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의 만남
아버지 형제 세 분이 이천 竹堂里에 간척지를 개간해서 과수나무를 심고 竹堂農場이라
이름을 짓고 경영했습니다
숙부님이신 金泰吉교수는 자본금을 도와주셨습니다.
큰아버지 金泰敏 아버지 金泰得 사촌관계의 오라버니와 함께 같은 마당에서 똑같은 집을
지어 살았습니다 큰어머니가 가끔 6.25때 행방불명된 당시 20세의 큰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던 일이 있었습니다.
김대중정부때인 2000년 가족 누군가 연락이 왔습니다 6.25때 행방불명되었던 사촌오라버니
가 부모형제를 찿는다는 북으로부터 소식입니다
우리집안에서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당시 큰어머니가 94세로 생존해 계셨을 때 입니다. 날벼락 같은 소식.. 오라버니 이름은 金斗植.
문득 스쳐지나가는 北에 斗를 植 심었는가 ?
마침 긴 천쪼가리가 있어서 후에 태어난 안동김 아이들 이름을 쓰고 중앙에 金斗植을 쓰고
긴 작대기를 양쪽에 끼었더니 팻말이 되어 준비하고 만남장소인 롯대호텔로 달려갔습니다
20세에 헤어진 아들이 70살이 되어 94세 老母와의 만남...꿈같은 일이었습니다
떠나든 날 버스차창에 매달려 울부짓는 장면들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 92세가 되었을 북의 오라버니가 살아계신지....큰어머니는 97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큰업적인 이산가족의 만남을 이루어내고 떠나가셨습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가는 일도 윤정부가 들어선 일도 도수대로 돌아가는듯 합니다.
자세히 디테일하게 쓰려면 長文이 되기에 짧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