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요금 해지
2년 2개월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난 3학년으로 복학했고 1년 후배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남편의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어졌다. 내 생각에 가위로 조금만 손 보면 스스로 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위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랐다. 뭔가 양쪽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다시 가위를 들고 긴 쪽을 잘랐다. 다시 거울을 보니 이번에는 반대쪽이 길어졌다. 이렇게 몇 번 하다 보니 몽실언니가 되었다. 이건 안되겠다 싶었다. 숏커트로 계획을 수정했다. 미용실 언니들이 머리를 자를 때 세로로 머리카락을 잡아서 자연스럽게 층이 나게 자르는 것을 흉내 내며 잘라보았다. 다 하고 나니 헤어스타일이 뭐라 표현하기 힘든 마치 미용실이라고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쥐 파먹은 머리가 됐다. 다시 계획을 수정했다. 4학년 때에는 교생실습을 나가야 하니 그리고 졸업하고 만약 바로 선생님이 된다면 평생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 바로 빡빡이 헤어스타일을 해보고 싶었다. 해보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할 용기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가위를 먼저 두상에 가까이 밀착시키고 가위질을 했다. 머리가 성큼성큼 잘려나갔다. 내 마음도 뭔가 시원했다. 가위질을 마치고 다시 거울을 보니 이건 뭐 더 뭐라 말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이 됐다. 유태인이 생각났다. 아무렇게나 잡히는 대로 잘려진 수용소의 유태인이 떠올랐다. 머리카락이 잘려진 채 가스실로 끌려가는 영화 속에서 본 유태인의 모습 말이다. 가위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빠가 쓰는 일회용 면도기를 꺼냈다. 면도기를 머리에 대고 밀면 금방 머리가 밀리는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밀다보니 방법을 터득했다. 면도기를 들지 않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며 머리카락은 난 반대방향으로 거꾸로 면도기를 밀어야 했다. 난 내 머리카락이 다른 방향으로 뭔가 회로치 치는 모양으로 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시간이 한 참 지났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몇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자 엄마는 문들 두드리며 뭐하는지 계속 물었다. 난 뭐 좀 하고 있다고 대답하며 몇 시간이 지나 아빠의 일회용 면도기를 다섯 개쯤 못쓰게 만들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엄마는 날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냐며 눈물을 흘렸다. 난 그냥 밀어보고 싶어서 민 거라 답했다. 엄마는 ○○이가 너보고 헤어지자고 했냐며 화를 냈다. 난 아니라고 했다. 긴 머리로 화장실에 들어간 대학교 3학년 딸이 민머리 파란 동자승이 돼서 화장실을 나왔으니 엄마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자식을 낳아보니 조금은 알겠다. 엄마는 다음 날 나에게 가발을 사다 줬다.
남편이 제대를 했다. 난 가발을 쓰지 않고 빡빡 머리로 나갔다. 남편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얼마 후 나에게 날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며 헤어지자고 했다. 난 헤어지기 싫다고 눈물로 매달렸다. 그래도 남편은 안된다고 했다. 냉정했다. 커플요금을 해지하러 함께 갔다. 한 사람이 해지할 수는 없는 건지 물었지만 둘 다 와야 한다고 했다. 난 머리에 손뜨게로 만든 랍비 같은 모자를 눌러쓰고 검정색 종이봉지공주나 입을 것 같은 커다란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나갔다. 남편은 앞서 걸어갔고 난 뒤에서 눈물을 닦으며 따라갔다. 그렇게 우린 첫 번 째 이별을 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이에게 차여서 머리를 민 줄 안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다. 차여서 머리를 깎은게 아니라 머리를 깎아서 차인거라고…….
by 짜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