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은 문화재로 이루어진 경주국립공원을 제외하고나면 산이 중심이 된 육상 국립공원과 해안 풍치 위주인 해상 국립공원으로 대별된다.
그러나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이 중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함이 있다.
즉, 육상과 해상을 합친 다기능 국립공원인 것이다.
그것도 장점만을 골라 갖춘 山海絶勝의 국립공원인 것이다.
변산반도는 겉모습으로 판단하기엔 미흡한 점이 많다.
그러나 변산반도는 그 속모습을 보기 전에는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곳이다.
500m가 조금 넘는 산봉들의 집합체지만 들어서서 보면 산에서 보는 바다와, 바다에서 보는 산이 함께 어우러져 산해절승이란 수식어가 허구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호남정맥에서 나뉘어 온 하나의 산줄기가 서해로 튕겨 나온 듯한 변산반도는 해발 508.6m의 의상봉을 정점으로 하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옛 선비들은 삼신산 중의 하나인 영주산(瀛州山)이라 불렀고,
스님들은 '이르기가 어렵다'는 뜻에서 능가산(楞伽山)이라 했다.
중국의 전설에 전하는 봉래산(변산)은 동쪽 바다에 있는 선인들이 사는 산이라 전한다.
의상봉 정상은 군시설물로 인해 오를 수 없다.
능가산이라 함은 내소사 뒤에 있는 산으로, 현재 등산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고 세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원래는 관음봉이라 불렀는데, 일제 시대 일본 사람들이 명산이라는 것을 알고 낮춰 부르기 위해 세봉이라고 부른 것인데, 지금까지도 원래 이름인 관음봉 대신 세봉이라고 불리워지고 지도에도 표기가 되어 있다.
대한8경의 하나이자 경승지로서의 변산반도는 흔히 변산팔경으로 대변된다.
그러나 변산팔경은 시대에 따라 이름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는 지역 내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승경지가 여럿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월명암 낙조가 최고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소사모종(蘇寺暮鐘)이라 하여 저녁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내소사 전나무숲의 운치를 첫손가락에 꼽는 이도 있다.
그 외 직소폭포, 가마소계곡, 닭이봉 기슭의 해식단애 등등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많은 경승지들이 변산을 빛내고 있다.
또한 변산은 눈이 많은 곳이다.
'비는 넘어가고, 눈은 쉬었다 가는 곳이 변산'이라는 말도 있다.
199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변산반도의 지질구조는 선캄브리아대, 즉 최소 5억7,500만년 전 이전의 시기에 생성된 화강암과 편마암이 주를 이루고, 약 7천만년 전에 퇴적한 퇴적암이 기와 모양의 층을 이루고 있어 이것이 심한 지각변동을 받아 단층과 습곡이 유난히 발달한 구조라고 한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 국립공원으로서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절경이 이어지는데 바다를 끼고 도는 외변산과 남서부 산악지의 내변산으로 구분한다.
쌍선봉, 신선봉, 관음봉, 남옥녀봉, 북옥녀봉, 의상봉으로 연결된 한편 해창으로 단 한군데만 물길을 틔워주고 있는 산줄기 안쪽을 내변산이라 부르고, 그 바닷가 바깥 부분을 외변산이라 한다.
국립공원 구역은 내변산 지역의 거의 전부, 외변산에서는 닭이봉에서 변산해수욕장-바람모퉁이에 이르는 북서쪽 해안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부안군 변산면, 진서면, 상서면, 하서면, 보안면에 걸친 157㎢ 중 육지부가 148㎢, 해역이 9㎢다.
1971년 도립공원 지정에 이어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변산의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변산(卞山)이라고도 하는데 말(언어)이 떠돌다가 변(邊)으로 되었고 변한(卞韓)의 이름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라 하나 그런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라고 나와 있다.
삼국유사에'百濟地有卞山 故云卞韓'이라 했으니,'백제 땅에 변산(卞山)이라는 산이 있어 변한(卞韓)이라고 하였다'는 뜻으로'부안의 변산은 원래 卞山이라 했다.
삼한(三韓) 중의 하나인 변한(卞韓)의 이름은 이 卞山으로 말미암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그래서인지 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를 변한에 속한 땅이라 적혀 있다.
내소사의 일주문에 승가산(들어가기 힘들다는 뜻으로 법어에서 나온 말)이란 별명도 쓰여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변산을 물산이 풍부하다는 뜻으로 천부(天府)라 했다 하며,
고려시대 이규보(李圭報)의 시를 인용하여 '강산이 맑고 촣음은 영주산, 봉래산과 겨룰만 하고 옥을 세우고 은을 녹여 만고에 한가지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산해절승 변산에 관한 기록은 여러 가지가 남아 있다.
고려 때인 1201년 이규보가 쓴 <남행월일기>에 보면,
'변산이라는 곳은 우리나라의 材木倉으로, 궁실을 영건하고 수리하고자 해마다 재목을 베어내지만 아름드리 나무는 항상 떨어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당시 이규보는 궁궐에 쓸 재목을 책임진 작목사로 2년간이나 변산에 머물렀다.
조선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큰 산들이 첩첩하고 골이 깊어 궁실과 배를 만드는 재료는 고려 때부터 모두 여기에서 취해갔다'고 전한다.
그 후대인 1700년대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에 또한 '큰 소나무가 치솟아 해를 가렸고, 산중에는 좋은 경작지가 많으며 땔나무와 조개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될 만큼 풍족하다'고 적고 있다.
13세기 말 중국 원나라가 일본을 칠 전함 300척을 우리나라에 요구, 이곳 변산의 목재를 써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이렇듯 목재를 비롯해 각종 산물이 풍부한 한편 십승지지의 하나로 뽑힌 변산반도였기에 한때 불교가 융성할 시절에는 절이 무려 800개가 넘었다고도 전한다.
그중 하나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찰 내소사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명성을 누리고 있다.
특히 사찰 들목의 전나무숲과 왕벚나무길이 압권이다.
※ 이중환(李重煥,1690-1750)이 지은 인문지리서인 택리지는 변산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蘆領一枝北至扶安斗入西海中 西南北皆大海內有千峰萬壑是爲邊山 無論高峯絶嶺平地則崖皆落落長松參天예日 洞外皆鹽戶漁夫山中多良田沃疇 居民上山採蔬菜 下山就魚鹽薪 炭瀛蛤不待價而足 只恨水泉帶장 上所謂諸山大則爲都邑 小可爲高人隱士栖遯之地而至.
(노령산맥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러 서해 바다 가운데로 뻗어 들었다.
서남북쪽은 모두 큰 바다이고 내륙으로는 많은 산봉우리와 골짜기가 변산을 이루고 있다.
높은 산봉우리와 깍아 지른 듯한 산능성이 평지와 비탈 막론하고
모두 낙낙장송이 하늘에 솟아 해를 가리었다.
마을 밖에는 소금을 굽거나 고기를 잡는 사람들의 집이 있고,
산중에는 기름지고 좋은 밭이 많다.
주민들이 산에 올라 산나물을 채취하고
산에서 내려오면 고기잡이와 소금 굽는 것을 업(業)으로 하며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값을 주고 사지 않을 만큼 풍족하다.
다만 샘물에 장기(풍토병기운)가 있는 것이 유감이다.
위에 말한 여러 큰산은 큰도시가 될만하고
작은것은 고인 (高人)과 은사 (隱士)가 살 만하다.)
이렇듯 풍부했던 변산의 수림상은 1945년 해방을 전후하여 결정적으로 피폐해졌다.
부안 출신의 작가인 김민성씨는 저서 <오오, 변산이여>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한일합방 후 1929년에는 1만정보나 되는 임야가 일금 20만원에 일본 귀족원 의원 다카도리에게 불하되었다. 그리하여 다카도리는 변산에 개인사무소와 청원경찰을 투입하여 감시와 수호를 하다가 1944년에 소위 대동아전쟁에 의한 국가총동원법에 의하여 임목 벌채의 법령이 발동되어 많은 수목을 전쟁 목적으로 남벌하였다. 해방 후에는 20년 가까이 길러온 나무들을 마치 日人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되었는지 무허가 도벌이 극심하였다. 중계의 깊은 산골짜기, 청림, 월명암 주변에 있었던 낙락장송도 아깝게 다 없어지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변산의 풍부한 자연자원의 상징이던 변재(변산의 목재), 변청(변산의 꿀), 변란(변산의 난)의 삼변은 이렇게 하여 옛말이 되고 말았다.
변재가 거덜이 나며 변청도 더불어 고갈되었고, 변란도 한때 트럭으로들 캐내개며 매우 보기 힘들게 되었다.
1988년에야 변산반도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희귀식물이 남아 천연기념물 제122호인 호랑가시나무 군락(변산면 도청리 모항), 제124호 꽝꽝나무 군락(변산면 중계리), 제123호 후박나무 군락(변산면 격포리), 제370호 미선나무 군락(변산면 일대) 등 총 19종의 희귀 및 멸종 위기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숲이 우거지고 산물이 풍부하며 지세가 복잡다단하여 은밀한 곳이 많은 변산은 십승지지의 한 군데로 꼽혔다.
내외변산을 돌아보면 난을 피해 들기까지는 않더라도 간혹 찾아들어 심신을 쉬게 할 장소로는 다시 없지 싶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산책한 후 채석강 갯바위에서 노을을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휴식이 가능하다.
해안가를 따라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코스도 환상이다.
■ 내변산
@ 509m, 쌍선봉 459m, 관음봉 433m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내륙은 첩첩산중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고봉인 의상봉의 높이가 해발 509m에 불과하지만 400m급 준봉들이 겹겹이 이어진다.
내륙쪽 변산반도를 가리키는 내변산의 명소로는 최고봉인 의상봉(509m)을 비롯해 쌍선봉(459m), 옥녀봉, 관음봉(433m 일명 가인봉), 선인봉 등 기암봉들이 여럿 솟아 있고,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당, 가마소, 와룡소, 내소사, 개암사, 우금산성, 울금바위 등이 있다.
내소사 절 입구 600m에 걸쳐 늘어선 하늘을 찌를 듯한 전나무숲도 장관이다.
내변산의 직소폭포는 30m 높이에서 힘찬 물줄기가 쏟아지고 폭포 아래에는 푸르른 옥녀담이 출렁대며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이를 봉래구곡이라 부른다.
곳곳의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백천내로 변산댐에 이르면서 곳곳에 시원한 경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외에 개암사, 개암사, 북쪽에 솟은 두 개의 큰 바위인 울금바위(높이 30m,와 40m),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우금산성,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월명낙조'로 이름난 월명암과 낙조대도 명소다.
또한 내변산에 1995년 부안댐이 완공되어 물이 차면서 중계계곡이 호수로 변해, 천연적인
단애를 이룬 기암괴석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 외변산
외변산은 변산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지역을 말하며,
주로 암석해안의 해식애(海蝕崖)와 모래해안의 백사청송(白砂靑松)등의 해안경치로 이루어진다.
외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는 5곳의 해수욕장(상록, 격포, 모항, 변산, 고사포)과
오랜 세월 파도에 씻긴 채석강과 적벽강, 새만금방조제, 원숭이학교 그리고 맛갈스러운 서해회가 있는 격포항과 젓갈과 염전으로 유명한 곰소항이 있다.
그 외에도 신석정시비, 한국 최초로 조성된 금구원 조각공원 등을 둘러볼만 하다.
내변산은 산이 있어 '운치'가 있다면, 외변산에는 바다가 있어'낭만'이 있다.
격포 채석강과 적벽강을 중심으로한 격포해수욕장, 격포항, 조각공원, 상록해수욕장, 모항해수욕장 구간은 외변산 여행의 꽃이라 할 수 있으며, 바다를 끼고 있어 노을감상이 용이하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내변산보다 찾는 관광객수가 많다.
외변산 곳곳에서 '갯벌체험', '조개잡이', '바다낚시' 를 할 수 있어 도시근교 아이들 자연학습장으로도 인기가 좋다.
■ 변산팔경
변산팔경은 변산에 있는 여덟 군데의 대표적인 절경을 말하는 것으로 부안지방의 민요에서 채록된 것이라고 한다. 변산은 어느곳을 가나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뛰어난 경관과 신비한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8곳의 빼어난 절경을 찾아 옛사람들이 변산팔경 이라 하였다.
① 웅연조대(熊淵釣臺)
줄포에서 시작하여 곰소 앞바다를 지나는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을 말한 것으로, 서해 앞바다에 펼쳐지는 어선들의 행진과 어선에서 밝혀대는 야등(夜燈)이 물에 어리는 장관, 강촌의 어부들이 낚시대를 둘러매고 노래부르는 경치를 제1경으로 친다.
② 직소폭포(直沼瀑布)
내변산의 가장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직소폭포는 변산 경치의 압권(壓卷)이기 때문에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의 선경(仙境)을 보지 않고는 변산을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③ 소사모종(蘇寺暮鐘)
가인봉을 배경으로 하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 차 있는 내소사의 경치와 어울려, 곰소만 푸른바다의 정경과 어둠을 헤치고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저녁 종소리의 신비로운 정경을 제3경으로 친다.
③ 월명무애(月明霧靄)
월명암의 법당 앞 마당에서 둥실 떠오르는 밝은 달을 쳐다보는 경치도 일품이지만, 일출과 함께 새벽잠을 깬 온갖 산새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봉우리마다 자욱한 안개와 구름이 춤을 추는 황홀한 비경속으로 하나 둘씩 솟아나는 봉우리들의 자태는 한 폭의 산수화이다.
⑤ 서해낙조(西海落照)
서해안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낙조를 구경할 수 있지만 특히 조망이 뛰어난 월명암 옆 낙조대(落照臺)에서는 고군산열도의 점점이 늘어선 섬들과 위도의 덩어리 섬들을 앞에 두고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듯 온 바다를 진홍빛으로 물들이며 조용히 자취를 감추는 석양의 장관을 볼 수 있는데, 이 낙조는 이 곳이 아니면 그 진수(眞髓)를 볼 수 없다 할 것이다.
⑥ 채석범주(彩石帆舟)
억만년 세월을 파도에 몸을 맡긴 바위는 지쳐 깎이고 씻겨 절벽을 이루었으며, 절벽은 다시 씻겨 동굴을 이루었으니, 대자연의 신비와 비밀을 간직한 채석강과 이 곳을 한가롭게 지나는 고깃배의 모습은 실로 감탄을 자아낸다.
⑦ 지포신경(止浦神景)
변산면 지서리를 옛날에는 지지포(止止浦)라 했는데, 이 곳에서 쌍선봉으로 향하는 다소 가파른 등성이를 올라 산중턱에 오르면 시원한 바다바람이 발길을 멈추게 하며, 휘감고 도는 수많은 봉우리들 사이로 서해의 조망이 그림처럼 펼쳐져 산속의 신선이 되어 별천지에 있는 느낌을 준다.
⑧ 개암고적(開巖古蹟)
개암사는 변산의 4대 명찰중의 하나이다. 그 옛날 나라를 빼앗긴 백제 유군들이 이곳에 진을 치고 백제의 부흥운동을 전개한 본거지이기도 하며, 개암사 뒷편 울금바위의 위용과 주류성의 자취는 그윽한 역사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 변산의 삼변
예로부터 변산반도에는 3가지 유명한 특산물이 있다.
첫 번째는 변재(邊材)로 이곳 변산의 굵고 곧은소나무가 유명하여 궁궐을 지을때 쓰는궁재(宮材)와 배를 만드는 조선재(造船材)로 쓰였다 한다.
이규보의 남행월일기에 자신이 이곳에 벌목사로 왔다는 기록이 전한다.
두 번째는 변청(邊淸)으로 청은 꿀을 뜻하며, 변산면 중계리와 상서면 감교리 계곡의 한봉꿀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는 겨우그 명맥만이 유지되고 있다.
마지막은 변란(邊蘭)이다.
변산에는 난이 유명하여 등산로 주변에서 쉽게 관찰되며 일종의 춘란으로 일엽일화(一葉一花)의 진란이다.
1. 변 재(邊材)
품종: 소나무, 곧고 긴 것이 특징
품질: 겉으로는 연하지만 속은 강함
용도: 조선재(造船材), 궁재(宮材), 문목(門木), 고급건축자재
고려때 이규보는 벌목사로 왔었고, 원나라의 일본정벌을 위한
선박도 변산에서 건조했음.
2. 변 란(邊蘭)
변산에는 야생 난초가 많이 자생하여 변산의 명물로서 많은 사람들의 기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일컬어 일명 변란 이라한다.
주로 변산면, 진서면, 상서면, 보안면 등 변산의 상록수림 속에 자생하고 있는 난초이다.
변란은 일종의 춘란(春蘭)으로서, 일엽일화(一葉一花)의 진란이다.
저온에서 잘 견디고 병충해가 없으며 자생란으로서 그 뿌리며 잎이며 또는 꽃이 여러 종류가 있으나 대체로 잎이 가늘고 긴 것, 큰 것 두가지가 있는데 세엽(細葉)은 수컷이고 대엽(大葉)은 암컷이다.
3. 변 청(邊淸)
변산에서 나오는 자연꿀을 말한다.
맛이 좋기로 이름나 있으며 향기가 그윽하고 약용으로도 쓰인다.
변산면 격포리 적벽강 부근과 변산면 중계리 월명암 골짜기, 상서면 통정리 골짜기등에서 많이 생산된다.
▣ 변산의 명소
※ 개암사와 울금바위
변산국립공원의 동쪽 끝부분 부안, 줄포간 23번 국도변에서 서쪽 서쪽 골짜기를 따라 3km쯤에 있는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년) 묘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676년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중창하여 대가람이 되었다고 한다.
당우는 보잘것 없으나 대웅전은 조선후기의 건물로 보물 29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뒤쪽에 솟은 울금바위는 그 이름으로 갖가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데 특히 이 바위를 깃점으로 축조된 우금산성(일명 주류성)은 백제의 유민이 일본에서 왕자 풍을 모셔다가 부흥을 꾀했던 사적지로 알려져 있다.
※ 내소사
관음봉 기슭에 자리한 절로 백제 무왕 34년(633년) 혜구두타 스님이 절을 세우고 소래사라 하였다하며 지금의 사찰은 조선조 인조 11년(1633년) 청민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보물 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과 고려동종(보물 277호)이 보존되어 있다.
조선조 말엽 이후 내소사는 만허선사와 그 제자인 해안선사에 의해 선풍을 크게 일으킨 수행도량이 되었다.
해안선사로부터 감화를 받아 수행의 길을 걷게 된 속인들이 내소사 주변에 많아 그들이 금강경을 줄줄 외웠기에 스님들 사이에서도 내소사 근처에서는 금강경을 아는 체하지 말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절 입구는 전나무 숲이 울창하고 절 뒤로 관음봉이 병풍처럼 둘러서있어 절승을 이루어 가히 변산 제1의 사찰로 손색이 없다.
절 입구 원암마을에서 직소폭포로 넘어갈 수 있다.
※ 봉래구곡과 직소폭포
변산반도의 가장 큰 하천인 백천내의 상류는 봉래구곡, 옥녀담, 직소폭포가 연이어 있어 내변산 제일의 비경승지로 꼽히는 곳이다.
변산 8경중 제1경인 직소폭포는 높이가 23m나 되고 그 아래 제2, 제3의 폭포가 있고 이어 옥녀담이 있다.
※ 변산해수욕장
변산반도의 북쪽 해안에 있는 이 해수욕장은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수심이 얕고 백사장이 넓어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 격포해수욕장
변산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이 해수욕장은 규모는 작으나 물이 맑고 부드러운 모래가 일품이며 변산해수욕장에 비해 붐비지 않아 좋다.
※ 채석강과 적벽강
격포해수욕장 좌측 해안 암벽지대로 수성암이 단층을 이뤄 마치 수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것 같이 장관을 이루는데 실제 강이 아니라 파도가 밀려와 바위골을 빠질때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 같다하여 채석강이라 불린다고 한다.
적벽강은 채석강 옆 죽막동 북쪽 해안을 이르는데 붉은 색을 띤 해안절벽지대로 낙조때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