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
5월의 끝자락, 대도시 재래시장 벤치마킹 차원에서 부산 자갈치시장을 들렸다가 태종대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륙도를 다녀왔다. 영도다리에서 바라본 오륙도는 섬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친밀함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는 오륙도의 유래에 대해서 알지 못했었는데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이 다섯 개로 보이기도 하고 여섯 개로 보이기도 하여 「오륙도」라 하였다고 한다.
태종대 절벽을 끼고 있는 자살바위, 망부석, 신선바위, 병풍바위를 지나면서 절경에 취하노라니 유람선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조용필씨의 ꡐ돌아와요 부산항ꡑ이 흐르면서 이미 유람선은 오륙도를 돌아가고 있었다. 나도, 다른 이도 모두 그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건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부모형제가 갈린 전쟁의 아픈 상처가 이토록 가슴에 와 닿을 줄 미처 몰랐었다. 그렇게 태종대는 한 많은 사연을 안고 있었다.
그런 한 많은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산갈매기들은 ꡐ끼럭끼럭ꡑ 소리 낸다. 유람선에서 던져주는 새우깡 따라 한 무리가 몰려든다. 영락없이 서귀포에서 운항하는 유람선이다. 비록 인조 먹이를 주면서 모여드는 갈매기를 벗 삼은 추억거리도 관광객들에겐 또 하나의 즐거움이겠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제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갈매기들의 생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아무도 모를 일이라 이는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에 선착장에서 해산물 한 접시를 일행과 나누어 먹었는데 말투를 알아들은 해녀 두 분이 자신도 고향이 제주도 보목과 성산포라고 한다. 처녀 시절, 부산에 물질을 와서 정착한 1세대들이다. 넉넉한 고향 인심에 멍게 한 접시가 추가되는 순간이다.
섬이 있고 푸른 바다를 낀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이야말로 더 이상의 풍요로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나고 자란 고향이 아니라 하여도 그들이 이곳에 쉬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바다를 터전으로 지탱해온 근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들에겐 썰물 때는 오륙도요, 밀물 때는 제주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