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언(洪純彦)의 선비정신
당성군(唐城君) 홍순언(洪純彦)은 명나라 만력(萬曆) 때의
이름난 역관이었다. 그가 연경에 갔다가 하루는 청루에 놀러
갔다. 그 집에서는 여자의 미모에 따라 몸값의 차이가 있는데
한 여인은 값이 천 냥이라고 했다. 홍순언은 선뜻 천 냥을
내어놓고 그 여인을 요구하였다. 여인은 나이 이팔에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녀는 순언을 대하자 눈물을 흘리면서, "제가 많은
값을 요구한 까닭은, 세상 남자들은 다 인색해서 천 냥이라는
많은 돈을 선뜻 내어놓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들 하기에, 하루
이틀 주인을 을러서 잠시 욕을 면하기를 바라고, 한편으로는
천하의 의기 있는 분이 제 몸값을 치르고 데려다가 처첩(妻妾)
을 삼아 주기를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청루에
들어온 지 닷새가 되도록 감히 천금을 내어놓는 이가 없었는데,
오늘 다행히 손님과 같은 천하의 의기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나리께선 외국 분이시라, 국법 때문에 저를 데리고
귀국하실 수 없을 것이고, 이 몸은 한 번 나리를 모신 다음에는
다시 더럽힐 수 없습니다." 하였다. 순언은 하도 가엾어서 이
청루에 들어오게 된 까닭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저는 남경
(南京) 호부시랑(戶部侍郞) 아무개의 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의 모함을 받아 집이 적몰(籍沒)당하고도 추징금
을 바쳐야 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몸을 청루에 팔아 아버지
의 죽음을 구했습니다." 한다. 순언은 크게 놀라, "나는 그런
줄을 전연 몰랐구나. 내가 네 몸값을 갚아 주겠다. 몸값이
얼마지?" 하고 물으니 여인은, "2천 냥입니다." 하였다.
순언은 그 자리에서 몸값을 치러 주고 그대로 일어섰다. 여인
은 수없이 절을 하고 은부(恩父)라 불렀다. 그리고 서로 헤어
졌다. 그 후 순언은 그 일을 까맣게 잊었는데, 몇 해 후에 다시
중국에 들어갔다. 이르는 곳마다 홍순언이 오지 않느냐고 물어
순언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연경에 들어서니 길가에 굉장하게 휘장을 쳐 놓고 순언을 맞아,
"병부상서(兵部尙書) 석노야(石老爺)께서 맞아오라 하셨습니다."
하였다. 석 상서의 집에 이르니 석 상서가 친히 나와서 맞아들여
절을 하고, "은장(恩丈)어른 어서 오십시오, 따님이 아버님
오시기를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하고, 손을 잡고 내실로
들어가니, 상서의 부인이 성장하고 마루 아래로 내려가 공손히
절을 하였다. 순언이 송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니 석 상서가
웃으면서, "장인께서는 따님을 잊으셨습니까?" 한다.
순언은 그제야 부인이 전날 청루에서 몸값을 갚아 준 바로
그 여인임을 알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청루에서
나오자 곧 석성(石星)의 후취(後娶)가 되었고, 석성이 병부상서
가 되어 그녀도 따라서 귀부인(貴夫人)의 지위에 올랐는데, 늘
손수 보은(報恩)이란 글자를 수놓아가며 비단을 짜 왔다고 한다.
홍순언이 귀국하게 되자, 그 보은단(報恩緞)과 다른 비단이며
금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건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 주었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석성은 병부상서로서 출병(出兵)을
극력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을 의롭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은혜냐 사랑이냐(1943년)
작사 처녀림
작곡 이재호
노래 이인권
1.은혜냐 사랑이냐 두 갈래 길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더듬는 발길
스승을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스승이 운다
스승이 운다~
2.스승은 해가 뜨는 지평선이요
양금이는 달이 뜨는 수평선이다
달이냐 태양이냐 쌍갈래 길에
발길은 더듬는다 복수는 운다
복수는 운다~
3.스승길 사랑길에 헤매는 발길
이 길이냐 저 길이냐 헤매는 가슴
빕니다 비옵니다 빛나는 성공
사나이 지평선을 찾아 가소서
찾아 가소서~
2020-06-05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