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여성의사 수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때 동강병원 산부인과과장으로 근무해온 고 옥 여자의사회 부회장은 이미 독특한 캐릭터로 울산시민들에게 인식되었다. 이름이 특이했고 사회활동에서도 여타 여의사들 보다 적극적이었다.
울산광역시 의사회 대변인과 여자의사회 부회장일을 맡아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검찰청의료자문위원을 비롯해 물푸레복지재단이사, 울산여성의전화 이사 등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다.
시교육청과 MOU를 체결한 울산시의사회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건강프로그램을 가지고 청소년성교육을 시작했는데 강사섭외와 교육안 기획으로 바쁜 고 옥 부회장을 찾아 남구 삼산동에 있는 고 옥 산부인과를 찾았다.
“사회 일들이 이렇게 형식과 절차를 갖추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저희는 전문인으로 우리 분야의 일밖에 몰랐는데...일 하나 처리하는데도 공문과 절차를 밟아야하니까 그 일이 더 어려운 것 같네요” 어려운 공부를 한 의료전문인이면 쉽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의외라고 했더니 스스로 세상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울산여의사회현황을 말해주시죠.“울산시 여자의사가 128명이나 됩니다. 수도 많아지고 부정기적으로 가지던 모임도 정례화 하고 뭔가 사회를 위해 우리의 역할을 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좀더 열심히 봉사하려고 합니다”
-얼마전 조두순사건이라고 하는 아동성폭력 등 우리사회가 성범죄화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슴아프죠. 저는 아들이 하나인데 만일 딸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가슴 졸이며 키워야할지 아찔하더군요.
특히 이번 청소년 성교육과 건강교육은 한창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신체와 정신적 변화에 따른 의학적 접근과 상담교육, 비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대응, 흡연문제, 낙태예방을 위한 성교육 등을 하게 되고 저는 산부인과이니까 보건교사를 상대로 생명존중과 피임, 성폭력에 대처하는 법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사후 의학적 처리문제 등을 강의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일회성입니까, 아니면 연속적으로 실행하게 됩니까?“이 일은 울산에 의사회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일이고 계속해야할 사업이라고 봅니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5학년이 되면 교의가 학교에 와서 학생들의 신체변화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변을 통해 교육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건강과 성교육을 정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낙태에 대한 찬반으로 왈가왈부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프로라이프의사회의 생명존중 의견도 공감하고 낙태를 해야 하는 현실과 미혼모, 여성들의 현실도 이해됩니다만 낙태문제는 옳고 그르고 찬반을 논할 문제만은 아닙니다.
제가 안타까웠던 것이 낙태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는가?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임상경험에 의한 성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죠. 다시 말해서 낙태문제로 병원을 오지않도록 예방교육을 먼저 해야겠다는 거죠”
-이제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의사가 된 동기, 앞으로의 꿈, 가족관계 등에 대해서...
“저는 성격이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낙천적이어서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향해 돌진하지는 않습니다. 의대공부도 수월하게 시작을 했고 석사 박사과정도 무난하게 했습니다. 요즘은 이 일이 천직이구나 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를 찾는 환자들이 여성들이고 울산여성들이 참 단순하고 소박해서 좋아합니다”
냉철한 의사의 모습보다 웃음이 많은 수줍은 소녀같은 고 옥 원장의 심성이 환자들을 편하게 해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만치 그는 진솔한 여성 의료인인 것 같았다.
자신을 게으르다고 표현했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나 책임감이 투철해 남을 위한 일을 할 때는 앞장서고 동강병원과 울산보람병원에 재직할 때 가장 많은 분만을 기록한 일복이 많은 의사라고 평이 나 있었다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나 1990년 부산 고신의대석사, 동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3년 동강병원에서 산부인과 과장으로 3년, 보람병원에서 5년 근무한 후, 2002년도 현재의 고옥산부인과를 개원, 원장으로 울산여성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현실적인 계획이나 계산을 못하는 성격이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배려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고 옥 원장은 장래의 꿈이 5년 더 일하고 그후 5년은 타국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휴식년을 갖고 싶다고.
그리고 60살이 되면 사회사업 등 더 정직한 일을 하고 싶고 또 그 이후는 손주를 가능한 많이 키우고 싶다는, 가장 비현실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꿈을 진지하게 밝힌다. 치과의사인 남편(김정환치과), 아들 형수(고2)와 대공원이 바라보이는 신정동에서 오순도순 재미나게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