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4일부로 캄보디아에서 본격적인 NGO들이 활동하기 시작한지 30년이 되었다. 그사이 의료보건 분야에만 불과 5개의 단체가 활동하던 상황에서, 이미 다양한 분야에 걸쳐 3,000개 이상의 NGO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참조: 이 숫자는 훈 센 총리가 공식연설에서 언급한 숫자이다). 또한 대부분 외국의 NGO들 및 외국인 요원들이 지원하던 상황도, 1990년대 말을 기점으로 NGO 분야도 캄보디아 국민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주축을 이루는 시대로 변모했다(참조: 캄보디아 NGO 포럼 소개문). 이러한 상황에서 "크메르의 세계"는 최근 캄보디아 인권상황 및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현상이 두드러짐에 주목하고, 우선 주요한 인권관련 NGO들을 연속 게시물로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하는 단체는, 캄보디아 국내의 자생적 인권단체로서 캄보디아 인권수호의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리카도"(LICADHO)를 선정했다. 본 게시물은 먼저 <프놈펜포스트>(The Phnom Penh Post)의 2009년 2월 23일자 소개기사 및 "리카도"에서 제공하는 단체 소개문을 차례로 번역한 것이다. |
캄보디아 인권단체 (1) : 리카도 (LICADHO)
[프놈펜포스트 2009년 2월 23일자 기사]
희망주기, 그 20년
Profile: Giving hope for two decades
기사작성 : Sarah Whyte
NGO 프로필 : 리카도 (LICADHO)
창 립 : 1992년
인 원 : 160명의 직원 및 자원봉사자들이 프놈펜의 본부 및 전국 12개 지방사무소에서 근무.
활 동 : "리카도"는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위해 일하며, 특히 가정폭력과 강간, 인신매매에 피해를 당한 여성 및 어린이들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 정 : 이 단체는 광범위한 기부처들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여기에는 핀란드 단체 "오퍼레이션 어 데이스 워크"(Operation a Day's Work), 덴마크의 대표적 인권 NGO "덴 처치 에이드"(Danchurch Aid), 기독교 계열단체 "디아코니아"(Diakonia), ICCO, "덴마크 국제개발처"(Danida), 독일의 NGO "독일농업행동"(German Agro Action),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및 "[미국] 동서 경영연구원"(East-West Management Institute: EWMI), 핀란드 정부, 호주 정부, 몰타 정부, 네델란드 정부, 기타 개인 기부자들이 포함된다. |
캄보디아 최초의 NGO 중 하나로서 "리카도"(LICADHO)는 지난 20년간 시민사회의 변화상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1992년보다 현재의 상황이 더 나쁘다고 말한다. "리카도"는 1992년 "인권 증진과 보호를 위한 캄보디아인연맹"(The Cambodian League for the Promotion and Defence of Human Rights)이란 명칭으로 창립되었다. 당시는 동서냉전이 해빙무드에 접어들고, <파리평화협정>이 조인되어 현재 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의 전신인 "캄푸치아 인민혁명당"(KPRP)의 10년에 걸친 일당독재가 끝난 직후였다.
(사진: SOVANN PHILONG)
캄보디아 인권지킴이 껙 갈랍루 여사.
"리카도"의 창립자이자 총재인 껙 갈랍루(Kek Galabru: 최근에는 "뿡 치우 껙"[Pung Chhiv Kek]이란 본명 사용) 여사와 그 회원들은 1990년대 초반의 극도의 불안정한 상황과 관료주의로 인해, 운영을 해나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리카도"는 "국제연합 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 통치기에 설립된 최초의 NGO 중 하나였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카도"는 공산주의 시절의 관료주의적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껙 갈랍루 여사는 "어떤 때는 감방의 수감자 방문허가를 받는 데 8개월이 걸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나마 "국제연합"(UN)"이 캄보디아에 들어와 있어서, 방문허가라도 받아낸거죠"라고 회상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98년까지 "리카도"는 13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전국 12개 시도지부를 갖추며 확장해나갔다. 현재도 "리카도"는 불법납치, 가정폭력, 토지수탈, 강제퇴거의 피해자들과 함게 하는 일을 집요하게 밀고나가고 있다.
갈랍루 여사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무수히 남아있다고 한다. 그녀는 아직도 "리카도"가 권력에 줄이 있는 이들이 관련된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다룰 때, 때때로 익명성 위협에 시달리곤 한다고 증언했다. 또한 지난달(2009년 1월) 더이 끄러홈(Dey Krahorm) 강제철거 관련으로, 2명의 직원이 익명의 휴대폰 문자메세지 협박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갈랍루 여사는, 캄보디아에 민주주의적 절차가 부재한다고 하는 것은 언젠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때 심각한 월권행위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1993년, 우리는 NGO로서 약간의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2009년 현재 우리의 민주적 활동공간은 더 줄어들고 있는 중"이라 부연했다. 그녀는 "우린 정말 지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마저 이들을 포기하면 이 국민들에겐 무엇이 남겠습니까....... 우린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그들에게 약간의 희망을 더 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리카도"는 피해자들에게 법률, 의료, 재정지원을 하고있고, 국내법 및 캄보디아가 비준한 국제협정에 따른 권리를 성명해주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2004년 노조간부 찌어 위찌어(Chea Vichea) 살해혐의로 1,799일간 "부당하게" 구속됐던 본 섬나앙(Born Samnang)과 속 삼 오운(Sok Sam Oeun) 사건에 세간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현재 이 두 사람은 임시로 석방되어 있는 상태이다.
"리카도"는 모든 아동들에 대한 무상교육, 국가지원 의료체계, 철거대상 공동체에 대한 완전한 배상을 주창하고 있다. 이 단체가 바라고 있는 모든 목표들은 캄보디아 정부를 보다 민주적 형태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
갈랍루 여사는 "우리는 정보접근의 자유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로 부르려 한다면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먼저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갈랍루 여사는 어린 시절에 강력한 여성 역할모델을 보면서 자랐다고 한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인데, 그러한 영향이 현재 인권운동을 하는 데도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녀의 모친은 바로 캄보디아 최초의 선출직 정치인인 뿡 뼁 쩽(Pung Peng Cheng) 여사다. 갈랍루 여사는 "우리 어머니가 캄보디아 국민들을 위해 일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제가 사람들에게 봉사하길 원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부에 들어가 일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학을 공부했죠"라고 고백했다. 이후 몇년 후 그녀의 모친과 작고한 남편의 도움을 받아 그녀는 "리카도"를 창립했다. 2005년에 갈랍루 여사는 캄보디아 내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였던 1,000명의 여성들에 포함되었다.
그녀는 "저를 지명해줬던 캄보디아인 동료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희망은 제가 계속해서 캄보디아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 것입니다"며 말을 맺었다.
[자료제공] 리카도 홈페이지
1. 리카도는 어떤 단체인가
1992년 이래로, "리카도"(LICADHO)는 캄보디아 인권수호 및 정부 및 기관들이 시민적, 정치적 권리 를 존중토록 하는 노력의 최전선에 서왔다. 과거의 성과들을 통해 "리카도"는 프놈펜의 본부 및 12개 도에 지방사무소를 설치하고, 폴넓은 인권관련 사업들을 통해 국민들을 대변하고 정부를 모니터하는 기능을 수행해왔다. "리카도"는 7개 사업부(program office)를 두고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변론문서자료사무실 (Advocacy, Documentation and Resources Office) : 사건 자료들을 중앙의 전산 데이타베이스에 취합시켜, 정확한 정보를 보다 용이하게 사용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업무.
인권교육사무실 (Human Rights Education Office) : 공무원, 경찰, 학생, 승려와 같은 타켓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강좌 개설과, 대중강연 및 세미나를 통한 의식고취.
모니터링 사무실 (Monitoring Office):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피해자에 대해 법률적 지원을 함. 전문훈련을 받은 직원들이 전국 18개 교도소의 상황과 환경을 감시하고, 미결수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보장하도록 함.
의료사무실 (Medical Office ): 전국 18개 교도소에서 재소자 및 교도관들에게 의료지원을 하며, 인권침해 피해자에게 의료지원 및 지원인원을 배치.
고문반대 프로그램 (Project Against Torture): 고문피해자에 대한 포괄적인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고문에 대항한 변론 활동.
아동권리 사무실 (Children's Rights Office): 아동들의 권리에 대해 대중적인 교육활동을 수행하고, 풀뿌리 차원의 아동보호 네크워크를 구축하며, 아동권리 침해사례를 조사.
여성권리 사무실 (Women's Rights Office ): 대중들에게 여성의 권리에 대해 교육하고, 여성인권 침해사례를 조사하며, 사회적, 법률적 변화에서 여성을 대변함. |
(사진) 현장에서 의견을 청취 중인 리카도 직원들.
"리카도"는 또한 전국 차원에서 개혁에 대한 대변을 하고 있고, 국내 및 국제 NGO들과 협력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리카도"는 정기적으로 포괄적인 보고서 및 요약된 문서를 발표하여, 캄보디아 인권상황에 대한 가장 주요한 정보제공처 역할도 하고 있다. "리카도"는 모든 활동을 수행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원칙들에 근거하여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고자 한다.
"리카도"가 하는 일은 인권침해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리카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쟁취할 수 있도록 만들고, 권리침해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리카도"는 핵심적인 역할담당자와 정책입안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교육을 시킴으로써, 인권침해 및 그 가해자에 대한 면책 분위기를 일소시켜야만 한다. |
이들 3개 원칙은 캄보디아 인권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3대 축이라고 할 수 있다.
2. 리카도의 역사
캄보디아 내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 해외 캄보디아 교포 중 한 사람이었던 껙 갈랍루(Kek Galabru: 뿡 치우 껙[Pung Chhiv Kek]) 박사는 당시의 훈 센(Hun Sen) 총리와 망명 중이던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국왕 사이의 협상을 기획했다. 결국 이러한 협상이 결실을 맺어 1991년에 <파리평화협정>이 조인되었고, 유엔의 감독 하에 총선을 치뤄 오랜 내전은 종식될 수 있었다.
(사진) 아동권리에 관한 연수교육 모습
<파리평화협정>이 발효되자, 해외에 거주하던 갈랍루 박사와 여타 캄보디아인들이 귀국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오랜 전쟁으로 고통받고 빈곤에 허덕이는 동포들의 고통을 경감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1992년 설립된 "인권 증진과 보호를 위한 캄보디아인연맹"(The Cambodian League for the Promotion and Defence of Human Rights)은 바로 그러한 고민의 결과이며, 현재 프랑스어 약칭인 "리카도"(LICADHO)란 이름으로 유명한 바로 그 단체이다. "리카도"는 유엔의 잠정정부가 들어오면서 새롭게 생겨난 시민사회에서, 가장 최초로 설립된 전국단위의 NGO 중 하나이다.
1993년 실시된 최초의 선거정국에서, "리카도"는 유권자 의식교육 및 선거운동 감시활동을 하면서 그 활동을 개시했다. 이후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들을 알리기 시작했다. 초기의 사업들은 주로 인권침해 감시, 인권관련 연수기회 제공, 인권침해 재소자 및 피해자들에 대한 의료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1994년 "여성권리 사무실"과 "아동권리 사무실"을 개설하면서, "리카도"는 규모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초기 수년간 "리카도"에 신고되는 인권침해 사례들은 비교적 많지 않았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고, 인권침해를 고발하거나 시정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다. "리카도"가 인권교육을 선도하며 여타 NGO들 역시 발전해나가자, 피해자들도 기꺼이 도움을 청하고자 시도하기 시작했다.
(사진) 2009년 9월, 미국의회 인권관련 청문회에 참석해 경청 중인 껙 갈랍루 총재(중앙). 좌측은 캄보디아 인권운동의 기수인 삼랑시당 국회의원 무 서쿠(Mu Sochua) 여사이다.
"리카도"는 인권관련 프로그램을 지속시키면서, 축적된 경험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 내용 역시 보다 세련되게 발전시켰다. 1998년 "리카도"는 상근직원 규모를 130명으로 늘리고, 프놈펜 및 12개 지방 시도에 지부를 두게 되었다. 2000년에 "리카도"는 "고문반대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캄보디아에서 고문 피해자의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1998년 총선에서 "리카도"는 유권자교육 및 정치폭력 및 여타 선거법 위반 감시활동을 했다. "캄보디아의 자유공정선거를 위한 중립위원회"(NICFEC)의 회원단체로서, "리카도"는 2002년 지방자치선거 및 2003년 총선 감시활동에도 참여했다.
"리카도"는 혼돈과 불안정한 시국에서도 활동을 중단한 적이 없다. 심지어는 "1997년 쿠테타"와 1998년 총선후 군중소요로 혼란하던 시기에도 "리카도"의 사무실은 문을 열었고, 사건 와중 혹은 선거감시 중 부상당한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리카도"의 직원들은 업무수행 중, 그것을 방해하기 위한 위협과 협박, 혹은 사법적 제재에 직면하기도 한다. 1998년에는 시하눅빌에서 유독성 쓰레기 방출에 대한 항의시위를 감시하던 2명의 직원이 구속되어 징역 1개월을 선고받았다. 2000년에는 베트남에서 납치되어온 봉제공장 여공들을 돕던 직원들이 구속과 함께 위협을 받았다. 2001년에는 사무국장(director)이 아동인권 침해를 당한 한 어린 소녀를 구조한 일과 관련하여 불법구금을 당하기도 했다. 종국에는 이 모든 혐의들이 기각되긴 했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캄보디아 내에서 "리카도" 직원은 물론 인권지킴이들과 NGO들이 직면한 압력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압력은 주로 권력형 이권개입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리카도의 재정을 후원하는 기부처 목록
● 5,000 달러 혹은 그 이상을 기부하는 골드 도너(Gold Donors)
ACCT (Agence de Coopération Culturelle et Technique) Action Aid International-Cambodia American Red Cross Amnesty International Canada Fund CRS (Catholic Relief Services) CVT (Center for Victims of Torture) Dan Church Aid Danida Diakonia Dr. Kek Galabru Embassy of Australia Embassy of Belgium Embassy of Finland Embassy of Germany Embassy of the Netherlands Embassy of the Sovereign Military Order of Malta Embassy of United Kingdom European Union EWMI (East-West Management Institute, Inc.) FIDH Fondation Suisse de Repris de Justesse Forum Syd German Agro Action Henry Luce Foundation ICCO ICRT IJM (International Justice Mission) ILO International Federation for Human Rights Kinderen In De Knel NORAD NOVIB NZAID Oxfam Pascal Delaprée Private Donors SEAFILD SKN/Stamps Soroptimist International of Yamagata Taksvärkki The Asia Foundation The Asia Foundation/USAID UNCOHCHR UQAM/CIDA WFP (World Food Program) |
● 500달러에서 5,000달러 사이의 실버도너(Silver Donors)
CAMSET II CWS (Church World Services) GTZ H.M. Norodom Sihanouk JRS Liliane Foundation (Stichting Liliane Fonds) LWS (Lutheran World Services) Private Donors Save the Children (UK) UNICEF WVI-Cambodia |
● 500달러 이하의 브론즈 도너(Bronze Donors)
The Association of the Blind in Cambodia 개인 기부자들 |
|
|
첫댓글 우선은 이분들께 존경을 표하면서...... 우리가 유심히 좀 살펴볼 부분은 리카도의 재정구조입니다... 여러 나라 정부들도 있고, .... 정부들은 좀 정책적 방향도 있을 것이지만.... <덴처치 에이드>나 <디아코니아> 같은 단체는 규모가 상당한 국제적인 기독교 계열 단체들입니다... 이들이 역량이나 인적 자원이 모자라서, 캄보디아에 직접 진출을 안하고 "리카도"를 돕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방식이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가장 이로운 것인지가 고려되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일부 개신교 단체들의 캄보디아 봉사활동과는 고민의 차원이 좀 달라 보입니다....
이제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일부 개신교 단체들도 노선을 좀 확실히 정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의 본질이 <선교>가 궁극적 목적인지, 캄보니아인들을 위한 <봉사>가 그 궁극적 목적인지, 아니면 적어도 종교적 양심에 대한 강요를 안하면서 상대의 전통문화도 존중하는 <비교적 봉사 위주의 기독정신의 실천>(선교+봉사 절충형: 봉사가 더 비중이 큼)인지.... 이 3가지 중 어떤 것에 속하는지를 좀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크메르의 세계라는 이름으로" 이 질문을 한번 던져 둡니다.
또한 "리카도"를 필두로 앞으로 살벼볼 단체들과 인적 자원들을 보면.... 캄보디아인들 스스로 역량이 없어서 외국의 도움이 필요한... 그런 나라가 아니란 점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적어도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크메르인들.. 상당히 총명하고 부지런한 민족입니다.... 더구나 야당이나 재야, 그리고 봉사를 하는 곳에도 이러한 훌륭한 조직과 인적 자원들이 토착적으로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그럼 왜 캄보디아가 그모양 그꼴이냐.... 이건 한 마디로 집권층과 지도자의 실정이라는 이유 외에는, ... 도대체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정말로 저만의 생각일까요
만일 이러한 이해가 잘못되었다면, 굳이 우리 크메르의 세계 게시판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디 다른 사이트 게시판에라도... 누가 좀... 반증이 가능한 증거나 보고서들과 함께 설명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제가 틀렸기를 바랍니다...... ...... ......
껙 갈랍루 여사도 삼랑시당 국회의원 한 자리 정도는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이 분이 제도권 정계로 들어가시면, 누가 재야의 리카도와 인권운동을 지켜나가겠습니까... 최소 수십명 이상이 즉결처형되어 가던 그 살벌한 1997년 쿠테타 때에도..... <리카도의 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미약하고도 자격없는 인간이지만.....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댓글 달기도 미안한 마음입니다. 진정 존귀한 삶을 사는 껙 갈랍루 여사님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열악한 초창기보다도 활동에 제약이 많다는 부분에서 캄보디아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