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호남정맥종주일정 |
37 |
돛재(豚峙) |
73 |
留軍峙 |
2 |
종주 코스 |
38 |
天雲山 |
74 |
秋嶺 |
3 |
종주를시작하면서 |
39 |
오산 |
75 |
牛步千里 |
4 |
호남정맥 |
40 |
屯兵峙 |
76 |
高堂山 |
5 |
물중의 왕 |
41 |
安養山 |
77 |
구절재 |
6 |
白雲山 |
42 |
유감 二題 |
78 |
先頭 |
7 |
산이 뭐 길래~ |
43 |
호남정맥의 꽃 |
79 |
왕자산 |
8 |
권 대장 |
44 |
백마능선 |
80 |
묵방산 |
9 |
山經表 |
45 |
無等山 |
81 |
何如歌 |
10 |
오성산 |
46 |
소쇄원 갈림 길 |
82 |
여름 산행 |
11 |
曹溪山 |
47 |
유둔재 |
83 |
초당골 |
12 |
宋廣寺 |
48 |
무등산 개요 |
84 |
內助 |
13 |
이래도 되는 가 |
49 |
숲속을 걷다 보면 |
85 |
오봉산 |
14 |
樂安邑城 |
50 |
수양산 |
86 |
同志 |
15 |
白夷山 |
51 |
선돌부락 |
87 |
鯨角山 |
16 |
석거리재 |
52 |
萬德山 |
88 |
편리한 세상 |
17 |
산과 인연 |
53 |
방아재 |
89 |
청승스럽다 |
18 |
眺望 |
54 |
讀圖 |
90 |
완주하는 날 |
19 |
봇재 가는 길 |
55 |
雪山 1 |
91 |
웅치(熊峙) |
20 |
草庵山 |
56 |
雪山 2 |
92 |
珠華山 |
21 |
이 대장 답사기 |
57 |
山城山 |
93 |
모래재 |
22 |
日林山 |
58 |
剛泉山 |
94 |
종주를 마치면서 |
23 |
帝岩山 |
59 |
오정자재 |
|
|
24 |
獅子山 |
60 |
산행 후 버너스 |
|
|
25 |
산길에서잠이들다 |
61 |
龍秋峰 |
|
|
26 |
無念無想 |
62 |
苦中作樂 |
|
|
27 |
숫개봉 |
63 |
擊壤歌를 부르며 |
|
|
28 |
명상 |
64 |
秋月山 |
|
|
29 |
너무나 울렸다 |
65 |
菩提庵 |
|
|
30 |
이름 없는 산 |
66 |
13시간30분 |
|
|
31 |
여유롭게살아야제 |
67 |
당산나무 |
|
|
32 |
山雨 |
68 |
저새가 무슨 새여 |
|
|
33 |
박 교장 |
69 |
홀딱벗고새-전설 |
|
|
34 |
想 |
70 |
감상굴재 |
|
|
35 |
진달래 꽃 |
71 |
白岩山 |
|
|
36 |
日出 |
72 |
內藏山 |
|
|
호남정맥(湖南正脈)
호남정맥은 전라북도 진안군 주화산 에서 시작하고 내장산에 이르러 전남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다시 전남 광양시의 백운산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낙남정맥과 함께 우리나라 남부해안문화권을 구획하는 의미있는 경계선이다. 정맥의 동쪽은 섬진강, 서쪽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이다. 금남호남 정맥에서 갈래친 후 강진 만덕산(762m)을 처음 만나고 이후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등 남도의 큰 산을 지나 광양 백운산(1,218m)이 끝이다. 백운산에서 아쉬운 산자락의 여운은 백운산 남쪽을 달려 섬진강을 휘감으며 망덕산(197m)에서 비로소 끝난다. <자료 : 사람과 산>
호남정맥 종주 일정
차수 |
날 씨 |
일 시 |
거리.K |
산행시간 |
구 간 |
1 |
맑음 |
98.9.28~29 |
20 |
9시간50분 |
진동~859 |
2 |
흐림 |
..10.11~12 |
17 |
6시간30분 |
심원~송재 |
3 |
맑음 |
..10.24~25 |
18.5 |
6시간58분 |
송재~접치 |
4 |
맑음 |
..11.7~8 |
15 |
6시간24분 |
접치~반계재 |
5 |
구름.많음 |
..11.21~22 |
10 |
4시간33분 |
반계재~주래제 |
6 |
맑음 |
..12.9~10 |
15 |
6시간30분 |
모암리~오도치 |
7 |
맑음 |
..12.26~27 |
15 |
7시간 |
오도치~붓재 |
8 |
범각이 백일 찬치로 빠졌다가 9차 산행 후 보충 산행 | ||||
9 |
맑음 |
99.1.23~24 |
30 |
12시간 |
붓재~제암산 |
10 |
맑음 |
..2.27~3.1 |
40 |
14시간55분 |
시목치~떼재 2박3일 |
11 |
흐리고 비 |
..3.14~15 |
22 |
6시간45분 |
큰덕골재~개기재 |
12 |
맑음 |
..3.27~28 |
28 |
8시간 |
게기재~서밧재 |
13 |
맑음 |
..4.10~11 |
15 |
6시간20분 |
서밧재~안양산휴양림 |
14 |
맑음 |
..5.4~5 |
15 |
6시간25분 |
둔병재~유둔재 |
15 |
맑음 |
..5.8~9 |
18 |
8시간5분 |
유둔재~방아재 |
16 |
맑음 |
..5.21~23 |
38 |
14시간30분 |
방아재~강천산 2박3일 |
17 |
뜨거운날 |
..6.12~13 |
18 |
8시간36분 |
오정자재~추월산 |
18 |
맑음 |
..6.26~27 |
32 |
13시간30분 |
밀재~유근치 |
19 |
18차 산행이 끝난 후 동생(춘원)과 19차 구간을 이어서 산행 | ||||
20 |
맑음 |
..7.24~25 |
20 |
10시간4분 |
추령~구절재 |
21 |
빗방울 |
..8.21~22 |
20 |
8시간31분 |
구절재~초당골 |
22 |
빗방을 |
..9.11~12 |
16 |
7시간28분 |
초당골~불재 |
23 |
종일 비 |
..10.9~10 |
18 |
5시간40분 |
불재~솔치 |
24 |
맑음 |
..10.23~24 |
30 |
10시간26분 |
솔치~모래재 |
※호남정맥 종주 코스
ㅇ 1차: 진동 백운산 한재(860) 따리봉 도솔봉 형제봉 859
ㅇ 2차: 심원 미사치 갓꼬리봉 죽정치 농암산 송재
ㅇ 3차: 송재 바랑산(619) 문유산(688) 노고치(350) 버들재 유치산(530.2) 오성산(606) 접치
ㅇ 4차: 접치 조계산 밀목재 고동산 고동치 반계재
ㅇ 5차: 반계재 伯夷山 석거리재 벌목지대 주래재
ㅇ 6차: 모암리 보암재 571 613 무넘이재 주월산 방장산 파장치 335 오도치
ㅇ 7차: 오도치 심송산 그럭제 봉화산 기지국 붓재
ㅇ8.9차: 붓재 활성산 일림산 664 561 사자산 제암산
ㅇ10차: 시목치 용두산 피제 가지산 장고목재 상계봉 깃대봉 국수봉 웅치
봉미산 수캐봉 떼재
ㅇ11차: 큰덕골재 고비산 봉화산 예재 계당산 개기재
ㅇ12차: 개기재 두봉산 촛대봉 성재봉 노인봉 태악산 돗재 천운산 서밧재
ㅇ13차: 서밧재 구봉산 천왕산 묘치 오산 둔병재(안양산 휴양림)
ㅇ14차: 둔병재 안양산 장불재 꼬막재 북산 448 유둔재
ㅇ15차: 유둔재 까치봉 노가기재 국수봉 선돌부락 만덕산 방아재
ㅇ16차: 방아재 연산 과치재 무이산 쾌일산 서암산 봉황산 88고속도로
영월재 덕진봉 광덕산 산성산 강천산 오정자재
ㅇ17차: 오정자재 용추봉 치재산 천치재 추월산(729)
ㅇ18차: 밀재 도장봉 대각산 감상굴재
ㅇ19차: 곡두재 도집산(741.2) 백암산 상왕봉 새재 수죽엄재 까치봉(713)
내장산 신선봉(763.2) 문필봉(657.2 연자봉(673.4) 장군봉(713) 유근치
ㅇ20차: 추령 두들재 개운치 고당산 굴재 구절재
ㅇ21차: 구절재 왕자산 방성골 성옥산 가는정이 묵방산 초당골
ㅇ22차: 초당골 오봉산 삿갓봉 영암재 작은불재 불재
ㅇ23차: 불재 경각산 쑥재 갈미봉 솔치
ㅇ24차: 솔치 먼덕산 갈림길 곰치 모래재
湖南正脈 종주를 시작하면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완주 하고
호남의 산줄기
396.5Km를
24회 차로 밟기로
이 구 대장은
산행 프로그램을 짰다
광양의 백운산을
들머리로
순천 장흥 능주
광주 담양 장성
정읍 전주의
산줄기를 스칠 거
백두대간은
3형제가 종주 했으나
아쉬웁게
春元이는 빠졌으나
鳳元이가
동행 되어
형제가 종주 할 것이다
마루금을
노옹이 되어
형제가 걷는 다는 것도
축복으로
안전하게 완주 되야 할 것이다 98.9.27 일
湖南正脈
백두대간에 있는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서쪽으로 뻗어
조약봉에서 끝나는
산줄기-금남호남 정맥
조약봉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분기 한 다
도상거리 430Km로
9정맥에서
가장 긴 정맥으로
산줄기는
섬진강이 동행이 되며
주요산은
70여 개로-
마루금에 있는 주요 산들은 조약봉, 만덕산, 갈미봉, 경각산, 오봉산, 묵방산, 성옥산, 왕자산, 고당산, 내장산, 백암산, 대각산, 도장봉, 추월산, 치재산, 용추봉, 강천산, 산성산, 덕진봉, 봉황산, 서암산, 괘일산, 무이산, 연산, 만덕산, 수양산, 국수봉, 북산, 무등산, 안양산, 오산, 천왕산, 구봉산, 천운산, 태악산, 노인봉, 성재봉, 촛대봉, 두봉산, 계당산, 봉화산, 고비산, 군치산, 숫개봉, 봉미산, 국사봉, 깃대봉, 삼계봉, 가지산, 용두산,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 활성산, 봉화산, 방장산, 주월산, 존제산, 백이산, 고동산, 조계산, 오성산, 유치산, 문유산, 바랑산, 농암산, 갓꼬리봉, 형제봉, 도솔봉, 백운산, 매봉, 갈미봉, 쫓비산, 불암산, 국사봉, 천왕산, 망덕산 등이며
그 중 최고봉은
광양의 백운산(1,218m)이다
물중의 왕
고로쇠 약수축제
경칩인 3월6일
옥룡면 동곡마을
약수제단에서 열린 다
도선국사의
골리수
전설에 유래해
제례를 지낸 다
대한민국의
고로쇠 대표
브랜드로 우뚝 솟은
축제는
동동마을 주민의
약수 의식행렬과
단막극은
역사성과
고로쇠 중
효험이 으뜸이라는 내용이다
이 땅에
“고로쇠”
모르는 사람 없을 게고
한 모금쯤은
마셨을 터-
고로쇠 축제에
산행을 하면 금상첨화-
白雲山
전남 광양시 옥룡면
백운산은
표고 1216.6m
병암 마을을 지나
병암계곡을 따라 가려니
닭 울음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고
개들이 요란스레 짖는 다
정상은
암릉으로
두 번 째로 올랐지만
봉원이는
나 보다 먼저
고스락을 밟고
내려 왔다
한려수도와
광양만의 조망 일품이고
도솔봉(1053m) 형제봉(1125m) 매봉(867m) 의
4개의 지맥 있고
울창한 원시림을 끼고 돌며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은
산의 4대 계곡
성불계곡 동곡계곡
어치계곡 금천계곡을 품는 다 98.9.27 일
산이 뭐 길 래~
2차 산행은
심원에서 송재 까지-라 지만
시작하자마자
불참 사유가
생길 번 했는 데
하필이면
사돈 영감이 온 단 다
시집 간 딸 아이
생각해서라도
천년 손님 아닌 가
산에는
꼭 가야 하겠는데
하필이면
사돈 영감이 온 단 다
산행이
뭐이~그리 대단 해...
라고 웃을 일 아니 다
산행에
빠지는 것이 싫었거니
배낭을 멜 가
손님을 기다릴 가
퉁퉁 부었는 데
따르릉 따르릉~
사돈 일정이 바뀌었단 다
얼씨구 좋다-만만세로다 98.10.12.일
권 대장
산행은
나에게 신앙생활과
다를 바 없다
후미 대장
권 대장을
여산휴게소에서
빠트리고
출발하니
고속도로에서
차량을 되돌릴 수 없는데
산행이
뭐~길래
권 대장
다음 휴게소 까지
거금 주고
택시로 쫓아 왔단 다
정성도 지극
노옹 같으면
삐쳐서라도
되 돌 아 갔을 걸...
그리고도
따라 온 그 사람
웃음을 잃지 않았다 98.10.12.일
山經表
우리나라
山之族譜 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祖宗으로
高山峻嶺이
분수령이 되어
우리나라 산을
1大幹 1正幹 13正脈으로
여암 신경준이 편집 했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 다
산과 강은 하나다
산 없이는
시작되는 강이 없고
강을 품지 않는
산은 없다
申景濬(1712~1781) 선생은
“길에는 주인이 없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일 뿐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오성산(606m)
산길은
희미하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고
잡목이 심하니
옷이 찧기고
상처 입기가 십상이다
전설은
삼국시대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 하면서
당나라
소정방이
지리를 다섯 노인에게
물었지만
노인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니
급살이나 맞은
소 정 방은
노인들을 사살
聖山이 되었고
고스락에
五聖賢의
묘기가 않지 되어 있다
98.10.12.일
曹溪山
전남 순천시 표고 887m
예로부터
小江南으로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고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
폭포 약수-랑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불교 사적지가 많아
도립공원 되었다
봄맞이
산행지로 알맞고
한국산하
인기명산 순위 63위
산자락에
전국 3대 사찰의 하나인
송광사
고찰인 선암사가
주능선에 있다
계곡물은
동부계곡은 이사천
남부계곡은 보성강으로
흘러 든 다 98.11.8. 일
松廣寺
3대 사찰의 하나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옛 이름
大吉祥寺 修禪寺
천연기념물 88호
쌍향수는
수령 800 넘어
송광사 3대 명물중 하나다
국보 제 56호
대웅전 국사전 외에도
보물과
문화재가 많고
사찰규모도
50여 동이 넘는 다
이웃에
선암사 있다
불자 말고도
나들객도
한 번 쯤 스쳤을 터
꽃순이랑
스치면서
찬찬히 둘러 봤습니다
이래도 되는 가
민초들은
힘이 없다
절대
권력자들의 횡포-라
늙었기에
자격이 없어
정년을 단축시키겠단 다
늙었으니
잘 가르칠 수
없으니 잘라야 한 단 다
발상자체가
슬프고 슬프다
반대집회가
열렸지만
얼마큼 목소릴 낼 수 있으리
군중 속에서
어렵사리
김 선생을 찾아 걷다가
감자탕을 먹은 뒤
산행하려고
배낭을 메니
현각이
울고불고하니
산길 접을 가 망설여졌다 98.11.7.8 일
낫 들고...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 마루금은
그래도
뚫렸지만
호남정맥 마루금은
등로가 희미하여
산길
걷기가 조심스러운데
잡목과
억새풀 웃자라서
마루금 상태가
상태가 최악이어서
선두가
낫 두 자루를 준비하여
마루금을 뚫었다
눈 내리면
럿셀도 힘들거니
잡목을
뚫으려니 곤혹스럽다
바람은 찬데
여름 바지라서
찬바람이 스며들지만
하늘은 맑고
하현달이 서편에 걸렸다
98.11.7.8 일
樂安邑城
6차 산행 후에
읍성을 들렸다
산행 끝내고
역사의
흔적을 찾으니 더욱 좋다
남도여행
길에 다녀갔다
읍성은 고려 후기
잦은 왜구의 피해를
막으려 쌓은 흙성이고
현존하는 城중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선전기의 양식이다
성 안에
老巨樹 15그루는
옛일을 알련만...
동생과
그리고
박 교장과 원 과장이
동행이 되어
읍성을
한 바퀴 돌면서
정맥 산행의
보너스를
한가롭게 즐겼다 98.11.7.8 일
塞翁之馬
눈이 펑펑
쏟아 졌다
망향휴게소를 지나려니
함박눈 되어
더욱 내렸다
어허~라
“산행이 어렵겠어”
동행들은
취소하라고
이 대장을 욱박질렀지만
기다려 보쇼
목적지를
바꾸면 될 터
기왕지사
산행하려고 나왔으니...
아우성 소리에
꿈적도 아니 했는데
여산휴게소를 지나려니
눈이 멎었고
잔설만 눈에 띄었다
입산
시간이 늦어졌으나
예정대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98.11.21.22.일
伯夷山
표고 548.3m로
산세가 좋고
이웃에 叔齊山-이라
伯夷와叔齊는
상나라 말기
고죽군
영주의 아들들로
군주에 대한
충성을 지킨 의인
그들은
서로 영주의 자리를
양보 했거니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었다
“나 아니면
아니 된다는
요사이 위정자 지망생들...“
교훈으로 배워야 한 다
어찌
이 땅에
백이산 숙제산
이름 누가 붙였을 가
고스락은
조망 좋아서
낙안읍성과 석거리재가
한 눈에 든 다 98.11.21.22.일
석거리재
빈계재를 들머리로
伯夷山 넘고
석거리재로 가려니
내 키만큼이나
자란 억새밭이 나왔고
바람에 흔들린 다
백이산에서
등로가
희미하거나 없지만
솔잎
많이 깔려
폭신폭신하니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걷기에 부드러웠다
고개는
표고 240m에
거대한 표지석 있어서
삼형제가
사진 찍고
유자가 100개에
만원이라-나
蝽元이가 지갑 털고
삼형제가
똑 같이 나누었는데
보성군
벌교읍과 외서면 경계다 98.11.21.22.일
산과 인연
왜 산에 가느냐고
물으면
“산이 좋아서
산에 가는 것이 아니고
산이 있으니 산에 가는 것으로
산에 가다 보면
산이 좋아 지는 거야-
라고 말했지만
처음에는
사람들이
산에 간다하니까
따라 나섰을 뿐
산이 좋아서 다닌 것은 아니었다
헌데...
이제는 산이 없으면
못살 것만 같고
아예 산 속에 파묻혀
살다 죽었으면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보름이
훨씬 지난 쪽 달이 비춘다
하늘은 맑고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시골길을
산꾼들의 발자국 소리와
도란도란 하는 말소리가
정적을 흔들며
권 대장과 “소라”랑 셋이서 걸었다 98.12.10.일
眺望
무박 산행은
랜턴을 밝히고
산행을 시작하지만
어둠이
먼동에 밀리면서
시야가 트이고
고스락에 올라
동서남북
살피는 재미도
산행의 맛이다
6차 산행구간
모암리-보암재-571-613-무넘이재-주월산-방장산-파장치-335-오도치
571봉에서613봉 산길에
보성만 앞
바다에에서 떠오르는
일출 모습은
장엄 했거니
마음을 흥분 시켰고
신비로움이다
우리나라
산하는 너무나 아름답다
6차 구간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오늘 산행의 보람이다
98.12.10.일
봇재 가는 길
하나
동생(봉원)이
일주일 째
몸이 불편하면서도
산행을 한 다
“좀 쉴 것이지”
안쓰럽다
둘
산길이
희미하거니 없어
선두들이
마루금을 놓칠 수가
종종 있어
고생이 말이 아니다
셋
보성만
바다를 보면서
산길을 걷다가
봇재에 도착하니
녹차 밭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녹차 무료 시음장과 판매장이 있다
녹차 맛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스님들이라 한 다 98.12.27.일
草庵山
전남 보성군
표고 576m
옛 이름 金華山
천연동굴
베틀굴이 있다
철쭉
명소중의 하나로
정상 부근부터
철쭉봉
주변 까지 2.5Km의
능선이 몽땅
철쭉군락지
만개시기는
4월말에서 5월 초로
초암산→일림산→제암순
만개 하려니
산길은
육산(흙산)으로 부드럽다
산중턱에
300평 정도의
평지는 옛 금화사 터
백제시대의 사찰로
빈대가 많아
태워 버렸단 다 98.12.27.일
이 대장
거인산악회를 이끌면서 백두대간 낙동정맥 그리고 호남정맥을 산행하면서
사전 답사를 한 다
그의 답사 기록문은
1. 오도치에서 묘지를 통과하여 잡목지대를 지나면 곧바로 좋은 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진행하면 계속 묘지가 나온다. 이어 뚜렷한 안부에 도착한다.(독도주의 잡목 심함)
2. 뚜렷한 사거리를 지나면서 등로상태는 좋아지고 묘지가 계속 나오며 표시기 따라 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심송산에 도착한다. 346봉(독도주의)
3. 346봉을 지나면서 잡목이 심하고 내리막길 독도주의 하면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에 등로 상태 좋은 좌측 길로 접어들다 곧 능선으로 진행하며 표시기 잘 살피며 삼각점이 있는 314봉에 도착한다.
4. 314봉을 출발하여 내리막길에 독도주의하고 곧 목장지대에 도착하여 능선은 좌측으로 작은 봉우리 우측 마을로 내려가서 그럭재 터널로 도로를 건너 좌측능선으로 진행하며 이동통신기지가 나오고 잡목지대를 지나면 도로가 나오고 우측도로 따라 진행한다.(독도주의 잡목 심함)
5.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큰바위가 세워져 있으며 정맥을 능선으로 진입하여 삼각점이 있는 417봉을 통과하여 오래된 방화선 따라 진행하면 봉화산 전에 임도가 있고 임도 따라 오르면 봉수대가 있는 봉화산에 도착한다.(독도주의 잡목 심함)
6. 봉화산에서 남쪽에 서 있는 기지국을 향하여 진행하고 017, 011 기지국부터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도로는 우측으로 꺾이는 지점에서 직진하면 정비가 잘 되어 있는 묘지에 도착한다.(전망최고, 독도주의, 잡목 심함)
7. 묘지를 통과하면서 잡목이 심하고 독도주의 지역이며 표시기 잘 살피며 진행한다. 억새지대가 나오고 잡목지대를 통과하여 진행한다. 능선안부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비포장 도로가 나오고 도로 따라 내려가면 봇재휴게소, 도착한다. (잡목 심함. 독도주의. 전망 좋음) 98.12.27.일
日林山
전남 보성
표고 667.5m
해발 600m대의
높이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호남정맥의
기운을 다시 일으킬 만큼
힘찬 산세를 이루고
8부 능선에
무릎 높이의
산죽 밭은 일품이고
정상 부근에
억새 밭은
산중 고원으로 부드럽다
고스락의
전망 또한 뛰어 나다
주변은
보성 녹차 밭
일림산 철쭉 밭은
100만평
주봉은
삼비산으로 667.5m
산자락에
도강마을과 영천마을은
판소리 서편제의 본향이다 99.1.23.24.일
帝岩山
전남 장흥군
표고 779m
정상은
임금 제(帝)자
모양의 3층 형태로
높이 30m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임금 바위-다
수 십 명이 앉을 수 있고
주변의 여러
바위와 봉우리는
임금에게 절하는 형상
정상의 조망은
호남
5대 명산의 천관산
호남의
금강이라는 월출산
광주의 진산
무등산과
고흥의
팔영산이 시야에 든 다
남도 끝자락에
위치하고
5얼 초순
남해의 훈풍을 받아
철쭉 꽃이
화사하게 피어 난 다 99.1.23.24.일
獅子山
장흥군 장흥읍
표고 666m
제암산(807m)
억불산(518m)과 함께
장흥의
三山으로 진산
정상 서쪽에 사자두봉(560m)은
사자 머리
능선이 사자 허리
정상 남쪽이
사자 꼬리로
獅子仰天型
거대한 사자 형상의
장흥의 스핑크스로
일본의
富土山과 닮았다하여
장흥의 후지산
철마다
느낌이 다른 산으로
겨울철에
흰눈이 쌓이면
쓸쓸히 걸어가는
외로운 사자 모습이란 다 99.1.23.24.일
산길에서 잠이 들 다
“範珏”이
돐 잔치로 8차 산행을
할 수 없었다
9차 산행 후에
보성에서 일박하고
보충 산행 하려 했으나
산행이 일찍 끝났기
8차 구간도
아예 하기로 하고
3형제와 박 교장과
봇재로 택시로 갔지만
환갑이 넘은 나이에
도상거리 30Km다
664봉에 올라
벌렁 누워서 파란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보려니
도심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이대로
영원히 묻히고 싶었다
산바람이
풀잎을 수치면서
포근함에 젖어
갈 길을 잊었는데
문득
“자 이제 그만 갑시다” 에 놀라서 깼다 99.1.24.일
無念無想
산길을 걷다 보면
상념은 단순하다
시작하면서부터
떠오르는 생각은
언제나
끝날 가- 뿐
별다른 생각 없이
걷고 걸을 뿐이다
호남정맥
10차 산행은
시목치부터 떼재까지
도상 거리 40Km로
2박3일 일정으로
첫날은 시목치에서
웅치까지
11시간을 넘게 걸었고
후미는
15시간이나 걸렸단 다
그리고
다음 날도
산길을 걸었다
노옹이 된 꼴에
주책인가
망령인가
과욕인가
99.2.27(토)~3.1(월)
숫개봉
산 이름 요상스럽다
숫캐인가
수캐인가- 숫개인 가
잡목헤치고
헬기장으로 된
공터에 이르면
봉미산 인데
색이 바랜
봉미산 팻말 있어
“그렇구나” 일뿐
유별난 것 없고
이어지는 산길
울창한
잡목 수림 헤치면
수캐봉이라면서
팻말 있을 뿐인데
수캐봉이 뭐여~라
허면
암캐봉은
어디에 있는 고-라니
개 짖는 소리
요란스레 들려 지려니
암캐가
수캐를 부르는 가
실 실 웃는 다 99.2.27(토)~3.1(월)
명상
오늘은
산행을 하면서
명상 주제를
“과거를 잊자”-
이제는
잊을 것은 잊고
연민을 두지 말자고 다짐
다짐을 했거늘
쉬운 일은 아닐 꺼다
도심으로 돌아가면
악몽은 되풀이 되고
또 다시
망상에 젖고
허상에 빠져 들어
헤어나지 못 하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 한 다
지난 일
툭 툭 털고
훨 훨 날고 싶지만
가슴속 깊이
恨으로 폭 쌓인 것을...
잊자 잊자 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을...
너무나 울렸다
산행 때문에
現珏이를
너무나도 울렸다
현각인
연년생이므로
할 수 없이
외가에서 자라야 했고
할비에게
사는 맛을 느끼게 했거니
즐거움이다
요놈
잠재우려
한 밤에도 업고
동네 한 바퀴 돌았다
산엘 가려면
요놈이
떨어지지 않으려
슬피 울었다
“가지마~
산에 가지마~“라
등 뒤로
애절하게 들리건만
할미는 몰인정 코
산에 가면서
현각이를 많이도 울렸다 99.3.15.일
이름 없는 산
큰덕골재는
전남 화순군 이양면에 있다
산꾼들의
떠드는 소리에 잠을 깬
아낙네가
기웃거리면서
“웬 일루
새벽부터 산에 간 대 유“
호기심과
걱정스러운 맘이다
꼬불 꼬불
도로를 따르니
선두들의
랜턴 빛이
점점 멀어 진 다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인데
하늘은 맑고
별 빛이 반짝 거리고-
봉화산에
오르니
고비사도 스쳤다니
표지석 없으니
고비산 스치면서도
고비산 인줄 모른 다 99.3.15.일
여유롭게 살아 야 제
백두대간이나 정맥을
종주 한 다 는 것은
부지런하고
성취의욕이 있어야 하며
여유롭고
건강해야 한 다
건강하니 까
산에 가는 거지
산에 간다 고
건강 해 지는 것은 아니다
人生三餘-라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 단 다
이제 내 나이
老年이 되었으니
나에게
산행은 多多益善 일 거 다
게으름이나
핑계 말고
틈만 있음-산엘 가지 99.3.15.일
山雨
빗방울이 비쳤다
동행들에게
실 없는 소리
이상학에게
비옷을
입을 가요 말 가요-라니
“뭐 아직은
괜찮은 데요
더 있다 입으시지요“
옆에 있던
김경선은 한 술 더-
“모자 벗으세요
얼마나 단비예요”
재미있다
산속에서
내리는 비-라
분위기 따라
우중산행의
맛은 다른 거
후미들은
흠뻑 젖어서
하산 되었다
99.3.15.일
박 교장
오늘 선두로
하산은
박 교장인데
66세-
먼 후일
장수시대가 오면
별 나이 아니련만
현재 나이로는
고령이며
대간 정맥 종주자중
드믄 사례로
체력 또한 우수하니
항시
젊은 선두들과
동행을 하면서
된 비알도
멈춤 없이 오르고
지치거나
피곤한 모습을 감춘 다
산을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며
산에서 산 다
99.3.15.일
想
호남정맥
11차 산행에
11시11분에
헬기장을 지나려니
11.11.11.이라
헬기장에
특별한
이름 붙이고 싶다
배낭 벗고
물 한 모금 마시며
풍광을 즐기려니
고려시대
문신이요 신인인
이제현(1287-충렬왕 13~1367공민왕16)이
아미산에서 부른 시를 찾았다
푸른 구름은
땅위에 뜨고(蒼雲浮地面)
해는 산허리를
도는 데(白自轉山腰)
천지는 끝이 없고(萬像歸無極)
푸른 하늘만이
홀로 고요하도다(長空自寂寥)
산에 다니면서
산시를
읊조리기는 해야 하건만
재주가 없음을...99.3.15.일
진달래 꽃
남녘에 봄이 왔다.
참 꽃이 봉우리를
터트려 화사하게
웃으면서 산꾼들을 반긴 다
꽃잎을
따서 입에 넣어 본 다
어릴 적
생각이 절로 났다
꽃을 줄
사람도 없는 데
한 아름 꺾어서
꽃다발도 만들고
꽃잎을
많이도 따먹었었다
진달래로만
알고 있었는데
참 꽃이라고도
부른 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진달래랑
산수유 꽃이
어우러져서
봄 동산에 피어나고 있다
또 한 봄이
강산에 찾아 온 거지... 99.3.28.일
日出
노옹은
산골에서 태어났기에
어려서
일출 일몰을 보면서
몸 무게가 늘고
키가 자랐는데
도심에 살다보면
까맣게 잊어 진 다
요행스러운 것은
무박 산행 때는
운이 따르면
일출 모습을 본 다
12차 산행구간
개기재 두봉산 촛대봉 성제봉 노인봉 태악산 돗재 천운산 서밧재
의 산길에서
장엄하고 설레이는
일출을 보면서
노인봉을 지나려니
나성규가 曰
노인이나
넘는 봉이라면서
노옹의
기를 팍 꺾었지만
돗재
천운산의 전설을
살피려니 네☓이 뭘 알아~야
돛재(豚峙)
달리
돗재 또는 사택인데
한천 영내와
영외 반곡리를 잇는 고개로
작은 돗재
큰 돗재가 있으며
전설이 있는
문바위에
글씨가 새겨진
마당바위와 걸렁바위가 있다
걸렁바위는
바위가 가다가
놀래서 서버렸단 다
문바위 전설은
400여 년 전에 남양 홍씨 홍수천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조실부모하여 고아로 전전하다가 사평의 배장자라는 부자 집의 머슴을 살면서 고생하던 중 하루는 둔갑장신하는 술사가 그 집의 술객으로 머물면서 정성껏 모시는 홍수천을 어여삐 여겨 호신의 방편으로 둔갑장신의 묘술을 가르쳤다. 그러나 홍수천은 처음에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도술을 사용하였으나 주인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하여 주인집의 재물을 전부 구렁이로 만들고 바위를 소로 둔갑시켜 장에 파는 등 개인 사욕에 술법을 사용하다 결국은 돛재 고갯길에서 도사를 만나 새로 둔갑하여 도망을 가니 도사는 수리매가 되어 쫓고 쥐로 둔갑하여 고목나무에 숨자 구렁이로 쫓아오는지라 할수 없이 둔갑을 풀고 문바위 앞에 꿇어앉자 참회하며 천문지리의 술서를 석문 바위아래에 감추고 어디론지 가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 이 바위를 문바위 또는 문바위라고 한다.
돛재안에는 우리나라 국민이 3년먹을 보리가 있다고 전하는데 현재 무연탄이 나오고 있다.
돗재마을은 한천면 영내에서 영외 반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개 이름을 따서 돗재마을이라 하였다. 또 호남탄좌 사택이 있는 곳이라 사택으로 부르기도 한다. 99.3.28.일
天雲山
다른 이름
구름산이고
상봉을 천자봉으로
돗재 마을 북쪽에
동면과 경계로
천자가 있어
천자봉으로 높이 601m
산세는
암 돼지가 누워서
7마리의 새끼에게
젖을 주는 형상이고
돗재골
돗재장군이
천자를 모시고
돗재의
문바위에서
병사들이 문을 지킨 다
돗재는
해발 350m로 험난하여
인근 4개 면민이
불편한 것을
박정희 대통령의
하사금으로 뚫었다고
송덕비와
돗재의 유래에
대한 표지석이 있다 99.3.28.일
오산
다른 이름 별산
산 높이 687m
고스락은 암릉
산불감시 철탑 있고
조망은
무등산과 동북호
하산하면
둔병치인데
宋나라
司馬光(1019~1086)-曰
“등산에도 道가 있어
천천히 걸으면
피곤하지 안호
든든한 땅을 디디면
위험하지 않다“- 라고
곰곰이 생각 할수록
말 맛이 있다
사마광이
살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등산을
즐겼다는 것을 보면
등산이
좋기는 좋은 것인가 보다
천천히 걸어야지~ 99.4.11.일
屯兵峙
오산과
안양산 들머리로
곡성 화순
광주를 잇는
옛 교통로-로
요충지 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주둔지로
지금도
옛 성곽 참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인근에
쇠메기골은
병기를 만들었던 곳
물을 넘겨오던
물목재
또 장군대등
옛 이름이 남아 있다
일반산행
코스도 좋아서
들머리로
광주 사람들
즐겨 찾거니
이웃에
무등산도 있음이다- 99.4.11.일
安養山
전남 화순군 화순읍
무등산의 산줄기로
표고 853m
자연휴양림을 품는 다
휴양림 전망대에는
이 백의 詩가 걸렸는데
뭇새들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외로운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 간 다
서로보아 둘 다
싫증나지 않는 것은 경정산 너뿐이로구나
아~
전망대에서
보이는 것은
경정산이 아니라 안양산인데
우리 님들의
작품이 걸렸으면...
둔병재 보다
수만리
들국화 마을을
들머리로 하면
다소 완만하고
무등산과 함께
연결 산행함이
더욱 좋을 거-
99.4.11.일
새벽 산길에서
쪼그려 자다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구봉산을 향하려니
새벽 다섯 시
하늘에는
쪽달이 훤히 비추고
개 짖는 소리
유난스럽다
새벽 잠도 자지 않고
사람들의 냄새 맡아
시끄럽게
경계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충실한 충성심일 테지만
개들에게 조차
의심을 받는
선량한
사람들의 꼴이
우습거니
잠에서 깨어난
꿩-울음
이골 저골에서
반갑게 들려 지누나
99.4.11.일
유감 二題
산길을 걷다보니
아쉬운 점
한둘이 아니다
하나
풍수지리를
좀 배워야 했을 것을...
고스락에 올라
산세도 살피고
명당자리 도
찾을 줄을 알았으면...
둘
식물학을
전공했어야 할 거 다
풀잎 마다
야생화 마다
이름을 모르니
답답하고 아쉽다
허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넘어 간다
우리네 인생살이
몰라도 괜찮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지 않는가... 99.4.11.일
호남정맥의 꽃
호남정맥의 꽃
둔병재 안양산 장불재 꼬막재 북산 448 유둔재
구간을
삼형제가
마루금을 밟는 다
안양산 올라
땀방울 식히고
무등산 바라보면서
백마능선 걸으려니
“어서오십시오
청정골 화순입니다
이곳 자생철쭉군락지
보호와 산불예방 부탁 드립니다
즐거운 산행 되십시오“-화순군수
지방 수령의
소망을 가늠하면서
입석대 아래서
아침 식사를 하고
마루금에서 벗어난
무등산
서석대 정상3대도
왔던 길에 들려보고
지공대사
법력으로 만들었다는
지공너덜 스치고
규봉암 들려 유둔재로 갔습니다 99.5.5.일
백마능선
부드러운
억새 능선에 철쭉 밭
환상적인 산길
걷고
또 걸어도
질리지 않는 능선
백마의
갈기를 닮았다
무등산에
내려다보면
장불재는 꼬리요
낙타봉이나
안양산은 짐승의 머리
장불재에서
낙타봉까지-7Km
바람 따라
능선의 억새가 파도치면
백마의
갈기처럼 보이고
수만리
전형적인 농촌 풍경
가슴을 메우고
도심으로
돌아가고픈 맘 사그라 든 다 99.5.5.일
無等山
광주의 진산
표고 1186.8m
산세가
웅장하게 엎드려
아무 산이나
본뜰 수가 없다
산은
3才峰 3石臺
육산 오대산
골산 월출산을
머리에 받들어
거룩한 神殿으로
무등에
오르면
천국에 오른 거 같고
굽어보니
광주와 화순은
무릉도원으로
무등산은
無有等等을
설법하고 있다
다른 이름
통일신라- 무진악
고려시대- 서석산
조선시대- 무당산
또 무덤산 무정산 이름 있다 99.5.5.일
立石臺는
수백개의 돌이
선돌되어-天祭壇
瑞石臺는
“ 水晶屛風 ”
정상 3대는
천왕봉 지왕봉(비로봉) 인왕봉(반야봉)
산 동쪽에
규봉 있고
의상대사가
전생에도 왔고
금생에도 와서
규봉암을 창건하니
圭峰의
三尊石은
如來佛 觀音佛 彌勒佛 이다
광주의
진산이자 母山인
무등산을 둘러본
육당 최남선은
“무등산은 천연의 신전”
같다 탄식 했거니
시인 묵객들이
어찌
무등산을 몰랐으리 99.5.5.일
圭峰庵
圭峰밑에
장불재에서 1.8Km
규봉(圭峰) 높은 절에 종소리 끊어지고
밤 예불 마디마디 달은 점점 밝아 오네
삼존석(三尊石)십대(十臺)를 돌아 밤새도록 헤맬거나-이은상
노산 이은상은
인적이 드믈고
희미한 외길
지공너덜을 밟으면선
아름다움에 취해
밤길을 헤메고
시조 한 수를 남겼는데
나옹선사의
은사 지공대사가
법력으로
지공너덜을 만들었고
김덕령 장군은
규봉암 문바위에서
화순 동면
청궁마을 살바위까지
화살을 쏘고
화살이 빠른 가
백마가 빠른 가
시합하니
애마가 빨랐단 다 99.5.5.일
소쇄원 갈림길
산길을 걷다보면
산자락에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숨어 있다
호남정맥
무등산 산길에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 48詠중
제5영인 “石逕攀危”의
“위험한 돌길을
더위 삼아 오르며“
詩가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다
길은 하나 련만 삼익우가 잇달아
더위잡아 오르니 높지도 않으이
워낙 속세의 인간은 근접을 못하는 곳
이끼는 밟을수록 오히려 재미지
(一逕連三益 攀閑不見危 塵蹤元自絶 苔色踐還滋)
梅 竹 石이
三益友 다
예전에
꽃순이랑
소쇄원 들렸었지-
문득
옛날이 그립다 99.5.5.일
유둔재
887 지방도가
2차선 포장 길로
담양과 화순을 가른 다
“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
삿갓 형님도
넘었을 고개다
40여년전
목백일홍 만발한
실개천 따라
고개를 넘어 소쇄원으로
환벽당과 식영정으로
걸어 간 선비들
오늘은
천상에서 무엇들 하실 가
삼형재가 둔병재에서
무등산 산자락에
흔적 남기고
산길 접고
시장국밥 쌀 엿 유명하고
인물 자랑말라는
창평으로 가면서
임억령의 자미탄(백일홍 피는 여울)
누가 있어 붓으로 그림그려 놓았듯이
여기 산골 물가에 백일홍 심어 놓았나
선녀 같은 고운단장 물아래 비쳤으니
물고기와 날새들 놀라 시샘하네-을 읊조린 다 99.5.5.일
○ 무등산
광주 동쪽 가장자리와 담양, 화순에 걸쳐 우뚝 솟은 광주와 화순의 진산이자 모산으로 산세
가 유순하고 둥그스름한 모습이다 산 정상은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어 이를「정상 3대」라고도 한 다 천태만상의 암석들이 정상인 천왕봉(1186.7m)을
중심으로 앞에는 뾰족한 절벽으로 솟은 인왕봉이 있고, 뒤편에는 지왕봉이 있는 사이에 남향
의 군막사가 여러 채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규봉, 입석대, 서석대 등의 이름난 기
암괴석 과 증심사, 원효사, 약사사 등의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저녁노을에 반짝이는 광경
「수정병풍」같다는 서석대(瑞石臺) 정교하게 깎아낸 돌기둥들을 세워놓은 듯 한 입석대(立
石臺),옥을 깎아놓은 것 같은 절경의 규봉(圭峰), 임금의 옥새를 닮았다는 새인암(璽印岩)
그리고 산 사면에 나무 한 그루 없이 큼직한 바윗덩어리들만 시원스레 널린 덕산너덜과 지공
너덜 등등 산 곳곳의 기암과 너덜이 산을 한층 멋스럽게 꾸며주고 있다.기암괴석이 아니더라
도 봄철 원효계곡과 용추계곡의 진달래, 여름철 증심사 계곡의 녹음 가을철에는 장불재와 백
마능선의 은빛 찬란한 억새물결 그리고 겨울철 가냘픈 억새 줄기에 피어나는 빙화와 설화 등
무등산은 철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이다.봄의 철쭉 여름의 산목련, 가
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등 변화가 많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1972년 도립공원으
로 지정되었다 아름답고 후덕한 무등산의 산세는 남도 문학을 화려하게 꽃피우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조선 민간정원의 전형이라는 소쇄원,조선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송강 정철이 시가를
읊은 환벽당과 식영정을 비롯해 독수정, 취가정, 풍암정 등 시인묵객들이 시심을 풀어놓던
정자들이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무등산은 세 가지 절경을 지니고 있다. 입석대 광석대 서
석대로 이 세 곳을 묶어 3대 석경이라 부르는데 특히 서석대는 입석이 무더기로 늘어선 곳으
로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무등산은 백제 때「무당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고려 때는「서석산 조선시대에는「무등산」이라 불렸고 이는「부처의 경지가 높아 견줄
것이 없다」는「무유등등에서 왔다고 한 다 전형적인 홑산인 무등산은 통일신라 때 무진악
또는 무악으로 표기하다가 고려 때 서석산이란 별칭과 함께 무등산이라 불렸는데 이 밖에도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등 여러 산명을 갖고 있다 무등산은 광주광역시의 진산(鎭山)이자 모
산(母山)이다 광주시내 중심에서 정상까지의 직선거리는 10㎞ 안팎으로 높이를 헤아리기 어
렵고 견줄 상대가 없어 등급조차 매길 수 없다는 산이 무등산이다. 원효사가 있는 충효동은
김덕령장군이 탄생한 곳이다. 무등산이 배출한 장수 김덕령은 역모에 휩싸여 일찍 세상을 떠
났지만 삼을 심고 뛰어넘는 연습을 했다는 삼밭실, 바위틈을 뛰어 넘으며 담력을 키웠다는
뜀바위, 흰말을 타고 능선을 뛰어 다녔다는 백마능선 등 그와 관련된 지명은 무등산을 지키
고 있다.규봉에는 두바위 사이로 길이 나있고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어 문바위라 하는데 조
선시대 김덕령장군이 문바위에서 화순 동면 청궁마을 살바위까지 화살을 쏘고 백마가 먼저
도착하는지를 시험하였다가 화살을 찾지 못하고 백마가 늦었다하여 백마의 목을 치니 그때
화살이 날아와 바위에 꽂혔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또한, 규봉에는 십대가 있는데 광
석대를 제외한 송하대, 풍혈대, 장추대, 청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는
보인다 해도 알 수가 없어 찾을 길 없다.특히, 도선국사가 은신대에 앉아서 조계산의 산세를
]
살펴 송광사 터를 잡았다고 전해온다.
숲속을 걷다 보면
정철(1536~1593)은
길을 가면서
“길을 가는게
어찌 괴롭지 않으랴“ 라고 했지만
숲길을
걸으면
괴로움은 사라지고
더덕 냄새
진하게 풍기고
산나물의
향기는 입맛을 다신 다
신록이 짙어지면
싱그러운 맛
가슴을
찡하게 울린 다
풀 베어 말리면
풀 냄새
천지를 진동하니
숲속엔
언제나 변함 없는
木草의
향기가 흐른 다
초목 사이로
아침 햇살 스며 들 때
나는 숲길을 걷는 다 99.5.9 일
수양산
표고 593m
오르기 전
소나무 숲에
호남정맥중간지점 있고
등로가 희미한데
산은 정맥길에서
벗어나 있지만
산불감시초소 곁에서
선두들이
아침을 먹는데
수양산 하니
백이숙제
숨어들어
고사리로 연명하니
사육신의
성삼문 선생은
수양산 바라보며 夷齊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도 하는것가
비록애 푸새엣 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요렁쿵
是非를 밝혔거니
노옹도 동감이지만
채미로
산다 한들 어떠하리 99.5.9 일
선돌부락
새벽 3시55분
유둔재에서
산판도로를 걷는 데
하늘에는
상현달이 떠 있고
바람은 찬 듯하나
묘지를 통과하려니
훈훈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드니
심 대령 曰
명당자리라서
그렇다고
어둠속에서 들려지고
선돌부락은
늦은 아침으로
모내기 끝낸
산 다랑 논에서
보식을 하고 있다
농부를 스치면서
수고한다고 인사를 하려니
나도 산골
촌놈으로
고향에서 저렇게
살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
공연히 찌들은
도시로 떠돌다가
늙어 버렸으니
방황하면서 허송세월 했는지... 99.5.9 일
萬德山
만인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라
임진왜란과
6.25를 비롯한
수많은 戰亂에도
지역 주민은
戰禍를 입지 않았단 다
표고 768.1m로
육산과
암봉이 조화를 이루고
봄에는
산나물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과
어우러진 녹음
가을에는
머루 다래
겨울에는
설경에 빙벽으로
산객을 부른 다
산자락에
미륵사와
만덕폭포를 품는 다
99.5.9 일
방아재
방어 할 수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방촌 마을에는
옛 성터가 지금도
남아있는 곳이 있으며
방어재 혹은 방아재-라
오름길에 할머니 바위에
문안 여쭙고
만덕산(575m) 할미봉에 올라
운암리 산촌풍경을 조망하고
내리막길에
묘지를 지나 산행을 끝냈는데
독도가 까다로워
마루금을 이탈한
동행들이
모두 찾아 들어
용대산장
느티나무 곁에서
삼겹살과
장어구이로 포식을 한 다
아카사아 꽃과
오동나무 꽃이
활짝 피어나 눈에 든다
이정표에
화순 야생화 꽃
농장이 보이려니 꼭 찾아보고 싶다
讀圖
어렵다
산경표가
햇빛을 본 뒤
백두대간
마루금에는
산객들 곧 찾건 만
정맥 길은 한산 하니
외롭다
산길이 아예 없거나
희미하여
길 잃기가 보통이다
인솔자가
사전 답사를 하고
산행 지도와
자료를 준비해도
갈림길에서
어김없이
이탈자가 나온 다
우리가
지금
흔적을 남기려니
먼 후일에는
편안한
마루금 될 터-
99.5.9 일
雪山 1
하얗게 빛나는
곡성의 제2명산
표고 522.6m
곡성 8경에
雪山落照
옥과 8경에는
雪山歸雲
곡성 10대 명산 중
東樂山 다음이고
전남과 전북의 경계다
정상부 바위벼랑이
하얗게 빛나
산 이름 얻었다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국한
柳彭老(1564~1592) 장군 쌓은
설산고성은
성터만 남고
그 가 타던 애마는
장군이 죽자
장군의 고향 집을 찾아 죽어
의마총을 만들고
의마비를 세웠단 다
산세는
기러기형 사자형국이란 다 99.5.22.금
雪山 2
정맥 마루금에서는
벗어났지만
홀로
떨어져서 설산으로 갔다
오늘은
석가탄신일
세존이 출가하여
설산에서
고행을 했다는
생각도 나서
노옹도
설산을 밟는 구나
빙긋이
웃으면서
다시 찾아오기
어려 울 터-
이 대장이
시간 걸릴 거라
협박 했지만
지나는 길에
들려야지-라
일찍이 내도
출가 했었으면
아쉬움을
가슴에 담고 산길을 걸었다 99.5.22.금
山城山
표고 603m로
삼국시대부터
덧칠한 성터
金城山城 이 있어
산 이름 얻었거니
담양벌판의 배후로
역사탐방
산행 코스다
산자락에
二千骨 있는데
정유재란 때
죽은 시체 2000구를
남문 아래
협곡에 옮겨 태웠단 다
삼국시대부터 있어
고려조에
본격적으로 축성
시루봉(504.3)을
정점으로
남문- 노적봉- 철마봉(475)-
서문-동문-운대봉(603 산성산 최고봉)-
연대봉-북문-서문으로
계곡을 감싸는
포곡형 산성이다
99.5.23.일
剛泉山 584m
전북 순창군 팔덕면 전남 담양군
호남의 소금강
맑은 계곡 물에
기암절벽이
병풍을 치듯 하고
유난히도
단풍나무가 많고
아기 단풍 곱게 물들면
더욱 장관인데
금성산성도
옛 모습이고
오밀 조밀한 산세다
50m 높이에 걸린
구름다리(현수교)
아찔 아찔 하 다
자연산 산벚꽃
꽃이 잘고 빛깔은
희고 맑다
산자락에
신라 진성여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강천사는
한 때는
1000명의 스님 머물고
인기명산 순위 49위 다 99.5.23.일
오정자재
전북 순창군과
전남 담양군의 경계로
793번
2차선 포장 지방도로가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담양호를 잇고
이정표에
강천산 4Km 쌍치 12Km
순창 쪽으로
조금 내리면
밤나무 단지
산행들머리
유둔재부터
도상 거리 38Km
호남정맥
2박3일 일정으로
둘째 날에 왔다
산내들 21만평
염소 농가가 한 채 있어서
쩔은 땀 시원히 씻고
후미가
도착할 때까지
한가롭게 휴식을 즐겼다 99.5.23.일
산행 후 보너스
2박3일 일정 중
첫 날의 산행을
영월재에서 끝내고
숙소인
달맞이 공원의
서원관광농원으로 갔다
나무 밑 의자에
벌렁 누워서 하늘을 봤다
나뭇가지 사이로
구름 조각들이
흘러가는 것에
나를 잊는 다
농원의 봉고
차를 빌려서
김 총무가 운전하여
강천사를 찾아
저녁밥
잘 얻어먹었더니
참으로 맛이 있었다
절에서 돌아와
모닥불 피워 놓고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산행 후의 보너스다 99.5.23.일
龍秋峰
29번 국도가 지나는
천치재에서
(순창군 복흥면과 담양군 용면을 잇는)
치재산(591m)스치면
높이 560m로
전북 순창군 복흥면과
전남 담양군 용면에 솟고
고스락은
헬기장에 삼각점 있다
서쪽으로 추월산
남쪽으로 강천산 무등산
동쪽으로 세자봉 여분산 회문산
조망 된 다
인근에
문화재 자료
제72호인 덕양정은
하서 김인후가
낙향하여
은거하며
후학을 가르친
유서 깊은 곳이다
정맥 마루금은
606봉을 넘으면
오정자재가 기다린 다
99.5.23.일
苦中作樂
정맥길
오정자재에서
추월산 가는 길
산행이 끝난 뒤
동행들이
모두 힘들었단 다
날씨 탓인가
암릉지대련 가
노옹도
오늘은 걷든 다는 것이
지겹게 느껴졌다
다만
산바람이 솔 솔 불어
산행중의
피로와 꼬인 마음
풀어 주지 않았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을 거다
암벽지대
엉금엉금 기어올라
목적지에 도착
산행 마치면
성취감이 뿌듯하고
뒤풀이
한 잔 얼큰하면
지난 고통은 즐거움이다 99.6.13.일
擊壤歌를 부르며
산길에
고사리 농장이 보였다
하~아
이제는
고사리도 재배하는 구나
어린 시절
산골 동네 살면서
봄이면
산나물 뜯으러
산자락 누빌 때
고사리 눈에 들면
반가웠었지...
老翁되어
할 일 없어
산길이나 밟으려니
太平聖代에 살면서
틈만 있음
산엘 가고
산길 따라
시름 없고
산길 속에
평온 오며
목적지 도착하면
성취감 뿌듯하니
내 건강하니 산에 온 것 뿐이다 99.6.13.일
秋月山
전남 담양군
전북 순창군
높이 731m로 인기명산 87/100위
이름 그대로
가을 산으로
단풍 테마산행 좋고
전남 5대
명산중 하나
울창한 수림에
기암괴석과
석벽 장관이다
산자락의
골마다 약수 있고
맑은 물줄기 솟는 다
고스락의 조망은
담양호와
주변경치가 볼만 하다
계절마다 특색 있고
秋月蘭이 자생 한 다
정상 밑에
보리암 있고
꽃순이랑
추월산장 하룻밤
잊을 수 없거니
새벽에 동생과도 올랐다 99.6.13.일
菩提庵
나무 매
날아 든 암자로
남해 금산
보리암 아니고
추월산
보리암으로
추월산 아래
650m 높이에 있고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지리산 천왕봉에서
나무로 깎은 매
세 마리 날려 보내
그 중 한 마리
떨어진 곳이라는
전설 곁들인 다
입구의 암벽에는
김덕령 장군의
이름이 각자 되었고
김 장군은
추월산에서
무술 연마 했거니
장군의 부인이
왜군을 만나
순절한 곳이란 다
99.6.13.일
13시간30분
하루의 절반
산길을 걸었다
밀재를 들머리로
감상굴재에서
산행을 마감 했으나
다음 구간에
불참 사유가 있어
동행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감상굴재에서
추령까지
도상거리 32Km를
동생(춘원)과 걸어야 했다
하필이면
박 교장의
회장 취임 연회에
풍성한 먹거리도
외면한 채
파김치가 되도록
답사도 되지 않은
길- 걸으려니
“이래도 되는 건 가”
추령에 도착
뻗으려니
탄식이 절로 났다 99.6.27.일
당산나무
추성과 복흥을
연결하는
밀재를 들머리로
높이 520m인
코 바위를 지나
금방동과 흥암마을을 잇는
향목탕재이 이르면
수 백 년의
풍상을 이겨낸
당산나무가 반긴 다
堂山은
일종의 토템이즘으로
우리나라에만 있고
부락의
수호신이 있다고-
마을 초입
또는
마을 복판에 있다
당산나의 80%는
느티나무지만
이 외에도
팽나무 은행나무
이팝나무 오리나무
수양버들 등을
당산나무로 삼고 있다 99.6.27.일
저 새가 무슨 새여
꿩- 푸드득 날고
애절한
울은 소리 들린 다
"미스 李
저 새 새소리 뭐여“
“어 저 새요
홀딱벗고 새인데
검은등 뻐꾸기-요“
“그려라~ 잘 도 아는 구려”
“도감에서 봤어요_”
도장봉 넘어
감상굴재로 가면서
미쓰 李와
나눈 山談이다
염불에는
마음 없고
잿밥만 탐하고
게으름만 피우다
세상을 떠난
스님이들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의
홀딱벗고 새-로
희귀종
여름새는
울음 소리 너무나 애처롭다 99.6.27.일
홀딱 벗고 새의 전설-퍼옴 홀딱 벗고
마음을 가다듬어라.
홀딱 벗고
아상도 던져 버리고.
홀딱 벗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홀딱 벗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홀딱 벗고
정신 차려라.
홀딱 벗고
열심히 공부 하거라.
홀딱 벗고
반드시 성불해야 해
홀딱 벗고
나처럼 되지 말고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아득한 옛적부터 들려오는 소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들려오는 소리
강당으로 향하는 길목에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
온종일 가슴 한 켠 메아리치는 홀딱 벗고새 소리
공부는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하였다는 전설의 새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 생에는 반드시
해탈하라고 목이 터져라 노래한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모든 상념을 홀딱 벗고...
감상굴재
밀재에서
홀닥 벗고
새 소리와
솔향에 취한 산길
아침 9시에 도착
고개는
49번 국도가
순창군 복홍과
장성 중평리를 잇는데
道界는
강선마을
정자 옆을 지난 다
음식점들은
전북이고
마을주민들은
전남이 주소로
“논은 전북 땅
밭은 전남 땅“-
안방은
전북 땅이고
건너방은
전남 땅 이다
시멘트
도로 따르면
곡두재가 나온 다 99.6.27.일
白岩山
표고 741.2m로
전북 정읍시 순창군
전남 장성군 경계에 솟았다
고스락은
상왕봉으로
백양사를 품는 다
활짝 핀 연꽃
모양의 암봉이 있어
다른 이름
학바위 백학봉으로
이웃에
호남 5대 명산
전국 8경인
내장산 있다
春-백양
秋-내장으로 유명커니
천연기념물 제153호
5000그루의 비자나무숲
천연기념물 제91호
굴거리나무숲에
고로쇠나무등
난대성 상록수림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노니- 99.6.27.일
內藏山
산 이름
모를 사람 없고
한 두 번 쯤은
들렸을 터
단풍 들면
몸살을 앓는 다
“어느 산 갈 가요”
“내장산 단풍 보러 가자구”
열이면
아홉은 그럴거다
내장사를 품고
말굽형에
아홉 봉우리중
정맥길에
까치봉(713m)
신선봉(763.2m)
문필봉(657.2m)
연자봉(673.4m)
장군봉(713m) 등
다섯봉우리에
동생이랑
흔적 남기면서
留軍峙로
바시락 거렸습니다 99.6.27.일
留軍峙
내장산
장군봉에서 1Km
임진왜란 때
순창군 망군정에
진을 치고
공격하는 왜 놈들-
승병장
희묵대사가
왜군을 유인하여
크게 무찔렀다는
유래의
안내문 있는데
밀재부터
호남정맥 마루금 밟은
老翁은
파김치가 되고
허리까지
시큰거리는데
또 추령까지
2Km가 남았단 다
동생(춘원)을
추령으로 먼저보내
정읍으로 갈
택시를
수배케 하고 쭉 뻗었다 99.6.27.일
秋嶺
밀재를 들머리로
13시30분
산길 걸어온
노옹 파김치가 되었다
49번 지방도로가
정읍시와
순창군 복흥면을 잇는 다
길이 4Km로
표고 320m
내장산이
한 눈에 들며
장승축제가 열린 다
“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
남성을
들어 내놓고
비죽이 웃는 남장승
옆에는
젖가슴에
하복부까지 드러낸
요염한
미소의 여장승
산객의 피로를
슬며시
풀어 준 다 99.6.27.일
牛步千里
추령에서
구절재 까지
섭씨 30도의
폭염 속에
10시간 걸었다
굼벵이처럼
꿈틀거렸고
지렁이처럼 움직였다
꿈틀거려도
목적지에 도착 하니
탈락자들도
몇 명 있었다
빨리 빨리 걸으나
천천히
천천히 걸어도
목적지에
도착 되는 거 다
킬리만자로
등정을 하면
오고 가는 사람들
인사말
“폴레” “폴레”-라
천천히
천천히 걸으란 다 99.8.22.일
高堂山
호남정맥 마루금에
높이639.7m로 솟아
동진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에
정읍시와
순창군을 가른 다
산을
오르려니
몹시 가르고
잡목이 심한데
홀로 걸었다.
힘 들 어
거북이처럼 엉금 기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정상에 도착 되고
성취감이
뿌듯하게 밀려 온 다
고스락에 오른 맛
고스락에
오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
정상에는
묘지가 있으니
후손들이 고생했을 거다 99.8.22.일
구절재
추령에서
도상거리 20Km
실제거리 26Km
잡목에
시달리면서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며 오려니
이정표에
부안 34Km 태인 12Km
"산 좋고
물 맑은 살기
좋은 산내면"
표지석 있고
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
장승이 반긴 다
산행
마치고 귀가하면
현각이 놈
“할비야~할비야”
반길 거로
산행 끝날 때 마다
현각이 키 크고
몸무게 늘어 간 다 99.8.22.일
先頭
새벽에 입산하면-
“날 밝기까지는
선두는
좀 천천히 가라”
선두들의
걸음은
제비 보다 빠르며
쉬지도 않는 다
후미에서
쫓으려면
여간 고역이 아니고
자칫 하면
후미에서는
길 잃기가 쉽다
날이 밝으면
상관이 없다
지칠 때 쯤
“대장 님
다 왔나요” 하면
“저 봉우리만
넘으면”된 다지만
새빨간
거짓말이고
넘어야 할 봉우리
두서너 개는 더 있다 99.8.22.일
왕자산(444m)
구절재에서 입산하여
작은 왕자산(437m)
스치고
약간의 바위지대와
급경사 오르막
7~8개 이어지는데
정상에는
삼각점 있으나
조망은 좋지 않다
왕자산은
천안에도 있고
포천의
왕방산은
이성계가 올랐다는데
호남정맥의
왕자산은
어는 왕자의 산 인 가
하늘은
잔뜩 흐렸고
산행이
끝날 때까지
간간이 빗방울이 떨졌다
방성골
지나려니
고추밭 가에
주먹 만 한 수박
귀엽기도 하구나 99.8.22 일
묵방산
표고 538m
전위봉 오르는데
급경사 있고
제 2봉 제3봉 다음
제 4봉이 정상으로
정상에서
잠깐 휴식하고
내 고향
내 태어난
곳과 같은 이름인
초당골로 하산하여
21차
호남정맥 산행
마무리 하고
나루터 휴게소에서
점심으로
메기매운탕으로
포식을 하려니
옥정호는
다른 이름 운암호로
섬진강 상류로서
완주군 구이면 이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호남정맥
산행도 끝자락이 보인 다 99.8.22 일
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치이 얽어지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산길에
칡넝쿨이
얼크러져서 등로가 없고
잡목 또한 심하다
얼크러진
칡넝쿨을 헤치려니
칡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나는
칡 냄새가 좋다
그저 좋고
볼품없는
칡꽃도 좋다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엉클어진 칡넝쿨을
지나려니
태종 임금의
“하여가”가 생각난다.
시조의
원래 뜻과는 달리
우리네 인생도
칡넝쿨 엉클어진 것처럼
얼크러져서 살면 될 것을... 99.8.22 일
여름 산행
하늘은
잔뜩 흐리고
비구름 얕게
깔려 있어
금방이라도
쏟아 부울 것 같고
때로는
우중산행 멋도 있거나
뙤약볕
산행일 때도 있지만
여름 산행에서
또 하나 즐거운 것은
나무 냄새랑
풀 냄새를 맡는 것
풀잎마다
나뭇잎마다 냄새가 다르니
소나무 숲에
소나무 냄새
참나무 아래
도토리 냄새
산 더덕 있으면
산 더덕 향수가 진동하고
사람 사는 곳에서
사람다운
사람 냄새를 맡으면서 살고프다 99.8.22 일
초당골
22차 산행은
옥정호의
초당골이 들머리인데
백두대간 종주 보다
호남정맥 종주
산행이 더 어렵고
힘들다고들 말 한 다
잡목이
심 한가 하면
등로가
희미하거나
아예 산길이 없는
구간도 많이 있고
굴곡이 심하다
고도야
높지는 않다 해도
뚝 떨어졌다가
가파르게 오름이
반복되기 때문에
수월치가 않다
허나
지금은 그렇다 해도
먼 후일
산길은
양호해 질 것이고
독도도
쉬워질 거 다 99.9.12.일
內助
백두대간 왕복
낙동정맥 완주에
호남정맥도 완주도
코앞으로 닦아왔다
무박 주말 산행에
군소리 없이
묵묵히
산행 준비를 해 준
꽃순이가
고맙거니
너무나 감사하다
남은여생
산행 길에도
지극히
협조하여 줄 것이라고
굳게 믿 는 다
마음 놓고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 아니겠는 가
동생들도
동참하면서
안전 산행을
염려 하거나
도와 준 것에도
감사 한 다
99.9.12.일
오봉산
표고 550m의 봉을
이미 스쳤거니
오늘은
삼각점 있고
옥정호가 조망되는
높이 513m봉에
점을 찍는데
금년은
오봉산과
인연이 있는 가
춘천의 오봉산은
꽃순이랑
또
토산회 회원들과
흔적을 남겼으니
오봉산에만
4번째로 올랐다
63빌딩 영화관에서
“에베레스트”를
3번을 봤다
볼 때마다
나도 가고픈 마음-이라
매미 소리랑
뻐꾸기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진 다 99.9.12.일
同志
비 소식이
있었지만
초당골의 밤하늘에서
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全과 崔군
원 과장도
산행에 참가 했는데
“ 반가운 사람들”
종주 팀들의
정은 戰友愛 못지않다
험난한 산길을
땀방울
줄줄 흘리면서
3~4년을
주말이면 만나고
공동 목표를 향하여
함께 뛰었으니
끈끈한 정이
푹푹 쌓였을 터다
산새들
부지런한 것인 가
인적에 놀랐음인 가
새 울음 들리며
어둠이 밀려가면서
이슬에 옷자락이 젖는 다 99.9.12.일
鯨角山
산높이 659.6m
고래등에
뿔난 것처럼
보이는 산
산자락
광곡마을에서
모악산 방향에
고래모습으로 보인 단 다
고래는
海中大魚다
불재에서
한 시간 오르면
바위에
삼각점 표시 되었고
정상은 헬기장이다
전망이 좋아
지리산자락과
반야봉도
또렷이 조망된 다
산자락에
正角寺 품으니
올바르게
깨달음을
얻는 절(寺)이란 다
99.10.10.일
편리한 세상
경각산
고스락을 지나면서
송 대장이
무전기로
지리산
만복대를 향하는
이 대장과
통화를 한 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거리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어디서든
통화를 할 수
있는 세상
문명은
어디까지
어떻게
얼마만큼 발전할 것인가
허면
변화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99.10.10.일
청승스럽다
비 내리는
능선에
쪼그려 앉아서
배낭에 빵 꺼내어
빗물 적시며
아침 식사를 한 다
잘 넘어
가지 않는 다
따뜻한
안방 구들장 나두고
뭣 하는
꼴 인 가-
한심스럽기도 한 데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산길
앞서 걸은
사람들- 만 나 보고 싶다
그들도
이 길을 걸으면서
같은 뜻으로
걸었을 거다
내 뒤를 따라
종주자들
이어지면서
뜻은 같을 거다 99.10.10.일
완주하는 날
광양 백운산을 들머리로
호남정맥도
24차 산행으로
모래재에서 끝난 다
이번구간은
솔치에서 모래재까지
실제거리 30Km
보름달이 밝게
산길을 비추더니
구름이 덮어 버렸다
오늘은
내 반 아이들
임태인과 김상윤이가
산행에 따라 나섰으니
“아이들이
무사히 완주 할 것인지
도중 탈락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안전사고라도
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지만
아이들이
잘 따라 왔고
목적지에 도착
師弟가 완주하는
기쁨을 맛 보았다 99.10.24.일
웅치(熊峙)
삼거리로서
완주군 소양면
이정표가 있고
표고 408m로
만덕산 갈림길에서
내려오면 곰치 다
1979년에 세운
웅치전적비가-에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전라도로 진출하려던 왜군을 맞아 싸웠던 격전지이다 그 해 7월 충남 금산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이 전주를 공격하려 하자 김제군수 정담, 해남현감 변응정, 나주판관 이복남이 웅치의 험한 지형을 이용하여 적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전열을 가다듬은 왜군의 재차 공격을 받아 수적인 열세에 밀려 무너지고 말았다. 싸움이 끝난 후 왜군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에 깊이 탄복하여 시신을 모아 무덤을 만들고, “조조선국(吊朝鮮國) 충간의담(忠肝義膽)”이라 쓴 푯말을 세운 후 금산으로 퇴각하였다.
전적비는
도로를 따라
약간 오르는 곳에 있고
능선으로 붙으면
가파른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다
단풍이 절정이라
곱게 물든
잎 새 들이 새롭다 99.10.24.일
珠華山(565m)
다른 이름
주즐산으로
산세가
화려하고 아름답고
3정맥 분기점 이다
헬기장을 지나려니
버섯 따는
사람들 눈에 띄는 데
근처에서
이 대장과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장 曰
“호남정맥이 끝났단다”
허전했다
심신이 풀렸다
호남정맥이
끝나는 곳에
대단한 것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이정표가
기다리고 있다
98년9월17일
백운산에서 이곳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99.10.24.일
모래재
3정맥 분기점
주화산을 떠나
내리막길을
3분 정도
내려오니 소로가 나왔고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휴게소가 있는
전라북도 진안 경계인
모래재에 도착하여
산신제를 지냈다
차안에서 아이들은
깊은 잠에 푹 젖었다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제자들과
호남정맥 종주를
끝낸 것 한없이 기쁘다
다시 밟을 일은
좀처럼 없을 터-
한편으로는 서운하고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아~아-
호남정맥으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 단 다
추억은 결코
잊혀 지질 않을 것이다 99.10.24.일
호남정맥 종주를 마치면서
99년10월24일 오후 2시6분 3정맥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주화산에 도착하여 396.5Km의 호남정맥 종주 산행을 마쳤다. 24차 마지막 산행 구간은 술치에서 모래재까지 도상 거리 24.5Km로 실제 거리 30Km로 10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이 대장이 산행 안내를 했다. 주화산에서 호남정맥으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단다.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 대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98년9월17일 전라남도 광양 백운산을 출발하여 여기 까지 오는 데 1년이 좀 넘게 걸렸다. 전 구간을 24회로 나누어서 시행 되었는데 한 구간도 빠진 곳이 없다. 다만 봇재에서 제암산까지인 8차 구간을 9차 산행 때 9차 산행을 마치고 8차 구간까지 보충 산행을 했으며 18차 산행 때는 19차 구간을 포함하여 밀재에서 추령까지 13시간30분을 걸었다. 종주를 마치고 나니 감회가 새롭다. 백두대간 왕복 종주와 낙동정맥 종주에 이어서 또 하나의 정맥을 밟았으니 가슴이 뿌듯하다. 심신도 많이 맑아졌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베풀어진 축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산이 좋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산에 갈 수 없다. 건강은 건강 할 때 지켜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산행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면서 산이나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굳게 다짐도 한다. 사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며 건강한 사람들이다. 일기 상황이 나빠지면 핑계가 생겨서 산에 가기 싫어지면서 산행 약속을 취소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목적 산행을 하여야 한다. 목적 산행을 하면 혹 귀찮은 생각이나 일이 생겨도 산행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반 산행과는 좀 다르다. 호남정맥 산행은 산경표를 따라 전라도 산줄기를 밟아 본다는 목적을 가지고 산행에 참여하니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도 산행에 참가하게 된다. 우리 거인산악회 호남정맥 종주 팀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행 일정대로 호남정맥 마루금에서 봄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보내면서 동료들과 애정을 갖고 함께 산행을 하면서 수많은 땀방울들을 흘렸다. 나의 인생살이에 지극한 보람이라고 자부한다. 무엇 보다 소중한 경험이며 추억으로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되었다. 한 구간도 빠짐없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자랑스럽다. 그러면서 대간 종주나 정맥종주를 무사하게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거인산악회 이 구 대장에게 감사하면서 함께 동참했던 동료 산꾼들의 격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토요일마다 무사히 산행을 하도록 준비 하여준 아내에게 더욱 사랑을 느끼면서 함께 참여한 두 동생(봉원과춘원)들도 고맙게 생각 한다 동생 봉원이는 체력의 한계를 뛰어 넘으면서 까지 탈락하지 않고 전 구간을 한 번도 빠짐없이 참가하여 종주를 한 것을 격려하면서 동생 춘원이는 18차와19차 구간을 합쳐서 하루에 할 수밖에 없을 때 동행하여 주지 않았음 불가능 한 것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에 대하여 끈끈한 형제애를 느낀다. 백두대간 종주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으나 정맥 종주에 대하여는 아직도 깜깜한 것 같아서 산을 즐겨 찾는 사람들에게 하루 빨리 인식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많은 산꾼들이 대간 종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정맥 종주에도 참여하여 활발한 산행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라나는 꿈나무들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 되었으면 한다. 호남 정맥은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잡목이 심하여 옷이 찢기고 상처가 나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등로가 희미하거나 아예 없는 곳도 많다. 자연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산길을 하루 속히 뚫었으면 싶다. 아직도 나에게는 밟아야할 남은 정맥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2002년까지는 남은 정맥 마루금을 밟을 예정으로 우리 산악회에서는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적극 참여 할 생각이지만 많은 산꾼들도 깊은 관심을 갖고서 산경표 따라서 마루금을 밟았으면 싶다. 그리고 나에게 또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북한에 있는 산줄기들도 죽기 전에 밟아 봤으면 여한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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