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혈액질환)과 벤젠, 산재인정
Ⅰ. 들어가며
업무상재해라 함은 업무상의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ㆍ질병ㆍ신체장해 또는 사망을 말합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 1. 이하 “산재법”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의 산재법은 그 시행규칙 제39조 제1항 관련 “업무상 질병 또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에 대한 업무상 재해의 인정기준”을 별표 1에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에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의 업무상 질병 또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에 대하여 업무상 재해여부를 결정하는 경우에는 별표1의 기준외에 당해 근로자의 성별ᆞ연령ᆞ건강 정도 및 체질 등을 참작하여야 한다” 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직업병은 안전사고와는 달리 다른 원인에 의한 질병과 혼동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직업병의 발생시기는 당해 업무에 종사중이거나 이직한 이후에도 발생하고, 원인과 발생간에 수십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고,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하였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에서는 산재법 시행규칙 별표 1의 혈액질환부분의 개정내용을 알아보고, 본인이 직접 수행한 사건 중 페인트공의 급성골수성백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Ⅱ. 개정 전의 규정
개정전에는 산재법 제39조 제1항 관련 “업무상 질병 또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에 대한 업무상 재해인정기준”에서 16. 벤젠으로 인한 중독 또는 그 속발증으로
가. 벤젠에 폭로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거나 그 업무를 떠난 후 6월이 경과되지 아니한 근로자에게 다음의 1에 해당되는 증상 또는 소견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다만, 혈액질환과 피부질환의 경우에 소화기질환・철분결핍성빈혈 등 영양부족 및 만성소모성질환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빈혈・백혈구감소증・혈소판감소증
(2) 백혈병・다발성골수종・재생불량성빈혈
(3) 급성 또는 만성 피부염
나. 대량 또는 고농도의 벤젠증기를 흡입하여 두통・현기증・구역・구토・흉부압박감・흥분상태・경련・섬망・혼수상태 기타 급성중독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Ⅲ. 개정 후의 규정
가. 벤젠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거나 종사한 경력이 있는 근로자에게 다음의 1에 해당되는 증상 또는 소견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다만, 혈액질환과 피부질환의 경우에 소화기질환・철분결핍성빈혈 등 영양부족 및 만성소모성질환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빈혈・백혈구감소증・혈소판감소증・범혈구감소증
(2) 급성 또는 만성 피부염
나. 1ppm 이상의 농도에 10년 이상 노출된 근로자에게 다음의 1에 해당하는 조혈기계질환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다만, 노출기간이 10년 미만이더라도 누적 노출량이 10ppm 이상인 경우나 과거 노출력에 대한 기록이 불분명하여 현재의 노출농도를 기준으로 10년 이상 누적 노출량이 1ppm 이상인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1) 백혈병
(2) 골수형성이상증후군
(3) 다발성 골수종
(4) 재생불량성 분혈
다. 일시적으로 다량의 벤젠증기를 흡입하여 두통ㆍ현기증ㆍ구역ㆍ구토ㆍ흉부 압박감ㆍ흥분상태ㆍ경련ㆍ섬망ㆍ혼수상태 기타 급성중독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개정전후의 차이점은 ①“폭로”를 “노출”로 용어를 변경했고, ②개정전에는 벤젠에 폭로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거나 그 업무를 떠난 후 6월이 경과되지 아니한 근로자에게 ‘혈액질환’이 발생한 경우에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였으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직업병은 당해 업무에 종사 중이거나 이직하고 나서도 발생할 수 있고, 심지어 수십년이 지난 후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6월이내’라는 제한을 없앴고, ③대부분의 선진국처럼 벤젠의 공기 중 노출기준을 1ppm으로 강화했다는 점인데 그 노출량도 1ppm 수준에서 10년 정도는 노출돼야 벤젠이 암 발생의 원인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넓게 혈액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Ⅳ. 페인트공의 급성골수성백혈병과 업무상 질병
1. 재해발생 경위
피재자 손씨는 전남 여수시에 살면서 25년 동안 여수산업단지에서 4곳의 회사를 전전하며 공장, 선박, 탱크, 건물, 도로 등의 페인트 작업을 했는데, 도장일은 언제 어디서든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수행했으므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워낙 강건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특별한 병력없이 건강하게 생활하였는데, 2003. 11. 19. 새벽 3시경 온몸에 고열이 났으나 별탈없겠지 하고 있었는데 계속 열이 내리지 않아 동일 09시경 여수시 소재 S병원에 들러 혈액검사를 받은 결과 담당의사가 광주의 큰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해서 동일 오후 J대학병원으로 옮겨 진찰한 결과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확진 받았습니다.
2. 업무상 질병 인정을 위한 준비
피재자의 질병을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 25년 동안의 근무내역과 유해물질 특히 벤젠에의 노출여부를 규명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5년을 근무했지만 회사가 존재하지 않아 근무내역을 확인할 수 없었고, 두 번째 회사에서는 8년을 근무하였지만 회사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피재자의 노트를 통하여 마지막 1년간의 근로내역을 확인하였고, 세 번째 회사에서는 회사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공사작업일보 등을 확보할 수 있었고, 마직막 회사에서는 재직증명서와 자세한 공사일보, 급여명세서, 작업모습이 담긴 사진(방독마스크, 보호의 및 보호장갑 미착용), 입사시의 이력서 등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입사시의 이력서로 이전의 경력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거 20여년을 같이 일한 동료근로자의 진술이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3. 유해물질에의 노출
첫 번째 회사에서는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기 N석유와 에틸렌 공장에서 도장작업을 했는데 당시는 광명단이 납이 주성분인지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페인트칠을 했고, 에폭시인지 일반페인트인지도 전혀 구분 못하고 에폭시 페인트를 칠했는데 작업 중 신나에 중독되어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N화학 전공정의 각종 구조물을 도장하였는데 녹제거는 센딩작업과 그라인딩을 했고 페인트칠은 에어러스 또는 수작업으로 했으며 당시 작업은 안전보호구가 거의 없어 에어러스 작업시에는 가아제(기저기천)로 코와 입을 가리고 눈만 노출된 상태로 일하였습니다. 세 번째 회사에서는 L화학공장 전공정의 각종 구조물의 페인트 공사를 했는데 작업조건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습니다. 네 번째 회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 요양신청과 승인
과거 세 곳의 회사에서 사용한 페인트 등은 구할 수 없었고, 마지막 회사에서의 페인트와 용매는 구할 수 있었지만 백혈병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인 벤젠의 함유량을 알 수 없어 제조사에 자료협조를 의뢰했는데 대략적인 자료만 받았을 뿐 자세한 데이터는 영업비밀이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조사의 자료와 국내외의 관련 논문과 자료를 취합하여 요양신청서와 함께 재해발생상황 및 경위서를 사건을 맡은 지 3개월만에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은 한국산업안전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고, 요양신청한지 3개월만에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피재자는 요양연기신청을 해 놓았고, 연기된 요양기간까지 휴업급여를 받고 있으며, 요양비는 청구한 상태로써, 치료비 걱정은 다소 해소된 상태에서 치료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Ⅴ. 마치며
벤젠에 노출될 수 있는 작업은 접착제 제조 및 사용작업, 솔벤트 사용작업, 도장작업, 벤젠 제조 및 사용작업, 그라비아 인쇄업, 자동차 도장 및 수리업, 양복 및 양장제조업, 석유화학공업, 신발 및 제화제조업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업종에 종사한 근로자였거나 과거 이러한 업종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혈액질환이 생겼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백혈병을 비롯한 혈액질환을 업무상 질병 즉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은 첫째, 환자나 가족이 혈액질환도 그 질환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고, 둘째, 유해물질을 직접 취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유해물질이 함유된 물질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셋째,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자료가 없는 경우 그 입증에 커다란 어려움이 있고, 넷째, 과거 수십년 전에 노출된 유해물질에 의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입증의 곤란함 등이 있습니다.
혈액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공단의 결정 및 판결의 요지는 ①업무수행 중 사용한 벤젠이 환자 또는 망인의 체질 등 기타 요인과 함께 작용하여 발병케 하였거나 적어도 발병을 촉진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는 경우이거나 ②과로가 직접 백혈병의 발병원인으로 볼 수는 없으나, 일단 발병한 백혈병이 과로로 인하여 악화된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합니다. 따라서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이 업무와 직접 인과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기존의 질병을 자연악화의 정도를 넘어 급속하게 악화시킨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는 심혈관질환처럼 백혈병도 그 인정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으면 요양비(치료비), 휴업급여(평균임금의 70%) 및 사망하는 경우 유족급여(평균임금의 1,300일분), 장의비(평균임금의 120일분)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재법은 혈액질환에 있어 장해를 인정하지 않아 장해급여는 받을 수 없는데 법의 개정으로 조속히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