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농악 질굿은 후백제 통일 애국가
전라도 길굿, 경기도 칠채, 영남 길군악이 삼국의 애국가박자
전라 .경기 .경상도 사투리는 삼국의 토탬찬송가

1973 년의 1회 전북농악경연대회 정읍군 산외중학교 농악대 '오채질굿' 공연과 관중
삼국시대 새소리 종교 음악소리가 지금은 농악으로 연주되어 삼도에서 다르게 계승되고 있다
백제금동향로 그림은 하늘새와 짐승 물고기를 신으로 모시고 고기를 먹고 관현악을 연주하여 모시는 그림이다
신라 도기 항아리에도 새와 뱀에게 개구리를 먹이며 음악 가야금 연주하며 신으로 모신다
음악의 용도는 신을 모시는 토탬소리 제사의 중심이였다

백제시대 동물을 신으로 모시고 관현악을 연주하는 백제금동향로그림
삼국시대 새. 물고기 .뱀에게 바치는 노래 새소리가 우리전통노래이다
후백제 견훤왕이 신라국를 927년 정복하여 신라궁중악사를 데려왔고
여기서 백제. 고구려. 신라종교 천신소리를 후백제가 통합하여 애국가를 만들었다
신라에서도 새와 뱀신을 모시고 개구리를 잡수시게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풍속그림이다
백제의 천신 비들기, 고구려의 천신 꾀꼬리, 신라의 천신은 닭. 말. 까치 순서로 노래한다
국가축제에 이들 새소리를 내며 하늘신을 부르고 기도하는 종교시대였다
후백제가 후삼국의 통일을 눈앞에 두고 태자 신검의 부왕을 금산사에서 가무잡희로 달래고있는 후백제 견훤왕을 932년 고려국에 망명하게 도와준 태산(정읍)군수 허사문이 훗날 왕건의 사위가 되고 이자연 이자의 이자겸의 조상이다

신라토기에도 캄보디아 종교신처럼 뱀신에게 개구리 먹이며 음악연주
그러다가 1011년 고려 현종때에 글안군의 남침으로 나주로 피난 가다가 완주군 이서면 ‘장곡’마을 태인군 ‘왕림’마을에서 후백제 궁중악 소리로 감동시키고 태인허씨 후손 딸 2명이 현종왕비로 들어가는 구테타가 일어난다
이때부터 고려왕비는 이자의 이자겸의 자손으로 고려 강종시대 까지 이들 태인허씨 후손이 궁중 왕비의 권력을 장악하여 ‘정읍악’ 이름인 후백제궁중악으로 지금까지 이어 온다
그 궁중악을 ‘정읍악’이라고 전라도 정읍 음성향에서 사용하며 송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백제계 고려왕 실권세력을 이루었다
이때부터 정읍 음성향에서 송나라 사신맞이하는 가무음악이 고려궁중의 군악과 관현악으로 사용되었다
정중부난 시대에 정읍(태산)사람 이의방과 허승이 군악으로 사용하였고 송군비 장군이 몽고침입 7차에 정읍 입암산 전투에서 몽고군 고위 관리4명을 생포하여 몽고와 화친의 시대가 열린다 고려 충열왕시대에는 정읍 송씨는 몽고 궁중과 혼인하였고 고려말 군악대 나팔수 송안의 전공으로 이성계의 승리가 조선이 창업되었다

이방원 왕자의 난에 이성계의 세력이라고 송안장군의 정읍송씨가 몰락하고 산골에에 은거하였다
그래서 조선 단종시대 수양대군은 송안 장군 호족으로 불만세력인 송인수와 친구를 삼아서 정읍음악을 배우게되어 가야금 연주가로도 '계면조'를 창작했고 절친한 송인수의 딸을 단종왕비로 들이고 송인수의 고모 송씨를 동생 임영대군 부인으로 들였다
이집 송씨의 여종이 유규에게 시집가서 낳은 아들이 국악책 악학괘범을 만든 유자광이다
민족주의 임금 세조대왕은 서얼 유자광을 제갈양 같이 여기며 신하로 그말을 중히 여겼다
유자광은 성종 때에 음악책 악학괘범을 만들고 최초 한글사용으로 ‘동동’ ‘정읍사’를 수록 한다
한민족 음악은 연산군시대 한민족음악의 전성기를 유자광 송세림 송천희등 정읍송씨들 중심이 이룩했다

향로 뚜껑에는 새를 몸체에는 물속의 물고기 등을 모시고 있는 백제향로 그림
그 한민족 소리는 조선 양영대군 세조임금, 연산군이 애창하고, 유자광의 책 악학괘범에 정읍(백제) 동동(신라) 기록했으나 1506중종과 1623인조반정으로 모두 없애버린 것을 에케르트. 홍난파의 서양악보로 기록으로 '정읍'곡은 새타령 농부가, 아리랑, 등등 민요와 군가 동요가 살아났다
악학괘범의 실무자 성현은 오로지 유교학자로 모화(중국사랑) 사대주의 박연과 같이 국악을 패가망신소리 페지를 주장한사람으로 한민족소리 동동 정읍사 곡은 유자광의 고집으로 현재의 정읍농악 태평소로리로서 유사한 멜로디와박자로 구성되어 있다
아리랑 민요에서 처음 “아리랑 아리랑...”소리부터 노래 부르면 후백제국가 애국가이고, 후렴 “나를 버리고...” 가사소리부터 부르면 통일 신라국 애국가이다
새타령. 남원산성. 농부가. 아리랑.은 백제 토탬찬송가 이고, 밀양아리랑. 한오백년. 노래는 신라 토탬찬송가이고, 갑돌이. 몽금포. 오봉산. 한강수타령등 경기민요는 꾀꼬리 우는 고구려소리 민요이다
그래서 전라도사투리는 비들기소리와 같고, 경상도사투리는 닭과 말우는소리, 서울말은 꾀꼬리 암.수의 대화소리이다
사물놀이 삼도농악에서도 전라도 ‘길굿’은 비들기소리, 경상도‘길군악’은 닭. 말. 까치소리, 서울 경기도 만 있는 타령(얼쑤)장단과 경기농악 칠채굿은 꾀꼬리 소리를 그대로 흉내 리듬박자소리를 내고 있는 소리다
이런 음악을 백제 고구려 신라 토탬 순으로 후백제 견훤이 후백제통일 찬송가로 만든 것이 정읍사(수제천)곡이다
전라우도 정읍농악은 후백제와 고려시대 궁중악 애국가로서 오래 사용되어왔는데 그 증거로서 ‘5채질굿’은 백제 .고구려 .신라 토탬 (동물신앙) 순으로 삼국통일애국가 리듬장단이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풍류굿은 비들기소리, 양산도굿은 꾀꼬리소리, 허허굿은 닭. 말. 까치소리 삼국가별 천신의 순서로 소리내는 화랑도종교시대 군악대소리였다
견훤- 허사문- 송인- 송안- 이자겸- 유자광- 홍난파로 계승되었다
홍난파의 모든 작곡의 골격은 백제가요 정읍사 음악이다
그러나 조선 5백년 민족예술말살기간에 사라지고 한국농악 태평소(피리)소리는 임금행차 소리후에 미국애국가소리를 ‘시나위’라고 불고 있는데, 악학괘범을 지은 남원호족 유자광이 양성한 도자기 도공 심수관이 1592 임진왜란에 일본에 잡혀가서 가고시마현 보생정 당산굿 ‘대고방주’농악에서 다행히 백제소리가 살아남아서 한민족의 삼국시대 백제소리만이 일본에 그대로 남아 있다
태인허씨 후손 이자겸 3대가 고려왕권을 장악하고 강진. 부안등 고려청자 도요지가 이자겸 가문의 소유였으며 조선시대는 도공과 악공의 천대에서 오직 종의 아들 유자광이 지리산 속에서 이들을 보호하여 집단으로 살다가 1597정유재란 때에 일본으로 잡혀가고, 1653년 효종때에 하멜이 네델란드로 가서 두나라가 모두 도자기 세계왕국이 되었다
어린시절에 외가집과 고모가 사는 정읍에서 살았고 정읍. 동동음악을 한글로 악학괘범을 만든 유자광의 고향인 남원사람 심수관이 한민족 도자기와 음악을 ‘대고방주’ 보존회 회장으로 우리 백제 정읍사 토탬소리 비들기 꾀꼬리소리가 기적으로 남아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100년 동학 내세우려고 5000년 한민족 토탬음악 정읍사, 정읍농악은 야생초로 1973년에 이런 농악대회에 참여조차하지 않은
어린이도, 농악기능이 전혀 없어도 지역감정 부추기고 권력 주변인이 되면은 농악과 무형문화재 심사의 권력시대가 되었다
'나치스 히틀러와 크메르 폴포트는 많이 배운 학력. 경력자 의사 교사만을 모조리 학살했다'
세계최고 역사 전통 정읍농악 만은 크메르 촐포트에서 살아나야 할텐데 걱정이 크다
권희덕 notany35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