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공작 아저씨가 떠나다.
공작 아저씨는 분하다며 작은 가슴 앞으로 양손을 펼치면서 흥분했다. 이웃에 살고 있는 부동산 사장에게 청공작 계사를 지은 땅은 반드시 사겠다고 말을 했고 그렇게 되도록 하겠노라고 약속했던 일을 상기하면서 속상해서 어쩔 줄 모른다. 매수 할 의사를 분명히 했을 때, 그러마고 걱정 붙들어 매라고 그랬는데,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또 다른 빈터에도 ‘매매 된 토지, 건축공사를 할 예정이오니 모든 법적 책임을 질수도 있습니다. 연락처 010-3620-0000’라는 팻말이라니! 이 무슨 황당한 날벼락이란 말인가. 공작 아저씨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말하는 동안 얼굴색도 점점 창백해졌다. 저러다 무슨 일 생길까 걱정이 되었다. 말하는 동안 내내. 여태 그런 얼굴은 본적이 없어서 뭐라고 위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했다.
하루 밤 자고 나면 흉흉한 소문만 무성했다. 결론은 부동산 사장이 나쁘다는 것이다. 공작 아저씨와 이웃에 살면서 친하게 잘 지냈다는데, 그래서 철썩 같이 믿고 ‘토지를 소유할 거라’는 믿음 하나로 빈터에 청공작의 집을 짓게 되었을 것이다. 청공작의 집도 거대한 공사지 않는가! 공작 아저씨는 처음 이사 왔을 때 부동산 사장이 소개한 전셋집으로 처음으로 만난 이웃이었다. 멀리 사는 일가친척보다 이웃이 된 부동산 사장과 늦은 시간 맥주도 한 잔 건네면서 터놓고 친밀하게 지냈을 것이다. 공작 아저씨와 부동산 사장은 두 집 건너에 떨어져 있는 주택이라 직선거리로 가까워 창문 열고 부르고 서로 대답 할 수 있는 지척의 거리였다. 두 집 사이는 아직 빈터로 남아 있었다.
공작 아저씨는 인터넷으로 사업을 하는 신세대로 이사 온 이 마을이 맘에 쏙 들었다고 했다. 평생 살고 싶은 곳이라고 그래서 카페도 만들었다. ‘살기 좋은 석성산 아래, 이웃도 공기도 아주 좋아요.’문구가 펼쳐진다. 공작 아저씨와 부동산 사장은 카페를 만들어서 관리하여 방문객도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토지 매매 문의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그곳은 어디예요?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요.’ 하면서 온라인으로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공작 아저씨는 이곳으로 이사왔는데 참 좋다며 느끼는 대로 올렸다. 때문에 좋은 동네라는 소문이 서울에도 났었다. 그래서 이곳에 토지를 구하고자 주말에는 방문객 발길이 많아졌다. 그곳에 살고 싶다는 글과 관심은 계속 쏟아졌다. 공작 아저씨의 마을 사랑 카페 홍보효과는 이렇게 훌륭했다. 부동산 사장은 저절로 전원주택지가 소개되는 성과도 얻게 되었다. 꽤나 짭짤했을 거란다. 물론 어디까지 진실이고 소문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믿을 만한 이야기처럼 바람을 타고 흘러 다녔다.
어느 날 갑자기 공작이 살고 있는 토지 바로 앞 블럭에도 일본식 주택 샘플하우스 공사가 빠르게 시작 되었다. 원자재와 기술, 건축 인부들 까지 일본산이라 했다. 현장에는 바로 그 부동산 사장이 떡 버티고 있었다.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하면서, 주인장처럼 공사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높은 값을 받기 위해서 공작 아저씨를 밀어내고 다른 사람을 소개하지 않았을까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쑤근거렸다.
생전 처음 본 커다란 건축 자재가 실린 화물 츄럭이 부산 넘버를 달고 하역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편에서는 비디오가 하루 종일 촬영 되고 있었다. 영화 촬영장을 방불하게 했다. 차량 위에서 삼각대로 고정해 놓고 비디오를 촬영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배치되어 있었다. 기초 공사는 칸칸이 벌집 모양으로 특이한 형상이었다. 여태껏 그런 기초 공사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시공이었다. 일본 사람의 인부들은 머리에 헬멧을 쓰고 통 넓은 바지를 입고 7~8명 씩 움직이는데 기이하게 보였다. 마치 일벌들이 일사분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이 느껴졌다. 점심식사 시간은 보통 건축현장에서 한식을 배달하거나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짬뽕으로 군만두는 덤으로 따라오는 식사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수원에 있는 홈플러스에서 점심을 주문해서 먹었고, 건축 현장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다고 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일본 건축문화가 궁금해졌고 알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언제 일본에 가는지 또 다른 팀이 언제 오는지 많은 정보가 춤을 추었다. 모든 게 신기하고 궁금했다. 못 하나도 일본산이다. 일본에서 설계하고 조립을 하기 때문에 기초공사만 끝나면 바로 바로 진행되어 한 달 정도면 입주가 가능하고 남는다고 한다. 지진에 견디는 내진 설계라는데 건축용어도 생소했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청공작을 비롯하여 동물가족의 안위는 걱정도 하지 않고 잊은 듯 했다. 처음 동물이 해체 될 거라고 했을 때만해도 마을 사람들은 해체는 절대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공작 아저씨와 마을 사람들은 토지주를 만나 설득 하도록 거들겠다고 하더니 의견은 반반으로 갈라졌다.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들의 인심은 마을에서 동물을 기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강아지라면 몰라도 말이다. 이제 동물의 운명은 여기서 끝이 날 것 같다. 반대는 한 사람만 강하게 나와도 성사되는 일은 본 적이 없었다. 또 옆 불럭 코너에서는 경제적인 땅콩주택을 짓는다고 소문이 돌았다. 얼마전 귀엽게 지었다고 소개 되면서 공사비가 저렴해요. 한 집을 두 집으로 내 아이 마음대로 뛰고 놀 수 있는 집이라고 책과 TV에서 소개 되었다. 똑같은 모델로 공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바닥을 파지 않고 바닥에서 바로 바닥 콘크리 공사를 하면서 조립식 나무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청공작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동물의 집은 해체되어 흔적도 없어졌다. 형체만 없어진 게 아니고 사람들 마음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된 거 같았다. 공사 소음으로 ‘아빠’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청공작이 살았던 빈터에도 어김없이 목조와 황토로 웰빙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우리 마을 길에 더 이상 ‘아빠’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빈터도 없어지고 건물만 쑥쑥 올라갔다. 유치원 아이들도 더이상 가던 갈을 멈추고 웃던 마을이 아니었다. 건축공사로 먼지가 풀풀 날렸다. 세멘트먼지라서근처 농작물도 피해가 있었다. 현관문은 굳게 닫히고 청공작 아저씨는 호미, 삽, 개집을 살았던 전셋집에 두고 아파트로 이사 갔다. ‘밥이라도 한 번 먹자’는 인사만은 서로 잊지 않았다. 동물과 매일매일 대화하고 공작 아저씨와 행복한 날들은 이제 기억속에만 남았다. 대신 내진 설계, 최신공법으로 지은 일본식 집, 황토와 목조로 된 웰빙 주택, 경제적인 땅콩 주택의 신축으로 원래의 평온을 찾은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웰빙 건축들이 생기지만, 좋은 이웃 공작 아저씨 한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랑가 모를랑가! 이제 떠나간 동물 가족은 우리 마을에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한편 부동산 사장의 얼굴은 윤기로 빛나고 있지만 말이다.
2013. 4. 25 목요일
첫댓글 공작아저씨 정말 속상하셨겠어요. 이부동산 아저씨가 먼 훗날 후회하지 않을까요. 돈보다 더 중요한것을 버린 것에 대하여 부끄럽게 생각하고....
핵심을 잘 이해 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불 보듯 뻔하잖아요. 자기 잇속만 챙기고 서운하게 한 사람 말 없이 떠난 공작 아저씨 속 마음 야생화님의 위로가 힘이 될거예요. 답글에 감사^^*
도그맘님, 소설적인 것과 수필적 느낌이 뒤섞여 좀 혼란이 오네요.
처음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인 듯 하다가 나중엔 나의 시선으로 본 수필 같고요.
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공작 아저씨와 부동산 중개인 관계, 그 이후 변모된 마을의 모습을 내 느낌을 섞어 간결하게 수필 형태로 쓰면 더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