음 자세죠 그것을 이제 부사의 경계라 그랬습니다.
증도가 공부 오늘 저녁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법석을 빛내주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리:꽃물들다)
첫댓글 불교의 4대 기념일-1)음)4월8일 탄생일,2)2월8일 출가일,3)12월 8일 성도재일,4)2월 15일 열반일: 離心中愛를 是名沙門이요不戀世俗을 是名出家니라 (마음 가운데 애착을 떠나면 그것이 출가 사문이요,세속을 그리워 하지 않는것을 출가라 한다-원효 발심 수행장).上士(상근기)라고 하는 것은 한번 해결함에 일체를
다 마치고(三身四智體中圓 八解六通心地印 ) 중근기나 하근기는 많이 듣고 해도 많이 믿지를 않는다.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大笑之(노자 도덕경)-上士가 道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중근기가 들으면 머뭇거리며 하근기가 비웃지 않을것 같으면 족히 道가 되지 않는다.
깨달음은 가슴에 때묻은 옷(번뇌 망상)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누가 밖을 향해서 精進을 감히 자랑할 것인가? 꽃이 피면 저절로 봄이 와 있는 것이다.비난하는것은 불을 잡고 하늘을 태우는 격이라.스스로 피곤할 뿐이다.비난을 듣는 것은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으며 그것이 다 녹아 不思議 경지에 들어간다..
두번 들을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씁쓰리 돌아서야죠. 아? 들리네요.
문명과 번뇌가 실체가 있는것 아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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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 습니다. 모든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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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난하고 비방하는 상대방을 내 마음속에 잘 수용하고 받아내면 엄청난 공덕이 된다. _()()()_
良藥은 苦於口라...감사합니다. _()()()_
離心中愛를 是名沙門이요, 不戀世俗을 是名出家라...道吾惡者는 是吾師라 ...감사합니다._()()()_
아문흡사(我聞恰似) 음감로(飮甘露)하야 소융돈입(銷融頓入)부사의(不思議)로다.... 나는 흡사 그 욕설과 비방의 말씀이 감로수를 마시는 것과 같다. ..... 큰스님 감사드립니다._()()()_ 꽃물들다님! 수경심님! 미륵골님 감사드립니다._()()()_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감사합니다._()()()_
감사하다는 말씀이외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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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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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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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봄은 봄이 왔다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精進無相 但自懷中解垢衣
下士聞道大笑之 下根機不笑 不足以爲道
듣기좋은말은 독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약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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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큰 스님 법체 평안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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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把火燒天徒自疲(파화소천도자피)...마치 불을 잡고 하늘을 태우는 것이라 한갓 스스로 피로할 뿐이도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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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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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스님... 건강하세요... _ () () () 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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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