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존망이 걸린 황산벌 전투의 시작과 끝
서기 600년에 일어난 신라와 백제의 황산벌 전투 핵심 인물인 백제의 계백장군과 신라 김유신 장군의 대결을 사서의 기록을 따라 가본다.
641년 백제 제30대 무왕(武王, ?~641)이 죽고, 즉위한 의자왕(義慈王, ?~660년/향년60대)은 즉위 후 배후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대규모 숙청을 단행한 뒤, 왕권을 강화한다.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 있던 신라는 계속되는 두 나라의 군사적 압박에 당나라의 도움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친화적인 외교를 하였고, 당나라는 지속적으로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자 백제를 먼저 공격하기 위해 신라와 동맹을 맫는다.
의자왕은 중국 대륙의 침략에 대한 대비책과 국경이 닿아있는 신라를 고립시켜 군사적인 유리함을 이끌기 위해 고구려의 동맹을 추진하고, 고구려 역시 당나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백제와의 동맹을 체결하게 된다. 고구려와 동맹을 통해 중국의 침략에 대비한 백제는 의자왕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침공하여 약40개의 성(城)을 함락시키고, 한 달 뒤 신라의 요충지인 대야성(大耶城) 까지 함락시켜 신라 정복의 기반을 마련한다.
위기에 빠진 신라는 급히 고구려와 일본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실패하자 이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당나라에게 적극적인 외교를 펼친다. 얼마뒤 백제는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항성(黨項城: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산성)을 접령하여, 신라와 중국의 교류를 어렵게 만든다.
신라는 급히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백제 연합 공격에 대해 호소하며, 구원을 요청하였고 당나라도 고구려와 백제에게 신라 침략을 그만두지 않을시 공격하겠다는 협박성 통보를 한다. 고구려와 백제가 받아들이지 않자 당나라 태종은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신라는 군사 3만을 보내 원조 하였다.
그 틈을 타 백제는 신라의 성(城) 7곳을 함락시키고 만다. 고구려 공격에 거듭 실패한 당나라는 방해가 되는 백제를 선제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660년 신라와 연합하여 당나라는 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서해를 건너 백제로 진군하였고 신라는 김유신『金庾信, 595년(진평왕 17)~673년(문무왕 13)』이 이끄는 5만 명의 군사는 육로로 백제를 향하였다.
침공 소식을 들은 의자왕은 긴급하게 조정 대신들과 대책회의를 하였지만 쉽게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김유신 장군은 빠른 속도로 황산벌로 진군해 오고 있었다. 의자왕은 장군 계백에게 5천 명의 결사대를 선발하여 신라군에 대응토록 하였다. 황산벌에 먼저 도착한 계백은 전략을 세우고, 유리한 곳을 선점하여 3곳에 진영을 설치해 대비하였고, 김유신도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백제군의 진영을 공격하였다.
나라의 운명을 걸고 출전한 백제의 5천 결사대는 매우 강력했고, 네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다. 거듭되는 패배에 신라군은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신라는 전세가 불리해 지자 사기를 증진 시키기 위해 어린 화랑들에게 사기를 올리기 위해 출진하여 희생하라고 지시하였고, 어린 화랑들도 동의를 한다.
어린 화랑들은 출전하여 장렬하게 전투하였고, 가장 먼저 김서현(金舒玄)의 아들 김흠순『金欽純: 김유신의 동생으로 ‘흠춘(欽春)’이라고도 한다』 장군의 아들인 김반굴(金盤屈, ? ~660년)이 선봉으로 적진에 나가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곧 품일(品日) 장군의 아들인 관창『 官昌, 645(선덕여왕 14)~ 660(무열왕 7) 』도 전투에 돌입하여 선봉에서 계백과 대전하였으나 생포되어 포로가 된다.
어린 광창의 용맹함에 감탄한 계백은 그를 살려서 돌려 보냈다. 그러나 공을 세우지 못함을 분함에 여긴 관창은 다시 한번 적진에 돌진하였으나 또 생포되었고, 계백은 어쩔 수 없이 사형 시킨 후 그의 유해를 신라군에게 돌려 보낸다. 관창의 용감한 희생에 자극을 받은 신라군은 놀라울 만큼 사기가 올랐고, 그 기세를 몰아 총 공격하여 계백장군과 결사대를 결국 이겨내고 만다.
최후의 방어선이 뚫린 백제의 수도 사비성『泗沘城: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성(城)』은 곧 함락되었고,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웅진성(熊津城: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산성)으로 피난하여 끝까지 싸웠으나 결국 함락되고, 의자왕은 항복하여 백제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만다.
백제가 멸망한 후 당나라와 신라는 곧바로 고구려를 향해 진군했다. 고구려도 평양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연합군의 전력에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게 된다. 그렇게 삼국시대는 마무리되고 통일신라(統一新羅)가 한반도의 주인이 된다.
▲삼국시대 지도
▲통일신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