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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 大乘正宗分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降伏其心이니
所有一切衆生之類인 若卵生과 若胎生과 若濕生과 若化生과 若有色과 若無色과 若有想과 若無想과 若非有想 非無想을 我皆令入 無餘涅槃하야 而滅度之호리니
如是滅度 無量無數無邊衆生호대 實無衆生 得滅度者니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하면 卽非菩薩이니라
반갑습니다.
오늘 5월 23일 화요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 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금강경 법문 大乘正宗分 第三(대승정종분 제삼)
세 번째 分(분) 大乘正宗分 할 차례입니다.
저희들이 금강경을 이렇게 교재를 삼아서 공부를 합니다. 불교에는 역사도 깊으려니와 성인의 반열에 오른 부처님이나 보살이나 역대 조사스님들은, 공부를 물론 뭐 선근이 있어서 쉽게 하신 분도 계시지마는, 아주 어렵게 대개 했습니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런 재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불교 궁극의 경지라고 하는 것. 또 깨달음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다른 어떤 뭐 돈벌이를 위해서 하는 그런 어떤 노력이나, 예술분야의 노력이나 기타 학문분야의 노력하듯이 그런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불교 안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역대 부처님. 보살님. 그리고 조사스님들. 이런 분들의 노력과 그 분들이 이르러 가는 경지라고 하는 것은 참 대단한 경지입니다.
저희들이 경전이나 어록을 통해서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은 저는 뭐 깊은 뜻을 통해서 우리들의 인생의 눈을 뜨고, 지혜를 얻는 것. 이것이 뭐 첫째 소득이라고 하겠지요.
그 못지않게 뜻이야 제대로 알든 모르든 또 한 가지 흐뭇하게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은, 성인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불교에서 소위 성인의 반열에 오른 역대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이나 조사스님들의 그 경지라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경진데 그런 경지를 터득하신 조사스님들 성인들 이런 분들과 만나는 그 기회가 된다고 하는 것. 뭐 언제 우리가 만날 수 있겠습니까?
경전을 통해서 또 어록을 통해서 그분들과 만나고 그분들이 이르러 가신 그 경지에 천 분의 일. 백 분의 일이라도 우리가 엿볼 수 있고, 그것을 어느 정도 우리가 음미할 수 있고, 또 그 나름대로 비록 잘못 해석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이렇게 해석해보고 저렇게 해석해보고, 또 내 나름대로 나에게 유리할 대로 그것을 해석해서 그 나름대로 또 감동을 하고요. 이러한 것이 참으로 행복한 일이구요. 다행스러운 일이고, 복이 많은 일이다.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런 성인들을 어디서 만나겠습니까?
우리가 경전 덮어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뭐 우리하고 비슷한 사람들. 나보다 못한 사람들. 나보다 좀 낳다한들 뭐 몇 푼어치나 낳겠습니까.
그런 비슷한 사람들끼리 類類相從(유유상종)으로 만나서 기껏 풍기는 향기가 모두 그만그만하고 나오는 말들이 그만그만하고 또 생각들. 또 생활들이 엇비슷하니까 하루 종일 만나서 잡담해 봤자 사실 비슷비슷 하거든요.
그런데 경전을 통해서 성인을 만나고, 성인의 생각이 어떤가를 우리가 가늠해 보고, 또 그 나름대로 그 생각을 분석해 보고, 그 말씀을 이리 해석해 보고 저리 해석해 본다는 것. 이 참 대단한 일이예요.
우리 불교 공부를 한다는 것. 경전이나 어록을 통해서 공부한다는 것은 그런 소득이 있습니다.
언제 우리가 하루 중에 그런 시간을 갖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그 참 많고 많은 팔만대장경이 있는데, 그런 공부할 것이 산처럼 쌓여 있는 그것이 책장을 펼칠 때마다 그런 훌륭한 우리가 성인들을 만날 수 있는 것. 뭐 그 분의 경지를 천 분의 일. 만분의 일만이라도 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입니까.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해요. 경전을 펼쳐서 그 많은 가르침 중에서 한 마디만 이해가 되고, 한 마디만 건진다 하며는 뭐 그것만으로도 참 큰 복이다. 훌륭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 성인의 가르침을 한 권에서 한마디만 마음에 새길 수 있고, 거기에서 감동을 하고, 어떤 흐뭇함을 느낀다면, 그 대단한 일이지요.
그래서 경전의 깊은 뜻을 우리가 이해해서 거기에서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 뭐 가장 큰 목적이겠지마는, 설사 깊은 뜻은 모르더라도 부처님을 만나고, 수보리를 만나고, 또 조사스님들을 만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 대단한 행운이다. 하는 마음제세를 가지고 우리가 경을 대하며는 훨씬 소득이 크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그 세 번째 大乘正宗分(대승정종분).
大乘이라고 하는 말은 큰 가르침! 위대한 가르침! 최상의 가르침! 이런 뜻입니다. 大乘!
물론 반대말로 小乘(소승)이라는 말도 있고, 뭐 교리 상으로는 小乘敎(소승교). 大乘始敎(대승시교). 大乘宗敎(대승종교). 大乘頓敎(대승돈교) 一乘圓敎(일승원교). 뭐 이런 등등... 복잡한 표현이 있습니다만, 여기서 대승이란 최상의 가르침! 가장 위대한 가르침! 가장 큰 가르침!
正宗(정종). 바른 가르침! 그리고 또, 으뜸가는 가르침!正宗이란 말이 그런 말입니다.
바르고 으뜸이 되는 그런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불교의 그 많은 가르침 중에서 특히 또 금강경 한 권만을 가지고 생각하더라도 금강경 안에서 가장 위대한 가르침. 그리고 바르고 으뜸이 되는 가르침.
이것을 이 三分(삼분) 불과 몇 줄 안 되는 이것 속에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양무제의 아들. 소명태자가 참 아주 뛰어난 분이었다고 그래요. 불행히 32세에 일찍이 돌아가시긴 했습니다마는, 4살 때 이미 모든 글을 통달해서 깊은 그런 글을 읽고 할 수 있었다는 그런 기록이 있는 분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사람 몇 생 살 것 다 살다 가신 그런 분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그런 명철하신 분이 이 금강경을 쭉 살펴보시고, 바로 이 대목을 大乘正宗分 이라. 이렇게 제목을 붙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가장 큰 가르침. 그러면서 바르고, 가장 큰 가르침에서 바르고 으뜸이 된다.”이렇게 해석하면 더 좋겠지요.
대승에서 바르고 으뜸이 되는 그런 내용이다. 무엇이 그런 의미를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가.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佛告 須菩提하사대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降伏其心이니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고하사대 여러 보살 마하살들이 응당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을 지니.
앞에는 보살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摩訶薩(마하살)이라 하는 큰 보살. 위대한 보살. 이러한 뜻으로 했습니다.
뭐 육조스님은 가끔 善知識(선지식)아! 대중들을 향해서 그렇게 부르지요.
또 부처님도 보살들이 “어떻다.”“ 어떻다”라고 하다가 또 부처님이 여기에는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아주 격상시켜서 부르고 있습니다.
뭐 지금 이 대목에서 그렇게 보살마하살이라고 한데는, 또 부처님의 어떤 기분과, 또 깊은 의미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항복받아야 된다. 應(응)자는 꼭 이렇게 항복받아야 된다. 그랬어요.
저 앞에서 먼저 云何應住(운하응주)며 云何降伏其心(운하강복기심). 두 가지를 지난 시간에 질문했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항복 받는 것을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
질문은 住(주). 머무는 것. 사는 것을 물었지마는, 그 다음에 降伏(항복)받는 것을 두 번째 물었는데, 질문은 또 두 번째 질문부터 대답을 하게 돼 있어요.
이것이 참 묘하게도 국회나 종회 같은 데도 한가지의 그 어떤 한 가지의 안건에서 몇 가지의 질문이 있으며는, 최후의 질문부터 대답을 합니다. 그렇게 밟아 올라가요. 먼저 질문한 것을 마지막에 대답하게 돼 있더라고요.
그것도 또 이 경전에서 본받은 것인지 아니면 그게 순리인지 그렇습니다.
우리 법당에 들어갈 때도 어떻습니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이 제일 나중 나오죠. 제일 늦게 들어가는 사람이 제일 먼저 나오게 돼 있습니다. 뭐 세상 이치가 아마 그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大乘正宗分은 降伏받는 마음에 대해서 대답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실은 가장 큰 가르침의 바르고 으뜸이 되는 것.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
所有一切衆生之類(소유일절중생지류)
所有있는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 중생의 종류.
소위 九類衆生(구류중생) 아홉 가지 종류의 중생이라 그랬는데,
若卵生(약난생) 알로 태어난 것.
若胎生(약태생) 태로 태어난 것이나.
若濕生(약습생) 습기로 태어난 것이나.
若化生(약화생) 변화해서 되어난 것이나.
若有色(약유색) 형색이 있는 것이나.
若無色(약무색) 형색이 없는 것이나.
若有想(약유상) 또 생각이 있는 것이나.
若無想(약무상) 생각이 없는 것이나.
若非有想 非無想(약비유상 비무상)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이러한 것들을 이런 말인데 중생의 종류를 이렇게 쭉 세분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건 태어나는 모습. 사는 모습 그 다음에 그가 갖추고 있는 모습. 그런 어떤 형상이 있거나 없거나. 또는 그가 생각이 있거나 없거나 이런 표현들을 했는데, 이건 사람 이외의 것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고, 사람만 두고 하더라도 뭐팔 만 사천 종류지요. 어떻게 九類衆生(구류중생)뿐이겠습니까. 아 홉 종류뿐이겠습니까.
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도 있고,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도 있으며, 이런 집안의 태생과 저런 집안의 태생. 동양사람 서양사람. 검둥이 흰둥이 누런 둥이 뭐 얼굴색이나 얼굴 생김새나 사는 지역에 따라서 민족에 따라서 국가에 따라서 각양각색이이지요.
또 우리나라만 치더라도 뭐 멀리 외국까지 생각할 필요 없이, 우리나라만 치더라도 얼마나 各樣各色(각양각색)의 그 중생입니까?
별별 성격과 별별 모양과 별별 생각과, 별별 그런 업과 별의별 어떤 그 思考(사고)와, 그 참 정말 생각해 보면 각양각색 이예요.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가정도 이렇게 보면 그 집이 그 집 같고, 이렇게 우리가 대강 뭐 거의 사람 사는 게 비슷하다 생각이 들지마는 비슷한 걸로 보면 비슷하겠지요.
그러나 세밀하게 살펴보면요? 다 다릅니다.
그 집 분위기가 다 다르고 사는 방법이 다르고, 뭐 반찬 해 먹는 것도 다르고, 일체가 다 분위가가 달라요. 공기도 다르고 그 참 묘한 것이지요.
달라야 되게 돼 있는가봅니다. 달라야 되게끔 돼 있으니까 또 다른 것이고...
그런 각양각색의 성향의 사람들. 각양각색의 수준의 사람들. 각양각색의 습기와 습관과 욕망과 성격과 이런 것이 각각 다른 그런 사람들을.
我皆令入無餘涅槃(아개령입무여열반)해서 而滅度之(이멸도지)라.
내가 다 그들을 無餘涅槃(무여열반)에 들어가게 한다.
無餘涅槃. 남음이 없는 열반. 그러니까 열반에 든다 하더라도, 열반이 좀 부족한 열반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건 부족함이 없는 열반. 그 대열반 이렇게 이해하면 돼요. 뭐 無餘涅槃(무여열반)이라고 해서 반대로 해서 有餘涅槃(유여열반)이라는 이런 표현을 하는데, 무여열반 유여열반 교리적인 표현 필요 없이, 여기는 조금도 남음이 없는 최상의 열반. 대열반에 들게 했다.
그래서 그들을 滅度(멸도) 했다. 滅度. 멸도라는 말은 흔히 말하는 濟度(제도)라는 말과 똑 같습니다. 제도하리니. 왜 제도라고 하는 말은 그대로 글자 두자가 다 건너간다는 뜻이고, 멸도라고 하는 것은 煩惱(번뇌)를 消滅(소멸)하고 건너간다.
그런 뜻이 포함 되어 있어서, 제도란 말보다도 뜻이 더 많다고 봐야겠지요. 멸도라는 것이...
결국 뜻은 같습니다. 소멸하고 건너간다고 하는 것은 번뇌의 소멸. 온갖 고통의 소멸, 문제의 소멸. 이것을 다하고서 건너간 입장. 다 그것을 끝낸 그런 상태에서 살게 할 것이다. 이 말이지요.
아시는 대로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번뇌가 다 사라진 것. 온갖 고통이 다 사라진 상태.
온갖 문제가 다 사라진 것. 번뇌가 사라지고, 고통이 사라지고, 문제가 사라지고, 그러니까 멸도라는 말이 딱 맞아요. 제도라는 말보다는...
그래서 제도라는 말을 쓸 자리에 여기다 멸도라고 이렇게 썼습니다.
번뇌가 다 사라진 그런 의미가 많이 포함되어 있고, 또 이 금강경을 結集(결집)할 그 시기에는, 濟度(제도)라는 말보다는 滅度(멸도)라는 말이 휠씬 더 흔하게 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표현했다고 봅니다. 뭐 어쨌거나 이들을 다 제도했다. 각양각색의 중생들을 내가 다 제도했다.
如是滅度(여시멸도) 無量無數無邊衆生(무량무수무변중생)호대 實無衆生得滅度者(실무중생득멸도자)니라.
이와 같이 無量無數無邊衆生을 제도했지마는, 如是滅度 이와 같이 滅度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한량없고 數無. 수가 없고 가이없는 중생을 내가 제도 했으되, 멸도 했으되, 實無衆生得滅度者니라
실은 없다. 중생들이 멸도를 얻은 사람들이 없나니라.
實無衆生得滅度者(실무중생득멸도자)니라. 이것이 깊은 뜻이 있습니다.
중생들을 부처님이 다 멸도를 했는데, 제도를 했는데, 실은 제도를 얻은 중생이 한 사람도 없다 이런 말 이예요.
이게 이제 大乘正宗(대승정종).
큰 가르침의 가장 바르고, 가장 으뜸이 되는 내용이 바로 이말 한마디에 있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왜 중생들을 제도 했으되 제도함이 없는가? 사실은 부처님이 제도했다 손치더라도 뭐 다른 것 보태 준 것 하나도 없어요. 또 부처님이 위대하신 분이라고 하더라도 중생 것을 우리 것을 가져가지도 못합니다.
빼앗아가지도 못하고 따라서 보태주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보태달라고 그냥 조르지요.
그렇지만 부처님은 보태 줄 수 없는 거예요. 만약에 보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몇 푼어치 안되는 것이고, 정말 훌륭한 것은 보태주지도 못하고 가져가지도 못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제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형식적인 제도지, 사실은 濟度(제도)될 어떤 문제는 各自(각자)가 다 가지고 있다. 이 말입니다. 각자가 다 가지고 있는 걸 가지고 뭐, 부처님이 한 일이 뭐 있다고...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런 어떤 이치가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며는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이런 뜻 이예요.
화엄경 如來出現品(여래출현품)에 보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도를 이루고 중생들을 살펴보니, 중생들이 모두가 여래가 갖추고 있는 지혜와 덕상을 전부 똑같이 갖추고 있더라.”라 그랬어요.
그런데 “스스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모르고 있을 뿐이더라.” 이런 말을 했어요. 그래서 거기에 부처님이 起哉起哉(기재기재)라. 야! 신기하고 신기하다. 부처님같이 위대하신 분이 이 세상에 뭐가 신기한 게 있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아! 신기하고 신기하다. 무엇이 그렇게 신기하냐? 자신은 태자의 출신으로 아주 귀족 이였지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머리가 총명하고 그래서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집안이 아주 남달랐지요. 그리고 또 6년이라고 하는 피나는 고행을 하면서 그 당시 인도에서 최고의 스승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갈고 닦았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6년을 지내고나서 또 큰 깨달음을 이루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부처가 되기까지 투자하기까지 얼마입니까. 사실은...
희생을 치른 것이 또한 얼마입니까. 어마어마하지요. 그래 우리가 훌륭한 스승. 위대한 스승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점들이 위대합니다.
뭐 깨달으신 진리의 가르침이 물론 위대하지요.
그러나 그건 아직 우리가 모르고, 그냥 역사적인 사실만 가지고 우리가 보더라도 스승은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거든요.
그런 생애를 사신 성인이 세상에 누가 있습니까?
그런 점을 우리가 알아서 항상 부처님께 줄을 섰고,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셨다는 사실에도 늘 흐뭇해하고, 자다가 일어나서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것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난 큰 보람이고 의미고, 행복이라고 이렇게 생각해도 하나도 잘못된 거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런 全力(전력)이 있으신 분으로써, 큰 깨달음을 이루시고 나서, 자신이 부처이고, 또 한량없는 복덕과 지혜를 다 갖추고 있다고 하는 사실에 너무 놀라웠고, 그래서 그 뭐 법희선열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어떤 깨달음의 그 기쁨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 그 깨달음의 눈에 비친 이 세상을 그대로 설명해 놓은 것이 화엄경이다. 이렇게 보는 건데, 그래서 나만 이런가 하고 다른 사람들을 가만이 들여다보았어요.
자신은 그런 희생을 치루고 큰 대단한 투자를 해서 얻은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어떤가하고 가만 들여다보니까. 전혀 고행은 고사하고 아무것도 노력을 들이지 않은 중생도 자신하고 똑 같거든요.
뭐 조금 틀리다고 하는 것. 그것은 틀리다고 할 것도 없는 거예요. 본래 갖추고 있는 그 위대함이 자기하고 전혀 그야말로 동물인지 무슨 저게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인도의 不可觸賤民(불가촉천민) 四姓階級(사성계급)에서도 제외되는 불가촉천민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봐도 처참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그냥 뭐 평생 내내 빨래하지 않는 그런 담요 쪼가리 하나 뒤 집어 쓰고 이렇게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요. 저게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 사람인지 아니면, 개가 이렇게 병이 들어서 누워 있는 건지. 그렇게 착각할 수가 얼마든지 있어요. 그렇게 보이는 중생도, 그렇게 보이는 중생도 당신 세상에 둘도 없이 위대하신 부처님!
三界導師(삼계도사)요. 四生(4생)의 慈父(자부)이신 부처님하고 하나도 다를 것이 바가 없더라. 그래서 起哉起哉(기재기재라)! 참 신기하고 신기하다 그랬어요.
여래의 지혜 덕상을 모두 다 갖추고 있구나. 지혜와 덕상을 똑같이 갖추고 있구나. 참 어떻게 보며는 억울하기도 하지요? 얼마나 부처님은 투자를 많이 했고, 희생을 많이 치렀습니까.
그런데 전혀 그런 것이 없는 중생하고 똑 같다니, 아니 자신과 저 중생이 똑같다. 이겁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보면 억울하기도 하지만 참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한 그런 이치다.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여래출현의 의미를 그렇게 표현합니다. 당신이 세상에 출현 것이 아니라, 당신이 세상에 출현한 깨달음의 안목을 통해서 이 세상 모든 사물. 사람을 부처로 승격시켰다. 그래서 부처님의 출현은 위대한 것이다. 부처님의 출현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된 것이고, 佛格(불격) 부처의 격으로 뛰어 오른 거예요.
뭐 형편없는 우리 중생이 한 순간에 그만 부처의 격으로 뛰어 오른 것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깨달음은 人類史(인류사)에 있어서 최대의 사건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사건은 없어요. 왜냐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기 전, 과거에 수많은 중생도 또 부처님의 당시의 그 많은 중생도, 미래에 올 수많은 중생도 전부 부처님으로 격을 상승시켰기 때문에, 부처님의 깨달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의 격을 그렇게 상승시켰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사에 있어서 최고의 사건이다.
더 이상의 사건은 있을 수가 없다 이렇게 보는 것이지요.
참, 그 서양 사람들의 표현인데, 이 불교는 동양에서 일찍이 연구를 많이 하고 깨달은 사람도 많았지만, 이런 표현은 서양식 표현 이예요. 참 근사한 표현이죠. 인류사에 있어서 최대의 사건이다. 더 이상의 사건은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부처님이 우정 부처의 격으로 상승시킨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덕상과 지혜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이 그대로 말씀하신 것이지, 뭐 그렇게 않는 자격 없는 중생을 갖다가 억지로 그렇게 자격을 상승시켜가지고, 그렇게 모두가 사람사람이 다 부처다 이렇게 한 것은 아니예요.
부처님이 환희 들여다보니까. 어떻게 그것을 부정합니까?
당신 눈에 비친 사실을 어떻게 부정합니까?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만약에 당신 눈에 그렇게 모든 사람. 사람들이 위대하게 비치는데 그것을 격하시켜서 표현했다면 부처님의 잘못이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금강경에도 그런 이치에 준해서 한량없고, 수가 없고 무수하고 가히 없는 중생들을 내가, 그렇게 많은 중생들을 내가 제도했지마는, 실은 중생들이 제도를 얻은 사람이 없다.
그 말은 스스로 다 이미 제도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제도가 끝난 사람들이다. 제도할게 없다. 본래로 제도되어 있는 사실을 내가 괜히 이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생색낼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상낼 것도 없고 그렇지요. 그래서 그 다음 이어지는 것이,
何以故(하이고)오 須菩提(수보리)야 왜 그러냐?
어째서 實無衆生得滅度者(실무중생득멸도자냐)? 속 내용은 내가 설명한 그대로예요.
하이고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有我相(유아상) 人相(인상) 衆生相(중생상) 壽者相(수자상)하면 卽非菩薩(즉비보살)이니라. 아상과 인상과 중생상과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그랬어요.
이 보살이라고 할 때 이럴 때의 보살은, 부처님까지 다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모든 중생을 다 부처님이라고 인정을 하는 마당에서 뭐 듣는 사람만 보살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도 보살이요. 모든 사람들이 보살인 그런 입장에서 여기서 표현하고 있어요.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했다손 치더라도 내용을 알고 보면 제도 했다할 것이 없는데, 거기에서 나니 너니 중생이니 뭐 수자니 이런 상을 낸다고 하면, 그거는 부처도 아니고 보살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라는 뜻이지요.
참, 아주 명쾌합니다. 이러니까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경전의 표현이 이러니까 선사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선문하고 뭐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禪語錄(선어록)도 읽어보면 그냥 말이 간단명료하고 뚝뚝 끊어지면서, 그 속에 참 의미심장한 그 내용들이 담겨 있지요. 금강경도 거의 유사합니다. 이렇게 별 뜻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아주 뭐 온갖 의미가 다 포함돼 있지요.
그러니까 소명태자가 大乘正宗(대승정종)이라고 이렇게 이 대목을 이름을 붙인 겁니다.
그래 여기서 相(상) 이야기가 여기서 많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서두에도 말씀드렸듯이, 육조스님께서 표현하시기를 금강경을 無相(무상)으로 唯宗(유종)이라. 상없는 것으로서 으뜸을 삼는다. 그랬어요.
왜? 우리가 상이 있는데 상이 없어야 하는가? 또 없는가? 이건 이제 좀 밝은 눈을 가지고 보며는, 부처님이 중생을 보았을 때 전부 부처로 보이듯이, 그러니까 부처님 스스로 뭐 생색낼 일이 하나도 없지요.
아, 동등한데 뭐 못한 게 있어야 생색을 내고 자랑을 할 텐데, 동등하니까 어떻게 생색을 내고 자랑을 합니까? 못하지요. 부처님 눈에는 그렇게 비췄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부처이면서도 거기에 뭔가 좀, 아직도 덜 떨어진 것이 있어가지고, 덜 떨어진 것이 있어가지고 제대로 부처의 역할을 못하고 있지요.
뭐 부처 역할을 못해도 부처는 부처예요.
왕자들이 많지요. 그런데 왕자들도 뭐 아주 형편없는 왕자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왕자예요. 역사적으로 보면 특히 우리나라 조선시대 그 왕자들, 형편없는 왕자들 많았지요.
그래도 그들은 왕자예요. 그 비슷한 예가 될 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는 설사 좀 덜 떨어진 것이 있고, 아직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그런 確信(확신)이 없다 손치더라도 그래도 틀림없는 부처님이고, 또 아주 전문가의 안목으로 볼 때 틀림없는 부처님이거든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을 제도 했다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너희들 본래 갖추고 있는 본래 그 위대함. 그것이 그대들의 본 모습이고, 살림살이고 그대들의 참 생명이다.” 이런 의미가 포함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만약 보살이 자신을 포함해서 須菩提(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거기에 대해서 我相(아상) 人相(인상) 衆生相(중생상) 壽者相(수자상)을 둔다면 그것은 보살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런 말입니다. 명쾌하지요.
그래 我相이라고 하는 것은 나 我(아)자니까, 나라고 하는 생각. 또 人相은 남이라고 하는 생각. 차별심이지요.
나는 그 어떤 주체적인 의식. 또 나를 중심으로 한 것. 전부 나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이라고 하는 생각. 차별의식이지요.
나와 남을 차별하는 것. 뭐 우리 얼마나 차별합니까. 부처님은 나니 남이니 차별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 안목으로 볼 때 똑같이 부처님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차별이 되겠습니까. 또 衆生相. 중생이라고 하는 생각. 중생상은 열등의식이지요. 못났다 하는 생각. 중생들이 제일 중생상이 많아요. 뭐 아상 인상은 말할 것도 없고, 대개 언젠가 한번 말씀 드렸지만, 衆生相
“내가 중생이다.” 라고 하며는,
“아이고 중생이 그럼 그렇지요.”하고,
꼭 변명할 때 중생상을 표현을 하지요. 뭐 표현이지 항상 있습니다. 대개...
壽者相은 목숨 壽(수)자니까, 나이가 얼마다 하는 그런 한계의식 이예요.
어떤 시간적인 한계의식을 가지고 수자상이라 그럽니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상이 있고, 늙은 사람은 늙은 사람대로 상이 있고 그래요.
그 늙었다고 늙은 사람이 컴퓨터도 못하고, 컴퓨터 그것 뭐 내가 이제 하겠는가? 이런 생각하는 그것이 수자상이예요. 알고 보며는...
한계의식이거든요. 불교이치에 무슨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뭐든지 그냥 부닥치는 데로 세상의 어떤 변화 따라서, 부딪혀보는 거지요 뭐.
그런 삶이 불교적 삶이고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래 모양 相(상)잔데 왜 이제 생각. 생각. 생각 想(상)자로 해석하는가? 이런 생각이 들 수가 있어요.
어떤 번역에 보며는, 금강경 유격중에 어떤 데는 보며는 생각상자로 쓴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양상자로 쓴 것이 아주 의미가 있어요. 이 相(상)은 형상 아닙니까. 생각은 아직도 형상화되지 않는 상태를 생각이라 그래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그전에 절에서 마호라고 하는 풀 끓이는 그런 소임이 있어요.
광목옷을 많이 해 입었기 때문에 보름마다 한 번씩 삭발 목욕일이 있는데, 목욕하고 삭발하고 또 빨래까지 하는 날이거든요. 그래 이제 그날 사용할 풀을 전부 맡아서 쑤는 마호라고 하는 소임이 있습니다.
그래 저도 마호소임을 더러 보았거든요. 그런데 밀가루를 이렇게 풀어 가지고 해 놓으면, 처음에는 그것이 전혀 그냥 보통 물에 색깔 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묘하게 열을 가하면 차츰차츰 열을 가하다 보면 그게 엉겨져요. 전혀 엉겨질 것 같지 않는데 그것이 엉겨진다요. 그냥 처음에 밀가루만 타놓으면 물이나 다를 바 없지요 뭐.
그 움직임이라든지 물이나 하나도 다를 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열을 가하면 그것이 저어도 저어지지도 않고, 나중엔 막 눌어붙기도 하고 그렇지요.
그래 형상이 생깁니다. 형상이 형성됐다 하는 것입니다.
상이 형성됐다. 그럼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이 더 발전한 상태이지요. 상이 됐다는 것은...
말하자면 우리 간을 앓을 때, 간에도 병이 있지요?
간경화. 뭐 또 무슨 간염. 여러 가지 간의 질병에 대해서 진행상태에 따라서 나중에는 경화가 된다고 그래요. 굳어진다고요.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이 상이죠. 그렇게 되면 그만 끝이지요. 아무리 그땐 고치려 해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간경화가 되면 그냥 그 길로 가는 수밖에 없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생각정도 그냥 微微(미미)하지요.
그러다가 어떤 상황이 되고 하며는, 그것이 차츰차츰 본색을 드러내고 형태가 갖추어져요.
물같이 생긴 것을 자꾸 열을 가하면 풀 이 되듯이, 아주 끈적끈적한 풀이 되고 나중엔 뭐 주걱을 저어도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하나의 형체를 분명히 갖추듯이 우리의 상도 그래요.
나라고 하는 것도 마음 좋고 기분 좋고 할 때는 뭐 겸손 잘하고, 나라고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지요. 그런데 웬걸 어쩌다가 문제가 생기고, 서로 의견이 틀리고 거기에 말이 오고가고 이렇게 하다보면 그만 슬슬, 전혀 안보이던 아상이 슬슬 머리를 쳐들기 시작하지요.
참 묘합니다.머리를 쳐들기 시작을 해가지고, 그것이 자기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형체를 이뤄요.
서로 형체가 이루어집니다. 그래가지고 부딪히게 되지요.
부딪히면 소리가 나고, 벌써 이미 상으로 형체가 이뤄진 상태에서 부딪히면 소리가 나는 거예요.
소리가 날 땐 벌써 형체가 나라고 하는 생각의 자존심이 벌써 형체가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소리 안날 때는 아직 형체가 안 이뤄졌어요.
소리 났을 땐 이미 형체가 이뤄져서 소리가 나는 겁니다. 물건하고. 물건하고 부딪혀 봐요. 소리가 나지요.
소리 나는데도 불구하고 또 부딪혀 봐요. 어떻게 되지요? 금이 가지요.
금가는데도 또 부딪혀. 그러면 깨져요.
참 묘한 이치에요. 그러니까 우리 교재 구마라습이 번역한 이 금강경이 모양상자로 번역을 하지 않고, 형상상자로 해석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미 형상화 된 것. 그래야 중생들이 더욱 확실하게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남[他(타)]이라고 대한 것도 뭐 어떨 때는 너나 없어요.
그러다가 웬걸 어떤 문제 또는, 이해관계 뭐 정치적인 어떤 이야기하면 그러면 그만 그냥 남이라고 하는 생각, 상대라고 하는 생각이 그냥 머리를 쳐들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을 때, 종교이야기는 가능하면 하지 말고, 정치이야기도 가능하면 안해야 되는 것이지요. 정치이야기 하고, 종교이야기 하다보면 그만 거기서 잠자고 있던 상들이 차츰차츰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서 형상으로 굳어져가지고 그렇게 되면 이제 소리가 나게 되고, 소리가 나게 되면 이제 금이 가고 금가면 깨지게 되고 그런 상황으로 벌어지지 않습니까.
중생 이라고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壽者. 한계의식에 대한 상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이제 四相(4상)에 대한 이해. 그리고 상을 생각 想(상)자라고 하면서 형상 相(상)자를 써 놓은 것.
그래 생각은 곧 형상이고, 형상은 형상이전에는 생각이 었다. 그래 그것을 같은 의미로 이해하라는 그런 뜻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 大乘正宗(대승정종) 제목이 그렇듯이 가장 위대한 가르침 가장 큰 가르침 중에서도, 바르고 으뜸이 되는 大乘正宗의 의미를 잘 아셨을 줄 믿습니다.
중생을 제도했으되 하나도 제도 한 것이 없다.
그 대목을 화엄경 여래출현품의 구절을 인용해서 좀 보안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위대함을 다 경전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들 보고 설명하는 것이니까, 거기에 대한 이해. 거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 그것이 공부의 발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뭐 어제도 말씀드렸지마는, 양무제의 그 큰 공덕을 수많은 절을 세우고 수많은 부처님을 조성하고 수많은 탑을 세우고 했지마는, 달마대사는 아무 공덕이 없다. “자신의 무량한 공덕에 눈 떠라.” 이런 의미지요.
오늘이야기한 大乘正宗의 내용과 같은 脈絡(맥락)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법문녹취:대원성)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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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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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깊은 뜻을 우리가 이해해서 거기에서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 뭐 가장 큰 목적이겠지마는, 설사 깊은 뜻은 모르더라도 부처님을 만나고, 수보리를 만나고, 또 조사스님들을 만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 대단한 행운이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무비 큰스님의 따뜻하고 사례 위주의 명강의, 명쾌한 해석.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비스님....항상 감사합니다....나무관세음보살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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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감사드립니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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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