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안의 사마리안 하트
글 김덕호
내가 회장으로 있는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 24기는 을지로 국립의료원(NMC)내
스칸디나비안클럽에서 동창회를 가끔씩 갖곤 한다. 작년에도 바이킹 뷔페식당을 이용했다.
모두 40여명 동창이 있다. 입학할 때 40명이었는데
당시 군사정권하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과반수가 휴학하였다.
강제 입대, 질병, 해외 이민 등으로 흩어지고 25명 정도가 졸업했다.
후에 다시 합류한 복학 동창들과 학사 편입한 동창들을 합해 다시 40명이 모이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경희한의대 각 기수 동창회 중에서 우리 24기가 가장 숫자가 적다.
40여명밖에 안되는 우리 동창들이지만 주로 서울 부산에서 개원하고 있고,
대구, 청주, 인천, 부천, 대전 등지에서 약간명씩 건강지킴이 역할을 다하고 있다.
4~5명의 대학교수, 국회의원(강동을), 복지부 국장, 협회장, 총동창회장직을 잘 수행하고 있으며
개원의로서 각 지역 단체장으로서 사회사업가로서 적극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동창들이다.
한의사직 외에도 각 분야와 지역에서 지도자와 지킴이의 역할을 잘 감당해주고 있는 동창들에게
늘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자긍심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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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동창 멤버 중에서 몇이 최근까지 국립의료원 책임공직 위치에 있어서 이곳을 선택한다.
한의학계 지도자들인 관계로 한의학 미래와 이에 대한 국가정책, 개업가 정보 등에 대해
자유토론도 하고 컨퍼런스 하듯 하여 수준있고 의미있는 모임으로 적절한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가에 있고 교통이 편리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다. 이곳은 국가적으로 매우 유서깊은 곳이다.
한국의 근대의학사에도 중요하다.
한의사로서 의료인으로서 국가관이라는 안경으로 볼 때 참으로 감사해야 하고
교훈을 얻고 깨달아야 하는 곳이기에 그렇다.
동대문과 을지로가 만나는 지역 밀리오레, 두타 등 고층빌딩 숲 아래
나지막히 엎드린 분홍색 단층 건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건물 입구에는 북 유럽 분위기가 풍기는 뷔르겔의 “농가의 결혼잔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정원에는 나무백일홍, 능소화, 석류 등이 심겨져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6.25전쟁 때 스웨덴 적십자병원과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의 활약상을 찍은 사진이 붙어있다.
이곳이 바로 6.25전쟁을 통한 스칸디나비안 3국의 우정과 상흔이 남아있는 곳이다.
6.25 전쟁 때 의료진을 보내준 나라가 5개국이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3국을 포함하여 인도와 이탈리아이다.
스웨덴은 1950년 8월부터 1124명을 파견하여 적십자병원을 운영했다.
덴마크는 1951년 3월부터 630명을 파견하여 병원선(유트란디아)을 운영하고,
노르웨이는 1951년 7월부터 627명을 파견하여 이동외과병원을 운영하였다.
이들 3국은 1968년 국립의료원을 떠날 때까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마도 각자 대략 연인원 100만명 이상은 진료했을 것이다.
인도는 1951년 8월부터 627명을 파견하여 야전병원을 운영하면서
주로 미군과 같이 활동하여 통계는 불분명하다.
이탈리아는 1950년 9월부터 128명을 파견하여 연인원 23만명을 진료했다.
이처럼 많은 의료지원이 있었지만 전투병력 파견 16개국은
그나마 어렴풋이 기억할지 모르지만 의료지원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 중
몇몇만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이젠 기억해 내야한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반듯하게 세워야 한다. 좌편, 우편 없이 말이다.
분단의 설움도 있는데 역사적 사실을 이데올로기적 잣대로 왜곡하거나
아전인수식 언행을 하는 무리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얼마나 소모적인 행동인가?
이젠 사실에 바탕을 두고 하나가 되어 자기개발과 국가건설에 총력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후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사랑의 빚을 되갚아야 한다고. 당시 군인과 민간인의 진료와 예방, 위생교육이 없었다면
중세기의 페스트처럼 전시 위생불량으로 인한 전염병의 창궐과 합병증과 외상 후
신드롬으로 엄청난 숫자의 국민들이 사망했을 것이다.
총 등 화약류로 인한 사상자 숫자보다 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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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국은 전시에는 각자 역할을 달리하다가 전후에는
재건의 일환으로 센타병원을 세우는 등 “스칸디나비아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폐허로 열악했던 공중보건 시스템의 선진화 기틀을 닦아 준 셈이다.
센타병원이 바로 스칸디나비안 클럽과 같이 자리한 국립의료원의 시작이었다.
“그들이 한국에 전수한 것은 선진의술이나 첨단 의료장비만이 아니고
의사의 기본덕목을 가르쳐준 은인이었고 이들이 없었다면 의학의 발전 속도가
상당히 늦었을 것”이라고 국립의료원 인턴 1기 출신 박인서 전 원장은 회고했다.
뒷 얘기를 들어보면, 2008년 개원 50주년 행사 때 당시의 의료진을 초청했다.
그 중 6.25전쟁 때 의사 아버지를 따라왔던 아들이 의사가 되어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는 폐허나 다름없던 한국의 발전상에 감격해 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우리국민은 나부터도 역사의식이 너무 약하다.
그리고 지나간 일을 너무 쉽게 잊는다. 6.25전쟁같이 엄청난 사상자와 국토의 초토화,
재산의 손괴가 있었음에도 지난 얼마동안 역사를 사실대로 가르치지 않고 쉬쉬하지 않았던가?
과거사가 거울이 되지 않고서는 현재도 미래도 없다.
전쟁을 잊는 순간 전쟁이 다시 찾아온다.
왜 “스칸디나비안”이란 이름이 국립의료원과 나란히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궁금해 한다면
6.25 전쟁을 둘러싼 역사의식은 꿈틀거릴 것이다.
이역만리에 와서 야전병원을 임시로 만들어 운영하다가
너무나 참담한 한국을 그대로 떠날수가 없어서 전쟁이 끝난 후에도
15년간이나 남아서 뒷바라지를 해준 이들을 우리는 그동안 모르는 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미안한 마음 뿐이다.
오히려 가해자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데 급급한 나머지 피해자인 우리를 위해
젊은 목숨과 소유를 바친 선의의 피해자가 된 이분들을 위해
우리는 감사기도 한마디 못해 주고 기억조차 못 했다는 말이다.
서울은 전쟁의 흔적을 없애버린 성형도시라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길이길이 역사적인 교훈의 장을 애써 가려버린 꼴이다.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상흔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얼굴은 상흔을 없앤다 치더라도 역사의 상흔은 그대로 남는다. 오히려 보존해야 한다.
산 교육장이요 매우 귀중한 유적이기 때문이다.
사찰이나 유적지는 엄청난 국민의 세금을 쓰고 그것도 모자라 거금의 입장료를 받아가면서
보존하려고 하면서 왜 국가의 존망이 풍전등화의 지경에 놓이고 국민의 목숨이 무참히 도륙 당했던
역사의 현장은 보존할 가치가 그것보다 못해서 그런가?
6.25전쟁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의롭고 용감하게 죽어간 자들의 흔적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그냥 자신들의 터전에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자신들의 생활을 했던 곳은
국민의 혈세를 퍼부으면서도, 큰 명분을 갖고 나라를 짓밟는 자들에게 대항하다 산화했던
사람들과 그 장소는 소흘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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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우리나라 근대사에 교육과, 의료, 독립운동, 지역봉사 본부였던 교회를
타깃으로 파괴와 방화, 그것도 모자라 교회 안에 죄 없는 사람들을 몰아 넣어서 물건이나
짐승 다루듯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온갖 방법으로 죽였다. 아예 몰살시키기도 했다.
북한이 교회를 그렇게 한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공산주의적 적화통일에 가장 걸림돌이 성경이고 그것을 가르치는 곳이 교회였기 때문이다.
피로 얼룩진 이런 곳이 아직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는 게 한둘이겠는가?
이젠 국가와 국민 모두가 이것을 되살릴 때이고 여기에 더 치중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를 지키다가 우리대신 죽어간 수많은 영령과 원혼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쩌면 더 급하고 더 중요한 현안인지도 모른다.
6.25전쟁 참전 16개국, 물자지원 20개국, 의료지원 5개국 합해서 41개국이 유엔결의 지원국이다.
비공식적인 물자지원국도 13개국이다.
베를린 카이저빌헬름교회의 포탄자국을 그대로 노출하여
이데올로기의 싸움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지를 알리고
선도의 교육장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전쟁에 관한한 독일은 책임과 보상에 철저했고 또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피해자에게는 진심의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 약속과 세계평화의 기여에 노력하고있다.
참으로 젠틀한 나라이다.그러기에 두개의 독일이 평화 통일을 이루지 않았겠는가?
우리도,북한도 교훈삼아야 하고 특히 일본은 독일을 큰 스승로 모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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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최근 천안함 46명의 젊은 우리 군인들이 산화한 현장은 그대로 보존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교훈삼아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친북세력들도, 좌파적 정치인들도, 국론을 분열시키고자하는
불순한 사람들도 이젠 진실과 정의를 얘기하고 더 큰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6.25전쟁 당시 당사자요 가해자인 중국과 러시아도 남침이었음을 인정하였다.
역사적 문헌자료가 근거가 되기 때문에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대국이 되려면 반드시 자기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통 큰 외교를 해야 한다는 면에서도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 밝은 천지에 숨긴다고 숨겨질 수 없고 이젠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경제 중심 관계로 형성해야 하는 시대이다.
잘못했으면 잘못됐다고 자백하는 세상이다.
이젠 모두 정신 좀 차리자. 기억할건 기억하고 감사할건 감사하고 인정할건 인정하자.
그러고서 행복한 미래를 공유할 수 있다. 6.25전쟁이 끝난 5년 후인
1958년 스칸디나비아 3국과 유엔 한국재건지원단(UNKRA)의 도움으로 440만 달러를 들여 국립의료원이 탄생되었다.
이 뜻있는 일을 기리기 위해 “스칸디나비안”이란 이름의 시설이 생겨난 것이다.
스칸디나비안 3국의 멤버들은 여기를 중심으로 의료활동을 했고 사무도 보고 식사도 했던 곳이다.
한국 ․ 스칸디나비안 재단(한스재단)이 국립의료원과 스칸디나비안 3국과의 의학 및
문화교류 증진을 위해 1968년 설립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주었다.
마치 강도를 만나 상해 받고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재산을 털어 살려낸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말이다. 자기와는 이해관계도 면식도 없는데도
그냥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주었다.
당시 국립의료원은 시설과 의료수준이 동양최고였다.
스칸디나비안에서 잠시 식사하면서 머무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직 대통령이 44년만에 유엔묘지를 방문하고 참전국들을 순방하면서
뜨겁고 깍듯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건 한참 늦었지만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비정신에서 본다면 창피하고 배은망덕했었다.
개인도 그러면 안되는데 하물며 국가가 그러면 되겠는가?
6.25의 흔적을 겨우 국립묘지나 동상, 휴전선에서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삶의 터전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있다.
유적으로 기념물로 유지로 적극 보존해야 한다.
이 사실을 자세히 그리고 깊이 기억하고 관심을 가질 때 전쟁은 오지 않는다.
이젠 사랑의 빚을 진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