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함민복 시인의 시집입니다.
‘물빛 인쇄소’.....
참으로 함민복스런 시어입니다.
그의 시마음을 엿볼 수 있는 싯귀들을 추려봅니다.
위에서 아래로 따르는
물을 받을 수 있는 컵에
아래서 위로 초를 꽂아
불을 담아 들고 있네
혁명일세!
태극일세!
<광화문 촛불 바다, 전문>
기실 우리 삶도 등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닌가
- KTX 역방향을 타고 가며-
마음에 마음을 문대보는 일
마음에 마음이 새겨지길 바라는 일
- 물빛 인쇄소 -
달과 나 사이에
사이가 가득하여
풍요롭다
- 달의 후회 -
악행도 선행도
마음을 실행하는 것은 손
마음이 되어 부끄러움도 타는
손이 거역하면 죄도 지을 수 없다
손을 씻으며
매일
거룩하게 들여다볼 일이다
만져온 것들을 떠올려 볼 일이다
- 손 -
화살표는
시간의 낭비를 단축할 수 있는
시간을 사냥할 수 있는 화살
속도를 섬기는 신앙
- 방향의 숲, 화살표를 위하여1 -
화살표의 힘은 앞으로 쏠려 있어
화살표의 뒤쪽은 언제나 쓸쓸하다
- 삶과 죽음은 모래시계, 끝나지 않은 키스,
화살표를 위하여2 -
구호는 말의 화살표
촛불은 빛의 화살표
노래는 감정의 화살표
행진, 촘촘한 화살표들이
하나의 화살표가 되어
옳다는 방향을 향하여
꿈틀꿈틀 흘러간다
- 광화문 광장에서, 화살표를 위하여6 -
물(水)
부드러운 고집쟁이 물은 여타의 화살표를 따르지 않는다
몸이 화살표인 물은 잠시 고여 있기도 하지만
늘 함께 흘러가야 함을 모두에게 일깨워준다
낮음이 화살표인 물은 바다를 보라며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드넓은 세상이 있다 한다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가장 높이 오를 수 있음을 안다
- 목화토금수, 화살표를 위하여7 -
여기
이미
있어야 할 곳에
침묵으로 머물다
단박에 두근두근 살아나는
신처럼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며
나를 움직여주는
영원한 화살표
오, 방향의 어머니
허령한 양심이여
찬연하라!
- 양심, 화살표를 위하여10 -
경계는 단절이 아닌 연결의 시작이니
경계는 중심이 아닌 테두리이니
물그릇에 모든 것 담고 살아가다가
경계심이 일어나면 씻어 버리자는 다짐인가
- 물경계 -
수직의 그물 아파트와 수평의 그물 보도블록
외출과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 주며
긴 세월로 구류를 집행하는
칸 칸 칸 칸 그물의 시대
경계가 욕망의 까칠한 신경줄이 아니라
배려의 돈독한 힘줄이 되길 바라는
그물의 긍정적 정신이 간절해진다
- 그물의 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