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이다
미원동 공동화장실 뒤 단칸 방 집 골목길에 스르르 나타난 실잠자리.
어느 먼 곳에서부터 실타래를 풀고 여기까지 왔는가.
항시 고추잠자리보다 낮게 날며 水草사이를 헤매던 모습은, 바늘귀를
향해 몇 번이고 시도하던 침침한 눈빛의 어머니 손길.....
날개를 퍼덕일 때는 파릇파릇 生氣가 돌고 가냘픈 몸매의 淸雅한 흔들림에 눈이 부셨다.
장구잠자리, 말잠자리,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 쌀잠자리, 보리잠자리
물잠자리, 날개를 편 채로 살아가는 잠자리 群團속에서 실잠자리는
낮은 곳으로만 날아다니다가 힘들고 지치면 한 쌍의 날개 고이 접어 온몸으로 등을 내민다.
에녹의 도시
하늘로
들리어 올라간 도시.
이름하여
시온이라 했던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에녹은
도시를 設計하였다
기설제(祈雪祭)
여름날에도
눈이 내렸으면.......
하늘을
본다.
뭉게 뭉게
침묵하며
피어오르는 구름.
Quick Service
월드컵 열광속에서도
할 일은 해야한다.
1승의 꿈은
16강-8강-4강으로 도약했다.
이른 새벽 서흥남동 동영맨션을 필두로
맥시칸 통닭집- 대우 APT- 금강 연합의원, 물리치료실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비집고
물리치료사에게 Sign을 받는다.
삼학동 테크노피아엔 문이 닫혀있다.
문틈 아래로 삐죽 내민 우편물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롯데리아 코아점의 김 옥길씨는
아침부터 출근도 않고
핸드폰도 연결이 되지않는다고
모두들
투덜대고 있다.
강변도로를 따라
하구둑으로 나서면
이름이 세번이나 바뀐 성산 호텔이
써미트 군장 호텔로 다시 둔갑했다.
성산-나포-임피-서수를 돌아
옥서면의 비행장 정문앞에서
군인들의 Sign을 기다리노라면
흑인병사 3명이
지금도 존재하는 양공주와 함께 걸어나온다.
줄담배를 피워대는 공단지대를 내달리면
이제는 매몰이되어버린
내초도 오식도를 지나면
혁대끈처럼 기다란 제방을 가로질러
비응도가 보인다.
입구 초소 두 명의 무장 군인이
출입을 가로막고 방문이유를 캐묻는다.
"Quick Service!" 한마디에
그들은 가볍게 경례를 붙인다
방충망
- 개복동 술집 골목에서 -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냄새속으로
모깃불 피어오르던
고향집 앞마당이
찰나적으로
떠오르기나 했을는지.
엄마야, 엄마야!
외쳐부르던
애처롭지만
비열(卑劣)한 절규속에서
급조(急造)된
위기의 틈바구니 속으로
내가 살아온 모습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숨이 턱턱 막히는
회색빛 안개더미 속으로
헤집고 헤쳐봐도
世界의 끝은
보이기나 했을는지.......
하회탈의 웃음 1
몸은
팔척 장신에
힘깨나 쓰게 생겼지만
당뇨로
이빨은 몽땅 빼앗기고
힘 마저
제대로 못쓰는 형편이랍니다.
정신 재활원
[희망의 그루터기]에서
최 장자이지만
막내둥이처럼 행세하며
누구에게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한답니다.
아무리
심한 우격다짐과
벼락같은
핀잔과
바윗돌 구르는
나무람으로
내 몰아쳐도
봉긋하게
터져 오는 웃음은
차마 참을 수 없나 봅니다.
성벽
촉석문을 들어서니
남강을 향해
늘어 서 있는 성벽가에는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의 모형이
촉석루를 옹위하고 있다.
삼천 팔백의 적은 수로
왜군 삼만여명을
퇴치했던 진주대첩은
왜군의 발악으로
칠만여명의 민.관.군이
왜적 십만에게 순절되었으니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강물위에
왜장의 몸을 껴안고
몸을 던졌다는
남강의 의기(義妓)
논개의 충절이
그 순절함을 더하고
굳건함으로 도열하여
둔중함과 의연함으로
버티고 눌러앉아
도도히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는
성벽 푸른 이끼는
천년세월 한줄 詩로 남는다.
*수주 변영로의 [논개]에서 인용.
해질 무렵의 이별
꽃가루를
흩뿌린 서녁 하늘가에는
무수한 벌떼들이 웅웅거린다.
하롱 하롱
꽃잎이 지듯
가는 유리관을 통해
흘러내리는 꿀물은
내 살아온 인생의 엑기스로 남았다.
연작시처럼
이어온 생애는
희(喜)
.
로(怒)
.
애(哀)
.
락(樂)
편식은 몸에 해롭다더라.
벅차고 붐비는 지하철
지상으로 오르면
차창가로
천국의 신기루마냥 펼쳐지는
본향(本鄕)의 모습 바라보며
離別은
새로운 만남을 그리워한다.
천지(天池)
날카로운 또아리 틀어
승천을 기다리는
민족의 정기는
용솟음 치는 의연(義捐)함으로 일어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