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 醫療奉仕活動
學山의 의료활동과 양약 사용사례에 대한 많은 증언이 있지만 學山의 의료기술 습득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어디서 어떻게 의술을 익히고 양약에 대해 알게 됐는지는 몰라도 學山의 의약, 의료기술은 거의 독립된 병원과 의약실 수준이었다고 한다. 청진기 주사기 주사제, 각종 의료기구 등을 구비하여 민족교육과 함께 養正院에서는 지역 의료기관 기능을 수행했다.
◎ 學山의 처가는 대대로 한의사 집안으로 장인인 김승태 옹도 한의사였다. 이로 인하여 한의학에 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고 장인 별세 후에는 그가 가지고 있던 한의학 서적을 인수하여 養正院 운영 시 의무실에 비치 하여 활용하였다.
◎ 學山은 당초 학교를 지을 때부터 사택동에 딸린 커다란 방 한칸을 아예 의무실로 만들었다.
◎ 지역민의 응급환자를 치료하였다.
◎ 직접 학생들을 치료해주고 약을 주었다.
◎ 항상 청결한 상태가 유지되도록 수시로 학교주변을 소독하였고 근처의 부락들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무료 진료하였다. 때로는 근처 마을을 다니며 공개적인 소독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 學山은 養正院 사택 마당에 산토닌의 원료인 해조류를 가마솥에 넣어 끓여서 매년 주기적으로 주민들에게 복용방법을 설명하고 그 자리에서 하얀 사기 그릇에 담아 복용토록 하였다 그 당시 이것을 마시기 위하여 養正院 사택 앞 마당에서 부터 3.4십 명씩 줄을 서곤 했다 學山은 구충사업에도 앞장을 섰다
◎ 學山은 약리에도 밝았지만 특히 산부인과부분의 무통분만에 의술이 뛰어났고 그 당시 회천 일대 주민이라면 누구든 한 두 번씩은 진료를 받았다. (白弘寅 증언)
◎ 특히 학산은 지역에 산파역할을 도맡아 했으며 무료 분만을 시켰다. 부인 김 씨는 산모가 해산하면 미역국과 쌀을 준비하여 보내주었고 이러한 일들은 전일리, 봉강리, 율포리, 명교리, 군항리 등에 자자하게 소문이 나 있었다. 흉년으로 인하여 지역에 어려움이 계속되자 어떤 경우는 출산하였다고 거짓으로 양정원 사택에 알려오는 일도 있었다 . 학산 부부는 이에 확인도 하지 않고 미역과 쌀을 인편에 보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