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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과 사랑의 시 원문보기 글쓴이: 임윤식
'향수'를 찾아 떠나는 문학열차
2010년 지용제, 이동순 시인 정지용문학상 수상
지난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충북 옥천에서 제23회 지용제가 열렸다.
충북 옥천은 우리들에게 '향수'라는 시로 잘 알려져 있고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워지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다.
정지용 시인은 1902년 5월 15일(음)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번지에서 태어나 1914년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교)와 1923년 휘문고보 5년제를 졸업하고 이해 5월 3일 일본 도시샤대학 예과(영문학 전공)에 입학하였다.
도시샤대학 졸업 후에는 모교인 휘문고보 영어교사와 1945년 이화여전 교수, 이듬해인 1946년에는 경향신문사 주간을 역임하였다.
정지용 시인은 천재적인 언어감각과 뛰어난 시적 형상으로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주요작품으로는 향수, 고향, 유리창 등 140여편의 주옥같은 시와 수필 등이 전해오고 있다. 정지용은 일제강점기에 높은 문학성과를 거둔 <문장>의 시 추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뒷날 '청록파'라는 한국시사의 한 유파를 형성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을 발굴하였으며, 이밖에도 이한직, 박남수, 김종한 등 역량있는 시인들을 시단에 내놓는데 기여했다.
그런데 정지용 시인은 안타깝게도 1950년 7월경 납북되어 이후 행방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1986년 유족 및 문인들에 의해 정지용 저작 등의 복간운동을 한 결과 1988년 마침내 해금된 후 그동안 시인에 대한 추모행사가 서울, 일본, 중국 등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이와같은 과정을 거쳐 열리고 있는 지용제(정지용문학제)는 1988년부터 충북 옥천군,옥천문화원이 주최하고, 지용회 등의 주관으로 개최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올해에도 서울역에서 특별 문화관광열차 7량, 330여명이 함께 했다. 필자의 경우에는 2년 전에도 똑같이 열차여행으로 지용제에 다녀온 바 있다.
열차내에서는 정지용 시인의 생애와 시세계에 대한 비디오가 방영되고, 동국대 장영우 교수의 사회로 이인석 전 옥천문화원장의 환영사, 유자효 지용회 회장의 인삿말, 도종환 시인의 시세계 해설 및 시낭송, '너를 사랑해'로 유명한 한동준 가수의 노래공연 등 다채로운 문학행사가 마련됐다.
지난 해 정지용문학상 수상자인 도종환 시인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다"며, "인생을 시심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나이가 먹어도 청춘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옥천으로 가는 문화관광열차가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마음 속의 시심(詩心)을 일깨우는 아름다운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자작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낭송했다.
그리고 이근배 회장에 이어 지용회 회장을 맡은 유자효 시인은 "정지용문학상은 지난 1년동안 발표된 시 중 제일 우수한 시를 선정 시상해오고 있다. 1989년 제1회 수상자는 청록파 시인인 박두진 시인이었으며 그후 22회에 걸쳐 김광균, 박정만, 오세영, 이가림, 이성선, 이수익, 이시영, 오탁번, 유안진, 송수권, 정호승, 김종철, 김지하, 유경환, 문정희, 유자효, 강은교, 조오현, 김초혜, 도종환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들이 수상했다"며, "지용제는 옥천군의 브랜드가 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대표적인 문학축제로 자리잡았다"고 지용제의 문학적 위치를 치하했다. 유자효 시인은 또 "지용제는 국내축제로 만족할 수 없다. 프랑스의 아비뇽연극제처럼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며, "올해가 그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지용회 회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히기도 하였다.
열차에는 이근배 예술원 회원(전 지용회장), 오세영 서울대명예교수(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김성우 한국일보 고문, 이가림 인하대 교수(정지용문학상 심사위원), 오양호 인천대 명예교수(정지용기념사업회장), 김진환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김종철 시인, 김용희 평택대 교수, 국혜숙 재능시낭송가협회 회장 등의 모습도 보였다.
오전 8시 16분에 서울역 출발, 2시간여의 열차여행으로 10시 30분에 옥천역에 도착했다.
옥천군측에서는 역에서부터 열렬한 환영과 축제열기로 방문객들을 맞아주었다. 열차에서 내려오자 제일 먼저 우리 일행을 맞이해준 것은 정지용 캐릭터 복장의 삐에로들이다. 정지용 시인의 캐릭터가 매년 봐도 귀엽고 정감있다. 역전 광장에는 붉은 유니폼을 입은 주최측사람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가득 도열해 있고 향토음악인들이 직접 연주하는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지용제 기간 중 옥천군은 말 그대로 군 전체가 축제 열기로 가득했다. 도로 옆 담벽 곳곳에도 정지용 대표싯귀들로 채워져 있다.
역을 나오자마자 옥천군측에서 준비한 버스에 탑승, 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바로 관성회관에서 열리는 지용문학포럼에 참석했다. 포럼에서는 김용희 평택대 교수의 사회로 김명숙 북경중앙민족대 교수의 '정지용 시에서 본 주체의 자아탐색과 동심의 미학', 장영우 동국대 교수의 '정지용과 구인회', 박태상 방송통신대 교수의 '정지용과 청록파 시인들' 등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관성회관 정문 앞에는 지용제를 홍보하는 멋진 대형포스터도 걸려있고, 로비에는 도예, 공예, 서예, 미술품 등 옥천의 특산물과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문학포럼 참석 후 우리 일행은 향토전시관 옆 '향수 30리 멋진 신세계'라고 이름붙여진 '시문학 아트벨트'에서 점심식사 후 강변의 아름다운 시비공원을 산책하면서 역수상자대들의 대표시비를 둘러봤다.
'멋진 신세계'는 정지용 생가와 지용문학관이 있는 옥천 구읍에서 구37번국도로 대표되는 향수30리 길을 따라 장계관광지에 이르는 공간을 지용의 시문학세계에 빗대어 공공예술로 빚어낸 시문학아트밸리이다. 시비공원에는 정지용문학상 역대 수상자 이름과 연혁과 함께 수상자들의 시가 다양한 모습의 조각들로 새겨져 있다.
시비공원 산책 후 정지용 생가 및 문학관으로 이동, 정지용의 삶과 문학세계를 돌아봤다.
생가 담 밖에는 '정지용생가터'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정지용의 대표시인 '향수'를 새긴 시비도 세워져 있다.
생가 및 정지용동상 앞에는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비고, 문학관 역시 만원이다.
문학관 광장에서는 '시인과 촌장'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5.14-16 지용제 기간중 유안진 시인, 이동순 시인, 나희덕 시인 등 우리시대 대표시인 9인과의 대화, 친필 싸인행사 등이 펼쳐졌다. 필자가 방문한 5월 15일에는 나희덕 시인의 문학강연과 친필싸인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후 4시부터는 국혜숙 재능시낭송가협회 회장의 사회로 지용제의 하일라이트인 '지용문학상' 시상식이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유자효 지용회 회장의 인삿말과 송명선 옥천군 부군수, 심대보 옥천문화원장의 환영사가 있은 후 심사위원들을 대표한 이가림 시인의 심사평이 이어졌다.
올해 제22회 지용문학상은 김남조 시인(예술원 회원), 고은 시인, 김윤식 서울대명예교수(문학평론가), 유자효 시인(지용회 회장), 이가림 인하대 교수 등이 심사를 맡았으며, 이동순 시인(영남대 교수)의 시 '발견의 기쁨'이 최종 수상작품으로 선정됐다.
이동순 시인은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왕의 잠'이 당선되고 1989년에는 다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으로 당선되어 데뷔한 이래 40년 가까이 '개밥풀', '물의 노래', '철조망 조국' 등 12권의 창작시집과 대하민족서사시시집 '홍범도'(전 5부작 10권)를 상재한 국문학자이다.
그는 또한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 등을 비롯한 다수의 비평집을 낸 비평가이고, '백석 시선집', '조명암 시선집', '박세영 시선집' 등 오랫동안 실종상태에 놓여있던 중요시인들의 시전집을 발굴, 상재하는 등 시문학사에 소중한 디딤돌을 놓은 문학사 연구가이기도 하다. 이동순 시인은 문학부문에서 뿐 아니라 "번지없는 주막' 등의 책을 저술, 대중가요의 흘러온 맥과 시대적 배경 등을 정리함으로써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숨겨진 역사를 체계화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으며, 틈있을 때 마다 자전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작가로서 '시가있는 미국여행' 등의 여행기를 쓰기도 하였다. 이번에 발간된 시집 '발견의 기쁨'도 열 번 넘게 몽골을 방문, 자전거를 타고 몽골 곳곳을 달리면서 느낀 깨달음을 시로 쓴 것이다. 이동순 시인은 그동안 이미 신동엽창작기금, 난고문학상, 시와시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미국 시카고대 동아시아학과 연구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누더기처럼
함석과 판자를 다닥다닥 기운
낡은 창고 벽으로 그 씨앗은 날려 왔을 것이다
거기서 더 이상 떠나가지못하고
창고 벽에 부딪쳐
그 억새와 바랭이와
엉겅퀴는 대충 그곳에 마음 정하고 싹을 틔웠을 것이다
사람도 정처 없이
이렇게 이룬 터전 많았으리라
다른 곳은 풀이 없는데
창고 틈새에만 유난히 더부룩 돋았다
말이란 놈들이 그늘 찾아
창고 옆으로 왔다가 그 풀을 보고
맛있게 뜯어먹고 갔다
새 풀을 발견한 기쁨 참지 못하고
연신 발굽을 차며
히히힝 소리 질러댔다
(수상작 '발견의 기쁨' 전문)
이가림 시인은 심사평에서, ‘발견의 기쁨'에 등장하는 “새 풀을 발견한 기쁨 찾지못하고/연신 발굽을 차며/히히힝 소리 질러” 대는 말은 다름 아닌 시인 자신의 암시적 표상일 것이다. 우리 시문학사에 드믈게 나오는 말이라는 주제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로울 뿐만 아니라, 공교롭게 “말아, 다락같은 말아/너는 즘잔도 하다”로 시작되는 정지용 시인의 말이라는 주제를 더욱 생생한 ’현실주의적‘ 각도에서 실감나게 형상화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고 평한다. 이가림 심사위원은 이어, “열번 넘게 몽골을 다녀왔으며 1,000킬로미터 이상 자전거로 몽골의 곳곳을 누비고 다닌 실제적 현장체험에서 이 시인이 길어 올린 말의 이야기인 만큼, 그것은 단순한 스케치 풍의 소묘와는 다른 살아 숨쉬는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시인은 몽골이라는 장소를 스쳐 지나가는 관광 여행지로 바라보지않고 생명이 뿌리를 내려 살아가야하는 인류의 공동운명체적 땅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점은 이동순 시인이 시야가 좁은 민족주의에 갇혀 있기 보다는 보편적 세계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한 김남조 시인은 " 이동순 시인은 열 권의 시집과 장편 서사시 '홍범도'(전 10권)를 이미 시단에 내놓았고 이번에 '발견의 기쁨'이라는 새 시집을 상재하였다. 그의 이 시집은 몽골을 무대로 하는 기행시의 묶음이며 광활한 초원과 끝이 안보이는 사막지대의 풍물을 보여준다. 적라하고 건강한 정신의 풍요를 그곳에서 구한 듯 하고 그 거대한 캔버스 안에 인간을 던져 새로운 시계(視界)와 조화를 찾아보려 한 듯 하다. 말과 소와 염소 등이 친구인 듯이 살고 있는 유목민의 생활구도는 따뜻하고 정겹다. 북방의 광야는 젊고 선명한 채광을 입었으며 오염되지도 않았다. 시인은 그 점을 취하고 사랑했으며 이 책 안에 그의 보고서를 담아 채우고 있다. 생동적이고 유장하며 뭔가 매우 희망적이기도 하다. 우리들 삶의 일상을 벗어난 세계, 일상의 원심을 교정한 세계, 사람과 삶의 인식을 재조립하여 새 모습을 부각해 내고 있다"며, "정지용문학상의 수상후보자들은 대체로 문학적위계가 만만치않아 수상시인의 낙점이 용이하지 않았는데 이번은 순조로운 낙점이었다. 시의 현장감이 좋았고 거기에 투사된 시인의 모습과 자의식의 독백같은 것이 모두 적절히 표현되었다고 본다"고 평했다.
유자효 지용회 회장과 송명선 옥천군 부군수가 시상을 맡았고, 시상 후 이동순 수상자의 수상소감이 이어졌다.
이동순 시인은 ‘경애하올 정지용 선생님!’이라는 제목의 편지형식의 수상소감에서 시인의 성장과정, 정지용 시인의 글을 접하게 된 사연과 감동, 시를 쓰는 자세 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선생님께서 문단의 표면을 홀연히 떠나셨던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난 아기가 그로부터 수십 년 세월이 흘러 한 사람의 시인이 되었고, 이렇게 선배로서의 선생님을 후배로서 다정스럽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저는 오늘 마음속으로 끓어오르는 감격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선생님의 이름으로 어느덧 스믈두 해째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정지용문학상’의 영광스러운 수상자로 선정되어 선생님께 정성스런 편지를 올리는 저의 가슴속엔 이루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개가 솟구칩니다.(중략)
주옥같은 작품들로 넘실거리는 선생님의 전집을 읽노라면 한국의 시인으로 태어난 것과 아름다운 모국어로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만 합니다.(중략)
비록 선생님과 단둘이 마주 대한 경험은 없지만 선생님께서는 남긴 시와 글을 통하여 이러한 시인의 삶과 자세에 대하여 지금도 엄정하게 말씀해 주시고, 또 몸소 실천해 보여 주십니다. 문장이란 그 사람의 문학적 스타일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이라고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문장은 문체, 비유, 율격, 이미지, 사상성 따위의 요소들을 총체적으로 수렴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바, 시에서는 특히 문장의 엄격성, 완결성, 청신성(淸新性) 따위가 요구된다 할 것입니다. 한 편의 초고를 수십 번 읽고 또 읽어 그 과정에서 남루하고 불필요한 부분, 어색한 부분, 앞뒤의 차례가 뒤바뀐 듯한 부분, 적절하지 못한 어휘, 조사와 어미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깔끔하게 배려해야만 할 것입니다. 가히 문학인의 기본적 덕목이라 할 이러한 모든 것은 오로지 선생님께서 베풀어 주신 귀한 가르침들입니다.(중략)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이끌어 가지 못하는 다수의 후배 시인들을 다음과 같이 매섭게 질타하고 계십니다.
-모름지기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바른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보다 철저히 고민하고 반성하며, 성실하게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라.”
시상식과 수상소감 발표 후에는 이근배 시인, 오세영 시인, 김종철 시인, 도종환 시인 등 역대 수상자들의 시 낭송이 이어졌다. 재능시 낭송가들의 축하시 낭송, 조희열 전통춤 보존회의 도살풀이 춤, 서울 노원구 발레단의 발레, 지용모교 어린이들의 중창과 동시낭송, 재능시낭송가협회 회원들의 향수 합송 등과 함께 테너 박인수의 '향수','고향' 노래 등도 축제 분위기를 한껏 높혀줬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 옥천벌에는 지용제 기간 중 온통 정지용의 시심(詩心)과 향수(鄕愁)가 파랗게 출렁이고 있었다.(글,사진/임윤식)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행사와 기사가 참 소중하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