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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신 2:1~3, 13~15)
우리가 방향을 돌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
제가 오늘은 ‘탈선 설교’ 를 하려고 합니다.
‘탈선 설교’는 ‘궤도에서 벗어난 설교’라는 뜻입니다.
두 가지로 궤도에서 벗어나는 데요, 저는 올해 로마서 강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로마서 강해가 아닙니다.
본문을 신명기에서 택했지요.
이것이 첫 번째 탈선입니다.
그 다음 탈선입니다.
설교를 할 때 설교자는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해야 합니다.
특히 자랑 성격의 이야기는 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좋게 말하면 간증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선교보고라고 할 수는 있겠는데 여하튼 이것도 탈선입니다.
오늘 왜 탈선을 하느냐?
이유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언제인가는 한 번 제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번 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주일오후예배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예전에 주일 오후 예배가 있을 때 개인 이야기를 몇 번 한 일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지금 성경 통독과 필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하고 있나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주일오전예배 설교는 참 엄숙하고 원칙을 잘 지켜야 해서 개인 이야기를 하기가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주일 오후 예배는 아니지만 그런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2023년이 저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2023년 가운데에서도 7월이 특별히 중요합니다.
왜 7월이 중요한가?
지난 주일 주보에 전 주 생일자 명단이 실렸는데 거기에 제 이름도 들어 있었습니다.
생일이 들어 있어서 7월이 중요한가?
아닙니다.
저는 통일선교 일을 오래 해 왔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올해, 2023년은 통일선교에 있어서 특별한 해입니다.
7월은 특별히 그렇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설교 중에 자세하게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경기도 용인 수지에 있는 교회에서 은퇴했습니다.
은퇴 후에 수지 옆의 분당에 살다가 4년 전인 2019년 9월에 용산으로 이사했습니다.
원래 용산에서 오랫동안 살았었기 때문에 이사를 했다기보다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용산에서 분당에 있는 교회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 소속해서 출석할 교회를 정해야 했습니다.
이때 저를 받아주신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깊이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2019년 12월 첫 주일부터 용산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는데 첫 주일에 교회에 와서는 ‘교회당 안에 기둥이 어디 있나?’ 찾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둥 뒤를 제 자리로 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목사님이나 교인들의 눈에 될 수 있으면 띄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전에 소속되어 있던 교회에서는 기둥 뒤가 제 지정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용산교회 예배당에는 기둥이 없고 전체가 환하게 트여 있더군요.
하는 수없이 저 구석자리를 제 지정석으로 택했습니다.
왜 그렇게 잘 보이지 않는 자리, 구석진 자리를 좋아할까요?
원로목사 생활은 조심해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저는 학생 시절과 청년 시절, 1950년대, 60년대, 70년대를 이 교회에서 보냈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도들과 개인적인 교제를 될 수 있는대로 피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누구인지, 저 분이 어떤 분인지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 이름을 기억하는 성도가 열 명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에 대해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제 용산교회 생활도 3년 반이 넘었고, 성도의 교제. 코이노니아는 교회가 해야 하는 중요한일 가운데 하나인데 조심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지내는 것이 적합한가?’하는 질문이 떠오르곤 합니다.
요즘은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합니까?
인터넷에 그 사람의 이름을 입력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한번은 약을 사기 위해 약국에 가서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약사에게 주었습니다.
약사 한 분이 약을 조제하는 사이에 카운터에 있는 다른 약사가 저를 보고 “특별한 일을 많이 하고 계시는 분이시네요” 했습니다.
“아니, 뭐가 특별한 일입니까? 그리고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덯게 아셨습니까?” 물어보았더니 “통일선교는 특별한 일이지 않아요? 처방전에 있는 이름을 인터넷에 입력해 보았어요” 하더군요.
인터넷에 제 이름을 입력해 보면, 저에 관한 기사, 동영상, 저서 소개, 이런 것들이 참 많이 나오는 편인데 대부분이 통일선교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약사의 대답을 들으면서 ‘아, 지금은 숨겨지는 것이 없는 세상이로구나. 더 조심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약사의 말대로 저는 통일선교의 일을 19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열심히 해 오고 있습니다.
통일선교를 처음에는 ‘공산권선교’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사회주의권 선교’ ‘북방선교’ 이렇게 이름이 바뀌었다가 북한선교, 중국선교, 러시아선교 이렇게 나누어 불렀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통일선교’라는 말이 나와서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데 요즘은 ‘복음통일’이라는 말이 조금씩 쓰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바뀌는 데는 그런 이유들이 있습니다.
통일선교의 일을 50년 가까이 하다보니 통일선교의 제1세대라는 말도 듣고 여러 가지 말을 듣습니다.
작년 10월에 부산에서 강연을 하면서 ‘초월적 통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요즘 통일이 안 될 것이라는, 더 나가서 통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 부정적인 통일관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통일은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방법으로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초월적 통일관을 가져야 합니다.” 고 했습니다.
「국민일보」기자가 현장에 취재를 와서 기사를 썼습니다.
“초월적 통일관”이라는 말로 검색을 하면 그 기사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사 가운데 “유관지 목사는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아버지야?’ 많이 당황하면서 또 은근히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가 왜 통일선교의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저는 기독교문학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 생활도 했고, 국문학도 전공했고, 신학교에서 국어 강의도 했고, 기독교문학 활동도 했습니다.
‘목사에서 은퇴를 하면 기독교문학연구원을 세워 일하리라’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문학연구원 대신에 북녘교회연구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교회연구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자기를 ‘북한’이라고 부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꼭 ‘북조선’이라고 불러달라고 합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연습장에 북한선수단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걸었더니 북한선수들이 심하게 항의를 해서 플래카드를 철거한 한 일이 있었습니다.
2018년 평창올림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이름을 북한교회연구원에서 북녘교회연구원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제가 통일선교의 일을 하게된 것을 하나님의 인도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통일선교를 비롯하여 저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인도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하나님의 인도’라고 했습니다.
60대가 넘어서면서 ‘하나님의 정밀한 인도’로 바뀌었습니다.
‘정밀’은 ‘정확‘ 플러스 ’치밀‘입니다.
70대가 넘어서면서 ‘하나님의 정교한 인도‘로 바뀌었습니다.
‘정교’는 정확 플러스 치밀 플러스 교묘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참 정확하고 치밀하고 그리고 교묘하다는 느낌을 갖게 인도해 오셨구나!’ 고백하게 됩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내게 하신 일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계산하시고, 계획을 세우시고 그렇게 하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만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성도 한 분, 한 분을 모두 정교하게 인도하게 계십니다.
여러분, 모두 그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통일선교에서 제가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국교회의 통일선교운동 전반을 보살피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이 단체, 저 단체의 고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리교회 안에 ‘북한회복감리교회연합’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10년 전에 정동교회, 아현교회, 종교교회 그밖에 여러 교회의 목사님들이 ‘감리교회의 통일선교를 활성화시켜야 하겠다’면서 만든 단체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각 교회를 돌아가며 통일선교를 위한 기도회를 갖고 있는데 열흘 전에는 종교교회에서 114차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이 북한회복감리교회연합의 자문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북한외복감리교회연합 안에 통일선교학당이라는 기구가 있는데 통일선교학당도 열심히 돕고 있습니다.
‘통일선교학당’, 옛날식 이름인데 ‘감리교회가 배재학당, 이화학당을 세워 우리나라의 신교육, 여성교육을 개척했는데 통일선교도 개척하자’는 뜻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또 한가지 일은 저의 고유한 일입니다.
북녘교회연구원이라는 이름 그대로 북녘의 교회들에 대해서 연구하는 일입니다.
제가 이제 나이도 많고, 많이들 아시는대로 건강에서 조심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를 부르시기 전에 세 가지 일은 마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하면서 그 세 가지 일을 힘써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기독교역사사전』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제가 하는 일이 아니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하고 있는 일인데 저는 편집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8년 전에 시작되었는데 사정이 있어 잠정 중단되었다가 2025년 8월까지는 출간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편집위원회를 새로 구성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편집위원은 여섯 사람인데 감리교신학대학 교수를 지내고 은퇴한 이덕주 목사님이 위원장입니다.
북한에 있었던 교회., 인물, 단체, 사건 모두 8,780항목을 작성했는데 아마 훨씬 늘어날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해방 전에 북녘에 있었던 교회들의 정확한 주소록을 만드는 일입니다.
해방 전에 북녘에 교회가 약 3,000개 안팎이 있었습니다.
남한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감리교회는 500개 안팎입니다.
그 교회들의 정확한 주소와 간단한 역사를 파악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작업을 하나 더 하고 있습니다.
그 주소를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남한도 행정구역이 여러 번 바뀌었지요.
용산교회 주소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183번지인데 한강로는 1890년대에는 한성부 남서(南署) 둔지방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의 지배를 받넌 1910년대에는 경성부 한지면이라고 했고, 해방 전에는 용산구 한강통(漢江通) 1정목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은 행정구역 변화가 더 심합니다.
북한은 1952년에 아예 행정구역의 기본구조를 뜯어 고쳤습니다.
북한에는 ‘(面)‘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주소를 가지고는 그 교회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옛 주소를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바꿔서 통일이 되면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교회가 있었던 자리를 찾아가서 ‘여기는 어느 교회가 있었던 자리, 그 교회는 이런 교회’ 이렇게 새긴 조그만 비석을 하나씩 세우자는 것입니다.
서울 시내에 그런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지 않습니까?
‘여기는 훈련도감이 있었던 자리’ ‘여기는 독립신문사가 있었던 자리’ 이런 표지석들이 600여 개가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저는 교회가 있었던 자리에 표지석을 세우는 일을 ‘푯돌 세우기’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주소 바꾸기 작업을 힘써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분단 후 북녘교회 통사(通史)를 쓰는 것입니다.
전체 역사를 통사라고 하지요.
우리나라에는 어직 분단 후 북녘교회 전체 역사를 기록한 통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일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은퇴 전보다 더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하는 일을 기억하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2023년은, 통일선교에서 참 중요한 해입니다.
70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이번 주일의 목요일에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조인되었습니다.
남한에서는 7월 27일이 어떤 날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달력 가운데에도 아무런 표시가 없는 달력들이 많습니다.
북한에서는 그랬다가는 야단납니다.
북한에서는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승리일’, 줄여서 ‘전승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국경일이어서 달력에도 빨간색으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행사를 크게 하는데 올해는 더 크게 할 것입니다.
올해가 정전 70년인데 북한에서는 5주년, 10주년을 정주년(整週年)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이야기할 때는 ‘꺾어지는 해’라고 부릅니다.
이미 한두 달 전부터 큰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들이 포착되어 보도되고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에 해방과 동시에 38선이 그어져서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었습니다.
1948년에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어 분단이 굳어졌습니다.
6․25전쟁 때 3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고 정전이 되었습니다.
분단이 아주 굳어져 버렸습니다.
통일선교 일을 하는 분들 가운데 1953년 정전협정 조인을 ‘진(眞)분단’이라고 부르는 분이 있습니다.
‘진짜 분단’이라는 뜻입니다.
‘강(强)분단’이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강한 성격의 분단’이라는 듯입니다.
저는 ‘본(本)분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분단’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38선이 아니고 정전협정 제1항에 의해 만들어진 휴전선을 경계로 해서 분단이 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그로부터 70년이 되는 해인데 70년이라고 하면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꼭 기억해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례미야 29장 10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져 이스라엘은 포로생활 70년만에 귀환하기 시작했습니다.
1차 스룹바벨, 2차 에스라, 3차 느헤미야의 인솔로 귀환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분단시대에서 귀환시대로 전환되었습니다.
지금 통일선교 일을 하는 분들은 “바벨로 포로생활 70년만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포로시대에서 귀환시대로 전환시켜 주신 주님, 분단 70년을 맞이한 한국의 역사를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전환시켜 주옵소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올해 2023년이 통일선교의 새로운 원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전 70년 평회축제 위원회’를 만들어서 연합으로 여러 일을 하고 있습니다.
DMZ를 따라 북한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들이 있습니다.
지난 6월 6일에는 단체별로 나누어서 그 통일전망대에 올라 북한을 바라보며 동시다발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그날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칠성전망대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가까운 곳, 용산우체국 위에 국군중앙교회가 있는데 26일, 수요일에는 거기에서 국제평화콘퍼런스가 열립니다.
또 ‘통일선교언약 선포식’도 합니다.
통일선교언약은 통일선교 전문가들이 지난 6년 동안 힘써 연구해서 만든 선언문인데 그것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국군중앙교회가 이 일에 참 열심인데 지금 국군중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군목님은 감리교 목사님입니다.
그리고 27일 오후에는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평화 콘서트를 갖고 이어 기도회를 갖습니다.
그 기도회 설교를 제가 맡았는데 저는 회개를 주제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통일선교를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하고,
통일선교 사역자들이 연합하지 못한 것, 통일선교의 청사진을 바르게 제시하지 못한 것 회개하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부터 회개해야 한다고 외치려고 합니다.
통일선교를 더 열심히 하지 못하고, 한국교회의 통일선교 사역을 더 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통일선교 전문가라는 명예를 즐기고, 통일선교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올해 통일선교 집회도 유난히 많이 열리고 있는데요, 올해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 제가 주일에 안 보이면 다른 교회 통일선교 집회에 설교하러 갔다고 아시면 대개 맞습니다.
넉 주일 전에는 낮예배를 마치고 천안에 달려가서 설교했습니다.
석 주일 전에는 분당에 있는 교회, 두 주일 전에는 강남에 있는 교회에 가서 설교하느라고 교회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엊그제, 금요일 저녁에는 구리에 있는 교회에 가서 통일선교 설교를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교회에 가서는 통일선교 설교를 열심히 외치는데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한번은 이런 말씀을 드러야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이 오늘 이같은 설교를 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시내광야 생활 끝 무렵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산을”, 1절을 보면 세일 산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루 다닌 지 오래니” 13절을 보면 38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38년은 제자리걸음의 38년이었습니다.
의미가 없는 38년이었습니다.
제가 60년 전에 군대 생활을 할 때 한국 군대는 기합이 참 많았습니다.
‘빳다’라고 해서 구타가 심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근무하는 미군들을 보면 구타가 없었습니다.
총을 메고 철조망을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큰 기합이었습니다.
미군 병사에게 너희는 구타가 없어서 참 좋겠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목적없이 그저 왔다갔다 하는 이것이 더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자리걸음 그만 하고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복지가 북쪽에 있었거든요.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저는 이 말씀을 “통일선교에 힘써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하셨습니다.
세렛 시내는 시내 광야와 가나안 경계에 있는 시내입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 버스를 타고 이집트의 시내 광야 순례를 마치고 이스라엘로 가는데 거리가 멀고 피곤하니까 대부분 졸았습니다.
저도 졸고 있는데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이 버스는 잠시 후에 세렛 시내를 통과하게 됩니다” 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 거기서 잠깐 멈출 수 없느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거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버스가 멈췄을 때 내려서 보니 세렛 시내는 와디였습니다.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비가 내리면 콸콸 물이 흐르는 냇물을 와디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건천(乾川)이라고 번역하는데 성경에 나오는 시내 가운데는 와디가 많습니다.
거기에 서서 뒤돌아보았습니다.
시내광야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죄지은 세대가 모두 죽어가기를 기다라고 있었습니다.
눈을 들어 세렛 시내 건너편을 보았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아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민족도 세렛 시내를 건녀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교인은 줄고, 가나안 성도들은 늘어나고, 이단세력은 더 왕성해지고, 교회에 대한 호감이나 신뢰도는 낮아지고, 신학교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라는 공신력이 있는 단체에서 5년에 한 번씩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신앙의식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실시한 조사 결과가 「기독교사상」7월호에 발표되었는데 조사의 결론은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약화되고 있다. 특히 개신교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저는 통일선교에 힘쓰는 것이 한국교회가 살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과거에 한국교회가 개화를 위해, 민족운동을 위해, 건국을 위해, 인권운동과 민주화를 위해 , 한마디로 민족을 잘 섬길 때는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지금 교회가 민족을 잘 섬기는 길은 통일에 앞장 서는 것이고, 통일이 되면 우리는 현장에서 직접적인 북한선교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가지 말씀을 복잡하게 드렸습니다.
저를 받아주시고, 교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 통일선교 일을 잘 할 수 있도로록 여러 가지로 도와주고 계시는 것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감사를 드리면서 눈을 들어 북을 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흑암에 사는 동포들, 복음을 듣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동포들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보아야 합니다.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탄식 소리, 육신적으로도 곤핍하고, 상할대로 상한 영의 탄식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생명줄을 던져 그들을 구원하라는, 지금 곧 건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눈을 맑게, 밝게 하고, 귀를 기울이며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 2023년을 의미있게 보내는,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부족한 종이 두려운 마음으로 종이 하고 있는 일, 아니, 주님께서 종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제단의 도움으로 종이 그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한국교회가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들에게 생명줄을 던져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더욱 힘쓰게 하여 주옵소서.
정전 70년이 되는 이 해에 그런 깨달음이 더욱 깊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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