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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행8:그 <사울이 교회를 박해하다>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행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행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행8:4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행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행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행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행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8: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행8: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행8: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행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행8: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행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행8: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행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행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8: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행8: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행8: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행8: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행8: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행8: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행8: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행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8:26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행8: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행8: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행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행8: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행8: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행8: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행8: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행8: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행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행8: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행8:37 (없음)
행8: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행8: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사도행전 제 8장
=====8:1
사울이...마땅히 여기더라 -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사울의 책임성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울은 스데반
의 처형을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그 순교의 현장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마땅히 여
김으로써 죄악에 동참했다. '마땅히 여기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쉰유도콘'(*
)은 동의하다', '합의하다', '승인하다'의 뜻을 지닌 '쉰유도케오'(*
)의 미완료 과거 완곡 어법으로서 사울이 스데반의 죽음에 찬동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22:20).
그 날에 -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던 날을 가리킨다. 스데반의 순교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의 서곡임과 아울러 기독교 확장의 제1보(步)이기도 했다.
큰 핍박이 나서 - 3절의 언급으로 보아 로마의 박해라기보다는 유대인들 특히 바리
새인들로부터의 박해를 의미하는 듯하다. 로마 당국이 직접 기독교 탄압을 시작한 것
은, 사울의 회심 이후 기독교가 확장되어 로마에 전파되고 황제 숭배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기독교의 특성이 로마 당국자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된 때문이다.
사도 외에는 다...흩어지니라 - 박해의 결과 사도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
루살렘을 떠나 도처로 흩어지게 되었다. 성도들이 각처로 흩어진 것은 핍박을 피해 도
망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복음의 세계적 확산을 도모하고자 한 하나님의 뜻
이 작용하였다. 당시 초대 교회 사도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
지" 복음을 전하라는(1:8) 주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자, 하나
님은 외부로부터의 핍박이라는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세계 선교에의 전기(轉機)를 마
련코자 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는 예루살렘 교
회가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중심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이방 지역에의 선교가 예
루살렘 교회의 지속적이고 확장된 선교 활동임을 암시한다.
=====8:2
경건한 사람들 -
'경건한'(* , 율라베이스)이라는 형용사는 오순절 예루살렘에 모였
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도 붙여졌으며(2:5) 다메섹의 아나니아에게도 붙여졌다
(22:12). 여기서는 아마도 복음의 진리에 대해 깊은 호의를 보였던 신실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듯하며, 예수를 장사지낸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인물을 연상케 한다(눅
23:50).
위하여 크게 울더라 - 유대의 장례식에서는 큰소리로 애곡하는 것이 관습이었다(막
5:38 주석 참조). 그러나 산헤드린의 재판을 받고 돌에 맞아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참수형을 당하거나 혹은 교살당한 사람을 위해 공개적으로 통곡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중하게 스데반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것
은 '경건한 사람들'이 당시 영향력있는 유대 지도자 계층에 속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사실 스데반의 거룩한 죽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
만큼 감격적이었음을 암시한다.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세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데반의 처형 장면을 관망하던 사울이 이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데에 주동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잔멸할' 해당하는 헬라어 '엘퓌
마이네토'(* )는 '모욕을 주다', '더럽히다', '파괴하다'의 뜻을
지닌 '뤼마이노'(* )의 미완료 중간태인데 신약성경에서는 여기서만
사용된 단어이다. 시 80:13에서 멧돼지가 포도원을 짓밟아 황폐화시킨 것을 나타낸 70
인역의 표현 중에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사울의 이러한 잔인한 행위는 자신의 입을
통해서 여러 차례 확인한 바이다(22:4;26:10;고전 15:9;갈 1:13;빌 3:6;딤전 1:13).
한편 여기서 '교회'(* , 여클레시아)는 건물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
인 공동체를 뜻한다.
=====8:4
두루 다니며...전할새 -
원문에서 '멘운'(* , '그러나')으로 시작되는 본문은 13절에서 언급된
교회에 대한 박해와는 대조적인 새로운 사건의 전개를 지시한다. 박해로 인해 흩어진
자들은 사마리아는 물론이고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에까지 이르러 주의 복음
을 증거했다(11:19). 교회사를 통해서 볼때 박해와 순교는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8:5
빌립 -
흩어진 기독교인의 활동에 대한 첫번째 언급으로서 빌립이 소개되는데 사도들중의
한 사람인 빌립(막 3:18)과 같은 이름이다. 그래서 혹자는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생
각한다(Welhausen). 그러나 여기서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으
로 보인다(6:5). 왜냐하면 그가 12사도 중 한 사람이었다면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
을 믿게 된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이 굳이 그곳을 방문해 성령 받기를 간구하지 않
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성 - 이는 사본에 따라 두 가지고 해석될 수 있다. (1) 사마리아의 한 성
: 대부분의 후기 사본은 이렇게 읽고 있다. 이는 사마리아의 어떤 특정한 성을 지칭하
는 표현이 아니라 막연한 어떤 성을 이야기할 뿐이다. (2) 사마리아의 그 성 : 이는 '
사마리아라 불리는 그 성' 이란 의미로 구약 시대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를 가리킨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것으로는 * ,A, B사본 및 영역 성경중 KJV가 있다. 그러나 이 해
석을 반대하는 학자는 '사마리아'가 신약에서 도시의 이름으로보다 오히려 지역의 이
름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G.A.Buttrick). 그래서 (1)의 사본의 독법을 지지하면
서 어떤 학자들은 그 장소를 시몬 마구스(9절)의 고향인 깃타(Gitta)로 추정한다(Lake
Cadbury, Neil). 혹은 세겜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Zahn, Welhausen,
Olshausen). 그런데 만약 이 성이 세겜이었다면 이 유명한 도시를 누가가 언급하지 않
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사마리아 성'으로는 읽혀질 수 없는 이유는 당
시 그 성은 헤롯에 의해 개축되어 '세바스테'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기 때문이다. 따
라서 9절에서 시몬 마구스가 갑자기 등장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 성은 '깃타'일 가능
성이 크다.
=====8:6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
이 표현은 빌립의 말에 권위가 있었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초대 교회의 복음 전파에
예수 당시와 같이 표적(sign)이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6:8). 빌립을 통
해서 나타나는 표적은 그가 전파하는 말에 권위를 부여하여 사마리아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나타냈다.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
이 구절은 헬라어 본문에서 '왜냐하면'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가르'(*
)로 시작하지만 개역성경은 구체적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이는 본절을 6절의 '좇더라'
라는 말에 대한 이유가 아니라 8절의 이유로 보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편 개역성
경은 본문에서의 주어를 사람들에게 붙어있는 귀신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헬
라어 사본들은 주어를 '많은 사람들'(* , 폴로이)로 언급하고 있다. 따라
서 크게 소리지르며 나간 것은 귀신이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귀신 축출 기적과 관련해서 사용되지 않으므로 벧하우젠(Welhausen)은 막 1:34
를 근거하여 귀신이 쫓겨나 병자가 치유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에게서
더러운 귀신들이 울부짖으며 나갔다'고 번역하기도 한다(Meyer, Bengel).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 - 빌립에 의해 치유받은 사람들이 영적인 불구자 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불구자까지 포함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중풍병자'로 번역된 '파랄
렐뤼메노스'(* )는 중풍(中風)으로 인해 부분적인 기능이
마비된 '파랄뤼티코스'(* )와는 달리 전신의 기능이 거의 마비
된 병자를 가리킨다. 의사였던 누가의 예리한 관찰에 의해 병자의 병명이 정확하게 묘
사된 듯하다.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
이 말은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시사해 주며 또한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가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앞절에서 언급된 소외된 불구자들의 쾌유와 악령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온 성의 기쁨은 복음이 수용된 곳에서 일어나는 마땅한 결과였다. 그렇
기 때문에 이 짤막한 본문은 빌립의 선교활동의 결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 후에 있을
기독교 선교 활동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8:9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
5-8절에서 언급되었던 빌립의 활동 내용과 그 결과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기
위해 '시몬'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화제를 바꾸었다. 여기서 언급된 시몬은 본장 외에
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초대 교회의 몇몇 자료에만 그의 신분과 활동이 언
급돼 있다. 순교자 저스틴(Justin)에 따르면 시몬은 사마리아의 깃타(Gitta) 출신으로
서 애굽에 건너가 철학과 마술을 배웠던 사람이다. 그래서 시몬에게 '마술사'를 의미
하는 '마구스'(Magus)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이레니우스'
(Irenaeus)의 주장에 따르면 시몬은 '영지주의'(Gnosticism)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또 외경 '베드로행전'에서는 시몬이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거짓된 가르침으로 타
락시킨 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고증될 수 없지만 시몬이
초대 교회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자칭 큰 자 - 시몬이 자신을 가리켜 '큰 자'라고 언급한 것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인 '하나님의 능력'(10절)이라는 말로 미루어보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술
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시킨 것 같다. 그런데 그가 행한 마술이 어떤 형태인지는
알길이 없다. 아마도 그는 마술을 통해 병자를 고치거나 귀신을 내어 쫓기도 했으며
점성술을 통해 예언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Lenski).
=====8: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
마술사 시몬은 모든 계층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빌립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
의 능력은 시몬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여 시몬과 그의 추종자들을 압도함으로써 사마리
아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다(12, 13절).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 - 사마리아인들이 시몬에게 붙여준 별명은 그가 하나님
의 능력을 행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몬은 마술을 행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속였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예수를 믿었을지라도 자신의 마술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면 그를 통해서 영지주의가 나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후에 진행된 이야기로 보아 그는 사도들의 능력을
자신의 마술을 능가하는 마술 정도로 생각했으며, 뿐만 아니라 전수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즉 그는 사도들을 굉장한 마술의 전수자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영지'(靈智)
가 전수될 수 있다는 영지주의자의 일반적인 생각을 시몬 역시 비치고 있다.
=====8:11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
청중들이 시몬을 따르게 된 큰 동기가 시몬이 행한 마술 때문이었음을 다시 확인하
고 있다. 그리고 그 마술의 영향은 하루 이틀 정도의 영향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
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빌립의 선교 현장이 시몬의 마술 행위로 모든 사람
들이 사로잡혀 있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을 말해줌으로써 시몬까지 예수를 믿게 한 빌립
의 전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8:12
하나님 나라 -
본서에서는 이 주제가 부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전파되었는지 자
세하게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와 동일시된다고
주장한다(Lake, Cadbury). 그러나 복음서의 저자인 누가가 예수에 의해 전파된 하나님
의 나라를 교회와 동일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서 가운데 하나님 나라란 용어가 몇
번 언급된 점으로 보아 사도들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던 내용을 전했
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막 1:14-20 주제 강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참조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 이는 본서의 핵심 주제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것
이다. 여기서 특히 예수의 이름은 마술사인 시몬의 가르침과 구별된 의미로도 사용되
었을 것이다.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 빌립의 선교는 시몬의 막강한 영향력을 누
름으로써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결과 청중들은 빌립의 설교를 듣고 세레
를 받음으로써 시몬의 영향에서 벗어나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단했다.
=====8:13
시몬도 믿고 -
사마리아 성의 변화가 파격적임을 묘사하는 이 한 마디는 빌립의 선교 활동이 성공
적인 것이었음을 확증해 주고 있다. 시몬의 추종자들이 기독교인으로 변화되고 최종적
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장 많이 행사하던 시몬이 기독교인으로 변화된
것은 그곳이 거의 기독교화도었다는 암시라고도 이해될 수 있다.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빌립에 대한 시몬의 반응을 묘사하
는 본문은 11절에서 묘사된 시몬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과 대비되고 있다. 즉 모든 사
람들이 시몬의 마술에 놀라는 장면과 시몬이 빌립의 능력을 보고 놀라는 모습은 서로
대조되어 빌립의 능력과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시몬이 빌립을
추종하여 따라다닌 주된 목적은,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의 소유자임을 인정하여 그 능력
을 마술처럼 배워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표적과 능력 행사의 내용은 7절
에 언급된 내용과 동일한 것이며 당시 선교 활동의 중심 내용이 설교였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화시킨 큰 요인은 역시 기적을 행한 신비한 능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
1절에서 언급된 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 활동의
성공적 보고를 듣고 두 사도를 파송하기에 이른다. 사도들 중에서 기둥같이 쓰임받던
두 사도가 빌립의 전도지를 방문한 것은 두 가지의 큰 의미가 내포되고 있다. (1) 빌
립의 선교 활동에 대한 확인이다. 즉 빌립의 선교 활동이 정당한 것이고 사마리아인들
이 기독교인으로 인정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2) 복음은 어떠한 벽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준 것이다. 즉 사도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유대인들에 의
해 경멸받는 이방인과 특히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의 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의 기쁨
을 위해(8절) 사마리아를 찾아감으로 전정한 복음의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8:15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
이로 보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지방으로 내려간 목적은 빌립의 선교 활동으
로 나타난 성과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이들에게는 유대와 사마리아간
의 벽이(마 10:5;눅 9:51-53) 없어졌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한 예수
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
=====8:16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
빌립의 선교 활동에 의해 그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성령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1) 유대인에 대해 나쁜
감정을 지닌 사마리아인들에게 두 사도가 와서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게 됨으로 예루살
렘 교회와 사마리아인들을 한데 묶어주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2) 사도들에 의해 성
령이 임함으로써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3) 빌립이 능력을 행
하면서 전도하기에 바빴으므로 안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정확한 추
정인지는 알 수 없다.
=====8:17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고 참된 기독교인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이
구절은 성령을 받기위한 안수의 필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수를 통해 성령을 체
험하기도 하였지만(9:17)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경우도 있고 (10:44) 여
럿이 모인 곳에 임하기도 한다(2:1-4). 그러므로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서 안수를 통해
서만 성령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또한 사도에게만 성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
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도에 의해 성령이 강림
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의의를 지닌다. 첫째는, 지방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인정을 받
아야 됨을 암시한다. 둘째는, 사도권에 따라 사마리아인들이 기독교인임이 최종적으로
확인되고 선포됨을 강조한다.
=====8:18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
본절에는 시몬이 어떻게 성령받는 것을 보았는지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
방언이나(Wendt) 예언을 통해 성령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성령 강
림으로 인해 외적 현상이 나타났음이 분명하며 이 현상을 시몬이 목격했을 것이다. 그
리고 성령 강림의 현장에 있었던 시몬이 그 체험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어느 정도 시사해 준다. 이러한 암시는 다음과 같은 내
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성령받는 것을 목격한 시몬은 두 사도에게 돈을 건네주고
그 권능을 팔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마도 성령받은 사람에게서 어떤 신비한 현상을 시
몬이 발견하고 마술을 전수(傳授)하듯이 성령도 전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
다. 또한 13절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시몬이 빌립을 추종한 것이 표적과 권능을 보게
된 때문이라는 점과 시몬이 마술사였다는 점에서 아마도 성령을 주는 능력을 갖는다면
무엇이나 자신의 마술 능력을 능가하는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
러면서 그는 아마도 성령을 모든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
을 것이다(Bauernfeind). 즉 그는 자신이 돈을 주고 마술을 전수받은 것처럼 성령을
강림케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자 했을 것이다.
=====8:19
이 표현도 18절에서와 같이 사마리아인들이 두 사도의 안수를 받으면서 성령 체험
을 하는 그 장소에 시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체험을 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여수시아'(* )로 1:8에서 '권능'으
로 번역된 '뒤나미스'(* )와 의미상 차이가 있다. 즉 '뒤나미스'는 성령
을 통해 나타나는 외적 현상을 강조하는 반면 '여수시아'는 내적 현상을 강조하는 용
어다. 여기서 시몬이 외적 현상을 의미하는 '뒤나미스'를 나타낼 수 있는 '권세'를 요
구했음을 암시한다.
=====8:20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
베드로가 말한 성령은 하나님이 주는 선물이다. 따라서 선물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
에게 무상(無償)으로 주어지듯이 성령 역시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다. 다시 말해 성령은 돈주고 거래할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또한 받은 선물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도 선물을 준 자에 대한 모독 행위가 된다. 따라서 성령을 돈으
로 거래하려는 발상 자체는 곧 신성 모독이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 성령을 돈으로 얻겠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상에 대
해 베드로는 가차없는 저주 선언으로 대용하고 있다. '망할지어다'에서 전치사 '에이
스'(* , '안으로')가 목적격의 명사를 동반해서 서술적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
러한 용법은 70인역의 일반적인 예라는 점에서 본문이 70인역에 영향받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베드로의 저주에는 재물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하여 종교 타
락의 원인이 되는 재물을 멀리 할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종교는 돈이 개
입된 흥정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내린 멸망의 저주를 연
상하게 한다(5:1-10). 따라서 본문은 성령 은혜가 돈이나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주어
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8:21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
이 말을 혹자는 시몬에게 베드로가 출교(黜敎)를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Haenchen, Neil). 그러나 이는 시몬이 기독교인이 된 사실(13절)을 부정하고 내어쫓
으려는 것이 아니라 첫째, 시몬을 책망하여 올바른 기독교인이 되게 하려는 의도와(22
절) 둘째, 시몬과 같이 불순한 의도와 잘못된 신앙을 갖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용납될 수 없음을 선언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사도의 행위는 17절에서와
같이 온전한 기독교인을 인정하고 보증하며 거짓된 기독교인을 구별함으로써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의 권위를 강화하고 있다.
=====8:22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
회개를 촉구하는 베드로의 이 말은 20절의 저주와 21절의 냉혹한 책망이 단순한 공
격적 발언이 아니라 시몬으로 하여금 참된 기독교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말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몬의 불경건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마음을 '악하다'고 다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카키아'(* )는 부패된 심적 상태뿐
아니라 도덕적인 악행도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몬의 부패된 심적 상태에만 국
한되어 사용되었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의해 입증되었다.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 이는 시몬이 행동으로보다는 마음으로 하나님
께 범죄했음을 보여주면서 마음에 지닌 사악함을 회개해야 함을 강조한다. 시몬은 빌
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을지라도 불순한 동기로 예수를 믿
기로 작정한 듯하다. 한편 '혹'으로 번역된 '에이 아라'(* )는 조건절을 강조
적으로 이끄는 표현으로 회개하고 기도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의
미에서 개역성경은 그 강조적 의미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그 의미를 불명확
하게 번역했다.
=====8:23
악독이 가득하며 -
이 말은 헬라어로 '에이스 콜렌 피크리아스'(* )
인데 직역하면 '쓰디쓴 쓸개를 향하여'란 의미를 지닌다. 이에 혹자는 시몬이 미신과
마술의 쓴 뿌리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거나 불의에 대한 벌을 받게 될 쓴 쓸개즙을 향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F.F. Bruce). 이와 유사하게 마샬(I.H. Marshall)은 시몬
이 쓰디쓴 심판을 재촉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시몬이 예수
를 받아들였으나 옛날의 사악한 습성을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불의에 매인 바 - 불의에 속하여 있는 시몬의 실존(實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이
구절은 사 58:6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
냐하면 회개는 악으로부터의 확실한 해방이며 또한 악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간 실존 상태는 시몬에게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24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
베드로의 신랄한 비판에 대한 시몬의 반응은 자신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었
다. 이에 대해 베자 사본은 '울음을 멈추지 않고 통곡하였다'라는 구절을 삽입시켜 시
몬이 베드로의 책망을 듣고 깊이 회개했음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베자
사본의 첨가를 따라 시몬의 회개를 기정 사실화했다(Blass, Wendt). 그러나 시몬은 베
드로의 저주가 자신에게 내려질 것을 두려워했을뿐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
하는 학자들이 많다(Meyer, Bengel, Alford, Knowling, Lenski). 22절에서 베드로가
그에게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권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회개하지 않고 베드로
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은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불신앙 속
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 구절을 시몬의 회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8:25
두 사도가...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
이 표현은 선교의 중심이 예루살렘 교회라는 점을 암시하는 말이다. 즉 모든 지방
교회는 교회의 중심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확인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교회의 정통성
과 관계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바울에 의해 이방 지역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퇴색
해졌다.
=====8:26
주의 사자 -
사마리아 선교 이야기는 일단락되고 새로운 선교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초자연적 능력이 가시적으로 개입되었다. 여기서 언급된 '주의 사자'란 표현은 '하나
님의 사자' 또는 간략히 '천사'와 동일한 의미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직접적인 개입을
강조할때 사용되는 용어로서 누가가 즐겨 사용했다(7:30, 35, 38;10:7,
22;11:13;12:7, 11, 23;27:23;눅 1:11;2:9).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이
표현을 통해 누가는 이방지역에 대한 선교 활동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남으로 향하여 - 이 말은 빌립이 당시 사마리아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를 볼 때 빌
립은 사마리아 선교를 시작했던 장본인임을 알 수 있다.
가사로 -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고 명령했
지만 정확한 지점을 지칭하지 않고 다만 가사를 향해 가라고 방향만 지시했다. 가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70여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창 10:19에 따르면
가나안의 도시였던 것으로 보이며, 유다 지파가 그곳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여 그이
후 계속 블레셋의 성읍으로 남아 있었다. 또 이곳은 삼손이 성문짝을 메었던 곳이었
다.(삿 16:1-5). 이 도시는 B.C. 96년경 마카비 가(家) 출신인 알렉산더 얀네우스
(Alexander Jannaeus)에 의해 멸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Josephus). 그 후 B.C. 약
57년경 폼페이의 칙령으로 '가비니우스'(Gabinius)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A.D. 66년경
에 멸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Josephus). 그런데 가사로 가는 길은 아스칼론
(Ascalon)을 통해 가는 길과 서쪽 헤브론을 통해 갈수 있는 두 길이 있는데 여기서는
어느 쪽인지 분명하지 않다.
=====8:27
에디오피아 사람...내시 -
빌립의 선교대상으로 언급된 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출신지와
직책이다. '검은 피부'라는 의미를 지닌 '에디오피아'는 애굽의 남쪽 지역으로서, 나
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구스 족속(사 11:11)의 후예로 구성되어 있다. 에디오피
아에서는 당시 모계(母系) 왕통을 갖고 있었으며 '간다게'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왕조
를 나타내는 명칭으로서 로마의 '가이사' 또는 애굽의 '바로'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국고'(* , 가자)라는 말은 본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왕실의 보물
또는 국가의 재산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내시는 왕실 또는 국가
의 재무 관리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 성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는 고자(鼓子, 신 23:1)이
면서 이방인인 그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될 수 없다.
아마 그는 유대인의 총회에 들 수는 없었으나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었으므로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한 절기 기간을 택하여 예루살렘에 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예루살렘
방문이 총회는 상관없이 단지 성지 순례만이 주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고자됨을
감추고 절기 중 거행되는 성회에 참석하려는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한편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먼길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가 유대교를 신실하게 믿
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8:28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
32, 33절에 인용된 구절이 70인역(LXX)의 사 53:7, 8과 같다. 그래서 혹자는 그 사
람이 70인역을 읽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F.F. Bruce).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생각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누가가 그 구절을 인용할 때 70인역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8:29
빌립에게 지시하는 자가 '주의 사자'에서(26절) '성령'으로 바뀌어 언급되었다. 이
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26절은 빌립에게 가시적으로 천
사가 나타났으나 본절은 음성이나 영감을 통해 명령이 주어졌기에 누가가 '성령'이란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2)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으로 표현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다는 유대인들의 사상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빌립에게 '내려가라' 지시한 사자나 본문의 성령은 동일한 분
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7:30-33 주석을 참조하라.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 빌립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가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언급되어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묘사는 이방
인 선교에 대한 당위성 및 필연성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8:30
달려가서...말하된 읽는 것을 깨닫느뇨 -
빌립은 내시의 읽는 소리를 통해 성경의 내용이 자신이 전하려 하는 복음의 내용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큰 소리를
내어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이 내시도 유대인들의 습관을 따라 마차 속에서 큰 소리
로 성경을 읽었을 것이며 이를 빌립은 들었을 것이다.
=====8:31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
'지도하는' 이란 표현이 미래형으로 사용되었다. 직역하면 '지도해 주게 될' 이란
의미를 나타내므로 내시의 소망을 담고 있다. 즉 지금까지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었지
만 자신을 지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 미래형 동사
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그 내시가 성경을 깨닫는 것에 매우 관심이 있다는 의미를 함
축하고 있으므로 빌립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었다.
빌립을 청하여 - 갑자기 나타난 빌립으로부터 도전적인 질문을 받은 내시는 의외로
빌립에게 자신의 마차에 오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처럼 내시가 배타적인 태도가 아
니라 호의적으로 빌립을 맞아들였다는 사실은 두 가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1) 내
시가 자신의 체면에 관계없이 성경을 깨닫지 못한다고 대답함으로써 자신의 겸손과 주
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자 하는 열망이 높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2) 선교자를 맞
아들이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사하고 있는데 영접하는 자의 구원을 암시하고
있다(막 6:11 주석참조).
=====8:32
양...어린 양 -
사 53:7의 인용구로 그곳에서 표현은 메시야의 수난과 관련된 예언이다. 메시야의
수난에서 비유적으로 '양'을 언급한 것은 메시야가 순종의 제물임과 동시에 희생 제물
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자세한 것은 사 53:7 주석을 참조하라.
=====8: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
이 말은 메시야가 이 땅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 사역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자기 백
성들로부터 받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 있으며 또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의 재판 과정에
서 공의로운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 의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사
53:8 주석을 참조하라.
=====8:34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
예언서에 예언된 고난의 종이 누군지를 묻는 내시의 질문에는 매우 진지하고 정중
한 문장이 사용되고 있다. 즉 '청컨대'(* , 데오마이 수)라는 말을
부탁을 하기 전 붙이는 '죄송하지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Haenchen). 한편 내
시는 예언된 고난의 종이 이사야 선지자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
사야는 므낫세 왕에 의해 고난을 받고 죽었다는 전설 때문에 그러한 추측이 가능했으
리라고 본다. 또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고난의 종으로 상징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선지자에 대해 내시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당시에 두 세 가지의 해석들이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8:35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켜 -
아마도 빌립은 이사야의 예언을 예수의 고난과 결부시켜 가르쳤던 것 같다. 다시
말해 빌립은 사 53:7, 8이 메시야의 고난임을 설명하고 그 메시야가 예수임도 밝혔다.
그리고 예수의 가르치심과 수난 및 부활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그 내시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8:36
물 있는 곳...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
많은 학자들은 '물 있는 곳'이라는 말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즉 그 장소가 예루살
렘 남쪽 헤브론에서 3km정도의 거리에 이쓴 '벧술'이라는 샘(수 15:58;느 3:16)을 가
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하고(Jerome, Eusebius, Alford), 가사로 가는 길에 위치한 '텔
엘 하시'(Tell-el-Hasy)라 이름하는 샘을 말한다는 주장(Robinson, Hervey)도 있으며,
가사 부근에 있는 어떤 샘으로 추정하기도 한다(Smith).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볼 수 없다. 즉 저자는 그곳이 어느 지역인가 하는 장소에는 전혀 관
심이 없고 다만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음을 말하려는 데 관심을 두고 있
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이 두 갈래였으므로 어느 길을 택했느냐
에 따라서 견해가 다를 수 있으며 빌립이 내시를 어느 지점에서 만났느냐에 따라서도
세례 장소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내시가 '무슨 거리낌이라도 있는가?'라고 반문한
것으로 보아 그가 이미 세례에 관해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빌립이 예수에 대한 설명을
하던 중 세례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마 빌립은 내시로 하여금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를 받음으로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제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내시는
자신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는 고백을 하는 대신 세례받는데 거리낌이 전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반문 형식의 의문문을 사용했다.
=====8:38
둘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
이는 두 사람 모두 물에 들어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浸禮)를 베풀었음을 암시한
다. 당시에는 오늘날 행하는 약식 세례와는 달리 침례를 행했으므로 물이 넉넉히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이로 보아서 내시가 세례를 받은 장소는 단순히 오아시스의 샘이 아
니라 흐르는 시내였을 것이다.
=====8:39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
빌립을 이끌어 주는 자가 '주의 사자'에 이어(26절) '성령'으로 언급된 후(29절)
여기서는 또 다른 표현인 '주의 영'으로 언급되고 있다. 누가는 서로 같은 의미를 조
금씩 다르게 표현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29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이끌어 간
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르파센'(* )은 재빨리 어떤 것을 채어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빌립을 내시의 눈 앞에서 금방 사라지도록 하
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이 기적이 실제로 시공간(視空間)에서 발생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누가는 이 기적에 대해 묘사함으로써 빌립의 전도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해 주며 또한 이방인 전도의 정당성을 부각시
켜준다.
내시는 흔연(欣然)히 길을 가므로 - 혹자는 기쁨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이 누가의
독특한 표현법이라고 주장한다(Harmack, Haenchen). 그러나 이 기쁨은 복음을 받아들
인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지 누가의 독특한 표현법이 아니다. 내시에 관한 언급은 여
기서 끝나고 있지만 내시가 기뻐하며 걷는 모습은 그가 본국으로 돌아가 복음을 증거
하며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었으리라는 추측을 충분히 가능하게 한다.
=====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
빌립이 세번째로 찾아간 선교지 아소도는 가사에서 동북쪽으로 약 40km, 지중해 연
안 4.8km 대륙 지방으로서, 삼상 6:17에서는 블레셋 성읍인 '아스돗'으로 언급하고 있
다. 이 도시는 처음에는 번창한 항구 도시였으나 암 1:8에 예언된 바대로 멸망한 것으
로 알려져 있다. 한편 빌립의 선교 활동이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두루 포함한다는
본절의 진술은 그곳의 기독교 공동체들이 빌립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를 방문하였을 때(9:32, 36) 그곳에 이미 기독교인이 있었
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