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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인간은 없다 -서편제의 고장 호남정맥9구간
시목치(감나무재)-x349m-△338.6m-x369m-x367m-임도-△305.1m-x456m-용두산(△551m)-금장재-x471m-임도-△513m-x409m-x384m-피재(839지방도로)-x309m-△405m-x394 분기점-x511m 가지산 분기점-가지산(x510m)-x422m-장고목재 (유치면과 장평면 경계 임도) -(이상 정맥 끝)-월곡마을
소재지 : 전남 장흥군 장동면 부산면 유치면
도상거리 : 16km 장고목재-월곡마을 1.25km 총 17.25km
이 구간은 바로 전 구간인 일림산-사자산-제암산 과 달리 알려진 산도 없으며 대체적으로 300~500m대로 이루어진
야산 지대로서 호남정맥 특유의 잡목과 가시의 저항이 심하다
해발300~500m대 라고 얕잡아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는 구간이기도하다
하나의 산을 오르면 양쪽 옆으로 마을과 평야지대가 손에 잡힐 듯 뚝 떨어진 후 다시 오르는 구간이 부지기수이고 그 때마다 개 짓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정도이다
상기 코스에 나와 있듯이 표기된 봉우리도 많지만 그 외 작은 능선이지만 주 정맥에서 분기되는 능선들도 많을만치 굴곡이
심하다
시목치는 한글표기 그대로 감나무재 인데 그 옛날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감나무재의 이름에 걸맞게 하려했는지 몇 년생 감나무들이 심어져있다
뚜렷치는 않지만 서서히 서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힘겹지않은 오름이 처음에는 이어지고,
20분 후면 x349m봉에 오르고 뚝 떨어진 후 다시 25분 정도 힘겹게 오르면 x369m봉이다
이전 x349m봉 에서부터 북쪽으로 오르던 정맥은 x369m봉에서 다시 서쪽으로 이어져간다
남쪽 아래 <萬年里>와 북쪽 아래 <北橋里> 마을들이 바로 발 아래로 보이는 정맥의 능선을 뚝 떨어졌다가 평범한 x318m봉을 지나 힘겨운 오름이 이어지면 x367m봉에 오른다
날이 맑다면 367m봉에서 가야할 정맥의 능선들이 평야위로 가늠된다
367m봉에서 내려설때는 잠시 바위지대가 나타나며 시야가 확 터지며 바위지대를 지나면 TV안테나가 나타나고 소나무 숲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오른다
무명 봉우리를 지나며 진행하다보면 서북쪽 논 들 사이로 <상방이>마을이 보이며 철죽과 맹감(청미래) 가시넝쿨의 저항은 여전히 심하다
저 아래 임도가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급경사지대를 내려설때도 잡목의 저항은 심하고 임도를 지나 오르다보면 잘 조성된 <慶州 李公 吉龍 之墓>가 나타난다
힘겨운 오름 끝에 △305m봉 분기점을 지나간다
정상은 서쪽으로 1분 거리에 삼각점과 함께 있으며 정맥은 정상을 살짝 비켜지나간다
봉우리를 내려서면 역시 고개길이 나타나는데 북쪽의 <상방이마을>이 보이는 곳이다
서서히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또 다시 힘겨운 오름길이 이어지며 x456m봉을 지나도 게속 오름길이 이어지며 쌍 묘를 지나면 두 군데의 잘 조성된 헬기장을 지난 후 4~5분을 더 오르면 <장평면>에서 세운 표지석이 서있는 좁은 용두산 정상이다
용두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떨어지는 산길은 지금까지와는 양호한 편이고 북쪽으로 내려서면 산판길을 만나는데
곧 동 서쪽으로 넓은 길이 나타나는 <금장재>에 이른다
짧은 거리의 x471m봉을 오르는데도 힘겨운 오름길이고 봉우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두 어개의 무명봉을 지나서 8분여 내려서면 자갈이 깔린 임도에 내려선다
<용두산>을 지나가니 용두에 관한 지명에 대한 설명을 한다
조선초기에 張씨가 성촌하였다고하나 알 수 없고 조선중기에 장흥 巾山里에서 江陵 劉氏 彦珉이 入鄕하여 터를 잡았고 그후 靈光人이 내안리에서 선산 따라 입향 하였으며 안곡에서 淸風金氏 등이 입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 뒷산 형국이 뱀의 머리와 같다하여 뱀 머리라고 불러오다가 해방후 기왕이면 龍의 머리라고 하자하여 龍頭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흥군청 발췌>
<금장재>를 지나가니 지명에 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간다
조선초 仁川李氏 奎가 토질이 비옥하고 산 세가 좋아 성촌하였다고 하며 그 후손이 계속 거주하여 본 마을을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 당시에는 마을 뒷산의 형국이 황새가 숨어있는 골이라하여 禽藏이라고하다가 금굴이 있다하여 金藏이라하던 것을
金莊이라 명하였고 상금장과 하금장으로 나눠어 있다.<발췌>
이 임도에서 다시 힘겨운 오름길이 이어지고 두 군데의 헬기장을 지나서 25분간 오르면 <93-3-53>표시가 있는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인데 남쪽 용반리로 떨어지는 x421m봉의 지능선 분기점 봉우리인 것 같다
이제 북쪽을 향하는 정맥의 능선은 폭이 좁은 날등을 한동안 걸어가는데 헬기장 봉우리에서 13분 후 면 <93-6-13>표시의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513m봉이다
동쪽으로 갈라져 간 x316m봉 분기점을 지나서 게속 내려서닥 오르면 513m봉 이후 26분 후 x409m봉을 지나 7분간 내려서면 소나무숲 아래의 사거리안부에서 다시 치고오른다
약12분간 힘겨운 오름길이 이어지면 x384m봉에 오르며 이제 북쪽 저 아래로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것이 <피재>가 가까워 옴을 알 수 있다
잠시 후 벌목지대가 나타나며 피재쪽의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피재로 내려서는 능선은 역시 잡목과 맹감넝쿨로 진행이 방해된다
384m봉에서 15분 여 내려서면 억새가 무성하고 金海金氏 묘역 과 淸州韓氏 묘역들이 있으며 장흥군 장동면 과 유치면의 경계를 이루는 839번 지방도로상의 <피재>에 내려선다
피재의 장동면쪽으로 수 m만 걸어가면 <싸리나무집>이라는 음식점이있어 식수 보충을 할 수 있으니 후답자들은
이 점 유념하기 바란다
도로를 건너면 표고버섯 재배 비닐하우스가있고 잘 조성된 4기의 봉분이 있는 묘역옆으로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면
청주한씨 묘역이 나타나고 계곡인 듯한 곳으로 내려선 후 칡 넝쿨이 무성한 지역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면서부터 힘겨운
오름길이 시작된다
피재에서 33분 정도 힘겨운 오름길이 이어지면 x405m봉에 오르게된다
이 곳부터 북쪽으로 가지산의 x511m봉의 바위들이 이색적으로 올려다 보이고 능선의 서쪽을 내려다 보면 <당촌 마을 과 보림사>가 내려다 보이고 동쪽으로는 <연촌마을>이 들판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잠깐 보림사에 대해서 설명하고 넘어간다
유치면 가지산 계곡 (봉덕리 45번지)에 위치한 고찰이다
이 사찰은 동양 3보림 (인도·중국·한국)의 하나로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원표대덕(元表大德)이 터를 잡을 당시인 759년에는 초암(草庵)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듯 하며,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이곳을 찾는 이들을 흥미롭게 하고, 곳곳에 그와 관련된 땅 이름이 남아 있다
옛 모습의 보림사는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이었으나 조선시대 숭유억불책(崇儒抑佛策) 으로 쇠락하다가,
한국동란 병화(兵火)를 겪기도 하였다
현재 보림사에는 철조비로사나불 (鐵造毘盧舍那佛)등의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가 남아 있어 역사의 흐름과 우리나라의 불교 미술사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보림사에는 선승들이 즐겨 들었던 작설차가 특산품으로 전하고,
비자림과 약수를 비롯, 1일 코스의 가지산 등반로가 개발되어 찾는 이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장흥군청 발췌>
가지산 511m봉은 전체적으로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맥에서 살짝 비켜나있다
405m봉에서 내려서는 구간은 가지산 때문에 등산로를 정비한 듯, 오늘구간에서 가장 편안한 구간이며 23분 정도면 보림사 및 동쪽으로 <보광사>로 내려서는 산길이 있는 안부를 지나며 이 후 511m분기점 까지 힘겨운 오름이 또 이어진다
약13분 정도 힘겹게 오르면 동쪽으로 x394m봉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며 다시 살작 내려섰다가 오름이 이어진다
511m봉 분기점까지는 키 큰 산죽군락이 나타나는데 등산로는 자치단체에 의해서 산죽이 베어진 듯 편안하게 이어진다
394m분기점에서 약21분이면 이정표가 서있는 511m 분기점 삼거리에 올라선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며 마지막으로 한번 힘을 쓰며 13분 여 오르면 가지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내려섰다가 6분 후 봉우리를 오르고 다시 내려선 후 7분 후 봉우리를 오른후 다시 내려서고 약 8분이면 x422m봉을 마지막으로 뚝 떨어져 내린다
가지산 출발 약 30분 정도 소요하면 <장고목재>에 이른다
장고목재는 유치면 대천리와 장동면 월곡마을을 잇는 임도로서 소형차량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인데 어차피 임도라는게 경방기간에는 차단기가 막혀있어 지날 수 없을 것이다
도보로 장곡목재를 빠르게 내려서는데는 동쪽의 월곡마을이며 약20분이면 내려서고 포장도로가 남쪽의 장동면 봉림리까지 이어져있다.
아울러 이번 구간을 지나가는 장흥군의 유래를 알아본다
원래 백제 오차현이 삼국통일 이후 신라 경덕왕 때 오아(烏兒)로 개칭 보성군의령현이 되었음 고려 초에 정안으로 고쳐 영암에 소속되었다가 인종때 장흥으로 개명 지사부로 승격 정주 관산으로 부름
원종 6년(1265년) 회주목으로 승격
충선왕 2년(1310)에 다시 장흥부로 강등
이때는 왜구의 침입 때문에 주민들은 전부 북쪽 산간지방으로 옮김
이태조 원년(1392년) 수령현의 중령산에 성을 쌓고 치소로 하였음
13년(1413년)에 도호부에서 그 이듬해 수령현으로 도호부를 이설
세 조 (1457년)에 진을 두고 2현으로 강진, 해남을 관할
선 조 32년(1599년)에 병마철제사영을 강진에서 장흥으로 이설
선 조 37년(1604년)에 강진 구영으로 옮김
현 종 9년(1699년)전영을 병설
숙 종 9년(1683년)에 진을 순천에 이설
고 종 32년(1895년)에 장흥군이라 함.
1914년에 천포,회령,웅치 등 3개면이 보성군에 편입 11개의 행정구역으로 개편
1980.12. 1 관산면과 대덕면이 관산읍과 대덕읍으로 승격 3읍 6면이 됨 분할 3읍 7개면 294개리의 행정구역으로 개편 현재에 이름.
호남정맥 9구간 구간종주
2002년 10월 13일 (일) 날씨는 흐린 후 맑았으며 엄청나게 더웠다
같이한 사람들은 : 산가사의 왕초 나졋소 박너물 광인 순지니 부부 6명
차량 임대비로 각자 4만원씩과 , 식사 및 초 비용으로 2만원씩 더 갹출
◁산 행 후기▷
지난 설악산행기에도 밝혔듯이 10월은 바쁨의 연속,
설악산을 다녀온 다음 날 7일부터 연속으로 이어지는 근무 ,그러니까 7~11일까지, 24시간 5일 = 120시간 틈틈이 토막 잠자고... 아침에 가는 30분간의 사우나 시간이 황금 시간, 토요일 오전부터는 그래도 마음이 느슨해지고 산으로 갈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120시간 동안 짬짬이 토막잠 자며 연속으로 근무한 체력이 어디 정상적이겠는가?
그렇게 버티는 것 만 보아도 내 스스로 대단한 강골이라 생각했지만 만신창인 몸 이다
이번주는 산가사와 호남정맥 구간종주로 들어간다
평소의 준비물 외에도 팀원들이 챙겨야 할 지도 및 차량확인 등 신경쓸일이 있다
마음이 풀어져서인가? ... 토요일 서서히 몸이 무너져 내린다
그렇다 나는 무쇠팔, 무쇠다리(?) 마징가Z는 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점심 때 참 초 한 병 저녁 먹으며 참 초 한 병 (내가 초빼이 인건 세상이 다알지)
동대문 히테타운에서 또 마시느라 23시가 넘어서 호남으로 달려간다
호남정맥의 가시넝쿨에 팀원들이 많이 지겨워여겨서 일까 ? 아님 다른 이유인가
늦도날여사는 급체로 못 간다, 설중녀 고르비 진가락 모두 불참이다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순진아! 휴게소에서 물 한병만 사둬라 낼 아침 물 께나 먹게 생겼다>
새로 교섭한 차량의 나이먹은 아저씨가 예전의 젊은 최기사 보다는 순발력이 떨어져서인가?
밤 새도록 피곤하게 달린 차량은 새벽 4시가 넘었는데도 헤메이는 기척이다
<장님 문 고리 잡기> 식으로 어찌하여 <시목치>에 닿은게 04시50분이 다 되어서이다
애당초 시목치에서 장고목재까지 계획을 했으나 좀 더 욕심을 내어 웅치까지 갈 수 있으면 달리리라 내심으로 생각하고
지도도 그렇게 준비하고 차량기사에게 1차 장고목재 아래 월곡마을, 2차는 웅치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웅치까지는 도상거리 23km가 넘는다
05시
해발 220m의 감나무재를 출발하며 오늘의 정맥구간으로 들어선다
오늘 구간은 해발300m에서 높아야 500m대의 산을 오르내리는 전형적인 야산구간으로 잡목의 저항께나 받을 것이다
지도를 준비하고 등고선을 찾아서 능선을 그어나가는 작업을 할 때 산은 낮아도 <이거 굴곡이 괭장하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산행에 들어가니 장난이 아니다
◁간간이 맹감넝쿨 속에서도 요런 것이 보이니 산행 할 맛 이 난다▷
무덤을 지나고나니 바로 경사가 심해진다
어둠속에서도 여전히 청미래(맹감) 가시넝쿨이 잡아당기니 <아~ 내가 호남정맥으로 들어섰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 수 밖에 없다
십 수년생 소나무군락 사이로 오르는데 긴소매 옷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덥다
출발19분 후 x349m봉을 지나가는데 어둠속에 휙 지나치고만다
다만 이 봉우리 이 후 뚝 떨어져 내리니 4~5분 여 후 측백나무 군락지를 지나며 내려서고,
05시28분
북쪽 <정암제 저수지>로 내려서는 사거리 안부에서 어둠속 이지만 반소매 셔츠로 갈아입고 오르기 시작한다(5분 지체)
5분여 오르니 바위지대가 나타나며 시야가 터지고 곧 이어 봉분이 뚜렷한 무덤을 지나니 잠시 평탄하다가 다시 오른다
05시47분
이미 뒷 사람들의 불빛은 보이지 않는가운데 삼각점을 확인할 수 없는 △338.6m봉을 지나 잠시 평탄하다가 다시 오른다
10분 후 어둠이 가시며 x369m봉에 오르니 정맥은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북쪽으로도 능선은 뻗어있다
잠시 기다리니 일행들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나는 바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서는데 일행들과 이 후 한번도 만나지 못한다
◁날이 막 밝아오면서 뒤 돌아 본 방금 지나온 정맥의 능선 과 구름에 일부 가린 제암산▷
움터오는 여명속에서 저 앞으로 걸어야할 정맥의 능선의 윤곽들이 양쪽의 황금 들판위로 확실하게 가늠되는데 뒤 돌아 제암산쪽을 바라보니 정상일대는 시커먼 구름에가려 비라도 내리는 것 같은데 제발 내가 걸어가는 낮은 지대인 정맥 일랑은 비가 내리지 말았으면...
약 16분 정도 뚝 떨어져 내린 후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여전히 발목이나 팔목을 잡아채는 맹감넝쿨(청미래)은 호남정맥종주를 시작하면서부터 여전한데 끈질기고 억센 넝쿨의 모양이 수 십년간 질곡의 세월을 오뚜기 같이 살아오면서도 오늘날 원하고자했던 꿈을 이루어 내었던 老 政治人(?)의 정서에도 이런 맹감넝쿨과 같은 끈질김의 그런 것이 있지않았나?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이즈음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우리 팀원 대개가 그런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던 것 같다
◁367m봉을 지난 후 서쪽으로 능선을 틀며 내려다 본 만년동 일대의 황금벌판▷
x318m봉을 어느새 지나고 게속 오르기 시작
06시24분
x367m봉에 오르니 왼쪽 아래로 평야지대의 <만년동>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 제암산은 여전히 구름에 가려있다
작은 무명봉을 넘어서 내려서는데 37분~38분 사이 바위지대를 내려서니 TV안테나가 서 있고 마을의 이장님의 방송소리가
들려오는데 구수한 남도의 사투리가 정겹다
소나무숲으로 뚝 떨어진 후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45분)
참으로 이상한 것이 철(季節) 모르는 진달래가 꽃을 피우고 있는데 그게 어쩌다 한 두송이가 아니란 것 이다 수시로
볼 수 있으니 이 곳 의 특이한 기후 때문이지 알 수 없다
양쪽으로 마을이 가까우니 수시로 개 짓는 소리를 들으니 고요한 산골마을의 적막을 깨트리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다
◁367m봉을 지나서 무명봉에서 바라 본 상방이마을 일대의 게단식 논 과 중간의 작은 봉우리가 △305m봉 이며 그 뒤 x456m봉 뒤에 제일 높은 용두산(551m)▷
산행내내 보라색 산부추꽃 과 잔대꽃을 보게되고,
무명봉을 지나서 내려서면서 뒤돌아보니 구름사이로 붉은 해가 떠 오르길래 시계를 보니 07시가 다 되어간다
다시 내려서는 산길은 여전히 맹감넝쿨이 발목을 잡아채는데,
07시11분
임도를 건너 다시 오름길을 재촉한다
9분 후 다시 임도를 만나는데 지도상에는 임도가 아니고 상방이 마을과 남쪽의 마을로 이어주는 소로로 표기 된 곳 이다
◁처음 만나는 임도 저 너머가 북교리로 넘어가는 길이다▷
갈림길이 여러 곳인 고개길을 지나서 오르니 아주 잘 조성된 경주이공 묘지를 지나간다
07시30분
△305m봉을 지나는데 정상을 비켜 지나길래 삼각점을 확인도 할 겸 서쪽으로 오르니 1분도 채 걸리지 않고 삼각점은 있는데
글씨등은 볼 수 가 없다
보웅리를 내려서니 다시 고개가 나타나는데 역시 x456m봉 직전의 지도상 소로로 표기된 곳이며 다시 오르는데 능선의
왼쪽으로 잘 조성된 묘지가 보인다
오른쪽, 그러니까 동쪽 바로 아래 마을에서 닭 우는 소리 개 짓는 소리는 요란하고,
이제부터 용두산 오름이 무척 힘겨워진다
손 바닥 만하게 형체만 보일 정도로 훼손된 봉분만 남아있는 무덤을 지나는데 그래도 누군가에 의해 벌초가 잘 되어있다
◁철 모르는(?) 너! 진달래 맞니? 이런 넘들이 게속 피어있다
08시00분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며 x456m 봉을 지나가고, 조금 더 오르니 약간 훼손된 쌍 묘를 지나가고,
11분 과 15분 <93-3-58> <93-3-57>표기의 헬기장을 지나간다
헬기장을 지나 마지막 오름길에는 굴참나무 아래 키 작은 철죽들이 빼곡하고,
08시19분
장평면에서 세운 표지석이 서 있고 별다른 특징이 없는 용두산 정상이다
뒤에 쳐진 후미팀에게 전화를 해본다
<왕초! 용두산 정상인데 식사를 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용두산 열심히 올라가고 있는데 기다려요>
그러나 참 초 반병 반주로 도시락을 먹고 기다려도 오지않아 먼저 출발하기로한다
◁용두산 정상 표지석▷
08시41분
북쪽으로 용두산 정상을 내려서는데 지금 껏 과 달리 길 상태가 좀 양호한 편이다
양호하다는 건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의 등산로와 같이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냥 가시넝쿨이 덜 잡아당기는 정도라고 생각하면된다
잠시 산죽군락도 지나고 12분 후 산판길을 만나고 곧 억새와 야생화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금장재>다
다시 힘겨운 오름길을 14분 이어지면 x471m봉에 오르게되고 이제부터 방향을 서쪽으로 바꾸면서 두 어개의 무명봉을 지나
내려선다
09시15분
자갈이 깔린 임도에 내려서니 억새와 산국화가 완전한 가을을 느끼게한다
◁금장재도 지나고 471m봉도 지나 만나는 임도▷
다시 힘겨운 오름길이 이어진다
산을 오름에 언제고 오르내림이 있고, 힘이 들진데 어느 산은 힘이 들지않고,
어느 산은 몹씨도 힘듬은 지금처럼 만신창의 몸 상태가 아니라면 다 마음먹기 일 것이다
산을 좋은 산 , 나쁜 산 분류하면 않되겠지만 어쨋 건 설악이니 지리는 계절에 따라 ,
코스에 따라 찾으며 오름은 아무래도 스스로를 산꾼 운운 하지만 산꾼다운 수양이 덜 된 탓이 아닐까 싶다
09시32분
그렇게 힘든 오름길 끝에 <93-3-52>표시의 헬기장을 지나가고 8분 후 역시 <93-3-53>
표시의 헬기장을 지나며 △513m봉으로 착각하고,
◁헬기장에는 이런 표식들이 있어 후답자들은 좋은 좌표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삼각점을 찾느라 한참을 헤메이다가 방향을 슬슬 북쪽으로 바꾸며 폭 좁은 능선을 내려서는데 간간이 바위들이
나타나고 이 지역으로서는 이른 단풍들도 간간히 눈에 띤다
09시53분
그렇게 힘겹게 올라서니 <93-6-13>표시의 헬기장이고 삼각점 표시가있는 △513m봉 이다
용두산을 지나오면서부터 일대의 지능선들이 잘 발달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이 지역은 여러 곳으로 지능선들이
잘 발달되어 있음을 지도를 보나 눈 으로도 볼 수 있다
뒤 돌아보니 한 시간여 남짓전에 지나온 용두산이 아득하게 보이는 것이 새삼스레 인간의 두 다리로 움직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7분 여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이다 (10시 정각)
◁△513m봉 삼각점이다 오늘 구간중 제일 높은 봉우리 이나 이름없는 무명봉이다▷
주로 참나무과의 나무 아래로 억새들이 피어있고,
정상 출발 6분 후 동쪽으로 x316m봉으로 뻗어간 지능선의 분기점을 지나 서북쪽으로 휘며 내려가는데 다시 잡목과
맹감넝쿨이 괴롭힌다
10시26분
x409m봉을 오르고 다시 내려서는데 그 직전 참나무 수림의 능선상의 바위위에 아주 빛깔 고운 무슨 열매같은 것이 보여서
접근해보니 붉은 나무열매를(아마 익은 맹감열매)먹고 소화된 짐승의 便이었는데
<세상에나!!! 똥 치고 이렇게 아름다운 똥을 보다니! >
그래서 요 아래 그 짐승의 아름다운(?) 똥을 공개한다
◁너구리 인가요? 누군가요? 아름다운(?)똥 싼 넘이 ^^ ▷
10시33분
소나무숲이 아늑한 안부에서 다시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내 컨디션 때문인지 몹시 힘들다
10시45분
x384m봉을 올라서니 북쪽 저 아래로는 자동차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니 피재가 가까워 온거같고 잠시 후 벌목지대를 지나니
저 아래 피재는 확실하게 보이고 인근의 황금 들판의 모습이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특히 이 지역은 지난 여름 그 엄청났던
태풍 루사의 피해가 전혀 없었던 듯 싶다
이미 팔등은 엄청난 상처투성이인데 피재로 내려설 때는 쉽게 보내지 않겟다는 듯이 더 할키고 찔러대고
피는 줄줄 흘러내린다
◁피재로 내려서기 전 벌목지대에서 바라본 봉림리 일대와 멀리 정맥상의 국사봉▷
11시03분
한참을 뛰어내려 서다보니 쌍묘가 나타나고 산판길을 따라 내려서니 차량이 휙휙 지나가고 인근에 활짝 피어 하늘거리는
억새가 이채로운 <피재>에 내려서니 햇볕이 따갑기 그지없다
<장평면 과 유치면>의 경계 표시가 되어있는 이 곳에는 김해 김씨 묘역이 눈길을 끌고 장동면쪽 100 여m 쪽에 음식점이
보여서 식수를 보충할 겸 발길을 옮긴다
<싸리나무집>의 간판이 붙어잇는 음식점에서 식수를 보충 후 잘 조성된 4기의 묘지가 있는 잔디밭에서 캔 맥주와 간식을 들며
뒤에 쳐진 왕초 일행에게 전화를 건다
<여기 피재인데 바로 근처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으니 물 아끼지말고 마시고 오세요>
장장 23분을 이 곳에서 지체한다
◁장평면과 유치면 경계를 이루는 피재 차량 행렬이 잦은 곳이다▷
식수도 듬뿍 채웠겠다 부지런히 오늘 웅치까지 달려보자,, 이 때만 해도 이런 마음이었고,
11시26분
피재를 출발하며 잠시 들머를 찾는것에 혼동이 생겼고 , 때 마침 차량의 기사께서 전화가 걸려와서 장고목재 인근에
대기하라고 일러준다
무덤 우측의 표고버섯 재배하우스를 끼고 시멘트길을 올라서니 청주한씨 가족 묘역이 나타나고 우측으로 살짝 내려서니
고비와 칡 넝쿨이 어우러진 지대를 지나서 송림숲으로 올라서는 것이 본격적으로 x309m봉을 오를 모양이다
오늘 산행기를 보면 대체적으로 힘 겹다, 힘겨운 오름길이다... 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오름길이 많기도 하지만 몸 상태가 엉망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무쇠덩이 인들 배겨날 재간이 없을정도로 한 달이상 철야로 근무하고 쉬지않고 산으로 달리니 이제야 몸에 한계가 오는
모양이다
역시 힘겨운 오름이 이어지는데 이 놈의 진달래는 게속 피어있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느 듯 이 곳까지 가을의 그림은 다가오고...▷
햇볕은 쨍쟁 내려쬐는데 바람 한 점없어 담은 비 오 듯 쏱아지고 힘겨움은 가중되고,
309m봉은 확인도 못 한체
11시59분
x405m봉에 올라서 잠시 숨을 고르며 저 앞을 올려다보니 가지산의 511m봉의 바위들이 이채롭고,
왼쪽 아래 당촌마을과 보림사가 내려다보이고, 우측아래 연동마을과 황금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멀리서 보는 가지산 511m봉은 영남알프스의 맹주격인 가지산의 축소판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내리막을 내려서게되고
12시26분
서쪽의 보림사와 동쪽의 보광사쪽으로 연결되는 사거리안부에 내려서고
◁가지산 오르기 전 보림사 와 보광사 쪽 사거리 안부▷
소나무가 무성하고 그 아래 갈비가 푹신한 안부에서 가지산을 오르는데 이제부터 산길은 가지산 등로를 정비해 놓았는지
길도 좋고 덩달아 가시넝쿨도 제거 되어있다
동쪽으로 x394m봉 분기점 까지는 몹시도 힘겹게 올라서고, 분기점에 올라서니 바람이 시원하고 511m봉은 더욱 가깝게
올려다 보인다
그러나 마음같아서는 그냥 게속 올라서면 좋겠는데 산길은 다시 살짝 내려섰다가 오른다
사면을 휘돌아 힘겹게 오르다보니 산죽군락이 나타나는데 이 것도 자치단체에서 등로 주변은 베어놓아서 전혀 거침없이
오를 수 있고,
13시
장평쪽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에 올라선다
오르기전에는 511m봉으로 바로 붙는줄 알았는데 이 삼거리에서 서쪽에 511m봉은 우뚝 서 있는데 정맥과 상관없이
비켜나있어 그냥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며 가지산 정상으로 향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분명 511m봉을 오르고 지나갔을터인데 지금의 내가 몹시 지친상태 다
◁멀리서 본 가지산x511m봉 의 모습▷
바로 코 앞에 서있는 가지산의 정상도 그냥은 자리를 못 내어 주겠다는 양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이 즈음 나는 웅치까지의 게획을 장고목재에서 접을 생각을 하게된다
체력이나 지친 것도 있지만 후미팀과 두 시간 이상 앞서와야 될텐데 대강의 계산으로 1시간 여 정도밖에 앞서지 못했기에 후미팀들에게 너무 많은 기다림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고,
실제 웅치까지는 빨라야 세 시간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13시13분
아무런 표시도 없는 가지산 정상에 앉아서 남은 캔 맥주에 간식을 들면서 후미의 왕초와 통화를 해본다
<저 지금 가지산 정상인데 아무래도 오늘은 원래 계산한대로 장고목재에서 산행을 접을까 합니다 지금 후미는 어디쯤 입니까?>
◁x511m봉 과 가지산 정상 사이의 안부에 오르니 산죽을 베어놓고 등로가 정비되어있다▷
전혀 예상외의 답이 온다
<우리도 너무 지쳐서 피재에서 끊고 지금 합류해서 음식점을 찾아가는 중이다>라는 답이다
그러니까 오늘 구간이 대체적으로 모두가 힘겨운 구간이고 거기에다가 내 몸 상태까지 엉망이니 할 수 없이 장고목재에서 끊을 수밖에 없지만 다음구간이 아무래도 버거울 것 은 틀림없다
이미 온 팔은 난자 당하고 가려움증이 시작된다
호남정맥의 부산물인 풀독이 또 오른 것이다
13시27분
가지산 정상을 출발하며 내려선다
◁가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나온 정맥의 능선들과 멀리 제암산▷
뚝 떨어졌다가 33분 하나의 봉우리를 오르고, 다시 떨어진 후 오르면 40분 봉우리,
다시 내려서고 , 오르막이다
13시48분
장고목재 직전인 마지막 x422m봉에 오르고 뛰어내려선다
14시
<유치 대전, 장평 월곡>이정표가 서있는 임도상의 장고목재에 내려섬으로 오늘의 호남정맥은 끝이났다
역시 임도라서 차량이 올라와 있지 않구나하고 동쪽 저 아래 보이는 월곡마을을 향해 부지런한 발 걸음을 옮긴다
산행을 매 조지한다고 생각하니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맏지 못했던, 가을의 내음과 가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
딱히 무어라고 설명 할 수 없는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것 들 말이다
◁가을은 역시 단풍과 으악새(?)를 보면 느낄 수 있다 월곡마을로 내려서면서,▷
저 아래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가 무성한 마을로 접어드는데 여지 껏 통화가 되지않던 차량기사님과 연락이 닿는다
<여기 장고목재인데 지금 어디세요?>
<무신 소리를 하세요? 장고목재 내려왔더니 없던데 엉뚱한데 가 게신 것 아닙니까?>
<아닌데요 맞는데요 유치 대전, 장평 월곡 이정표가 있는데유!!!>
<그럼 봉림리에서 오른게 아니고 ... 지금 막 올라온거죠?>
<예 ~ 유치면 쪽에서 지금 막 올라왔는디유!!!>
<아이고! 봉림리 방향으로 내려오세요 저 월곡마을 부근에 있습니다>
많은 사연을 가지고 차량기사와 합류해서 봉림리 태평가든으로 달려간다
◁ 봉림리 태평가든의 주인 어른은 글 쓰기를 좋아해서 많은 글을 남겼고 여러 단체에 의해 좋은 글을 남긴데 대해 포상도 많이 받은 것 같다 곳 곳에 많은 글을 새긴 돌 들이다▷
이미 질펀하게 한 상 펼쳐놓고 참 초 병이 널비하다
팀원 모두이 입 맛 조차 비슷하다
오리고기집이라 오리를 주 메뉴로 시켜놓았는데 정작 모두가 좋아하는건 부 메뉴로 나온 열무김치와 곰 삭은 김장김치 다
그 놈의 김치를 십 수번 추가 주문하기 미안해서 먹지도않는 오리를 또 주문하는데....
호남정맥을 종주하면서 항상 느끼지만 산행 후 이런 맛갈스러운 호남의 음식을 즐길 때 즈음이면 어디선가 서편제 가락이라도
들려올 듯 한 그런 기분이다
하긴 얼마전까지는 동편제의 고장을 다녔지만 보성이 후 서편제의 고장이라 할 수 있지,
참초 병 수병이 널부러질 무렵, 툴툴 털고 일어나 귀경길을 재촉하며 달리는데 한참을 달리다보니 멋진 정자가 보인다
바다의 동쪽에 있는 정자란다 "海東亭"
왕초가 단지 체로 준비해온 10년 묵은 인삼주를 거들내고 그렇게 기분좋게 귀경길을 재촉하는데 광주를 지날 무렵
왕초의 푸념은 <맥주 몇 병 더 못 챙겨온 것이였고>
이번 구간에서 정말로 남은 건 모두가 온몸에 옮은 <풀독>이었다
◁해동정 앞에 서있는 저 아자씨(?)는 차량을 몰고가는 기사 아저씨 다▷
-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