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 삶과 문화]수의-부자도 가난한 자도 평등한 옷
[제주인 삶과 문화] 1. "수의와 부속품 제작" 기능인 김경생 할머니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딱 한번 살다가 간다. 평범하게 살더라도 딱 한번 살고 부와 영예를 누리며 살아도 딱 한 번뿐인 게 인간의 삶이다. 그래서 한 번뿐인 삶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통과의례 때 가장 큰 호사를 했다. 통과의례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거쳐야하는 관문으로 통과의례 중에서도 세상에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리는 탄생과 혼례·장례를 가장 종요롭게 생각했다.
특히 살아생전 고생만 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을 때는 부귀를 떠나 평등해진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죽을 때 입는 옷, 수의만큼은 거의 비슷하게 ‘호사’를 했다.
수의는 사람이 한평생 살다가 별세해 염습할 때 입히는 옷으로 제주에서는 ‘호상옷’이라고 한다. 호상옷은 보통 흰 명주로 만들었다. 여자는 혼인할 때 입었던 원삼을 환갑 때 다시 입고 잘 간수했다가 호상옷으로 삼았고, 남자는 결혼 때나 환갑 때 입었던 도포를 수의로 입혔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이 흰 명주로 호상옷을 새로 짓는다.
호상옷은 살아생전 자신이 직접 준비해 두기도 하지만 자식들이 환갑 때 지어서 드린다. 호상옷은 보통 윤달에 만든다. 윤달은 ‘공달’이라 하여 아무 탈이 없고, 이 때 호상옷을 지어두면 무병장수 한다는 속신이 있다. 호상옷을 할 때는 예전에는 손바느질을 했으며 바느질을 할 때도 매듭을 맺거나 뒷바느질을 절대로 삼갔다. 매듭을 짓지 않은 것은 ‘세상에서 맺힌 한을 풀고 가라’는 산자의 염원이며 뒷바느질을 않는 것은 ‘뒤돌아보지 말고 저승으로 잘 가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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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 삶과 문화]"수의와 부속품 제작" 기능인 김경생 할머니
[제주인 삶과 문화] 1. 수의-부자도 가난한 자도 평등한 옷
“인간은 한 세상이기 때문에 마감할 때까지 마음 깨끗이 하면서 살아야 해요. 자기 처신을 잘해야 죽어서도 대우를 받을 수 있어요”
지난 1월 4일 제주시 문화유산 무형 제3호 ‘수의와 부속품 제작’기능인으로 지정된 김경생 할머니(81).
제주시 이도1동 노인회 여성부회장을 맡았던 김 할머니는 여성 노인들이 뜻깊게 할 소일거리를 찾던 중 지난 93년부터 제주시 협조로 수의제작을 해왔다. 제주시 이도1동 노인정 내 수의작업장을 내고 5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얼추 10년 째 수의와 상복을 제작하고 있다.
현재 이 곳에는 김 할머니 외에 이계생(80) 차경후(79) 고태자(77) 김양순(72) 송옥만(69) 할머니 등 5명의 할머니가 상근하며 수의를 제작한다. 김 할머니는 수의와 상복 등을 마름질을 하면 다른 할머니들은 바느질을 한다.
할머니가 바느질을 한 것은 열 여섯 살 때부터다. 향교를 드나드는 친정아버지의 뒷바라지를 위해 도복(도포)을 만들었던 게 인연이 돼 열 여섯 살에 시집가서도 시집 식구들의 옷을 도맡아 지었다.
“하루는 시아버지가 도복을 지어달라고 해요. 마름질 할 줄 몰라 도포 현품을 보고 옷을 지어 드렸는데 잘 지었다고 칭찬을 해 주셨지요. 이후 시어른 옷 뒷바라지를 제가 했어요”
할머니는 이후 동네 친구나 할머니의 손이 필요한 곳에 불려가 실력을 발휘했다. 옛 어른들이 만드는 것을 어깨너머 배워 수의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품삯’을 받고 한 일도 아니었다.
할머니가 본격적으로 수의작업을 한 것은 10년. 제주시 이도1동 노인정에서 수의 만들기를 하면서부터다. 그나마 할머니처럼 전통방식으로 수의를 제작하는 사람도 몇 안 돼 전수작업이 절실한 상태다.
“수의는 제주에서는 ‘호상옷’이라고 해요. 호상옷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호상옷 만드는 법이 사라질 즈음에 제주시에서 100만원씩 후원해 줘 시작한 일이 벌써 10년입니다. 수의와 상복을 제작해 노인 회원들의 용돈벌이도 되고 있고, 무엇보다 수익금의 일부는 불우 노인들을 위해 쓸 수 있어 기쁩니다. 이도1동 관내 어려운 노인 2명과 양로원과 요양원 등 불우 시설에 2벌씩 한해 4벌씩의 수의를 선물하고 있어요. 우리 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데 회원 모두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우리네 사람들은 예로부터 혼례 때 ‘옷을 잘 갖추어 입는 것처럼’ 호상옷도 잘 갖췄다.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아도 저승에 가서는 ‘호사하라’는 뜻에서 호상옷 만큼은 예법대로 잘 갖춰서 최고로 해서 입혔는데 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통이 되고 있다.
호상옷은 가짓수만 십 수가지가 넘는다. 마름질을 포함해 호상옷 한 벌 짓는데 넉넉잡아 4∼5일은 걸린다니 여간한 공이 아니다. 여자옷을 보면 소중이(속곳), 속적삼, 겉적삼, 속중의, 과두(허리띠), 바지, 저고리, 속치마, 겉치마, 장옷(겹장옷), 엄두, 보선, 왁스(손장갑), 주머니(손톱·발톱 싸는 것), 베개(2개), 천금(이불·이불깃은 붉은 색, 남자 천금은 초록색 깃을 달았다.) 지금(요), 대림포 등이며 검은호상과 신발·동심줄 등은 따로 준비했다.
호상옷은 여자는 혼인할 때 입는 옷과 같고 남자는 사모 관대 대신 이승에서 가장 큰 옷인 도포를 입혔다. 호상옷의 재료는 사람에 따라 삼베로 호상옷을 만들기도 하지만 명주를 최고의 재료로 썼다. 무명이나 모시, 화학섬유는 절대 호상옷의 재료로 써선 안 된다. 무명옷은 시신이 썩을 때 새카맣게 하고, 모시를 쓰면 자손들의 머리에 새치가 생기게 하며, 화학섬유를 쓰면 시신이 잘 썩지 않는다고 해서 피한다.
“옛날에는 호상옷인 장옷 고름과 끝동은 물색으로 했었어요. 그러나 이묘할 때 뼈에 빨간물과 파란물이 들어있다는 속설이 번지면서 15년 전 즈음부터는 거의 흰색 명주로 호상옷을 하고 있어요. 사람이 한 평생을 살다 가면서 집도, 돈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몸 하나만큼이라도 정성 들여 보내자는 뜻에서 호상옷에 정성을 드리는 것 같아요”.
호상옷은 보통 부모 생일날이나 환갑 때 자식들이 선물로 했다고 한다. 호상옷을 할 때는 맛난 것을 만들어 호상옷을 짓는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한바탕 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전에 자신이 입고 갈 호상옷을 미리 해두는 사람이 많다. 자식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깊은 생각이 담겨있다.
“아무리 건강해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예전에는 70살이 넘어야 호상을 했는데,지금은 환갑 때 많이 해요. 환갑 때 호상옷을 해두면 명이 길다고 합니다. 검은 호상 안감을 붉은 색으로 대는 것은 자식들의 눈을 밝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옛 어른들의 말씀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요”
김 할머니는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해도 옛날 것은 잊혀지지 말아야 한다. 젊은 사람들도 수의 만드는 법을 배워 훗날까지 우리의 전통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