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뒤집기 · 야한 춘향 · 배꼽잡는 웃음
지난 8일 저녁 8시 롯데시네마 홍대점.
평일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영화 '방자전' 상영관은 남녀 커플 관객들로 자리가 꽉 찼다. 영화가 시작된 지 10분만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여자보다 남자 관객들이 더 호응하는 모습이었다.
영화 '방자전'이 흥행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개봉한 지 일주일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뒤 이번주 200만명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개봉 첫주 스코어로는 그리 폭발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수요가 제한된 청소년 관람 불가인 데다 순제작비 40억원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결과다. 개봉 2주째인데도 각종 영화 사이트 예매율 1위다.
방자전이 초반 흥행 가도를 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을 비틀어버린 '전복의 미학'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한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신성한 고전' 춘향전을 택해 이야기와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비틀었다. 춘향과 이몽룡의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춘향과 방자의 '방자한' 러브스토리가 주요 이야기 구조다.
이 설정부터가 묘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몸종인 방자는 우직하고 정의롭게, 양반인 몽룡은 야비하면서도 출세 지향적으로 그려졌다.
방자역에 더 어울릴 것 같은 류승범이 이몽룡을, 점잖은 이미지의 김주혁이 방자 역을 맡은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
춘향 이몽룡 방자 향단 변학도 등 5명의 인물은 고전의 정형화된 틀을 벗고 저마다 욕망을 드러내는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고전의 근본을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특히 기존 질서를 전복했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신선한 쾌감을 느낀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굉장히 현대적인 인물 해석이 관객들에게 새롭게 어필했다"고 평가했다.
음란서생 이후 두 번째로 직접 메가폰을 잡은 김대우 감독은 7일 "흥행 비결에는 인지도가 높은 춘향전의 힘이 컷다"며 "코믹과 에로틱함이 현대인에게 위안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은 시나리오에 2년여의 공을 들였다.
"영화가 야하나"는 입소문과 노출 마케팅도 흥행 원인으로 지적된다. 개봉전부터 춘향 역을 맡은 배우 조여정의 노출 수위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난달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임상수 감독의 '하녀'와 비교되기도 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직설적으로 야한 게 아니라 대사의 행간과 욕망의 게임 과정이 흥미진진하다"고 호평했다.
막상 봤더니 야하기만 하면 힘이 빠져버리는데 영화는 유머와 능청, 슬픔과 전복, 현실비판 등이 뒤섞여 쏠쏠한 재미를 준다.
현택수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관객들은 상상한 것을 노출 장면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고 말했다.
코믹한 대사와 인물.설정도 눈에 띈다.
방자에게 '툭 치기 기술'같은 여심을 사로잡는 비법을 알려주는 마노인(오달수 분)이 주로 웃음을 담당한다.
마노인이 "여자 2만명하고 잤다"고 말하는 허장성세는 남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동시에 대표적인 웃음 코드이기 때문이다.
극중 변학도(송새벽 분)역시 더 많은 여자를 꾀기 위해 현감이 된, 변태스러운 인물이다.
조연부터 시작해 인물들이 감칠맛나고 도발적인 측면이 강하다. 다만 뛰어난 저잣거리 재담에 비해 영상과 연출은 평번해 아쉬움을 준다.
제작사 바른손의 임승룡 본부장은 "이번주 남아공월드컵이 시작되고 신자들이 많이 개봉돼 롱런 여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며 최소 300만 관객이 목표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이향휘 기자