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저에게 禪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아니래도 나름 경에서 어떤 의미로 禪이라는 단어가 쓰이는지 본다고 보았지만
'이것을 禪이라고 한다.'라고 정의하지 못하겠습니다.
4종선은 '이러한 마음상태이다.'라는 것은 경에서 정형적으로 많이 나타나지만...
어떤 경에서는 '숨을 쉬지 않는 禪을 닦으리라.(‘yaṃnūnāhaṃ appāṇakaṃyeva jhānaṃ jhāyeyya’nti.)'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것을 감안하면 경을 관통하는 의미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3D 프린터가 최근 많이 회자되고 있다고 합니다.
데이터 파일만 있으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제품을 찍어 낼 수 있다는
3D프린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아이티 신기술에 무지한 봄봄은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이미 태어난 생명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모르지만
무명에 의해 만들어 진 존재이고 이미 무명을 지니고 있는 생명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이미 에러 데이터, 버그를 포함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의하여 변질된 복제품(=行들) 인 듯 여겨집니다.
<*봉행님 표현은 ?불량품..ㅎ 맞나요?>
또한 이미 버그를 포함한 데이터에 의해 약간씩 변형하면서 새로운 데이터=정보를
입력하고 저장하고 그래서 또 다시 약간씩 변질될 복제품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듯 생각됩니다.
버그 데이터 삭제가 만만치 않은 것이
어느 한 가지 데이터가 잘못된 것을 설혹 안다고 해도 이것만 지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대부분의 다른 데이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서
모든 데이터(=自我)를 완전히 부정하고서 모조리 디가우징(Degaussing)하면 될 듯 한데
아시다 시피 이것이 현실적으로...
그래서 만약 조금이나마 직접 알게된 정보가 있다면(아마 이 과정이 4념처가 아닐까 합니다.
즉 常樂我淨이 사실이 아니고 身=不淨, 受=苦, 心=無常, 法=無我....)
이 데이터로 조금씩 조금씩 관련된 잘못 입력된 데이터를 지우고
바른 데이터로 치환하여 나아가는 과정... 상당히 시간도 걸리고 때로는 內적 저항도 직면하게 되는...
이것이 혹시 禪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봄이 생각의 한계는 여기까지 입니다.
경을 기준하셔도 좋고, 실참 경험에 의한 의견도 좋고, '대략 이렇게 알면 될 것이다.'라는 의견도 좋습니다.
도반님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글 올렸습니다.
첫댓글 禪이란 글자를 보면 본다(示) + 단순하게(單) 가 조합되어있는데요...^^
아마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일것 같아요
6근에 부딪친 6경을 채색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내 생각을 투사해서 보지 않고,,
사실대로 느끼기만 한다면 .. 다시말하면 일어나면 일어나는대로 느껴서 알기만 하고,
그것이 사라지면 사라지는대로 느껴서 알기만 한다면 ...
그때는 이미 선한 마음으로 집중된 상태가 이어질 것 같아요.
6경을 버그가 난 데이터를 대입하여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면서 본다면
그때는 이미 불선한 마음의 집중 상태이고요...
하여간 ... 지금 경험하는 대상에 어떤 의미(생각)도 부여하지 않고 ... 있는 그대로 본다면...
거기에는 감각적 욕망 등의 불선법(탐진치)이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은 바른 마음집중인 禪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禪은 바른 마음가짐으로 현재에 마음이 집중된 상태,
번뇌가 없는 고요한 마음상태가 이어지면서 흘러가는 상태라고 본다면 ...어떨까요?
@해맑은 감사합니다. _()_ 破字풀이가 재미있네요... 봄봄도 흉내내 봅니다.
禪이란 글자는... [보이다(示) + 평평한 상태에서(單= 平)]로 조합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평평한, 울퉁불퉁하지 않는, 亂反射하지 않는, 안정된 마음상태(定)에서
일어나는 번뇌 본다/보인다.
이러한 반복 과정을 거치면서 그 일어난 法들은 무엇을 緣으로 생겨나며,
이렇게 생겨난 法은 어떠한 果를... 등등... 상상의 범위를 넘어가네요. ㅋ
봄봄님 ! 그렇지요~
亂反射하지 않는, 안정된 마음상태(定)에서 => 있는 그대로 볼 준비가 된 상태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선법이나 불선법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볼 수 있다면... 어떤 번뇌에도 걸려들지 않겠지요....
아무래도 禪이란 지혜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는 밭 같습니다.
사띠수행을 해서 들어가는 禪(자나)는 아직 想(산냐)의 세계라고 디가 뽓따빠다 경에 나옵니다.
그래서 삼매에 든 자가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경문에서도...... 선정의 높낮이에 따라서.......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자나만으로는 상수멸까지 가야만 하기 때문에.........자나 상태에서 ... 그 단계 정도의 있는 그대로 보면서... 사념처수행을 투철하게 하여........ 혜해탈을 하도록 설해주셨다고 봅니다.......
컴퓨터의 비유가 ... 일정분 의미가 통한다고 봅니다.........봄봄님.
컴퓨터의 작동이 멈추는 연습과 사마타가 연결이 되고.......... 그 상태에서 리셋을 하는 것이 위빠사나와 연결이 되네요.......
인식이 생기면(sa~n~nuppaadaa) 지혜도 반드시 생긴다(~naan.uppaado).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참으로 이것에 조건 지워져서 나의 지혜는 생긴다.'(‘idappaccayaa kira me ~naan.m. udapaadii’)라고.
---<뽓타빠다 경 (D9)>
<<숨을 쉬지 않는 禪을 닦으리라>> 위 본문 글이 제 마음을 진하게 징~~~울리게 합니다.
정신이 사라지고 숨을 쉴수 없는 죽은 몸은 시체라고 합니다. 시체는 숨을 쉬지 않습니다.
근데 정신이 있는 숨쉬는 육신을 가지고 <숨을 쉬지 않는 선을 닦으리라 >.는 의미가 제게는 이렇게
다가옵니다.
몸을 바르게 앎과 봄으로 해서 마음을 바르게 앎과 봄이 되며 ,
몸도 마음도 텅 비어 있음을 바르게 온전히 깨달았을때
비로서 모든 집착이 놓여지고 모든 번뇌가 사라진 텅 빈 평등공
그 공한 자리엔 숨을 들이고 (들숨) 내고(날숨) 하는 것이 없는 선禪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질과 정신(마음)은 텅 비어있는 성질(특징)이 있기에 변하는 것이다로 이해합니다 .(무상,고,무아)
변하는 특성이 있기에 범부 중생의 몸,마음이 바른수행으로 부처의 몸,마음이 될 수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수행자가 자신의 몸을 알면서 마음은 모르고, 마음은 알면서 몸을 모른다면 반쪽자리 미숙한 수행자라 생각합니다.
사념처에서 신수념이 맨 먼저 소개된 것을 보아도 몸을 바르게 알고 봄으로 해서
마음을 분명하게 알고 볼수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이해 됩니다.
단순히 몸의 구조 원리를 알아야 할 것 같으면 구지 자신의 몸을 파악할 필요가 없겠지요.
지금 현재 유지하고 있는 이몸은 시체가 아니라
마음이 활발발 살아움직이는 육신으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습니다
單은 예전 중국에서 사냥을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돌 2개와 나무 막대기를 묶어 놓은 모양의 형상라고 사전에 나와있습니다. 즉, 산란한 것들을 단일하게 묶어 놓은 모습과 의미거 됩니다. 그리고 그 묶여진 것(주의가 모아진 것)을 보는 것이 禪이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