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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수필작가
류인혜
류인혜(柳仁惠) / 수필가. 시인·한국수필작가회 회장 역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죽순문학회, 현대시조문학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제18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수필집 『풀처럼 이슬처럼』 『움직이는 미술관』 『순환』. 시집 『은총』
│대표 작품│
숨은 사람을 찾아 외 5편
류 인 혜
영화 ‘취화선’을 관람한 후부터 오원이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오원 장승업은 화가다. 그래서 그림에 대해서도 생각을 한다. 특정한 화가나 어떤 화풍에 마음을 주고 있는 구체적인 관심이 아니라 막연히 좋은 그림을 많이 봐야 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을 향한 눈과 마음을 놓아 버린 지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버려 어떤 그림이 딱딱해진 마음에 흥취를 줄 수 있는지, 그림을 잘 그려서 좋아하던 화가들의 이름마저 까마득하다. 오원에 의해서 생겨난 결정이니 우리나라의 화가들에게 먼저 관심을 주어야 하는지, 전에 좋아하던 화가들의 화첩을 다시 꺼내서 보아야 할지, 어디에서 다시 시작을 해야 되는 것인지 잡히지 않아서 모처럼 일어난 생각을 접어 버리고 모른 척 게으름을 부리고 싶다.
근래에 ‘근원수필’을 다시 읽으며, 살다 간 사람들의 자취를 따라가다 생각 속에서 맴돌고 있는 화가, 오원 장승업에 대한 글을 읽고 반가웠다. 글을 찾아가다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글을 알게 된다.
근원의 수필을 읽으면 사람과 교류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그런데 한 번도 말을 건네지 못했다는 빙허 현진건과의 관계는 특별한 의미를 준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모임에서도 같이 앉아 있었지만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눈에 띄면 저 사람이 누구거니 짐작만 하면서 세월을 보낸 사이다. 그런데 돌연 현진건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그 집을 찾아갔다. 문상을 하고 돌아서면서 솟구치는 눈물을 금할 길이 없었다는 근원의 글을 읽고 막막해졌다.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에게 마음만 친근했지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내다가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일이 어찌 없겠는가. 남의 일이 아닌 듯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호기심이 많아서 한창 문화행사마다 기웃거리고 다니던 젊었을 때의 일이다. 어디를 가도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용이나 연극, 음악회는 공연행사이니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기에 그럴 법도 하지만 심지어는 등산길에도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 서로 얼굴을 대하자 민망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그저 실없이 웃었다.
지금 생각하니 통성명이라도 해 두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가 된다. 같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기본인데, 살면서 필요한 사람을 많이 놓쳐 버린 듯 섭섭한 마음마저 든다. 사람에 대해 적극적이지 못한 것은 자신에게도 소홀한 노릇이다. 간절히 원할 때 가장 적당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재산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아 세상을 먼저 산 사람들이 친구에 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던 진심을 절실히 수긍하게 된다.
근원이 살았던 시대는 사람이 적어서 그랬는지 모든 사람들이 한 동네에서 먹고 마시고 잠자고 한 듯 예술가들 모두가 친구가 되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살았던 모양이다. 특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당연히 한 부류로 속해 있었다. 근원은 그림을 그리면서 친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오원 장승업을 기리면서 앞서 살았던 불우하였지만 그림을 사랑했던 천재화가를 이해하고자 애를 썼다.
근원의 오원에 대한 마음은 각별하다. 근원도 그림을 그렸고, 오원도 많은 그림을 그렸던 화가이다. 나도 그렇게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고 싶어진다. 모두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사람과 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다. 그것은 얼굴만 그려 놓고 코와 입은 어떻게 생겼을까 싶은 막연함이다. 그런 막연함은 생각하는 누구든, 아는 척을 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조바심에서 나온다. 이런 내심이 드러날까 사람을 대하기 무척 어렵다.
벌집 이야기
베란다 왼쪽 벽 높이 못 하나가 튀어나와 있다. 그 끝에 집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창문으로 들락거리며 자재를 나르고 있는 것은 허리가 잘록한 말벌들이다. 물어 온 것들을 이어서 작은 육각형을 하나씩 늘이고 있다. 벌의 날갯짓 소리가 공사장의 레미콘 돌아가는 소리 같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새끼손가락 크기였는데 지금은 다섯 손가락을 활짝 벌려서 부챗살을 만든 모양만큼 지어 놓았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베레모 꼭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들어 달아 놓은 형상이다.
평소에는 발뒤꿈치를 들고 고개를 내밀어 안부를 물었는데, 잠깐 쉰다며 바람이 잘 들어오는 곳에 머리를 뉘었더니 벌집 밑바닥이 똑바로 보인다.
아하! 첫눈에 들어오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이제까지는 옆모양만 보고 육각형이구나 짐작은 했는데 정확하게 육각형이다.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서너 줄 비워 놓고 자로 재어 그린 듯 흰 덮개가 있다. 짙은 회색 바탕에 육각을 이루고 있는 흰 선의 선명함이 아름답다. 유충이 번데기가 되어 잠자고 있는 방이다. 새로운 느낌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어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다.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작은아이를 불러다 옆에 뉘었다. 모자가 흡족한 마음으로 나란히 누워 벌집 구경을 한다.
우리 집 베란다를 빌어 집을 짓고 있는 여왕벌이 부지런하여 날마다 식구 수를 늘이자 문득 자양동 살 때 뒷방 식구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이사 오던 날 내다보니 여자아이만 세 명이었다. 우리 집 아이들을 염려한 나는 아이가 많아도 여자들이라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가장 큰 아이는 막내를 업고 있었는데 중간 아이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진다는 생각만 했다. 이층에 사는 주인여자가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아이가 둘뿐이라더니 셋이네.” 키가 작고 단단하게 생긴 뒷방 남자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둘이나 셋이나요.”
이사 온 다음날 그는 퇴근길에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큰애만큼 한 사내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 셋째는 살던 집에 맡겨 놓았었단다. 뒷방 여자는 에미를 보자 심술이 나서 팔딱거리는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주인여자는 입을 벌린 채 쳐다만 보았다. 네 명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들의 어울림은 뭔가 부족한 느낌으로 어색했다. 말없이 사람들의 눈치만 살폈다.
며칠 후 남자아이가 또 나타났다.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린 까까머리는 내가 쳐다보자 씩 웃었다. “시골 할머니네 갔었어요. 학교를 일주일이나 빼먹었어요” 그 애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제야 질서가 잡혔다. 둘째가 나타나자 아이들은 돌연 생기를 찾았다. 그 중에서도 남자아이 둘은 뜻이 잘 맞았다. 다섯 아이가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것만으로도 집 안이 부산스러웠다. 우리 두 아이와 옆집의 세 아이까지 함께 어울렸다.
친정살이를 오래 하다가 마흔이 넘어서야 집을 장만하여 애지중지하는 주인여자가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보다 셋방에서 내쳐질까 전전긍긍하는 뒷방 여자가 더 안쓰러웠다. 아이 다섯을 데리고 또 어디로 가야 될지 막막하다고 했다.
뒷방 아이들은 새끼 벌처럼 각자 독방을 썼다. 다락에서 잠을 자던 둘째도, 이불을 꺼낸 캐비닛에서 새우처럼 꼬부리고 자던 셋째도 눈만 뜨면 싱싱하게 뛰어다녔다.
벌의 식구가 날마다 늘어 스무 마리도 넘는다는 아이의 걱정에 슬그머니 위기의식이 생긴다. 자꾸만 많아져 나중에 떼거지로 공격해 오면 어쩌나, 말벌에 쏘여서 죽은 사람도 있다던데, 자기 집 내어 주고 살이 마르던 자양동 집 주인여자 꼴이 되어간다.
다시 가족회의를 열어 남편이 좋은 날 잡아서 벌집을 떼어내기로 결정한다. 그 좋은 날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기다리던 아이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모기향을 피우는 것이다. 의외로 효과가 나타난다.
벌들이 힘을 잃어 떨어져 내리고 날갯짓 붕붕거리던 소리가 없다. 남아 있는 벌들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붙어 있어 초상집이 된 듯하다.
다음날 아이들 방에 벌이 세 마리나 날아다닌다. 모기향을 피운 아이에게 “벌이 원수 갚으러 왔다” 했더니 방안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래도 벌이 집을 비운다는 가을까지 기다려야 된다. 식구가 많아져 소란스러워도 기왕 집을 지어 살 터를 빌려 주었으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한다.
며칠이 지나자 남은 벌들이 조금씩 기운을 차린다. 벌 한 마리가 무거운 것을 물고 날아오르다가 떨어지고 또 날아오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이가 물끄러미 그 모양을 쳐다보더니 “벌도 사람처럼 띨띨한 게 있나 봐요.” 한다.
늘 부모의 관심이 부족한 듯 울고 다녀서 오빠의 구박을 받던 넷째 여자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를 닮아서 순하기 짝이 없던 뒷방 여자라면 벌집 밑에다 받침대를 달았을 것이다.
순환
-고목도 꽃을 기다린다
음력설을 전후해서 며칠 동안 혹독한 추위를 겪었다. 밖에서 잠을 자던 노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아파트 맨 아래층에 사는 세대의 하수도가 얼었으니,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물을 내리지 말라고 연일 방송을 하고 있다. 세탁기를 내다 놓고 있는 베란다 쪽은 햇볕이 잘 들지 않고 바람도 심해 수도관이 얼었다. 추위가 빨리 물러가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해 겨울이 생각난다.
큰아이가 입대하던 날은 마침 그 겨울 들어 가장 기온이 내려갔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연기를 한 끝에 입대하는 날이 하필이면 머리가 얼얼하도록 추운 날이었다. 안 그래도 영장을 받은 날부터 코끝이 수시로 매워졌는데, 텔레비전의 일기예보에서 자꾸만 춥다고 하니 어찌나 막막해지는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집합 장소인 의정부까지 먼 길을 간다고 잘해 준다며 생각한 것이 닭죽을 끓여 먹이는 거였다. ‘밥을 든든히 먹여야 되는 것을 어쩌자고 죽을 먹여, 그 추운 날씨에 금방 배가 고플 것인데.’라는 자각이 든 것도 아이가 제대를 하고 나서였다. 306보충대 근처에서 점심을 사 먹였다는 말을 듣고 안심을 했던 게 그 미련함을 까맣게 잊어버린 이유가 된다.
입대한 지 얼마 지난 후 아이에게서 사진을 동봉한 소식이 왔다. 증명사진처럼 반듯한, 완전 군인 아저씨 차림을 하고 찍은 사진에서 시퍼렇게 얼어붙은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에서 떨고 있는 아이의 한기가 금세 전해 와 몸이 덜덜 떨려서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어붙은 마음으로 봄을 기다렸다. 세월아 어서 가거라. 하루하루가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듯 조바심으로 날을 보냈다.
수시로 달력만 쳐다보다가 드디어 입춘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이제부터 봄이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니 눈이 확 뜨이는 반가움이 솟았다.
입춘은 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의 기운이 땅에서 솟아나는 날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집 기둥이나 대문, 대들보에 붙여 놓는다. 전에는 그런 것을 보고 낡은 풍습이라고 비웃었다. 그런데 입춘이란 절기가 반가워서 어서 오라고 버선발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아이의 손이 찬바람에 트지 않을 터이고, 옷을 겹겹이 입지 않아도 될 것이다. 벌써 겨울이 다 지나가 버린 것처럼 마음이 녹았다.
어느 날, 시장 가는 길의 풀숲에서 오랑캐꽃을 발견했다. 아직 바람이 싸늘한데 꽃은 봄을 데리고 왔다. 서울보다 더 북쪽에 있는 아이에게 아파트 주변의 길에 꽃이 피었다고 봄소식을 전했다. 그 곳에도 이제 곧 봄이 갈 터이니 추워도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라는 편지를 쓰는 마음은 조급했다.
봄이 되어 차례로 피어나는 꽃을 보는 일은 상쾌하다. 꽃들은 피어날 때를 스스로 알아 그렇게 자기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 준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을 보듯 환호하며 신기해 하며 자신에게 잠재된 또 다른 생명을 예감한다.
올해는 새해를 맞는 의미가 더욱 크다. 그렇게 애간장을 녹이면서 자라남의 통과의례를 지켜보던 큰아이에게 자식이 생긴 것이다. 자연이 쉬임 없이 생성하고 사그라지는 것을 반복하며 종족을 번성시키듯이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아 집안을 이어 간다. 다른 사람의 일일 때는 당연하게만 바라보았던 그 일도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인생의 때가 겨울로 향하고 있는 나는 고목이다. 아이는 나무가 왕성할 여름에 피어난 무성한 잎이었다면, 새로 태어난 손녀는 꽃이다. 아기는 이제 살아가야 할 긴 인생에서 입춘의 때를 맞이했다. 갓 태어나서 입을 오물거리는 신생아를 바라보자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아이를 키우면서 큰아이는, 내가 느껴 오던 오만가지의 감정들을 경험할 것이다.
우주의 모든 곳에서 솟아오르는 봄의 기운을 맞이한다. 바람이 있다면 고목 같은 나무줄기에서 찬바람을 이기며 피어나는 매화를 구경하는 것이다. 저 혼자서 피거나 지거나를 간섭하고 싶지 않던 매화는 그림으로만 보던 꽃이다. 묵은 나뭇가지에 불현듯 생의 환희처럼 번지는 아름다움이고 겨울의 매운 추위를 묵묵히 견딘 끝에 맑은 향기를 내뿜으며 핀다는 꽃이다. 새삼스럽게 이 봄에는 많은 사람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그 매화의 향기를 느끼고 싶다.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왔던 것들을 이제 눅눅한 마음이 되어 받아들인다. 그것이 이어져 가는 생명을 바라보는 기념을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블랙커피를 위하여
그것을 만난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혼자 놀기 심심하던 어느 날, 우연히 개켜 올려진 이불 틈새에서 수상한 병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라서 그냥 넣어 두었다. 며칠 후 궁금증에 견디지 못해 다시 꺼내서 뚜껑을 열고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아주 쓴 약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 쓴 가루의 출현은 새로운 호기심이었다. 이따금 병을 찾아내어 맛을 보았는데, 갑자기 그 병이 없어졌다. 얼마나 섭섭했던지, 그리고 차츰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초등학교 때, 읍내에서 다방을 하던 친구 집으로 가서 함께 숙제를 했다. 그 곳에서 우리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문화의 흔적을 보았다. 집 안 이곳 저곳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빈 병이라든가 깡통 등에 쓰여진 영어는 강렬한 호기심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드디어 심부름 가는 그 애를 따라 다방에 갈 수 있었다. 다방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저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아쉬운 대로 뒷문을 통해 들어간 주방에도 볼 거리가 많았다. 실내와 연결된 조그만 창으로 전해 오는 메모지를 보면서 주방장이 익숙한 솜씨로 각종 차를 만들어 내보내는 것을 구경했다.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모습은 작은 망에 담겨진 홍차 건더기를 뜨거운 물에 여러 번 우려서 맑고 투명한 액체를 만들어 내던 일이었다. 흡사 요술처럼 변하는 물의 색깔에 넋이 나갔다.
그런데 그 곳에서 잊어버리고 있던 예의 그 병을 보았다. 너무 오래 전의 기억이라서 잠깐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라 너무 반가워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병이냐고 수줍게 묻는 내게 그 애는 자기도 아는 것이 있다는 거만한 태도로 ‘커피’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아! 그것이 바로 커피였구나.
서울로 올라와서 고모 댁에서 지냈다. 고모는 60년대의 문화적인 일을 나에게 담당시켰다. 아이들을 몰고 동대문 스케이트장에 가는 일, 아이스크림 파우더를 사 와서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일, 명동 입구 식품점에서 조금씩 덜어서 팔던 마요네즈를 사 오는 일, 그리고 손님이 오면 인스턴트 커피를 끓이는 일들이었다. 커피를 다루는 일에 능숙해졌다. 가끔 시험공부를 핑계로 커피만 두세 스푼씩 끓인 물에 타서 마시곤 했다.
짙은 암갈색의 블랙커피는 그때 경제적으로 어렵기만 했던 내 처지처럼 암담했다. 인생의 쓴맛을 먼저 배운 것이었다. 만약 설탕을 넣어 달게 했다면 사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고, 사탕 같은 달콤한 면도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을 것이고, 프림의 녹록하고 끈적끈적한 맛을 알았다면 사물에 대한 시선이 자로 잰 듯 딱딱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고 모른 척하고, 대충 넘어가는 방법도 배웠을 터인데, 어쨌거나 단순함이 무지막지함에 가까운 성격대로 블랙커피만 선호했다.
60년대에서 70년대에 명동을 들락거리던 사람으로 고전음악 다방 ‘설파’를 모르면 촌놈이었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 자주 갔었지만 처음 그 곳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번거로웠다. 찻잔을 나르는 아가씨가 습관적으로 슬쩍 부어 주던 프림을 막으려고 재빨리 커피 잔 위에 손을 얹어야 했다.
가끔 ‘블루마운틴’을 주문했다. 그 커피를 담아 마시는 잔은 크고 아름다웠다. 주전자에 따로 담아서 내주는 커피를 따르고 약간의 설탕을 넣어 천천히 저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새로운 문명에 목말라 방황하던 젊음이 누릴 수 있는 정신의 사치를 마음껏 누렸다.
결혼해서는 각별히 친하던 커피와 작별을 하였다. 새 생명에게 그 검은 액체는 해롭다고 하니 커피에 대한 집착을 알던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인내했다. 그 후부터는 커피에 대해서 덤덤해졌다. 마음대로 마실 수 있게 되어서도 까다롭게 기호를 따지지 않고 대접해 주는 대로, 상황에 따라 편한 대로 마셨다.
그런데 블랙커피에 대한 기대치는 전혀 버려지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정신의 입맛 깊숙이 숨어 있었나 보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지만 기호대로 마실 수 있는 필요한 환경이 조성되면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블랙커피에 대한 미감이 살아났다. 블랙커피는 언제나 블랙커피를 원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다른 모든 커피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임시로 존재했을 뿐이다.
기회가 닿아 커피 전문점으로 가서 성능이 좋은 분쇄기를 사 왔다. 마침 미국에 다녀온 분이 원두커피를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는 마음이 블랙커피에게로 향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잔잔한 설렘이 일었다. 긴 기다림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하나의 의식처럼 천천히 커피 알갱이를 갈았다.
강력한 항생제
언제부턴가 명치끝이 무겁고 이상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위가 아프다는 말을 듣자마자 수면 내시경을 권했다. 그래서 쉽게 진단이 내려졌다. 촬영된 화면은 내가 보기에도 이상했다. 위궤양이 심하고, 십이지장이 온전하지 않다 했다. 나이가 들어 보여 신뢰가 가는 의사 선생님이 위장약을 팔 주 동안 먹으라고 했기에 그 말을 따랐다. 환자가 온전히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의사다. 의사의 말에 의심이 간다면 병을 고치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먹기 힘든 약을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었다.
위장약의 복용이 끝나자 다음에는 남아 있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cobacter Pylori)균은 위궤양을 일으키는 균이라서 ‘박멸’을 해야 된다고 하였다. 의사 선생님의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표어나 포스터에서 흔히 보던 낱말이라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인데 ‘박멸’이라니 정말 무시무시한 세균을 몸 안에 감추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처방전을 받아서 간 약국의 약사는 한술 더 뜬다. 이 약은 ‘강력한 항생제’가 포함되어 있어 위에 부담이 되니 그렇더라도 참고 먹어야 된단다. 그래선지 약을 복용하던 2주 동안에는 정말 환자처럼 지냈다.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박멸의 전쟁은 이라크 전쟁보다 더 실감이 났다. 강력한 항생제는 몸 안의 다른 세균까지 없애는지 하루하루가 몸이 녹초가 될 만큼 힘겨웠다. 약이 필요한 것을 지금까지 무시해 왔기에 약에 대한 전투력이 약한 잡균의 서식지도 박멸의 이름으로 초토화되나 보았다. 오래 머물렀던 곳을 떠나는 균들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강력한 항생제는 사람의 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신문을 읽을 때나 TV로 뉴스를 볼 때, 상식 밖의 이상한 사회현상을 접하면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불신과 부패와 거짓과 오만과 사치와 술수가 가득한 모든 곳에 적용되는 항생제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하러 들어가는 장면을 보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존경받는 지도자’라는 단어였다. 온 국민이 마음으로 존경할 수 있는 범국민적인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지, 그런 꿈같은 일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제각기 아비 없는 자식처럼 살아가기로 작정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는 신뢰할 지도자라는 결론을 얻었다.
정확한 시기는 잊어버렸지만 신문의 한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국민(초등)학교 저학년 때가 맞을 것 같다. 어느 날 신문에 큰 활자로 “별이 떨어졌다”는 말이 시선을 끌었다. 별은 밤하늘에 높이 떠서 반짝이는 것인데 어떤 별이 왜 떨어졌는지 너무 궁금해서 식구들을 붙잡고 물었다. “해공 신익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대답은 더욱 이상했다. 신문의 사진은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든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광경이었는데 사람이 죽었다면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되지 도리어 땅으로 떨어지다니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아득히 하늘에 있는 별이 되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바라볼 수 있는 행복함을 주는 존재란 어떤 힘을 가져야 될까.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신뢰하여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분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여러 경구들은 살아오면서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특히 아이를 키울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미운 일곱 살 지나고, 미친 열 살이 지나야 온전한 사람 구실을 한다’고 하셨기에 아이들이 잘못을 하더라도 수용하며 열 살이 되도록 인내하여 기다릴 수 있었다. 길 가다가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강요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열 살이 되도록 기다리세요.”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열 살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가 아닌가 싶도록 도처에 공동체가 지녀야 될 기본적인 도덕심도 서로에 대한 공경심도 사라져 간다. 이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가 될 올바른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은 아닐 것이다.
나무와 채송화
동설란 화분 귀퉁이에 풀 한 줄기가 올라왔다. 집 안에 식물이 적어 푸른 잎이 귀하기에 내버려두었다. 그 가느다란 줄기 끝에 꽃이 한 송이 피었다. 가시 같은 잎이 눈에 익다 했더니 노랑색 채송화다.
며칠 동안 집을 비운 후 돌아와서 화분에 물을 주며 살피다가 꽃을 발견하고 소리쳐 남편을 불렀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그도 높은 목청에 마음이 동했는지 어슬렁거리며 다가와서 보더니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채송화를 본 것이 몇 해 전인가, 시골집 얘기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된다.
우리가 신혼시절 몇 해 살았던 집은 동네 한 쪽 산밑에 넓은 땅을 거느리고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집 주변은 오랜 세월 동안 그 곳에 살다 간 조상들이 심은 나무들로 무성했다.
집 뒤안과 이어져 있는 산등성이에 자생하는 수백 그루의 참나무를 위시해서 산비탈 텃밭 주변에 대추나무가 수십 그루였고 사당채의 긴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두릅나무는 이른봄 내내 새순을 돋아내 두릅 향기가 식탁에 가득하게 만들어 주었다.
집 둘레에 드문드문 서 있는 여러 그루의 감나무, 고추밭 가장자리에는 서너 그루 미루나무가 우뚝 솟아 볼 만했으며 그 옆의 밤나무들도 가지가 무성하여 많은 열매를 달아 밤 추수만 해도 일거리가 되었다.
그 곳에서 지내며 늘 바라보던 나무의 크고 많음에 지금도 무리 지어 있는 것들에 대한 향수가 깊다.
어머님께서는 바깥마당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될 때마다 눈에 뜨이는 나무에 대한 내력을 말해 주셨다. 집 안에 심겨진 대부분의 나무에는 작은 사연이 담겨져 있었다. 마당 한 모서리의 늙은 감나무는 팽이 모양의 감이 열렸는데 나이가 많아서 해를 걸러 감이 열린다고 측은한 정을 보냈다. 그것은 모든 나무 중에도 어른 대접을 받는 고목이라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보곤 했다. 감히 가지 위에 올라가 감을 따지 못해 얼마간의 열매가 남아 있어도 까치밥으로 내버려두고는 했다.
사랑방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커다란 측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그 옆에 무궁화가 기우뚱한 자세로 심겨져 있었다. 그것은 남편이 중학생일 때 시동생과 같이 심었다고 했다. 어른이 된 남편은 작약밭 귀퉁이에 자목련 몇 그루를 심어서 나무심기의 내력에 얘기 하나를 보태었다. 앵두나무를 심은 것은 작은할아버님인데 그분이 음력 4월에 돌아가셔서 앵두를 따서 제사상에 올렸기에 당신께서 심은 공을 잡수셨다고 했다.
앞으로 누구에겐가 그 얘기들을 전해 주어야 될 나도 문중의 일원이 되었다는 표시로 백합 몇 뿌리 얻어다가 심었다. 마늘쪽과 모양이 비슷한 뿌리를 해마다 나누어 주었더니 그것도 다른 식물을 닮아 포기가 커서 꽃이 많았다.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 풍기는 짙은 백합 향기로 마음이 현란했다.
마당 한 편이 널따란 채소밭으로 경작되는데도 빈 땅이 많아서 봄이 되면 무엇이건 더 심어야 했다. 어머님에게는 살뜰히 여기는 그 많은 나무들이 생계를 꾸려 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고, 바람 같은 남편 대신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진작 눈치챘더라면 먹고 사는 데 아무 소용에 닿지 않는 백합보다 가지나 토마토 따위를 심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님은 키가 훤칠한 나무를 가꾸기보다는 작고 아담한 꽃을 좋아하셨다. 해마다 백일홍이나 일년 국화 따위를 골목길에 심어서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꽃 같은 자식들이 한창 자라나던 시절에는 다른 꽃을 찾아 다니시느라 집안에 소홀하셨다.
내가 결혼을 해서 시댁으로 들어간 후에는 집 안에 계시면서 화단의 꽃들을 돌아보시고 잡초를 뽑아 주면서 소일하셨다. 그런데 화초와 같이 잡초도 쉴새없이 돋아나 며칠만 소홀히 해도 마당에 잡초가 무성해서 온 식구가 잡초뽑기에 동원되었다. 늦잠을 자고 싶은 남편은 ‘풀 뽑아라’ 하는 소리를 기상나팔로 듣고 새벽같이 일어났다. 농사짓는 시골집답지 않게 마당이 깨끗이 정리되었다.
잡초 때문에 사람이 시달리자 잡초가 잘 돋아나는 곳에 채송화를 심었다. 채송화는 도시계획에 따라 잘 정비된 길처럼 마당을 이리저리 갈라놓았다. 그것은 땅에 나직이 엎드려 밭과 마당을 경계해 주었고 낮은 곳과 높은 곳을 구분 지었다. 또 집 모양에 따라 축대 밑으로 길게 이어져 흡사 꽃밭 위에 세워진 것처럼 집이 아름다웠다. 채송화는 하수도 옆에도 심어졌고 사당으로 통하는 구석진 길에도 얌전히 누워 있었다.
채송화가 자라서 꽃이 피어 있을 동안은 잡초뽑기에서 놓여날 수 있어서 편안했다. 대신 소일거리가 줄어든 아버님은 며칠씩 사랑방을 비우셨다.
나는 아버님이 계시지 않는 사랑마루에 올라앉아 마당에 만발한 채송화를 내려다보곤 하였다. 그 꽃은 지붕 위로 비죽 솟아오른 나무들을 숭배하는 듯 다소곳이 엎드려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한자리에 서서 온갖 풍상을 겪어내는 나무를 바라보는 것보다 시간이 흐르면 살아 있던 흔적이 말끔히 사라지는 일년초 같은 인생을 사랑한 것인가, 나무 한 그루 남기지 않은 아버님의 인생에서 귀하게 남겨진 모습이 남편의 웃음인가 보다. 채송화를 바라보는 모습이 천진하다.
│류인혜 작품론│
단아함과 담백함이 풍기는 순정한 미학
임 병 식(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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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류인혜님의 수필집 『순환』을 읽는다. 이 수필집은 『풀처럼 이슬처럼』(1994), 『움직이는 미술관』(1999)에 이어 수필집으로서는 세 권째 펴내는 책이다.
그의 작품에는 맵게 살아온 삶 못지않게 강기가 흐르고, 문장 구성이 유연하면서도 튼튼하다. 이런 것은 거저 길러진 것이 아니고 세계 유수 작가의 작품을 섭렵한 바탕 위에 깊은 신앙심에서 얻어진 성찰이 글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가 문학적 성취를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한 삶을 살아왔는가는 ‘작가의 말’ 중에 “문학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글의 사진기이다. 문학하는 사람으로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째서 시대의 어긋남에 대해서는 쓰지 못하며, 왜 아무 말이 없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요즈음이다”라는 문장의 행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수필은 글쓴이의 생각과 개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문학 장르다. 따라서 작품을 읽으면서 몰랐던 일면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서술로 직접 노출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문장 행간에 감추어 놓기도 하는데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과 곧은 성정이 변함없이 드러난다. 또한 깊은 사유로 여성작가들이 자칫 놓치고 마는 논리도 가미하고 있어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 앞장으로 눈을 옮겨서 읽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눈에 띄는 작품을 중심으로 류인혜 수필의 맛과 멋을 음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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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사람을 찾아」는 사람이 안면이나 더러 필담을 나눈 적이 있어도 기회를 놓쳐 수인사를 못하고 마는 경우가 있음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 예화로서 근원 김용준이 빙허 현진건의 문상을 다녀오며 눈물을 쏟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글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사람과 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다. 그것은 얼굴만 그려 놓고 코와 입은 어떻게 생겼을까 싶은 막막함이다. 그런 막막함은 생각하는 누구든, 아는 척을 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조바심에서 나온다. 이런 내심이 드러날까 사람을 대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의미를 끌어내고 있다. 문장이 진솔하고 깔끔하여 류인혜 수필의 특징적인 면을 많이 드러내 주고 있는 작품으로 읽힌다.
그리고 「벌집 이야기」는 외양만을 보면 일견 평범한 듯 보인다. 아파트 베란다의 튀어나온 못 끝에 말벌이 집을 짓기 시작하더니 점점 칸을 늘려 갔다. 그것이 종래는 손바닥 크기까지 되어 위협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퇴치를 고민하던 중에 모기향을 피워서 대부분 소탕을 했는데, 그 중에 몇 마리가 살아서 방에 돌아다니게 되어 “기왕에 삶터를 빌려 주었으니 다른 곳으로 이사할 때까지 살게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전에 살던 셋집에서의 일을 회상한다.
하루는 뒷방에 새 식구가 이사를 왔는데, 처음에는 부부와 딸 세 명이었다. 그것도 아이가 많다고 주인여자는 눈치를 보는데, 살던 집에 맡겨 놓은 막내 사내아이가 들어왔으며 마침내는 시골에 내려갔던 초등학교 2학년짜리 큰아들까지 합류를 했다. 그 아이들은 잠자리가 비좁아 다락이나 캐비닛 속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싱싱하게 뛰놀며 잘 자란다.
이 글은 단순히 셋방살이의 애환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한 꺼풀 벗겨 진지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여왕벌이 혼자서 집을 짓고 애벌레를 길러 일벌을 만들어 가는 과정같이 사람들도 생활이 넉넉해질 때까지 자식과 함께 고생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끝내 벌을 퇴치하지 못한 것은 결코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모성본능이 작용한 것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이웃을 도와 주고픈 배려의 마음을 주제로 밑바탕에 깔아 놓은 작품이다. 아마도 류인혜는 벌집을 보면서 공장지대나 빈촌의 쪽방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벌집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사는 주거를 이르는 속어(俗語)가 아니던가.
이 작품에서는 특히 사물을 특징적으로 바라보고 표현해 내는 묘사력과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를테면 벌의 날갯짓이 마치 “레미콘 돌아가는 듯”했다거나, 지어 놓은 벌집이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베레모 꼭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들어 달아 놓은 형상” 같다는 표현 등이다. 그 벌집을 작은아이를 불러내어 옆에다 뉘고 모자가 흡족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는 대목은 “그 아이를 닮아서 순하기 짝이 없던 뒷방 여자라면 벌집 밑에다 받침대를 달았을 것이다”는 마무리와 버금가는 휴머니티를 느끼게 한다. 지극한 감격의 포인트가 예화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들이 이사 오던 날 내다보니 여자아이만 세 명이었다. 우리 집 아이들을 염려한 나는 아이가 많아도 여자들이라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가장 큰 아이는 막내를 업고 있었는데 중간 아이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진다는 생각만 했다. 이층에 사는 주인여자가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아이가 둘뿐이라더니 셋이네” 키가 작고 단단하게 생긴 뒷방 남자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둘이나 셋이나요”
이사 온 다음날 그는 퇴근길에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큰애만큼 한 사내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 셋째는 살던 집에 맡겨 놓았단다. 뒷방 여자는 에미를 보자 심술이 나서 팔딱거리는 아이가 진정될 때까지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 「벌집 이야기」
힘겹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이 아프지만, 끈끈한 가족 사랑이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려진 수작이다.
‘고목도 꽃을 기다린다’라는 부제가 붙은 「순환」은 인생의 관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생을 살 만큼 살아, 생의 의미를 순환으로 풀어낸 사유 깊은 작품으로 연만한 아들에게서 손녀를 본 기쁨이 작품을 구상한 계기가 된 것 같은데, 작가는 풀숲에 피어난 오랑캐꽃을 보고 새로운 생명에의 환희를 본다. 피고 질 때를 스스로 알아 존재를 알리는 꽃들을 통해 자연 순환계의 엄연한 법칙을 본 것이다.
아이는 나무가 왕성할 여름에 피어난 무성한 잎이었다면, 새로 태어난 손녀는 꽃이다. 아기는 이제 살아가야 할 긴 인생에서 입춘의 때를 맞이했다. 갓 태어나서 입을 오물거리는 신생아를 바라보자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아이를 키우면서 큰아이는, 내가 느껴 오던 오만가지의 감정들을 경험할 것이다.
― 「순환」
그리고 앞서, “그렇게 애간장을 녹이면서 자라남의 통과의례를 지켜보던 큰아이에게 자식이 생긴 것이다. 자연이 쉼 없이 생성하고 사그라지는 것을 반복하며 종족을 번성시키듯이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자식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아 집안을 이어 간다. 다른 사람의 일일 때는 당연하게만 바라보았던 그 일도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대목은 피로써 유로하는 인생 순환법칙을 짙게 느끼게 한다. 그런데, 작가는 비록 자연계의 현상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고목이 되어가는 존재지만, 추위 속에서 매화꽃이 피어나듯이 그 고목의 꽃이란 바로 손녀를 지칭한 듯 너그러운 마음으로 여생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아들의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은 손녀를 보게 된 과정을 그려 놓기 위한 장치이다.
「블랙커피를 위하여」는 커피라는 기호상품을 통하여 시대의 변천사와 자아 성장을 되짚고 있다. 커피에서 인생을 성찰하는 모습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짙은 암갈색의 블랙커피는 그때 경제적으로 어렵기만 했던 내 처지처럼 암담했다. 인생의 쓴맛을 먼저 배운 것이었다. 만약 설탕을 넣어 달게 했다면 사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고, 사탕 같은 달콤한 면도 있다는 것을 눈치채었을 것이고, 프림의 녹록하고 끈적끈적한 맛을 알았다면 사물에 대한 시선이 자로 잰 듯 딱딱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타협하고 모른 척하고, 대충 넘어가는 방법도 배웠을 터인데, 어쨌거나 단순함이 무지막지함에 가까운 성격대로 블랙커피만 선호했다.
― 「블랙커피를 위하여」
살아온 삶을 블랙커피로 해석해 내는 발상이 탁월하다. 호기심에서 바라보던 커피가 블랙커피로 입맛 들려진 후 원두커피를 손수 갈아 마실 정도로 의식을 지배하고 있음은 그만큼 인생의 맛이 깊게 길들여졌다는 뜻이 아닐까.
「강력한 항생제」는 작가가 명치끝이 무겁고 이상해서 병원을 찾아갔더니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이 감염됐다며 균을 ‘박멸’할 수 있는 약을 조제해 주었는데 작가는 ‘박멸해야 될’ 대상이 그것뿐만이 아님을 간파한다. 사회 제 현상의 불신과 부패와 거짓과 오만과 사치와 술수까지로 사유가 미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박멸’이라는 단어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이끌어 내는 솜씨가 능란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열 살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가 아닌가 싶도록 도처에 공동체가 지녀야 될 기본적인 도덕심도 서로에 대한 공경심도 사라져 간다. 이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가 될 올바른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은 아닐 것이다.
― 「강력한 항생제」
「나무와 채송화」는 저자의 작품 중 단연 돋보이는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구성이나 이야기를 끌어 가는 전개가 치밀하고 글에서 풍겨나는 문향이 은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디서 오느냐 하면 작품을 꼼꼼히 읽어 보면 뿌리깊은 가풍에서 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어머님께서는 바깥마당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될 때마다 눈에 뜨이는 나무에 대한 내력을 말해 주셨다. 집 안에 심겨진 대부분의 나무에는 작은 사연이 담겨져 있었다. 마당 한 모서리의 늙은 감나무는 팽이 모양의 감이 열렸는데 나이가 많아서 해를 걸러 감이 열린다고 측은한 정을 보냈다. 그것은 모든 나무 중에도 어른 대접을 받는 고목이라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보곤 했다. 감히 가지 위에 올라가 감을 따지 못해 얼마간의 열매가 남아 있어도 까치밥으로 내버려두고는 했다.
― 「나무와 채송화」
이렇듯 과수원집이 아니면서 나무가 많은 것은 집 안 평수가 넓다는 의미 너머에 집안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설치해 놓았다. 굳이 양반고장 안동을 떠올리지 않아도 지체가 높은 집안임은 눈치챌 수 있다.
그런데, 작품에서 시아버지가 채송화를 좋아하는데 작가의 “일년초처럼 살다 가신” 분이라는 말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작가의 치밀한 어떤 설치가 분명한데, 꿈을 펴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뜻인지, 아니면 키 작은 채송화처럼 낮은 삶을 살다 갔다는 뜻인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말미에 시아버지를 그리며 그 일년초와 같은 인생에서 그나마 귀하게 남겨진 모습이 “남편의 웃음인가 보다”는 대목에 이르면 어른을 그리는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3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류인혜의 작품에서는 잘 우려낸 고소한 곰국의 맛이 난다. 생선국처럼 혀끝에 감기는 시원한 맛은 없지만, 문장의 담담함이 읽을수록 차분히 구수하게 느껴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은 고급스런 입맛만이 잡아낼 수 있는 아주 세밀한 영양소가 녹아 있는 맛이다. 만약 건성으로 읽은 독자라면 자칫 그 맛을 놓치고 말 것이다.
주마간산 격으로 산을 바라본다면 푸른 빛깔을 나무라는 것만으로 의식하게 될 것이나, 찬찬히 살피면 그것이 비록 소나무 일색인 듯해도 그 속에는 온갖 나무와 풀이 섞여 있는 게 보이듯이, 차분히 읽어 나간다면 진정 이 작가만이 자아내는 그 깊고 예민한 맛을 느끼게 된다. 글에 인용되는 나무도 그냥 나무가 아니며 어떤 상징성을 부여받고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류인혜의 작품은 결코 자극적이지도, 화려한 수식어도 없다. 담담하니 이야기를 풀어 가되, 나름의 문학적 장치를 해 두고 있음을 본다. 또 작품 속에서 늘 정직하다. 표현도 정직하게 한다. 그래선지 그 장난 배제된 글이 한층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초기의 작품은 살아온 이야기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서서히 뭉쳐둔 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들어 나타나는 인간적인 면이 독자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이번에 펴낸 작품집은 이십오 년 문학인생을 일차 정리한 것이지만, 바라건대, 앞으로도 부디 불타는 창작열을 발휘하여 더욱 향기 짙은 수필작품으로 문학의 꽃을 피워내기 바란다.
│문학적 자전│
영혼에 물을 주는 작업
― 문학의 실천
류 인 혜
문학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보다 경쟁심이 앞서는 시대이다. 앞선 사람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는 듯 쉬운 일이 되어 존경의 마음 대신 자신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을 키운다. 길이 넓게 열려 있으니 문학이나 문학에 관련된 일은 특정인만이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누구든지 책을 펴내는 저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우연히 문학이론의 정립을 회의적으로 생각한 글을 읽었다. 오래 전에 그 글을 쓴 저자가 요즘처럼 문학이 대중화되고 다양해진 시대를 미리 예견했던가, 어떤 과학적인 근거로 질서를 찾을 것인가를 우려했다. 문학이란 범주 아래 표현의 방법이 복잡해진 현실이지만 그 모든 양상이 문학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문학이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라는 말에는 공감하여 문학인의 자존심을 어떻게 세워야 되는가 고민한다.
이 글에서는 내 정신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문학의 실천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 ‘구체적’이라는 의미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는 전제가 붙는다. ‘실천’이라는 단어는 아무 간섭받지 않는 조건에서 개인의 의지가 행동하는 것이다.
내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의 문학적 형상화는 오랫동안 곁에 있는 가장 친한 친구를 편하게 대하는 수준이다. 한마디 더 변명이 있다면 서툴기가 짝이 없는 솜씨로 세워 놓은 문학이라는 문패가 붙은 공중누각을 향해 열심히 올라가는 일이다. 가끔 스스로도 미치지 못하는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지만 어찌하든 그 일을 도모하는 노력에 대한 긍정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글의 제목을 「영혼에 물을 주는 작업」이라고 한 것은 문단이라는 거대한 숲으로 이끈 작품인 추천완료작 「우물」의 영향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을 다지는 의미로 그 수필의 몇 문장을 적어 본다.
영혼은 인간이 정성껏 파 놓은 우물이다.
우물은 물이 마르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영혼도 언제나 마르지 않는 풍성한 깊이와 내용을 간직하면, 마음의 두레박이 한가득 내면을 담아 올릴 때 그 흔들림으로 즐거워지고 생기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베란다로 나가서 늘어놓은 화분을 살핀다. 손으로 흙을 만져보아 말라 있는 곳에 물을 주고, 마른 잎은 따 주고, 기운을 잃은 화초는 그 이유를 알아본다.
점점 늘어나는 화분들의 관리가 힘에 벅차 그 중에서 보기 좋은 놈들을 골라 다른 집으로 보내고 있다. 그 작은 식물들과 교감을 나누어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며 지내라는 뜻이다.
문학의 실천도 그렇다.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 날마다 늘어난다. 글이 글을 이끌어 내듯이 저절로 가지를 치는 상상력으로 인하여 문학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 상상을 도우는 일이 영혼의 밭을 경작하는 일이다. 화초의 성질에 따라 물을 주는 간격이 다르고 햇볕을 쬐는 강도가 다르듯이 사물을 바라보고 그것이 주는 감동의 색깔에 따라서 각기 다른 종류의 작품을 쓸 수 있다.
문학이 존재되는 것이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라지만 글의 재미는 남녀노소가 다르고 사람마다 취향이 있어 재미를 느끼는 내용이 다르다. 가장 보편적인 재미는 어떤 것일까, 이 글에서는 다른 사람을 생각지 말고 나만 바라보자.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책은 성경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거나 어떤 상황에 알맞아 내게 힘이 되는 말씀에 밑줄을 긋는다. 그 말씀들이 기초가 되어 내 문학을 이룬다. 날마다 뿌리는 물같이 영혼의 밭에 흘러드는 영양분이다. 그러니 성경은 문학적 삶을 이루는 길잡이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되었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편 71편 5절에서 6절)
사람의 삶은 오리무중이다. 내가 나를 모를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속을 어떻게 짐작하겠는가.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가끔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한 느낌을 얘기하면 듣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클 때가 있다. 사람들이 웃으며 즐거워하니 그 웃음을 생각의 기발함과 참신으로 인함이라고 여겼다.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나잇값에 미치지 못하여 어이없음의 헛웃음일 경우가 있었고, 모든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거나 입 밖으로 내지 않도록 불문율처럼 여기는 것이거나, 당장 현실에 소용이 되지 않는 발상도 있었다.
그런 어이없음을 묵살하면서 생긴 오해가 내 문학을 이루게 도왔다면 지나친 농담일까. 내용이 달라도 다른 이의 웃음을 재미로 여기기로 하니 복잡한 세상살이에서 그 어릿광대 같은 농담놀이가 재미있었다. 가끔 스스로의 농담에 빠져서 심경이 어지럽고 복잡하여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들고 싶을 때도 있다. 그때 위로 받는 말씀이 있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린도후서 6장 7절에서 10절)
물론 영혼의 밭을 가꾸는 일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 본래부터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문학을 바라보며 그 실체를 자각하는 것은 노력의 여하에 있다.
그렇기에 문학의 밭을 경작하는 일은 고행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늘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지쳐 있지만 지나친 고생으로 몸서리치는 어려움이 아니라 엄숙하고 경건한 고행이다. 저 먼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무릎으로 높은 성지에 오르거나 땅에 전신을 대면서 전진을 하듯이 문학의 신성함을 경외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로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구나.(아가서 6장 10절에서 12절)
내 문학의 길은 언제나 골짜기의 푸른 초목들을 보려고 달려가는 마음이다. 나무의 순과 꽃이 피어나는 가려움을 함께 느끼며 전율하는 즐거움이다. 혼자 즐거워하는 부지중에도 글을 읽고 감동하는 독자들을 만나게 된다.
오늘도 돌보아야 되는 분신 같은 화분에 물을 준다. 화분의 배수구로 필요 없는 물이 흘러 나가고 남은 수분에 흙이 촉촉이 젖을 때까지 듬뿍 뿌려 준다.
문학은 또 그렇게 말라 가고, 혼돈되고 지쳐 가는 영혼에 물을 뿌리는 일이다. 내 영혼의 밭에 뿌린 물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깊어져서 경건한 고행인 문학의 실천이 좋은 열매 맺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