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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경전연구) 녹취9
“밖에서 찾지 말라” 제목을 그렇게 붙여봤습니다. “밖에서 찾지 말라”라는 이 말은 불법의 바른 견해를 구축하는데 어쩌면 제일 중요한 첫 조항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말씀 드릴수가 있습니다.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 불교에 대한 바른 소견, 이것이 우리가 불교에 몸담고 살면서 진정한 불교가 무엇일까? 하는 이 문제는 우리 불자들의 영원한 과제이고 화두입니다. 진정한 불법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확실히 하기 위한 그 첫 조항이 “찾지 말라”하는 이 말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불교는 어찌 보면 밖을 향해서 부단히 돌아다니고 정신없이 열심히 추구하는 것 같이 비쳐지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런데 사실은 이미 있는 것. 기존의 것. 뭐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라기보다 만들지 않고 저절로 이미 존재하는 그것! 그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발견하고 또 그것을 활용하는 것. 이것밖에 달리 다른 것이 아니고 또 그것이야말로 불교를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지름길이고, 또 거기서 소득이 제일 많고 그런 것입니다. 이 임제록은 특히 정곡을 찌르는, 불교의 진수에 있어서 정곡을 찌르는 그런 가르침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임제 스님이 일찍이 경학에 대해서 아주 무불통지(無不通知)하는 그런 아주 박학다식(博學多識)한 분이었지만은 진정한 불교가 무엇인지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황벽스님에게“무엇이 진정한 불법입니까?”라고 질문을 했는데 거기서 바로 이미 있는 불교, 뭐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임제 스님 자신에게 있던 것을 되돌아보게 하고 거기에 눈뜨게 하는 그런... 뭐라고 할까? 가르침! 이것을 이제 세 번 물었을 때 세 번 크게 몽둥이로 때리는 그런 사실을 통해서 눈을 뜨게 했다고 하는 것. 그것입니다.
거기서 그야말로 절대현재라고도 할 수 있고 전체작용, 또는 대기대용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의 진수가 거기에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임제록의 전체 흐름이고 임제 스님의 사상이고, 또 우리 한국 불교가 모두 임제 스님의 법맥을 계승했다고 자랑하는 그런 의미에서라면 우리 모두가 또 그러한 진짜불교! 이미 우리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불교에 눈을 뜨자고 하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가장 효과 있는 공부다 하는 것입니다. 황벽스님은 그래요. “일체불법불용학(一切佛法不用學)”공부하는 이들이여, 일체 불법을 배우지 마라. 일체불법을 배우지 마라! 배울 필요가 없다 그랬어요. 공부하지 마라. 뭐 참선이다. 간경이다. 기도다. 일체불법 할 것 없다. “다만 그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그것 이외에 달리 구하지만 말아라.”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이외에 어떤 바깥을 향해서 집착하지 마라. 그건 다 가짜고 엉터리다. 가짜와 엉터리를 구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끝이다. 더 이상 공부할 필요 없다. 아주 [전심법요]에서 과감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일체불법총불용학(一切佛法總不用學)”얼마나 아주 참, 힘이 넘치고 패기가 넘치는 그런 표현입니까? 대단하죠. 그런 표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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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밖에서 찾지 말라
大德아 三界無安이 猶如火宅이라 此不是儞久停主處니
대덕 삼계무안 유여화택 차불시이구정주처
無常殺鬼가 一刹那間에 不揀貴賤老少니라
무상살귀 일찰나간 불간귀천노소
“대덕아! 삼계가 불안한 것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다. 이곳은 그대들이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무상(無常)이라는 사람을 죽이는 귀신(殺鬼)이 한 찰나 사이에 귀한 사람, 천한 사람, 늙은이, 젊은이를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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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德아 三界無安이 猶如火宅이라 此不是儞久停主處니
대덕 삼계무안 유여화택 차불시이구정주처
삼계가 편안치 못한 것이 마치 불난 집속에 있는 거와 같다. 이건 [법화경]에 근거를 두고 하는 소리죠. 삼계화택이라는 소리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곳은 우리가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그대가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감지하고 있는 이 삶입니다. 이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시각각으로 시간의 흐름이 다가오고 한 순간도 그냥 있지 않고 흘러가고 흘러가는 것은 곧
無常殺鬼가 一刹那間에 不揀貴賤老少니라
무상살귀 일찰나간 불간귀천노소
무상살귀(無常殺鬼)라는 것은 이 시간의 흐름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곧 죽음, 그 자체예요. 죽음이라고 하는 이 거대한 사실은 한 순간도 그냥 있지 않다. 그리고 귀천. 노소. 승속. 동서. 고금 누구를 막론하고 그 사실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렇죠. 뭐! 승려라고 해서 피할 수 있나요? 속인이라고 해서 피할 수 있나요? 또 젊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이게 순서가 있는 것 같이 보이면서 순서도 없더라 구요. 얼른 보기에 순서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니야! 순서 없이 가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우리의 삶은 그래요 최소한도! 그래서 삼계가 불안한 것이 불난 집 속에 들어있는 거와 같다. 경전으로써 법화경은 참 중요한 경전입니다. 대승삼부경(三部經)하면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이렇게 하는데 화엄경은 워낙 방대하니까 제대로 그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고, 금강경은 익히 아는 경전이고 그런데 법화경은 우리 불교를 이해하는 사람으로서는 꼭 공부해야할 그런 경전이 아닐까? 저는 그런 생각을 평소에 해요.
법화경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사람이 부처님이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이 임제록하고 크게 동떨어진 이야기가 결코 아니 예요. 거기에 조금 숨어있는 내용을 들추어내면 그렇습니다. 거기에 말은“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런 표현도 있고 또 “수기품(授記品)”이 많은데 “앞으로 얼마 후에 그대는 이러이러한 이름으로 부처가 될 것이다” 이렇게 미래형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사실 그 말의 내면에는“그대가 이미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부처님이다”이런 뜻이 예요. 이런 뜻을 약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법화경에서 확인해야 돼요.
법화경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법화경이 좀 삿되게 흐르는 그런 우려가 좀 있다 해가지고 사실 승속을 막론하고 약간은 좀 경계하는 분위기도 없지는 않은데, 사실 그건 우리가 과감하게 법화경을 파헤쳐서 법화경의 참뜻이 뭔가를 제대로 이해하면 경전 한 가지로서는 법화경이 최고가 아닐까? 법화경 자체에서도 “경(經)중의 왕이다”그랬어요. 그런데 그걸 액면대로만 자꾸 이해를 하고 왜곡되게 이해하니까, 뭐 손가락을 태우고 뭐 이상하게 글자를 또 파자(破字)를 해서 해석하는 그런 사례들이 많아요.
사실 법화경 하나만 가지고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종단이 여러 개예요. 무슨 천태종이니 관음종이니 일성종이니 불성종이니 이게 전부 법화경 하나 가지고 갈라진 종파거든요. 천태종. 관음종. 일성종. 불성종. 또 대한불교법화종. 한국불교법화종 많아요. 한 7~8개 된다 구요. 법화경 하나에 근거해가지고. 그만치 경전의 내용도 다양하고 뜻도 깊고 하다보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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儞要與祖佛不別인댄 但莫外求어다 儞一念心上의 淸淨光은
이요여조불불별 단막외구 이일념심상 청정광
是儞屋裏法身佛이며儞一念心上의無分別光은是儞屋裏報身佛이요
시이옥리법신불 이일념심상 무분별광 시이옥리보신불
儞一念心上의 無差別光은 是儞屋裏化身佛이니 此三種身은
이일념심상 무차별광 시이옥리화신불 차삼종신
是儞卽今目前聽法底人이라 祗爲不向外馳求하면 有此功用이니라
시이즉금목전청법저인 지위불향외치구 유차공용
“그대들이 할아버지 부처님과 더불어 다르지 않고자 한다면 다만 밖으로 구하지 말라.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의 청정한 빛은 그대들 집안의 법신불(法身佛)이다. 그대들 한 생각 마음의 분별없는 빛은 그대들 집안의 보신불(報身佛)이다. 그대들 한 생각 마음의 차별 없는 빛은 그대 집안의 화신불(化身佛)이다. 이 세 가지의 몸은 그대들이 지금 내 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다만 밖을 향해 헤매면서 찾지만 않으면 이런 공용(功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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儞要與祖佛不別인댄 但莫外求어다
이요여조불불별 단막외구
그대가 조사나 부처와 더불어 다르지 않기를 요할진댄 “단막외구(但莫外求)어다” 다만 밖을 향해서 구하지 말라. 그러니까 “밖에서 찾지 말라” 제목을 그렇게 했죠. 불자들의 이상적인 삶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려면 밖을 향해서 찾지 않아야 된다. 밖을 향해서... 밖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집착하고 구하는 것. 이것 제발 그만하라는 거죠. 자! 우리 교학상에서 제일 아주 근사한 용어가 부처님에 대한 삼신이야기 있죠.(법신. 보신. 화신) 이건 불교 고급 용어 중에서도 아마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주 차원도 높고 고급 용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부터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자 이거야.
儞一念心上의 淸淨光은 是儞屋裏法身佛이며
이일념심상 청정광 시이옥리법신불
그대 일념심상(一念心上)의 청정광은, 그대의 옥리법신불(屋裏法身佛)이라 그랬습니다. 법신. 보신. 화신은 교학적이나 사전적으로 우리가 해석을 잘하고 계시리라 생각하고 그건 이제 우리가 제쳐놓고 따지고 보면“그대들 한 생각!” “한 마음!” 그대들 한 마음위에 청정한 지혜광명, 텅 빈, 이 청정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말하고 듣고 온갖 활동 다 합니다. 추우면 춥다하고 더우면 덥다하는 이 능력, 이 작용은요, 우리가 늘 쓰는 일이라서 잊어버리고 살지요. 마치 공기가 우리에게 그렇게 소중한데도 잊어버리고 살듯이...
보고, 듣고, 부르면 대답하고, 좋은 말하면 기뻐하고, 안 좋은 말하면 성 낼 줄 아는 이 능력은 공기 이상 이예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라서 잊어버리고 살아서 그렇지 이 위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찾아보면 없거든요. 청정(淸淨)! 텅 비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서 부단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효 스님 같은 이들은 이러한 것을 “신해(神解)”라고 그래요. 귀신 神자, 이해할 解자. 이해하는 능력은 이건 신이나 이해할 수 있는, 가히 신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랬어요.
날씨가 좀 따뜻하면 귀신같이 알죠. 날씨 따신 줄 귀신같이 알아. 추우면 추운 줄 또 귀신같이 알아. 그것“신해(神解)”아니고 뭡니까? 원효 스님은 그 말 잘 썼어요. 신해(神解)! 신(神)이야말로 그게 신(神)이지 그 보다 더... 자기에게 기분 나쁜 소리하면 아주 금방 화내는 것. 그게 귀신이 아니고 어떻게 화낼 줄 아노? 귀신같이 화내거든. 우리 이것 참, 쉽게 우리가 절 집안에 하도 흔해 빠진 소리가 돼나서 무심하고 소홀히 여기는데 이 점은요, 우리가 참 정말 늘 새롭게! 새롭게! 이 능력, 이 점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고 사유하고 또 경전이나 어록에서 어떤 증거를 자꾸 찾아내고 이렇게 해야 할 공부입니다. 이것 밖에 달리 다른 공부 없어요. 또 이것 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일이 없고. ‘옥리(屋裏)’라는 것은 몸뚱이입니다. 집이라고 했지마는 내 몸뚱이, 우리 집, 그걸 여기서는 당신 집에 있는 청정한. 그대들 마음의 청정한 지혜광명은 그대 집에 있는 법신불이다. 너희 집에 있는 법신불이다. 또
儞一念心上의無分別光은 是儞屋裏報身佛이요
이일념심상 무분별광 시이옥리보신불
그대들 한 마음위에 청정광(淸淨光), 무분별광(無分別光), 무차별광(無差別光) 이렇게 세 개가 쫄로리 있는데 마음작용의 약간씩의 차이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왜냐? 법신. 보신. 화신의 이야기를 하려니까. 법신. 보신. 화신은 결국 우리 한마음 상의 문제인데 그럼 “한마음”하면 되겠는데 왜 그렇게 여러 가지로 펼쳐 놓느냐? 이름이 이미 법신. 보신. 화신이 있으니까. 청정광이다. 무분별광이다. 무차별광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고 또 우리 마음의 청정한 지혜광명, 분별이 없는 지혜광명, 분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엇은 이해되는데 무엇은 이해 안 된다. 나누어놓고 하는 게 아니 예요.
또 우정, 그 밑에 무차별광도 내가 차별해 가면서 빛을 발하는 게 아닙니다. 거울이 남자가 온다고 비추고 여자가 온다고 안 비추고, 스님이 온다고 비추고 속인이 온다고 안 비추고. 이런 게 없듯이 우리 마음에 그런 능력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그런 입장을 무차별광이라 하고 또 무분별광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을 나누어가면서 우정, 내가 그것을 나누어가면서 그렇게 인식한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성질상의 분별을 나누지 않는 것을 말하는 거죠. 그래서 그것이 너희 집에 있는 보신불이고
儞一念心上의 無差別光은 是儞屋裏化身佛이니
이일념심상 무차별광 시이옥리화신불
또 그대 한 마음 위에 무차별의 지혜광명, 차별이 없는 지혜광명 평등일심이죠. 그것은 너희 집에 있는 화신불이다.
此三種身은 是儞卽今目前聽法底人이라
차삼종신 시이즉금목전청법저인
이 삼종(三種)의 몸은 결국은 뭐냐? 이게 중요한 대목이죠. 그대들‘즉금(卽今)’“바로 이 순간!” 즉금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절대현재” 바로 이 순간입니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듣고 하는 이 순간을 즉금이라고 그래요. 우리가‘즉석’그러죠. 즉석, 즉석요리하면 앉은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요리 아닙니까? 그와 같이‘즉금’이라는 말이 중요하고‘즉심(卽心)’이라는 말이 또 중요합니다. 즉심(卽心)!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는 이런 말 있죠.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고 할 때는 “마음이 곧 부처다” 하는 이런 뜻이고,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고 하는 말은 “현재 마음이 부처다” 이 뜻입니다.
현재마음! 즉(卽)자에 아주 의미가 있어요. 즉금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 절대현재! 우리 인생이라는 건요, 결국 현재 이 순간뿐입니다. 지나간 과거 없어요. 다 지나가 버리고 없습니다. 과거가 어떻든지 간에 우리가 과거가지고 너무 왈가왈부하는 것. 그것은 발전 없는 생각이죠. 지금이 중요해요. 또 미래, 우리가 미래에 어떤 청사진이 그 사람에게 펼쳐져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와야 온 것이지, 미래는 와야 온 것이지 지금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어요. 지금이 중요해요. 지금 어떻게 사느냐? 여기서‘즉금(卽今’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절대현재라고 말 합니다. 절대현재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끊어진 바로 이 순간! 이것만의 지금! 그럴 때‘즉금’이라고 그래요.
“목전청법저인(目前聽法底人)이라” 지금 눈앞에서 말하고 말 듣는 바로 그 사람이다 말이야. 그 사람이 법신. 보신. 화신이야. 경전에 법신. 보신. 화신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근사하게 설명합니까? 뭐 비유를 해서 하늘에 있는 원달은 법신이요. 달빛은 보신이요. 공덕의 몸, 과보의 몸이고, 또 곳곳에 “천강유수 천강월(千江有水 千江月)”처럼 그렇게 곳곳에 입장 따라서 나타내는 모습이 다른 것을 화신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는데 그렇게 길게 설명해봤자 결국은 우리 한마음의 작용이지 다른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주 간단명료하게 정말 시원스럽게 이렇게 불교를... 또 스스로 알았으니까 설명 할 줄도 알겠죠.
그것은 결국은 그럼 지금 내놔봐라. 우리가 말로만 그럴게 아니라 한번 구체적으로 내놔봐라. 아주 임제 스님은 속 시원하게 “즉금청법저인(卽今聽法底人)이다”지금 이야기 듣는 그 사람이다 이거야. 지금 이야기 듣는 여러분들이 그대로 법신. 보신. 화신이야! 다른 것 아니 예요. 이건 뭐 천 번, 만 번 우리가 강조해서 정말 가슴에 콱 와 닿아야 되고 여기에 우리가 확신이 딱 서는 것 그러면 끝이 예요. 이 사실에 대해서, 이 사람에 대해서, 모든 것의 근본이고 이것이 모든 것이다. 이렇게 확신이 딱 서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사실은!
祗爲不向外馳求하면 有此功用이니라
지위불향외치구 유차공용
다만 밖을 향해서 치구하지만 아니할 것 같으면 “유차공용(有此功用)이니라”이러한 공용이 있다. 법신. 보신. 화신의 그런 공용이 너 안에 다 있다 이거야. 우리가 자꾸 밖을 향해서 그저 그 좋은 보물은 놔두고는 밖을 향해서 우리가 자꾸 치구해서 그게 문제지. 마조(馬祖)스님 제자 중에 대주혜해(大珠慧海)선사라고 소위 “돈오입도요문론”으로 유명한 스님이 있죠. 그 스님이 마조 스님을 찾아가서는 “불법을 공부하러 왔다.”고 하니까
“자가보장불고하고기가산도작심마(自家寶藏不顧하고棄家散走作甚麽)”그랬어요. 자기 집에 있는 보물창고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너희 집을 버리고 아주 부지런히 부지런히 밖을 돌아다니면서 찾아봤자 그게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냐? 마조스님이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대주스님이 있다가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나의 보물창고입니까? 그러니까 그대가 지금 나에게 묻는 그 사람, 지금 나에게 묻는 그 사실이 그대의 보물이다. 그랬어요. 이것하고 똑같은 말이죠. “즉금청법저인(卽今聽法底人)” 법문을 듣는 그 사람! 이것만 사실은 어떤 자기 확신이 있으면 정말 당당할 수 있습니다. 글 하나도 몰라도 상관없고 거기에 문제될게 아무것도 아니 예요. 사실은!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대주혜해스님이 바로 알아버렸죠. “자가보장(自家寶藏 )” 자기의 진짜보물이 무엇인지를 알고 더 이상 헤매지 않았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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據經論家하면 取三鐘身하야 爲極則이나 約山僧見處不然이니
거경론가 취삼종신 위극칙 약산승견처불연
此三鐘身은 是名言이며 亦是三鐘依니라 古人云 身依義立이요
차삼종신 시명언 역시삼종의 고인운 신의의립
土據體論이라하니 法性身法性土는 明知是光影이니라
토거체론이라 법성신법성토 명지시광영
“경학을 공부하는 사람(經論家)에 의하면 이 세 가지 불신(佛身)을 취하여 궁극의 경지를 삼으나 산승의 견해로는 그렇지 않다. 세 가지 불신이란 이름과 말이며 또한 세 가지 의지인 것이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몸(佛身)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의하여 세운 것이고, 국토는 바탕에 의거하여 논한 것이다. 법성신 법성토는 이 빛의 그림자인 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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據經論家하면 取三鐘身하야 爲極則이나 約山僧見處不然이니
거경론가 취삼종신 위극칙 약산승견처불연
‘경론가(經論家)’경학이나 논을 위주로 공부하는 교과 입장에서 본다면‘삼종신(三鐘身)’을 취해서‘극칙(極則)’으로 삼는다. 최고, 아까 내가 불교의 고급 용어 중에 열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그랬죠.‘극칙(極則)’을 삼는다. 최고의 경지로 삼는다 이거야. 그런데 산승의 견처(見處)에 의할 것 같으면 그렇지 않다.
此三鐘身은 是名言이며 亦是三鐘依니라
차삼종신 시명언 역시삼종의
이 삼종신(三鐘身), 법신. 보신. 화신이라는 것은 “시명언(是名言)이며” 그리고 이름일 뿐이야. 신은 법신이고, 신은 보신이고, 신은 화신이야. 신은 시명(是名), 그 이름이 삼종신이지. 지금 우리가 말하고 듣는 이 사실 이외에 뭐가 또 있느냐 이거야. 사실 한번 찾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것! 다 내려놓고 진짜 이것을 한번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 말하고 듣고 하는 이 사실 외에 있는 게 도대체 뭐가 있느냐 이거야. 있으면 우리가 부정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경전상의 법신. 보신. 화신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주 고급 용어인데 그저 말일 뿐이고, 이름일 뿐이고 그렇게 말하고 있잖습니까? 이것 참 대단한 소견이 예요.
우리가 방편으로 이런 저런 소리를 많이 할 수는 있지마는 이런 임제 스님의 올곧은 불법 지견을 우리가 공부하는 입장이라면 요것이 내 살림살이가 되어야 된다. 그래서 아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그렇게 살아야 되고 그런 불자가 되어야 된다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역시삼종의(亦是三鐘依)니라” 그랬어요. 세 가지 의지처! 또 이것(의지할 의:依)을, 옷 의(衣)로 쓰기도 해요. 세 가지 옷에 불과한 것이다.
古人云 身依義立이요 土據體論이라하니
고인운 신의의립 토거체론
고인이 말하기를 몸이라고 하는 것. 삼종신(三鐘身)은 우리 마음의 뜻에 의지해서 한번 설정해 본 것이다. 그랬어요. 또 삼종신은 사는 국토가 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요. 뭐 법신은 무슨 적광토, 그래서 해인사 법신 부처님, 비로자나불 모셔놓은 법당을 대적광전(大寂光殿) 그러죠. 적광토에 산다. 뭐 이런 식으로 표현하죠. 그러니까 국토라고 하는 것은 심체(心體)! 심체에 의지해서 역시 논(論)하는 것이다. 전부 그렇습니다. 근본만 추리면요. 하나도 헷갈릴 것도 없고 좀 몰라도 괜찮고 상관없어요. 그까짓, 지엽적인 것 몰라도 아무 상관없어요. 근본만 바로 알면 그렇습니다.
法性身法性土는 明知是光影이니라
법성신법성토 명지시광영
그게 전부 우리 한마음의 그림자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겠다. “명지시광영(明知是光影)”그림자라는 뜻입니다. 광영이라는 것이. 뭐 빛과 그림자가 아니고 우리 한마음의 그림자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정말 아주 나뭇잎 다 떨쳐버리고, 잔가지 다 잘라버리고, 그저 중심 되는 몸뚱이 하나만 남겨놓은 그런 느낌입니다. 이 불법이라는 것이 진짜 불법둥치! 우리는 너무 거품불교에 헤매고 있어요. 너무 지엽적인 불교에 오랜 세월 헤매고 있어. 불교 역사가 오래되다보니까 그동안의 세월 속에 첨가된 게 너무 많아.
첨가된 불교가 너무 많다고! 그래서 원시불교를 이제는 폐기해야 된다 해가지고 생긴 게 부파불교 아닙니까? 당시에는 부파불교 좋았어요. 그런데 그걸 묶어서 소승불교라 하는데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것 폐기해 버렸잖아. 소승불교 폐기한거예요. 원시불교. 부파불교 다 폐기해버렸어. 그것 폐기처분 했다고요. 그리고 새롭게 일어난 게 대승불교운동 아닙니까? 대승불교운동이 세상을 막 그냥 휩쓸 때 그 갈등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불교하고 새로운 불교운동하고“상좌부와 대중부” 이런 관계로도 이야기 할 수가 있는데 대중부 쪽으로 나가던 사람들이 결국은 대승불교운동자가 된, 그래서 참 대승불교운동 한때 잘 나갔죠. 좋은 세월 만났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도 안돼.
그 시대에는 그게 좋았어. 그러나 인지가 발달하고 세상이 달라지고 세상 학문도 자꾸 발달하고 그러니까 그 불교가지고 안 되는 거야. 특히 이쪽, 동양권 쪽에서는 안돼. 그래서 선불교가 생겼잖아요. 선불교가 생기면서 뭐라고? “불립문자(不立文字)”일체 다 소승. 대승경전 싹 폐기하자 이 말이 예요. 불립문자라는 게 문자 안 세운다는 소리가 돼. 소승경전을 일체 폐기한다. 이 뜻입니다. 그것이라야, 비로소 새로운 불교라야 새 시대의 어떤 대안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가 있지. 이미 묵은 옷, 낡은 옷 가지고는 새 시대의 역할을 못한다 이거야. 그래서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라가 어려울 때는 대승불교고 선불교고, 지금 나라가 어려운데 호국불교라야 된다 해가지고 얼른 호국 불교 옷을 입은 거야. 선불교고 대승불교고 다 소용없어. 그때는!
나라가 위급존망지추(危急存亡之秋)에 처해 있는데 그게 무슨 대승이고 소승이고 선불교고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때는 호국 불교라야 그게 살아남는 거야. 그래 호국 불교 옷을 갈아입고는, 사실 불교도 아니거든요. 호국 불교는! 부처님이 자기나라를 쳐들어 왔어도 자기 제자들 승병동원해서 이웃나라 코살라국 병정들하고 맞서서 싸우라고 한 적이 없어요. 부처님은! 그런데 서산. 사명은 자기 제자들, 승병들 전부 총, 칼 들려가지고 같이 싸웠잖아요. 그건 불교 아니라 구요. 그거는! 그러나 그거라야 되는 거야. 그때는!
불교도 아닌 불교이지만 그거라야 그 시대에는 시대적 대안이 되는 거야. 부처님은 석가족이 눈을 뻔히 뜨고 있는데 코살라국, 유리왕이 침범해서 살상하는 걸 눈으로 직접보고 당대의 그 훌륭한 부처님! 살아생전에 말하자면 자기의 카빌라국이 싹 멸망하고 말잖아요. 그런 불행한 사람이라. 사실 알고 보면. 그래도 그 많은 신도, 그 많은 제자들, 총 칼 들려가지고 저 놈들하고 우리 싸우자 하고 동원한 적이 없어. 부처님은! 정말 우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거지만 이게 진짜 불교라! 부처님 정신이라 구요. 그런데 우리는 참 그것 받아들이기 어려워. 우리한테 그것 요구하면 참 그것 어렵다 구요. 서산. 사명도 그것 못 받아들인 거야. 서산. 사명은 결국 못 받아들이고 승병 동원해가지고 일본 놈들하고 싸웠잖아요. 그건 불교 아니거든. 그러나 그 시대에는 호국 불교라야 살아남을 수가 있어. 방편으로 그렇게 한 거죠.
시대에 따라서 불교가 늘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사실은! 어쩔 수 없이. 그걸 우리가 역사적으로 정리하면 원시불교다. 부파불교다. 소승불교다. 무슨 초기 대승이다. 중기 대승이다. 후기 대승이다. 비밀불교다. 선불교다. 뭐 호국불교다. 호국 불교가 한 순간 지나가니까 “아이구 이것 복이나 좀 빌어야지” 해서 기복 불교가 먹혀드니까 일단은! 민중들에게 기복 불교가 먹혀드니까! 기복 불교도 한쪽에서 성행하고 있잖아요. 오늘날까지도! 그런데 이 시대에는 저는 그래요. 이런 불교의 가르침이 많은 경전이나 어록 중에서 정말 올곧은 가르침! 아까 이야기 했듯이 지엽, 이파리, 가지 같은 것 다 잘라버리고 그 원 둥치!
중심이 되는 원 둥치 만을 가지고 우리가 생각할 때 바로 이런 가르침이고 이것은 곧 어떤 특정인의 주도하에 되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사람, 사람이 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 사상!” 이 사상이 일반화 되어야 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인간 불교운동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무슨 특정한 선지식이 어디 있습니까? 특정한 부처님이 이 시대에는 없어요. 이제 알 것 다 안거야.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라는 사실을 다 알아! 그러면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아주 고유한 능력과 본질! 그것을 우리가 깊이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어떤 확신을 가졌을 때 그것이 이 시대를 대변하고 완전한 불교다 나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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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돌아가 쉬는 곳
大德아 儞且識取弄光影底人하라 是諸佛之本源이요
대덕 이차식취농광영저인 시제불지본원
一切處가 是道流의 歸舍處니라
일체처 시도류 귀사처
“대덕아! 그대들은 또한 그림자를 조종하는 사람을 확실히 알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삶의 모습(一切處)이 도를 닦는 이들의 돌아가 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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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德아 儞且識取弄光影底人하라 是諸佛之本源이요
대덕 이차식취농광영저인 시제불지본원
대덕아! 참, 이 말 한마디 들어도 좋지요. 여기도 간혹 대덕! 우리가 대덕도 못되지만 대덕아! 부르니까 좋고, 또 도(道)도 별로 안 닦지만 도류야! 도 닦는 벗들이여! 이렇게 불러주는 것. 또 육조스님은 뭐라고? 선지식아! 그러죠. 우리보고! 얼마나 기분 좋습니까? 어디 가서 우리가 선지식 소리 듣겠어요? 아, 그것도 육조스님으로부터 들으니까 기분이 더 좋다 이 말이야. 여기도 임제 스님에게 대덕이여! 대덕아! 임제 스님이 우리를 보기에 대덕 아닐 이유가 아무것도 없어. 다 대덕이야! 육조 스님이 보기에 우리가 선지식 아닐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냥 부르기 좋다고 부르는 게 아니죠. 아무튼 그대들 또한‘식취(識取)하라’알 식(識)자, 취할 취(取)자.‘식취(識取)하라’그랬어요.‘농광영저인(弄光影底人)’그림자를 조종하는 사람을 식취하라. 이 사람은‘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요’ 모든 부처의 근본이다. 그리고
一切處가 是道流의 歸舍處니라
일체처 시도류 귀사처
그대들이 돌아가 쉴 집이다.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하라. 식취(識取)가 그 말입니다. 깊이 인식하라. 내 것으로 만들어라. 이 말이야. 식취(識取)! 알아서 내 것으로 만들어라. 식취하라! 이런 표현도 임제록에서나 볼 수 있어요. 알아서 취해라. 이랬죠. 내 것으로 완전히, 내 살림살이로 삼아라.
첫댓글 _()()()_
대단하신 一輪月님!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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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지 않고 저절로 이미 존재하는 그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발견하고, 또 그것을 활용하는 것...大機大用... 一輪月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다녀가신 대해월님, 여연행님, 無影樹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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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취(識取)! 하도록 정진을 거듭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_()()()_
임제회상에서 하안거 정진하시는 一輪月님!
다만 밖을 향해서 구하지 말라... 一輪月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一切佛法總不用學...一輪月님! 고맙습니다. _()()()_
다녀가신 진공거사님, 白和님, 미륵골거사님, 만월님, 초연화님! 고맙습니다...._()()()_
^^ _()()()_
儞且識取弄光影底人하라 是諸佛之本源이요...그림자를 조종하는 사람을 식취하라 이 사람은 모든부처의 근본이다..고맙습니다.인륜월님._()()()_
卽今聽法底人... 보물창고... 고맙습니다.. _()()()_
菩提님, 무량화*님, 윤처사님, 귀하신 말씀에 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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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고맙습니다
_()()()_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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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三種身 是儞卽今目前聽法底人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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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