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지하상가를 걷다 서면은 지하다. 지하도다. 지하상가다. 부산에 지하는 많지만 지하도는 많지만 지하상가는 많지만 지하다운 지하는 서면이다. 지하도다운 지하도는 서면이다. 지하상가다운 지하상가는 서면이다. 서면은 지상도 부산 중심이고 지하도 부산 중심이다. 지상만이 부산 중심이 아니라 지하도 부산 중심이다. 서면에서 지하는 지상의 아래에 있는 지하가 아니라 지상에 힘을 실어주는 지하다. 지상을 받쳐주는 지하다. 서면의 지하는 지상을 받쳐주는 지하다. 지상의 도로를 받쳐주는 지하도이고 지상의 상가를 받쳐주는 지하상가이다. 서면에서는 지하가 있어 지상이 높아 보이고 지하가 있어 지상은 이쪽저쪽이 이어진다.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간다. 기억의 계단을 내려딛고 지하로 내려간다. 계단 중간짬에 시계를 수리해 주는 가게가 있다. 이십 년 전쯤에 건전지를 갈아 끼운 기억이 난다. 시계줄을 바꾼 기억이 난다. 지하도를 걷는다. 기억의 지하도를 걷는다. 아는 사람과 함께 걷던 기억. 아는 사람을 만나던 기억. 이제는 내 나이 또래 사람보다는 내 나이 또래가 아닌 사람이 훨씬 많다. 아는 사람은 다 어디 갔는가. 어디에서 나이 들고 있는가. 지하상가를 기웃거린다. 기억의 지하상가를 기웃거린다. 세상이 변한 게 표시가 난다. 레코드 가게 대신에 MP3가 구닥다리 카메라 대신에 디카가 들어선 상가. 세상이 변한 만큼 상가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함께 레코드를 고르고 함께 카메라를 구경하던 사람은 다 어디에서 나이 들고 있는가. 육칠월 무더위라 해도 지하는 시원하다. 태화백화점 지하에서 지하철 부전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내 젊은 날 데이트 코스다. 아이쇼핑만으로도 부자가 되던 시절. 가진 게 지금보다 적어도 지금보다 부자이던 시절. 그 시절을 갔다가 되돌아온다. 지하는 시원하다. 숨통이 트인다. 느긋하게 걷는다. 누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나보다 더 느긋하게 걷는 사람이 있어 내가 가는 길을 가로막아도 앞질러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혼자서 걸어보면 안다.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가를. 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도 앞을 가로막는 사람도 고마운 사람이다. 지하는 지상을 견디는 힘이다. 지상을 달구는 육칠월 무더위를 견디는 힘이다. 지하에서 숨통을 트고서야 지하에서 한숨을 돌리고서야 비로소 지상으로 올라갈 엄두가 난다. 지하가 없는 지상은 견뎌내기가 버겁다. 나를 견뎌내기가 버겁다. 서면 지하는 지하도는 지하상가는 서면이 가진 미덕이다. 서면이 가진 깊이다. 서면 지하는 지하도는 지하상가는 서면을 받치는 기둥이다. 서면을 받치는 밑둥이다. 지하를 지하도를 지하상가를 밝히는 불빛이 서면을 밝히는 불빛이다. 서면역 만남의 광장에서 다리품을 멈춘다. 무료신문을 보는 노인 옆에 앉아 신문을 훔쳐본다. 노인은 신문을 내 쪽으로 슬그머니 민다. 내가 잘 보도록 하려는 배려일 게다. 머리를 노인 쪽으로 기울여 굵직한 제목을 훑어본다. 어깨끼리 닿는다. 잔잔하게 오르내리는 숨결을 닿은 어깨에서 느낀다. 지하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본다. 이마 땀을 닦는 남자. 양산을 접은 여자. 생각난 듯 팔짱을 끼는 남녀. 내가 아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저랬던 것 같고 언젠가 네가 저랬던 것 같다. 신문에서 눈길을 떼자 노인은 신문을 다음 면으로 넘긴다. 노인도 나도 신문을 본다. 어깨가 다시 닿는다. dgs11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