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내리는 날 -
바람도 없고 고요한 잿빛 하늘에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지붕 위와 나뭇가지에 봉올봉올 아름답게 꽃을 피운 것이, 하얀 은벽에 그려놓은 한 장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이런 날이면 너무 즐거워 동무들과 뛰어 다니며 눈사람을 만들며 눈싸움도 하였지만 오빠와 함께 썰매 타는 것이 더 좋았다.
오빠가 넓은 나무판자에 나를 앉혀 놓고 줄을 메어 끌고 다니며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즐거웠다.
눈싸움을 하다가 내가 던진 눈에 오빠가 맞으면 아픈 척 엄살을 부리고 눈 위를 뒹굴고 나늘 놀렸다. 오빠가 던진 눈에 내가 맞으면 발을 동동 굴리며 응석을 부리고 울었다. 오빠는 나늘 껴안고 집으로 데려가 따뜻한 아랫목에 누여놓고 재미있는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아무리 들어도 또 듣고 싶어, 아무데도 못가게 하고 책만 읽어달라고 조르다 잠이 들곤 했었다.
몹시 춥고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오빠가 밖에서 놀다 들어와 양말을 벗고 책상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발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너무 춥게 보여 따뜻하게 해주려고 뜨거운 인두를 오빠 발가락 가까이 대고 있었는데, 인두가 발가락에 닿아 화상을 입게 되었다. 오빠는 뜨겁다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나를 나무라지 않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웃고 있었지만, 어머님께 들켜 꾸중을 듣고 밖으로 나와 문 뒤에 숨어 있었다. 마침 외출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를 따라 방에 들어와 떨고 있는 나를 오빠는 찬손과 언 발을 주물러 주며 내가 좋아하는 옛날 이야기까지 들여주었다.
따뜻하고 자상했던 오빠!
군 단위엔 영화보기가 어려웠던 시절, 활동사진이 들어왔다고 악사들이 징 치고 나팔 불며 플랭카드 앞 세우고 신작로를 술래하면 동네 아이들이 뒤를 따랐고, 그 아이들이 틈에 끼어 신이 났던 날들, 오빠가 영화 보러가는 것을 알면 데리고 가지 않을까 봐 저녁도 먹지 않고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는 웃으면서 데리고 갔지만 나는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안고 있던 나를 등에 업고 집에 올 때는 깨어 있으면서도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다가 집에 와서야 눈을 떳던 나,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성화를 부리고 괴롭혀도 미워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던 오빠!
오늘처럼 눈 내리는 날이면, 저 세상으로 가고 없는 오빠가 더욱 그리워진다.
- 설 맞이 -
섣달 그믐이 가까워지면 어머니의 일손은 더욱 바빠졌다. 밤에도 엿을 달이고 유과를 만든 후, 우리들의 설빔을 만드시느라 주무시지 않으셨다. 그런 날이면 나는 즐겁고 신이 나서 잠도 오지 않았다. 뜨거운 아랫목에 식혜를 앉혀놓고 두꺼운 이불로 씌워 놓으면 나는 들떠서 설날이 몇 밤 남았느냐고 어머니께 묻곤, 자고 나면 손가락으로 그 날을 헤아리며 기다렸다. 다된 식혜에서 엿기를 자루를 건져내면 항아리 안엔 하얀 밥알이 먹음직스럽게 동동 떠 있었다. 어머니는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에게 한 사발씩 떠 주고 엿물을 걸러내셨다. 그 맛은 혀가 녹아버릴 것처럼 달고 맛이 있었다.
이웃 친구들과 놀다 집에 들어오면 엿 고는 달콤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그 냄새를 맡으면 밥알 찌거기인 엿밥을 먹으면 그 맛도 감질나게 좋았다. 어머니는 마른 박 줄기며 연뿌리, 도라지 등을 전과감으로 준비하셨고, 엿이 다 고와지기 전에 항아리에 걸쭉한 조청을 만들고, 깨를 볶아 흑임자와 흰깨를 앞뒤로 묻혀 둥글게 말아 마름모꼴로 썰어 놓으면, 먹음직 스러운 깨강정이 되었다.
나는 저녁 내내 강정을 만들고 계신 어머니 옆에 앉아서 구경을 했다. 다 고아진 엿을 그대로 항아리에 보관하기도 하고, 따뜻할 때 두 사람이 양 옆으로 서서 세 가닥을 만들어 가며 오랫동안 당기면 하얀 엿가락이 되었다. 그것을 골고루 가늘게 다듬어 콩고물에 먹기 좋게 잘라내면 맛있는 엿과자가 되었다. 어머니는 다된 과자를 먹을 만큼 나누어 준 후, 우리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올려 놓았다. 그걸 훔쳐 먹기 위해 엎드려 있는 내 등위에 올라선 오빠가 잘 못하여 바구니를 엎어버렸다. 어머니의 호통 소리에 놀란 오빠와 나는 신발도 신지 못한채 텃밭으로 도망가 숨어 있는 데 어찌나 발이 시린지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었다. 그 때 오신 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오히려 어머니를 나무라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설날 아침이 되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면 할아버지는 세배 돈을 주셨다. 오빠에겐 큰 돈을 주고 나에겐 작은 돈을 주는 것이 어린 마음에 몹시 서운했다. 할머니는 세배 돈은 주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맛있는 것을 주시며 따뜻한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셨다.
차례가 끝나면 종조 할아버지 댁에 갔다. 사랑채에 위엄이 있고 기풍이 풍기신 종조 할아버지께서 머리에는 정자관을 쓰시고 긴 담뱃대와 큰 놋쇠 화로를 놓고 점잖게 앉아 계셨다.
세배를 드리고 나면 절도 잘 한다고 칭찬을 하시며 아랫목에 앉혀놓고 다독거려 주실 때. 세 찬상이 나왔지만 할아버지는 벽장에 넣어두신 곶감과 알밤을 소복히 내 앞에 내 놓으시며 많이 먹고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곶감과 알밤이었기에 종조 할아버지가 더 좋았다. 종조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유난히 아끼고 사랑하셨다. 아버지가 사범학교에 다닐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등록을 포기하려 했는 데 종조 할아버지가 등록금을 마련해주셔서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나를 더 예뻐해 주셨을 것이다.
- 대보름 -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먹어야 여름 내내 더위를 먹지 않는 다고 어머니는 말씀 하셨다. 저녁을 다른 날보다 일찍 먹어야 한 해를 한가롭게 보낼 수 있다면서 해가 지기고 전에 저녁상을 차리셨다. 저녁이 끝나면 사내 아이들은 깡통에 불씨를 담아 가지고 논두렁에 불을 지르고 계집 아이들은 멀리서 구경하였다.
집 마당에는 대나무 가지를 잔뜩 쌓아 놓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불을 피웠는 데 그것은 모두 액을 태우고 마귀를 쫒는다는 의식이었다. 불이 훨훨 탈 때, 불 위를 나이대로 세어가며 넘었다. 대나무 매듭이 톡톡 튀는 소리가 나에게는 대포소리만큼 크게 들렸다. 나는 무서워서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면 오빠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잘도 뛰어 넘었다. 불꽃이 어느 정도 사그라진 후에는 오빠는 떨고 있는 나를 데려다가 억지로 넘어 보라고 했다. 나는 불꽃이 제일 작은 곳을 찾아가 겨우 뛰어 넘었다. 오빠는 그런 내게 잘 한다고 칭찬을 하며 등을 도닥거려 주었다.
불놀이를 하는 동안에 어머니는 찰밥을 시루에 쪄서 큰 방에 상을 차려놓고, 작은 방, 장독대, 쌀 통 속 등에 한 그릇 씩 놓으 다음 김밥을 크게 말아 올려 놓으셨다. 그것은 노적 밥으로 복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밥을 훔치러 가기 위해 오빠는 미리 만들어 놓은 탈을 쓰고 나도 씌워주었다. 서 너 집의 장독대에 있는 밥을 훔쳐 먹으면 한 해 동안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하여 해마다 대보름 밤이면 하는 풍속의 한 가지였다. 오빠를 따라 밖으로 나가면 이웃 집 아이들도 똑 같은 탈을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는 친구들과 밥을 훔치러 들어가고, 나는 내 또래의 아이들과 밖에서 망을 보며 들킬까바 무서워 떨고 있었다. 사내 아이들은 마냥 즐겁고 신이 난 듯 히히덕거리며 훔쳐 온 밥을 손으로 나눠 먹었다.
그날 밤 잠을 자면 굼뱅이가 된다고 해서 자지 않으려고 애쓰던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굼뱅이가 되었다고 놀려서, 깜짝 놀라 거울 앞으로 달려가 보면 아무렇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날 아침은 골고룰 잘 먹어야 일년 내내 건강하다고 하시며 두부를 먹으면 살아 찌고, 무나물을 먹어야 무병하며, 고사리를 먹으면 다리가 아프지 않고, 취나물을 먹으면 꿩알을 줍고, 생선을 먹으면 몸이 곱고 예뻐진다고 하셨다.
전해오는 풍속은 지방에 따라 다르겠지만,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한 선조들의 지혜는 뛰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세시 풍속이 사라져서 유년시절이 더욱 그립기만 하다.
050927 20:25 징검다리 수풀 2002 창간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